인간의 내밀한 역사
테오도르 젤딘 지음, 김태우 옮김 / 강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 선입견 중에 학문에 대한 편견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가설은 명확해야 하고 논리는 정연해야 하며 문장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해야 하고 결론은 빼도박도 못할정도로 확고해야 한다. 심지어 인간의 언어도 써서 안된다. 숫자와 수식만이 엄밀함의 대명사다.

 

과연 그럴까? 인문이나 사회학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우스꽝스러운 짓이 가능하기는 할까? 독재국가에서나 감행할만한 단일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에 부역자로 앞장선 역사학자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믿어달라고 강변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짓인가?

 

시어도어 젤딘은 엿같은 금기를 통쾌하게 깨트린다. 첫 문장부터.

 

"제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줄리엣의 판결이다.

 

그 어떤 눈문도 이렇게 시작한 적은 없다. 바로 아웃이다. 이건 통과여부를 떠나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되돌려보낼 것이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조금만 더 읽어보면 이런 판단이야말로 얼마나 어이없는 오만인지 바로 깨닫게 된다.

 

물론 그녀는 좀처럼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녀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물론 달라질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도 달라질 수 있었으니까?

 

인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끌고 나간다. 개인과 사회과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설켜있다. 이 관계를 풀지 않는 학자는 자격이 없다. 아무리 우주를 떠들고 경제수치를 외우고 바다밑 세상을 탐험해도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구름위의 한담에 불과하다.

 

젤딘의 시도는 나같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글이란 좋은 글과 나쁜 글이 있는게 아니라 잘 쓴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을 뿐이다. 논문이니 소설이니 수필이니 하는 장르가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생명이다. 짤 쓴 글은 읽는 이를 공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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