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훈계하라고 있는게 아니다. 눈길을 끌라고 쓰는 거다.
우리 집에서는 한국일보와 뉴욕타임스를 정기 구독한다. 한 때 한겨레도 보고 중앙일보도 신청한 적이 있지만 두 신문 모두 사실보다는 주장이 강하다는 느낌이 구독을 중단하였다. 상대적으로 한국일보는 이념색이 적고 다분히 사실 중심의 중도신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해럴드 트리뷴때부터 꾸준히 본 터라 중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구독자가 많다는 조선일보는 단 한번도 사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뭐 공짜니까라는 심정으로 읽다가 꼭 화를 나게 된다. 보수 편향때문이 아니라 이런 빼어난 글쓰기 능력을 이념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써먹는게 열받아서다. 요컨대 글솜씨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실제로 외부 필진의 경우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에 비해 고료가 몇 배 높다. 작가들도 돈을 더주면 더욱 성심성의껏 쓰게 마련이니까.
장석주의 <사물극장>도 그 중 하나다. 그저 열심히 많이 쓰는 시인이자 작가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메릴린 먼로와 스웨터>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토록 야하고 매력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니? 그저 시골에 박혀 자연과 벗하며 하나마나한 교훈이나 늘어놓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물론 결론은 조선일보답게 어줍잖은 훈계조로 끝을 냈지만 묘사만큼은 일급 포르노 저리가라였다. 글을 읽는 순간 글에 묘사한 정경이 눈앞에 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 노마 진(먼로의 본명)은 고아원에서 주는 낡은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었다. 어느 날 블라우스를 꿰매다 학교에 늦자 다른 여자아이의 스웨터를 빌려 입고 학교에 갔다. 수학 시간이었는데, 모두 노마를 쳐다봤다. 12세 소녀의 몸에 꽉 끼는 스웨터 속 젖가슴이 성인 여자만큼 솟아올라 있었다. 그날 이후 남자애들이 '입에 장미를 문 뱀파이어'를 따라다니듯 노마의 주변을 에워쌌다.
자기 몸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알아챈 노마는 불과 16세에 결혼해 동물원 같은 고아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무료함에 지쳐 거리에 나가 행인을 구경하거나 어린애들과 놀았다. 1944년 멜빵 바지를 입고 낙하산 제조 공장에서 일하다가 결국 이혼했다. 할리우드로 이사 와서 광고 사진 모델로 나서 생활비를 벌고,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 수업을 받았다. 돈이 없어 늘 허기진 채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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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3/20180523037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