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나무를 오르기는 잘 하지만 내려오기는 잘 못한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는 그걸 모른다. 열심히 올라가기는 했는데, 자신이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를 알고는 오금이 저렸으리라. _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를 버리다>


뭔가 일이 터져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사람을 보는 마음은 복잡 미묘하다. 특히 그 인간을 직간접적으로 아는 경우는. 내게도 그런 경우가 생겼다. 아주 오래는 아니지만 꽤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불행하게도 좋은 기억 쪽은 아니다. 그는 매우 똑똑하고 순발력 좋고 윗사람 비위도 잘 맞추고 아래 직원들과도 잘 어울렸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단점이 있었으니 그건 쉽게 판단하고 단정 짓는 성격이었다. 곧 상황을 재빠르게 판단하고 바로 결정을 내렸다. 어찌 보면 직장생활에서는 큰 덕목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들이 대표적이다. 더디 가도 충분히 공감을 얻어야 마땅한 일도 늘 최단거리 주자처럼 달리다보니 상처받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났다. 그는 알았어야 했다. 자신이 올라갈 위치는 딱 일급 조언자까지였음을. 스스로가 최고 결정자가 되어 칼날을 휘둘러서는 안 되었다. 물론 갖은 고생 끝에 쟁취한 왕관이 자신을 옥죄는 족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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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찌뿌둥한 몸을 책장에 기대고, 참고로 우리 집에는 소파가 없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허지웅을 만났다. 고민사연을 상담해주는 내용이었다. 딱히 무대장치도 없고 자신의 집 응접실에서 하는 것으로 보아 개인 방송인 듯싶었다. 화면 아래 날짜가 나와 보니 2020년 2월이었다. 큰 병을 치르고 난 후여서인지 과거처럼 날카롭게 일침을 날리기보다는 좋게 좋게 충고하는 형식이었다. 특이한 건 그가 말끝마다 삶의 확대경 혹은 돋보기를 치우라는 말을 했다. 곧 누구나 걱정을 안고 사는데 자신만 유별나게 고생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맞는 말이다. 내 눈 안의 티는 천근만근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마음은 따로 논다. 나도 마찬가지다. 요 며칠 남들이 들으면 헛웃음을 칠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 잠을 잘 자지 못할 정도였다. 어찌 어찌 극복하고 있지만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회피다. 곧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걸 원천 차단하는 거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아예 집이나 일터를 옮기는 수도 있지만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익숙함과 결별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심한 지금같은 처지에 어렵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주변을 변화시켜야 한다. 하다못해 매일 오고가는 길에서 멀어져 다른 통로를 개척해보시라. 그래야만 비로소 삶을 확대경과 돋보기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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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학교폭력을 가하거나 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소한 일들은 있었다. 초등학교 때 골목길에서 중학생 형에게 운동화를 뺏겼다거나(새거였다.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사다주신 아식스 흰색 런닝화였다. 이렇게 세세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아직도 분이 덜 풀렸나 보다), 중학교 때 썩 친하지 않은 아이와 버스정류장에서 투덕거리거나, 고등학교 때 글러브를 끼고 권투흉내를 낸 것 정도였다. 물론 정정당당했다. 3분 3라운드라는 규칙도 정확하게 지켰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이들도 꽤 있다. 이재영 선수가 쏘아올린 학폭은 그칠 줄 모르고 퍼져나가고 있다. 한 때 미투운동이 붐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보다 규모나 확산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폭력은 일종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단지 때리지 않았다고 해서 면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왕따는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의 속성상 집단을 이루게 되면 당연히 이런 저런 파벌이 생기고 특히 학교처럼 폐쇄적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에서는 따돌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해결책도 뜬구름 잡기에 그치고 만다. 


적절한 격리와 분리, 그리고 해당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 교육만이 정답이다. 비록 지루하고 먼 길일지라도. 개인적으로는 글쓰기 교육도 나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이란 머릿속에 마구 떠오르는 감정을 정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곰곰 떠올려보니 뭔가 잘못을 한 아이에게 반성문을 제출하게 한 건 꽤 좋은 방안이었다. 내용을 떠나 최소한 그 시간동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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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제니 한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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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린다. 그래서 구질구질한 것들까지 죄다 모아 두곤 한다(중략).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걸 꼽으라면 아마 연애편지가 될 것이다.


로맨스 소설이야말로 당대의 아이콘이다, 하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이 쓴 경우는. 오만과 편견을 보라. 사실 소설은 거짓 이야기다. 연애야말로 가장 적당한 소재다. 마치 파도 파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아마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슷한 류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원작을 찾아 읽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행여 흥미가 조금 덜할까 걱정하셨다면 내려놓으시라. 영화 못지않게 아니 그 보다 더 익사이팅하다. 작가가 한국계라는 특징까지 있어 우리에게는 더욱 편안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첫 문단은 길이길이 남을 명문이 될 것임이 확실하다. 참고로 개정판이 나왔다. 원작 표지와 동일하게 출간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반짝반짝 블링블링한 구판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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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 천상의 음악
존 엘리엇 가디너 지음, 노승림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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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페이지가 넘은 책을 읽는 건 곤욕이다. 게다가 전기나 자서전이라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보아야 하는 곤혹스러움은 상대가 아무리 빼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무리다. 스티브 잡스도 간신히 다 읽었다. 천하의 바흐라면 사정이 좀 다를까? 이 책은 한 천재 음악가에 대한 애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인간적 결함이나 부족함에도 왜 음악은 그다지도 대단했는지를 밝힌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바흐가 위대해 보인다. 애들이 딸린 가장의 비애가 곳곳에 보여서다. 하챃은 말단 관리에게조차 굽실거려야 했으니. 그럼에도 음악적 탁월함을 이처럼 빼어나게 저술한 책은 보기 드물다. 가디너 자체가 지휘자여서만은 아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란 그에게 바흐는 너무나도 친숙한 존재였다. 비록 바흐의 바이올린 연주를 하지 못해 비올라로 악기를 변경하고 결국에는 지휘자가 되었지만 바흐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멈출 수 없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바흐 애호가라면 꼭 읽어야만 한다. 실제로 책을 다 읽고나니 익숙했던 바흐의 음악이 색다르게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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