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은 아무에게나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지요?_배철수 


자신의 최전성기가 언제였냐고 물어본다면 답은 제각각일 것이다. 그럼에도 거의 90퍼센트 정도는 젊었을 때라고 하지 않을까? 물론 청춘에 도달하지 못한 연령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겠지만. 그들에게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미래라는 보석 상자를 열지 않았을 테니까. 


미국의 한 요양원에서 실험을 했다. 노인들의 젊은 시절에 맞추어 시설이며 환경을 모두 바꾸었다. 이를 테면 티브이에서는 60년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틀고 라디오는 당시 유행하던 취향의 음악채널로 고정하고 취미생활도 예전 즐길 거리로 바꾸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노화속도가 둔화된 것이다. 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젊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임을 증명한 셈이다.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90년대 음악 영상이 떠서 들어가 보았다. 딱히 그 시대를 즐긴 건 아니기에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보는 내내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분명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촌스러운데 내 마음은 이미 그 시절로 가는 특급 추억열차를 타고 있었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가수는 하수빈이다. 티브이로 그를 보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노래도 '노노노노노'는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놀라웠다. 일단 외모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이른바 엘프녀다. 노래도 프로가수 정도는 아니지만 들어줄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안티 여성 팬들의 등쌀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남자가수와 친해지면 안 된다는 팬심이 작용한 탓이다. 만약 이런 사정 때문에 가수를 그만두었다면 안타깝다. 어차피 인기란 거품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마련이지만 하수빈은 그런 망각을 갖기에도 너무 짧게 활동했다. 2010년쯤 잠깐 팬 미팅 차원에서 잠시 복귀하고 다시 소식이 뜸하다.


여하튼 돌이켜보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최전성기였다. 3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호황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자신감, 거기에 형식적이나마 민주화를 이루어냄으로써 국민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너그러워지게 마련이라, 청년 문화가 곳곳에서 솟구쳐 나와 주류를 담당했다. 대중음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했던 고등학생 가수나 염색머리의 아이돌이 공중파 티브이를 사로잡았다. 그 중에는 청순경쟁을 펼쳤던 강수지, 이지연, 하수빈도 있다. 그 때만 해도 하수빈은 후발주자에 살짝 일본 시티팝의 짝퉁느낌도 있었는데, 현 시점에서 보면 실력을 떠나 이미지로만 보면 하수빈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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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문을 닫게 된 공항 면세점 명품을 온라인으로 할인 판매하는 행사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 서버가 다운되었다. 스타벅스에서는 커피 열일곱 잔을 마시면 무료로 나누어주는 백을 받기 위해 무려 삼백 잔을 주문한 고객도 있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중 딱 한 잔만 마시고 나머지는 버렸다. 누군가는 혀를 차며 욕을 하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도대체 쇼핑의 마력이 무엇이길래?


현대는 소비사회다. 곧 생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비하는 인간이 주류다. 이는 대부분이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외된다는 뜻이다. 칼 막스의 예언은 적중되었다. 점차 산업화와 분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생산의 전 과정을 관장하기가 어려워진다. 재료를 구하고 설계를 하고 조립을 맞춘 후 도장을 해서 포장까지 모두 담당하는 인간은 천연기념물에서나 가능해졌다. 반면 소비는 온전히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무엇을 고르고 어떻게 쓸 것인지 한 눈에 파악이 가능하다. 인간은 돈을 씀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터넷의 발달은 소비를 더욱 고도화, 정밀화시키고 있다. 굳이 가게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생산자가 속이지만 않는다면. 


온라인 중고매장에서 원하던 음반을 발견했다. 오프라인도 겸하고 있어 주말에 한번 방문해 볼까라고 궁리하고 있는 사이 바로 팔려버렸다. 내가 원하는 건 다른 이들도 찾는다는 걸 새삼 확인한 셈이다.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세 번쯤 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바로 질러야 한다. 다행히 다른 곳에 있어 겸사겸사 몇 가지 음반들을 함께 골라 한꺼번에 주문했다. 아무래도 직접 가기에는 찜찜해서. 온라인 쇼핑에 걸린 총 시간은 짬짬이 일을 하거나 쉬는 여유를 빼고 약 서너 시간 정도 걸렸다. 리스트를 뽑고 집에 있는지 확인하고 또 다른 이들의 평가도 확인하느라. 어찌 보면 아까운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동안만큼은 잡념이 일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쇼핑의 마력에는 헛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구나, 라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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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가 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 그 때 그 때 다르다. 곧 받아들이는 대상에 따라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를 걸개 삼아 걸어놓은 현수막을 보면 눈쌀이 절로 찌푸려지고 거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설치된 녹음된 고음의 안내 방송을 들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처음엔 그런 나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짜증부터 나곤 했다. 항의를 하거나 민원을 제기하기도 해보았지만 이러한 일이 거듭되면서 되도록 피하게 되었다. 만약 늘 마주치는 상황이라면 눈을 내리깔거나 귀를 막고 다니는 식이다. 잘 몰랐는데 꽤 훌륭한 해결방식이었다. 정신과에서는 어떤 문제에 노출되면 일단 괄호를 치고 고리를 끊은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 직면한 트러블에 천막을 씌우고 그 처지에서 벗어나 다른 일에 몰두하도록 두뇌를 전환시켜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이 두 가지 처치훈련은 꽤 도움이 된다. 명심하시라. 이것도 훈련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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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뭔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살짝 틀어진 것 같은. 이번 주 수요일 내가 그랬다. 현관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자마자 알았다. 입 주변이 허전함을.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 이럴 수가? 할 수 없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약국에 들러 마스크를 샀다. 일주일에 한차례 마치 예배를 보듯 하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포장지를 보니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상이 맞았다. 작고 좁다. 낀 것은 할 수 없고 나머지 두개는 환불을 해야지. 카드와 영수증을 내고 돌아서 지하철역까지 왔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그렇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지갑을 열어 영수증을 보니 아뿔싸 지불한 카드와 환불한 카드가 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재난지원금을 전용으로 쓰기 위해 따로 카드를 사용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곧 마스크는 지원금 카드로 사고 환불은 일반 카드로 한 것이다. 안 쓰던 카드를 쓰다 보니 생긴 실수다. 


다시 발길을 돌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벌써 진이 다 빠진 느낌이 들었다. 어찌어찌 해결 아닌 해결을 하고 걸어 나오면서 이런 날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평소의 루틴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주일에 한 번씩 들르는 곳이 있다. 이곳에 갈 때는 옷차림이나 외모에 신경을 쓴다. 가방도 다른 것을 들고 간다. 알게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되는데, 그날도 그랬다. 이런 저런 작은 실수가 자잘하게 이어졌다. 


우연히 유튜브 채널에서 기아 타이거즈의 전 투수 윤석민씨가 하는 말을 들었다.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던 그는 그 활약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팀으로도 선발되었다. 팀에서는 선발이었지만 대표 팀에서는 중간계투로 뛰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4일이나 5일에 한 번씩 오르는 습관과 경기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투입되는 건 하늘과 땅차이다. 경기결과는 좋았지만 이때의 일이 그의 미래를 가로막았다. 알게 모르게 몸에 배린 루틴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는 중간에 던지게 되면 유니폼이 꽉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운명을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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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게 다 돈이다 


살다보면 집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건 없건. 잠깐 방심하다가 어어 하다보면 어느 순간 쓸데없는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다. 최근 들어 택배와 배달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박스나 비닐을 바로바로 버리지 않으면 며칠도 되지 않아 쓰레기통이 가득찬다. 음식물 또한 골칫거리다. 새로운 아파트먼트에서는 자체 분쇄기가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모아서 처리해야 한다. 마침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질을 하듯이 습관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 모으는 물건들도 문제다. 나 같은 경우는 책과 음반이 그렇다. 사실 이 둘만 어떻게 처리해도 공간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왠지 단 한 권도 단 한 장도 버리질 못한다. 왜 그럴까? 지적 허영이 있기 때문인가?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낀다. 언젠가는 읽을 거야. 반드시 들을 거야, 라고 다짐하며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일주일 정도를 고민하다가 내 방에 있는 짐들을 싹 들어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는 더욱 힘든 공사였다. 거실이 거의 꽉 찰 지경이었다. 혹시 내가 저장강박증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별별 쓸모없는 것들 천지였다. 서너 시간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옮기고 나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바로 누워 보았다. 내 방이 이렇게 넓었나?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젠 거실 내보낸 짐들을 처리했다. 정말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버릴 것과 다시 보게 될 것들을 분류하고 쓸고 닦았다. 새로 이사 온 집을 청소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살림의 정석은 버리는 것이다. 그게 다 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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