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죗값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세월호 사건 당시 살아남은 학생이 거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발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염원한다. 때로는 이 믿음은 살아남은 자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눈앞에서 뻔히 잘못되고 있는데도 고치거나 바로잡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부동산이 주인공이다. 집을 가지고 있거나 세들어 살고 있거나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도리어 정부가 그렇게 박살내고 싶어 하는 투기꾼들만 더욱 신이 났다. 


대체 어떤 속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이럴 땐 숫자를 들여다봐야 한다. 아무리 왜곡된 해석이 가능할지라도 날 것을 감출 수는 없다. 2016년 4월과 2021년 1월 기준으로 세 곳의 부동산을 살펴보았다. 참고로 이 시기를 정한 이유는 문 정부 취임 직전과 이후를 비교해보기위해서다. 집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지역인 압구정동과 비교적 싼 곳으로 알려진 봉천동, 그리고 이른바 경기도의 대장주라고 할 수 있는 과천시의 아파트먼트를 선정했다. 규모는 32평으로 중산층이 가장 선호하는 평형으로 골랐다. 가격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했다. 2016년에는 압구정이 12.9억, 과천이 10.4억, 봉천동이 4.5억 원이었다. 입주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의 특성을 적절히 반영한 가격이다, 참고로 2년 전인 2014년에는 압구정이 10,7억, 과천이 8.2억, 봉천동이 4.15억 원이었다. 2년 동안 물가 상승률 수준정도만 올랐을 뿐이다. 압구정과 과천의 갭도 2억 원대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렇다면 2021년 1월은? 압구정은 25.9억, 과천은 15,9억, 봉천동은 8.3억 원이다. 가격 상승도 놀랍지만 갭이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압구정과 과천의 갭은 2억 원대에서 1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만약 2016년에 대출을 받아 과천을 팔고 압구정을 갔다면 차액으로만 10억 원을 벌었다는 소리다. 


문재인이 들어서기 전 부동산은 큰 문제가 없었다. 강북에 뉴타운이 개발되고 소외지역의 전통명문고들을 특목고를 지정하여 수요를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부동산 소유정책을 꾸준히 펼침으로써 역설적으로 전세난도 안정이 되었다. 다주택자가 본인 소유 집 외에 다른 집을 싸게 내놓았다. 은행대출도 원활해 집 마련에 대한 부담도 덜했다. 


이처럼 잘 운영되던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킨 주범이 바로 문재인 정부다. 마치 멀쩡한 기계를 문제가 있다고 두들겨 아예 망가트린 격이다. 집 소유자를 투기꾼으로 몰고 세입자를 위한다면서 가격통제를 해서 쫓아내고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의 재건축재개발을 그야말로 꽁꽁 묶어 두어 희소성을 더욱 키웠다. 차라리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될텐데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두더기 잡기식으로 정책을 남발한 결과 전 국토는 투기장으로 변했다. 각종 세금 때리기로 똘똘한 한 채 열풍이 불었고 돌고 돌아 다시 강남이 가장 비싼 동네가 되고 말았다. 이 난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우선 리더에게 책임을 묻고 자리에서 물러나 응당한 죗값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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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aldine McEwan(1932~2015)


미스* 마플에 다시 빠져 있다. 그가 등장한 소설은 물론 드라마까지 섭렵하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여러 탐정들 중에서도 마플에 끝리는 이유는 뭘까? 으뜸 비결은 의외성이다. 도저히 탐정에 어울리지 않을 듯싶은 인물이 척척박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건 초기에는 경찰들에게 푸대접을 받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해내고 만다.


탐정의 원형은 출발부터 정해졌다. 흔히 코난 도일이 시초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에드가 앨런 포우다. 포우는 뒤팡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내세워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낸다. 화자 겸 조수도 늘 함께 한다. 이 스타일은 훗날 셜록 홈즈와 왓슨으로까지 이어진다. 미스 마플도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재미있는 건 그 방식이 수다라는 사실이다. 곧 얼핏 보면 별 일 아닌 이야기들을 듣고 퍼즐을 맞추어 나간다. 평론가들은 마플이야말로 아가사의 분신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건의 배경이 주로 고즈넉한 시골의 대저택이다. 크리스티가 자란 환경과 흡사하다. 게다가 나이 든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늙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자신을 빼다 박았다.


덧붙이는 말 


미스 마플 드라마는 시즌 6까지 제작되었다. 1,2,3는 제랄딘 매큐언이 4,5,6는 줄리아 맥킨지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줄리아는 전형적인 영국 귀족부인 이미지인데 반해 재랄딘은 말괄량이 소녀가 그대로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게는 매큐언의 연기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조곤조곤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하게 그리고 뚯밖에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에 심쿵했다. 2015년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영미권 국가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미스로 칭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평등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쓰지 않고 있다. 대신 미즈라는 말로 통일하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붙인 원래 명칭이라 그대로 사용한다. 




사진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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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남기지 말아라라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식욕과 상관없이 많이 먹어 버릇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점차 먹는 양이 줄어들었다. 하루에 두 끼 정도만 챙길 때도 있다. 서글프게도 소화력이 떨어져서다. 나이가 들면 신체는 점점 퇴화되고 마는데 장기라고 예외는 아니다. 똑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젊었을 때에 비해 소화하는 힘이 현저히 떨어진다. 문제는 반항하는 뇌다. 곧 몸은 적당히 먹어라고 외치는데 머리는 무슨 소리야 다 먹을 수 있어 하며 고집을 부린다. 그 결과 폭식을 하게 되고 후폭풍에 시달린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주 영화를 보고 극장 근처 초밥 뷔페 집에 들렀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문 연 뷔페식당이 별로 없어 작심하고 갔다. 당연히 눈이 돌아가고 접시에 담는 음식들도 넘쳐났다. 결과는 끔찍했다. 나름 조절하며 천천히 조금씩 먹었다고 자부했지만 내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소화를 시키느라 두 정거장 거리를 걷고 집 앞 지하철역에 내려서도 한 시간쯤 뛰고 나서야 겨우 속이 가라앉았다. 다시는 뷔페에 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작년 이 맘때도 똑같은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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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1일 현재 총 확진자수는 73,918명, 사망자수는 1,316명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십 분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넋두리한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지. 그러나 때로는 무의식의 늪에서 끄집어내야만 하는 기억도 있다. 2020년 1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처음 코로나 19 감염자가 발생했다. 주인공은 비행기를 타고 온 중국인이었다. 2019년 가을 무렵부터 우한을 중심으로 강력한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치리라고 믿는 이들은 매우 드물었다. 가장 가까운 나라에서 난리가 났는데도 불후하고. 정부의 안이한 대처도 한몫했다. 사스의 경험을 예로 들며 조기에 차단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중국인들을 전혀 막지 않으면서 대체 어떻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계기는 신천지 대구 사태였다. 이후 우리는 수렁에 빠졌다. 중국이 도리어 한국인들을 막는 역현상도 벌어졌다. 2021년 1월 21일 현재 총 확진자수는 73,918명, 사망자수는 1,316명이다. 부디 내년 이 맘 때에도 비슷한 소식을 전하기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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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안부를 주고받지 못하던 사람에게 메일이 왔다. 근 7년 만이다. 반가우면서 죄송스러웠다. 일 때문에 살갑게 대했던 이들인데 업무를 마치자 어느새 관계가 느슨해져버렸다. 하루쯤 묵혔다가 답장을 했다. 내가 쓴 글도 보고 싶다고 하여 블러그에 올린 글도 첨부했다. 사진과 함께. 시차를 둔 이유는 크게 고쳐 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보내려고 했으나 다시 읽어보니 어설픈 구석이 너무 많았다. 마치 아마추어가 감정과잉상태로 끄적인 느낌이었다. 묘사도 구체적이지 않고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도 불분명했다. 결국 대여섯 번이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러다 깨닫는다. 내 글을 누가 읽는지 알게 되면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이는군나. 실제로 역사상 빼어난 글들은 모두 그랬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명확한 독자를 설정하고 바로 옆에 있는 듯 한 느낌으로 작성했다. 작가 중의 작가라는 헤밍웨이도 그랬고 단문의 미학을 극대화시킨 레이먼드 카버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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