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뽑아져 있네요

 

티브이가 나오지 않는다. 고장인가? 별거 아니면서 신경쓰이는 일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없다고 죽는건 아니니까. 그러나 심심한 건 사실이다. 과거 의도적으로 위성방송을 끊어 본 적이 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보고 싶은게 많아지면서 다시 신청하고 했다. 게다가 최근엔 프로듀스 48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데.

 

일단 리모컨을 보자. 혹시 배터리가 다 나갔나? 혹시 싶어서 고이 무셔둔 새 콘트럴러까지 시험해 보았지만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위성회선의 문제인가? 실제로 셋탑박스가 고장나서 교체한 적이 있다. 내가 봐서는 잘 모르니 안내전화를 하자. 아무래도 티브이쪽 문제같단다. 그렇만도 하지. 티브이 수상기를 구입한 지 10년이 지났으니.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살펴보다 결국 에이에스센터에 문의를 했다. 일단 기본출장료는 만 8천원, 저녁에는 할증이 붙어 2만 2천원. 수리비는 상태를 봐서 결정, 참고로 우리 집 티브이는 엘지 평면 32인치이다. 요즘은 구경하기도 힘든 브라운관 형이다. 화면 양 옆이 잘리고 화면도 구리지만 나름 애착이 가는 물건이다. 올 블랙으로 디자인이 세련되고 고퀄에 비해 오래 봐도 덜 피곤하니까.

 

아무튼 오늘은 어렵고 내일은 밤에나 모레는 그나마 된다고 해서 예약을 하고 나서 마지막 남은 이성의 카드(최후의 순간 냉정하게 판단하자는 내 삶의 원치이다)를 꺼내 주변을 살펴보니 아뿔싸 전원 코드가 뽑아져 있다. 어쩐지 안내방송에서 고장이다 싶으면 당황하지 말고 전원을 껐다 켜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죽 많은 사람들이 그랬으면. 그러나 이상하다. 도대체 누가 뽑았는가? 어제 밤 늦게까지도 멀쩡했는데. 범인은 와이프였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다리미질을 한다며 티브이 전원을 꼽고 그 자리에 다른 걸 연결한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다른 전원도 많은데, 다행이다. 만약 합리적 이성의 패를 꺼내 보지 않았다면 꼼작없이 기술자를 불러 생돈을 날리고 망신을 당할 뻔 했다.

 

전원이 뽑아져 있네요. 괜찮아요. 이런 일이 종종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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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성장드라마를 보며 감동하는 이유

 

슈퍼스타 케이가 한참 인기를 끌때도 나는 관심밖이었다. 무명에 가까운 가수 지망생들을 모아 경쟁을 시켜 1등을 뽑는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감동도 과하면 식상해지기 마련. 아니나 다를까 처음 몇년은 인기를 끌더니 이내 시들해져버렸다.

 

비슷한 포맷으로 아이돌 맴버를 구성하는 방송이 나왔을 때도 또 우려먹는구나 싶었다. 시즌 1이  아이오아이를 낳고 시즌2도 워너원이라는 국민아이돌(?)을 탄생시켰지만 제대로 본 기억은 없다. 스타가 되기 위한 피땀눈물을 적절히 버무렸겠지.

 

이번에는 프로듀스 48이다. 기존 프로그램에 일본 아이들 AKB48 맴버들이 참가하는 형식이다. 이건 또 무슨 해괴망칙한 구상인가? 어떻게든 새로움을 보여주어야 하는 엠넷과 인기하락세인 일본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우리나라에 비해 춤이나 노래실력이 딸리는 일본아이돌을 호되게 몰아붙이더니 이제는 그중에 보석들이 나와 무대를 장악해버리고 있다. 실제로 어제(6/29) 방송된 그룹경연에서 야부키 나코는 <귀를 기울이면>의 메인 보컬을 맡아 천상의 고음을 선보였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올라가는 목소리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일정을 보니 대단원의 막은 8월 31일에 내린다. 앞으로도 두달 가까이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질 예정이니 이왕 보기 시작한 분들은 계속 시청하시고 혹시 이 프로그램을 모르시는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금요일 밤은 비워두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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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8-07-0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부키 나코가 도리어 후보정으로 손해본 수준으로 잘했다거라고요.. 사쿠라와 에리이에 관심갖고 있었는데.. 나코에 대한 호감이 확 올라가더라고요~~

카이지 2018-07-0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도 같은 소리를 들었어요. 현장 반응은 더 열광적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국적에 상관없이 실력있고 노력하는 친구들이 더 관심을 받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현재 제 일본인 고정 픽은 나코,히토미,미유입니다. 칸바레!

 

양심적 병역 거부가 아니라 집총 반대가 맞다

 

헌법재판소는 대체 복무제 없는 병역법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곧 군대를 대신할 제도를 두지 않은 채 단지 집총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현재 상황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대체복무찬성자다.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현역복무를 했으며 해당 종교와 전혀 상관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군대에 가기 싫은게 아니라 집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곧 총을 들 일이 없다면 군대내에서 어떤 일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 입장으로서는 형평성 차원에서 이들을 따로 관리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그래서 필요한게 대체복무제다. 군에 가는 대신 그에 준하는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을 하게 하는 거다. 이른바 선진국은 오랫동안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늘 전시상황인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다. 때늦었지만 이제라도 대체복무제도의 물꼬가 트이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믈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체제도가 생기면 누가 군대를 가려 하겠는가? 그러나 이건 기우다. 현역보다 기간을 두세배로 늘리고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보다 혜택을 줄이면 된다. 또한 군대기피사유를 세밀하게 구분하여 본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기타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된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동네 카페에 누가 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차분히 찬반을 따져보자는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제목(군대 가는 사람은 ‘비양심적 병역이행자’인가)을 뽑아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다. 댓글을 보니 더 기가 막혔다.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는 종교적 신념보다 국방의 의무가 우선이라는 주장은 그나마 봐줄만했다. 그러나 "야훼(하나님)의 말씀따라 사는 이스라엘은 남성을 물론 여성까지도 군대를 가는데"라는 말에는 기가 찼다. 

 

사실 확인 차원에서 답글을  달았다.   

 

"늘 전쟁상황인 이스라엘도 대체복무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징집대상은 해당 나이 청년(여성 포함)의 절반정도에 불과합니다. 대체복무는 단순히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문제입니다.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된다고 해도 군대에 가기 싫어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대체제도를 엄하게 적용하여 복무기간의 2배에서 3배쯤 늘려 운영하면 됩니다. 도리어 대체복무제도를 인정함으로써 우리 군은 더욱 강력해질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현역 제대했습니다."

 

또 병역거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핵소고지> 이야기가 나오길래 내 의견을 첨부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정반대로 해석할 수 있음에 놀라면서.

 

"저도 <핵소고지>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집총거부자도 충분히 군인으로 제몫을 하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실화에 근거한 것이구요. 곧 집총을 거부한다고 해서 감옥에 보내지 않고 대신 군내에서 다른 일을 찾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군대 아니면 징역이라는 이분법은 지나치게 야만적입니다. 그들은 군대에 가기 싫은게 아니라 집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해당 종교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납세나 병역의무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가치들이 충돌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가치들을 조정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때가 되었습니다. "

 

그리고 한 문장을 더해 끝을 맺었다.

 

"이왕 문제를 제기하셨으니 다양한 의견들을 들어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그른 것은 아니니까요."

 

나로서는 최대한 공정하게 쓴 글이었는데 반응은 뜨아하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왜곡된 반공의 굴레에서 살아왔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다만 한가지 공감하는 건 용어다. 양심적이라는 말은 이분법이다. 곧 군대를 가지 않는게 양심적이라면 병역을 이행하면 비양심적인가라는 의문을 낳는다. 아마도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도 이 단어의 효과를 극대화한게 아닌가 싶다. 따라서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말부터 없애야 한다. 그들은 집총반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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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쓰기는 혼자서 하는 싸움

 

글을 쓴다는 것은 최상의 경우일지라도 고독한 삶입니다. 작가들을 위한 조직체는 아주 가끔 작가의 고통을 덜어줍니다만, 작아의 창작을 진전시켜 줄지는 의문입니다. 작가는 고독을 벗어던짐으로써 대중의 인기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종종 작품의 질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작가는 혼자서 작업할 수밖에 없으며, 만약 그가 훌륭한 작가라면 그는 날마다 영원함 또는 영원성의 부재에 직면해야 합니다. -<어네스트 해밍웨이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중에서>-  

 

한 예능프로그램(티비엔의 풀뜯어먹는 소리)에 나온 중학생 농부가 자신의 직업이 좋은 이유를 말했다.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혼자 일할 수 있다. 애늙은이같은 말투가 다소 거슬렸지만 그 말에는 공감했다. 세상에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다행히도 글쓰기는 이 조건에 맞는다. 집단창작이나 협업이니 하는 말이 있지만 결국 글은 혼자서 하는 싸움이다. 상대 없이 혼자서 지루하고 외로운 경주를 해야 한다. 단순한 재능으로는 버티기가 힘들다. 너무 가난해서도 부자여서도 안된다. 살아갈 수 있는 수준보다 아주 약간 많은 부와 끈기가 필요하다.

 

가끔 뭐하나 싶을 때가 있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과 조건을 마다하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가는게. 그럼에도 먹고 움직이고 자고 돌어다니는 모든 일은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여기며 버티고 있다. 해밍웨이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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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훈계하라고 있는게 아니다. 눈길을 끌라고 쓰는 거다.  

 

우리 집에서는 한국일보와 뉴욕타임스를 정기 구독한다. 한 때 한겨레도 보고 중앙일보도 신청한 적이 있지만 두 신문 모두 사실보다는 주장이 강하다는 느낌이 구독을 중단하였다. 상대적으로 한국일보는 이념색이 적고 다분히 사실 중심의 중도신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해럴드 트리뷴때부터 꾸준히 본 터라 중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구독자가 많다는 조선일보는 단 한번도 사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뭐 공짜니까라는 심정으로 읽다가 꼭 화를 나게 된다. 보수 편향때문이 아니라 이런 빼어난 글쓰기 능력을 이념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써먹는게 열받아서다. 요컨대 글솜씨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실제로 외부 필진의 경우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에 비해 고료가 몇 배 높다. 작가들도 돈을 더주면 더욱 성심성의껏 쓰게 마련이니까.

 

장석주의 <사물극장>도 그 중 하나다. 그저 열심히 많이 쓰는 시인이자 작가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메릴린 먼로와 스웨터>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토록 야하고 매력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니? 그저 시골에 박혀 자연과 벗하며 하나마나한 교훈이나 늘어놓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물론 결론은 조선일보답게 어줍잖은 훈계조로 끝을 냈지만 묘사만큼은 일급 포르노 저리가라였다. 글을 읽는 순간 글에 묘사한 정경이 눈앞에 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 노마 진(먼로의 본명)은 고아원에서 주는 낡은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었다. 어느 날 블라우스를 꿰매다 학교에 늦자 다른 여자아이의 스웨터를 빌려 입고 학교에 갔다. 수학 시간이었는데, 모두 노마를 쳐다봤다. 12세 소녀의 몸에 꽉 끼는 스웨터 속 젖가슴이 성인 여자만큼 솟아올라 있었다. 그날 이후 남자애들이 '입에 장미를 문 뱀파이어'를 따라다니듯 노마의 주변을 에워쌌다.

 

자기 몸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알아챈 노마는 불과 16세에 결혼해 동물원 같은 고아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무료함에 지쳐 거리에 나가 행인을 구경하거나 어린애들과 놀았다. 1944년 멜빵 바지를 입고 낙하산 제조 공장에서 일하다가 결국 이혼했다. 할리우드로 이사 와서 광고 사진 모델로 나서 생활비를 벌고,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 수업을 받았다. 돈이 없어 늘 허기진 채로 잠들었다."

 

원본 출처는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3/20180523037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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