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변기, 쌤


누구에게나 악마의 순간이 있다. 그걸 드러내어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범죄자가 된다. 설령 들키지 않더라도 그 느낌은 남은 평생 뇌에 각인된다. 작가는 본인이 직접 겪지 않고도 머릿속의 상상을 글로 녹여낸다. 위대한 소설가는 마치 눈앞에서 벌어진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애드가 알란 포우가 그랬고 스티븐 킹도 이 반열에 합류했다.


유아살해가 일어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도가 되었다. 지금도 이런 일이 국내뿐 아니라 다른 나라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아이를 간단하게 죽음의 길로 이끈다는 게. 그것도 두 자식을. 그리고 나서는 뻔뻔하게 인터넷으로 처벌 가능성을 검색한다. 인간이란 이다지도 어리석은가?


그러나 분노에 앞서 알아야 할 것은 악마성이다. 이걸 인정하지 않고는 한바탕 울분에 그치고 만다. 곧 또다시 사건이 일어나고 이 고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방법은 자신 안의 악마를 어딘가에 쏟아 내야 한다. 매우 극렬하지만 엄청 안전하게 그 때 그 때 즉시. 글쓰기는 가장 좋은 해결방안이다, 라고 생각한다. 어떤 단어나 문장을 써도 상관이 없다. 글자들이 벌떡 일어나 내게 침을 뱉거나 칼을 휘두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끔찍한 일을 접할 때마다 늘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해자에게도. 만약 내면의 악마성을 깨닫고 어떻게 해서든 그걸 해소하는 장치를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예술은 가장 확실한 도피처가 된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이나 피가 범벅인 매드 무비가 왜 필요하겠는가? 삶이란 그저 평탄하고 안락하기만 한 낙원이라고 묘사한 예술작품을 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런 걸 발견했다면 이미 인간은 타락하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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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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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냄새가 먼저 마중 나와서 내가 가야 할 반 지하 주택 앞으로 친히 안내했다. 전등은 켜지지 않았다. 요금 미납으로 인한 전기 공급 중단이라면 새삼스럽지 않다.” 


내가 죽고 난 다음을 상상해 보자. 이런 저런 골치 아픈 일들이 많겠지만 그 중에는 유품정리도 있을 것이다. 딱히 쓸 만한 물건들이 없다면 죄다 버리라고 하겠지. 돈이 아닌 이상 꺼림직하기도 하고. 유족은 대행업체를 부른다. 싹 다 치우세요. 직원인 그는 혹은 그 여자는 집안을 둘러보며 한마디 할 것이다. “참 지저분하군요. 책만 잔뜩 있고” 그리고 짤막하게 글를 써서 파일로 저장해놓을 것이다. 여기 저기서 줏어들은 겉멋 잔뜩 밴 문장들을 인공양념처럼 첨가해서 언젠가 책으로 내야지. 김완의 글에는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없다. 변호사나 의사가 아니니 사생활을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이렇게 밍자를 모욕하는 내용을 뻔뻔하게 써내다니. 특이한 소재에 이색 직업이라 팔릴 줄 알았겠지만 당신은 사람을 판단할 권리가 없어. 비록 죽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삶을 살았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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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라면서 맞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돌이켜보니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물론 어머니나 선생님이 회초리나 매로 종아리나 손바닥을 때린 적은 있지만 감당할만한 체벌이었다. 이 기록이 깨진 건 엉뚱하게 재수학원에서였다. 내가 공부하던 곳은 특이하게 담임제도가 있었다. 그 날도 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 비슷한 것을 했는데 난데없이 나를 불러내 뺨을 갈겨댔다. 그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울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버스로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창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억울할뿐이었다. 다음날 그 선생을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말을 하는데 떠들어서 혼을 냈다고 했다. 황당했다. 시끄럽게 군 건 다른 아이였다. 나는 평소에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서 그 때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너 대체 왜 그랬니?” 결국 나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가해자는 고개를 세우고 떳떳하게 살아가고 피해자는 숙인 채 도망갔다.


배구계가 뒤숭숭하다. 이다영의 에스엔에스가 쏘아올린 신호탄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그 중에는 현역 남자 배구 선수도 있다. 국가대표 코치로 있던 이성열에게 죽일듯이 맞은 박철우 선수다. 그는 10여 년이 지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성열이 대수롭지 않게 지난 이야기를 추억하듯이 내뱉은 인터뷰를 보고 그야말로 피가 가꾸로 솟았다. “나는 지금도 그를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때려 본 경험이 없어 양심의 가책을 받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맞아본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프고 창피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숨고 싶고 사라지고 싶어진다. 아직도 그 날의 나를 떠올리면 그 개자식을 왜 내가 그냥 두고 심지어 용서를 빌었는지 스스로를 죽여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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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특이한 나라다. 아직도 여왕이 있고 귀족들이 존재한다. 일부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사례가 많지만 누리는 권력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아무리 정치 간섭을 배제한다고 해도 그건 말뿐 실제로는 여전히 막강함 힘을 발휘한다. 스캔들이 잦은 것도 그만큼 파워가 있다는 반증이다. 특이한 건 대다수 국민들이 이 체제를 따르고 있다. 심지어 사랑하고 존경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청교도 혁명 영향도 있다. 


1649년 크롬웰이 이끄는 시민군은 찰스 1세를 처형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였다. 부패한 왕정에 신물이 났던 백성들은 환호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도 컸다, 그러나 크롬웰은 스스로를 호국경이라 칭하며 입법, 사법, 행정, 군사 등 모든 권한을 거머쥐었다. 이른바 독재자가 된 것이다. 일시적인 혼란기라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문제는 일반 국민들의 사생활까지 간섭했다. 곧 문란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행위를 금지시켰다. 여기에는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청교도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 일체를 적폐로 몬 것이다. 영국인들은 왕정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 때가 더 살기 좋았어. 결국 청교도 혁명은 1660년 막을 내렸다. 불과 정권을 잡은 지 10년을 갓 넘긴 시기였다. 


영국은 다시 왕정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은 과거와는 달랐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왕당파와 의회파는 서로간의 합의를 거쳐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 이 형태는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공포정치의 폐해가 심했다는 말이다. 4백 년이 훌쩍 지났는데. 만약 크롬웰이 나라를 잘 이끌어갔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영국은 아마 먼 옛날 유물로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청교도 혁명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흡사해서다. 정직하게 말해 운동권 세력이 정권을 잡는 건 비상시국에서나 가능하다. 마치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보수 세력의 책임도 크다. 기득권과 결탁하여 오랫동안 큰 이득을 누려온 업보다. 그 결과 상식적이고 건전한 진보의 싹이 죽었고, 모두 지하로 내려갔다. 이들은 저항정신이 무기였기에 제대로 된 집권 경험이 없었다. 


한국에서 운동권이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은 건 노무현 때였다. 그의 집권 5년은 내내 혼란스러웠다. 지지자인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가 연거푸 대통령이 되면서 퇴행적 보수가 득세하였다. 만약 그 때 물갈이를 하고 합리적인 보수집단이 정치를 이끌어갔다면 촛불시위도 없었을 것이고 문재인의 등장도 어려웠을 것이다. 문재인은 준비가 안 된 대통령이었다. 구태 보수에 등 돌린 시민들의 열망을 안고 리더 자리에 올랐을 뿐이다. 완장을 찼다면 그게 걸맞은 일을 하든지 아니면 조금씩 보완하면 되었을 텐데. 그래도 사람들은 더 좋아했을 것이다. 전 정권에 워낙 실망한 상황이라. 본인이 부족하면 능력 있고 양심적인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하면 되었을 텐데 그마저도 외면했다. 그나마 있던 몇몇 소수의 사람들도 욕보이고 쫓아내기 급급했다. 실패한 사례도 있지만. 이유는 알아서 판단하시라. 


대신 이왕 획득한 권력 마음껏 휘둘러보자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크롬웰처럼.  국민들을 상대로 기합주는 정책을 케이 방역 운운하며 자화자찬한다. 이미 물건너간 소리다. 불행한 건 민주당이 재집권을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보정권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이다. 무능하고 싸가지 없음으로 대표되는. 과연 보수는 이 틈을 노리고 준비를 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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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는데 전국에 걸쳐 분향소를 운영하는 게 맞는가? 

바이러스가 분향객들을 피해간다는 보장이라도 있는가? 


외골수들은 변함이 없구나


환경운동의 거장이라는 분께서 강연을 했다. 출판과도 연결되어 있어 참석했다. 살짝 기대도 했다. 척박한 토대를 딛고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화부터 냈다. 간단한 다과로 내놓은 과자와 컵 들을 보고 일회용품이 많다, 플라스틱 포장지가 거슬린다고 한 것이다. 처음엔 그럴 수 있다 싶었다. 그러나 잔소리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강연 내내 불만을 쏟아냈다. 건물로 오는 길이 흉물이었다, 자동차가 너무 많다. 심지어는 관심 갔고 참석한 우리들에게까지 쓴 소리를 퍼부었다. 차마 그 말까지는 옮기기 못하겠다. 대체 저 인간은 어쩌다 저렇게 괴물이 되었을까? 아무리 본인의 생각이 고상하다고 하더라도 그걸 남에게 윽박지르듯 강요할 권리가 있는가? 정말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한다면 하나씩 천천히 조근조근 자상하게 해도 되지 않는가? 거두로 칭송을 받으면서 주변에서 하는 직언이 완전히 차단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귀를 닫아 버린 것일까?


백기완 선생이 돌아가셨다. 고인에게 후한 우리나라 문화상 좋지 않는 말은 거의 묻혀버렸다. 여하튼 그는 살아생전 고생을 많이 하셨다. 대통령까지 나서 문상을 가고 사회장을 치를 분 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인상적인 건 장례식장에 일체의 화한을 받지 않았다. 평소 살아계실 때 그런 겉치레(?)에 심한 불만을 제기했던 말씀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 때 나는 또다시 깨달았다. 좌건 우건, 진보건 보수건 외골수들은 변함이 없구나. 하나만 보고 둘은 알지 못하는구나. 각종 화환이 쓸데없는 권위의식일지라도 누구가에게는 생계다. 가뜩이나 졸업식도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꽃가게들이 거의 망할 지경인데 장례식에서도 화한을 놓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가게주인을 물론이고 직접 꽃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타격을 받지 않겠는가? 자칭 진보의 거두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그저 관념속의 운동에 지나지 않는 허껍데기는 아닌가? 자신의 신념에 반하더라도 소상공인과 농민을 위한다면 그냥 좀 받았어야 마땅했다. 김진숙만 챙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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