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쇼 코랄 베스트 콜렉션
RCA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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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라고 시작하는 꼰대 문화는 이제 우스개의 소재가 되어 버렸다. 다행스럽다. 그만큼 권위가 사라졌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도 한결 부담을 덜었다. 괜히 눈치 보며 쭈뼛거릴 이유가 없어졌다. 당당하게 스스로의 촌스러움을 밝히면 그만이다. 게다가 웃기면 덤이고.


미국 민요를 추억으로 삼는 세대야말로 중장년층이다.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오 수잔나’나 ‘켄터키 옛집’을 마치 우리 노래처럼 따라 부르곤 했다. 음악책에도 잔뜩 있었다. 미군정의 문화가 아닌가 싶은데.


알라딘 중고매장에 들른 김에 로버트 쇼 합창단 음반을 구매했다. 미국인들이 좋았던 시절의 추억을 듬뿍 담은 포스터 작곡의 민요모음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도 익숙한 곡들 천지라 반가웠다. 그런데 희한하게 집에 와서 들어보니 옛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지루하고 느린 곡들이라는 느낌뿐이었다. 희한하다. 분명히 이런 노래를 들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는데 그 때는 꽤 감동을 받았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내 감각이 둔해졌다기 보다는 오랫동안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귀가 비로소 열린 것이 아닐까? 사실 로버트 쇼나 로저 와그너 합창단은 실력 자체 보다는 이름값으로 유명세를 치른 게 맞다(개인적의 의견입니다). 만약 그들의 노래가 훌륭했다면 지금까지도 건재했겠지? 그럼에도 소장차기는 충분하다. 표지만으로도 미국 특유의 정감이 물씬 풍긴다. 또 혹시 아나? 십년 쯤 후에는 가슴 사무치게 좋다고 느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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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Groove - A Collection of The Best Grooves
Various Artists 노래 / 포니캐년(Pony Canyon)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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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 올해 2월이었으니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여름의 초입으로 옮겨진 셈이다. 하루하루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다보니 계절이 바뀐 것도 실감하지 못했다. 이대로 여름을 관통하여 가을을 거쳐 또다시 겨울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왠지 현실이 될 것 같아 두렵다.


이런 꿉꿉한 기분을 덜고 싶을 때는 그루브 음악이 최고다. 그루부란 충동적인 선율 같은 것을 말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리듬감이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초 발상은 재즈였으나 레게, 팝, 힙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Into the Groove는 그 중 베스트를 모아 놓은 음반이다. 그냥 틀어놓으면 바로 파티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동안 열심히 듣다가 다시 찾아보니 없다. 어렵사리 발견하여 들어보니 역시 좋다. 특히 1번 시디의 네 번째 곡인 The New Avengers - SNOWBOY는 압도적이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속지 소개 글에 별표까지 표시해 두었다.


관련 사이트 : https://www.youtube.com/watch?v=Llzh-fU31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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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모차르트 : 마술피리
버로스 (Stuart Burrows) 외 노래,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 Decca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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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감상하려면 각오가 필요하다. 아무리 자막이 달린 스크린이 있다고 해도 서너 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바그너의 링 시리즈를 본다면 철문이 닫힌 채 꼬박 열 시간 이상 갇혀 있어야 한다. 음반으로 듣는 것도 꽤 고욕이다. 하이라이트가 아니라면 기본이 세 시간이다. 시디라면 세장을 연달아 플레이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오페라는 극소수만 좋아하는 골방 문화쯤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오죽하면 오페라 평론가조차 자동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꼼짝없이 ‘라 트라비아타’ 전곡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하겠는가? 사 놓고 계속 미루던 <마술피리>를 아침부터 들었다. 중간에 시디를 갈아 끼운 시간을 빼고서도 세 시간이 족히 걸렸다. 되도록 다른 잡다한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한 결과, <마술피리>는 천상의 음악임을 깨달았다. 비록 알아듣는 말은 파파케노 정도지만 내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괜히 겁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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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일공일삼 40
캐서린 패터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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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책장에 쭉 꽂혀 있는 책들 가운데 마음이 내키는 것들을 골라 이리저리 뒤적이다 ‘그래, 오늘은 이걸로’라고 결정하고 간단하게 토스트와 커피로 끼니를 때우고 마란츠 오디오에 어제 골라놓았던 시디를 넣고 두세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상상이었지만 이런 상황에 있을 때 권할만한 책은 역시 아동서적이다. 일단 짧고 간결하다. 원서와 함께 읽어도 부담이 덜하다. 또한 교훈적이다. 나이가 들면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보다 우여곡절은 있지만 끝은 해피한 게 당긴다.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는 이 조건에 딱 맞다. 엄마가 있지만 위탁모에게 맡겨진 질리.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적응과 반항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사실 눈물 나는 이야기지만 캐서린은 두 눈 부릅뜨고 가감 없이 현실을 도려낸다. 이 소설의 필살기는 살아서 펄쩍펄쩍 뛰는 대사다. 어쩌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지.


질리처럼 불행한 처지는 아니라도 어린 시절이 꼭 행복으로 치장되어 있는 건 아니다. 아픔과 괴로움, 그리고 씁쓸함이 누구에게나 배어 있다. 그럼에도 그 때를 즐거움으로 떠올리는 까닭은 언제나 계속될 것 같던 그 시대로 우리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도 진부해서 새로움이란 단 하나도 없을 것 같았던 과거가 못내 그리운 건 왜 일까?


옛날 옛적, 풀밭과 숲과 시내와

대지와 온갖 진부한 광경이

천상의 빛처럼 그리고 꿈처럼 성대하고 생생하게 치장한 것인 듯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과 같지 않아서

밤이든 낮이든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옛날에 보았던 것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_윌리엄 워즈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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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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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단다


“조너스는 친구들이 아무 활력도 없는 생활에 아주 만족한다는 사실에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친구들을 전혀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에게 무척이나 화가 났다.”



좋은 글의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확한 문장, 풍부한 표현, 올바른 전달.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쉽게도 정답은 없다. 그냥 읽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가 그렇다. 현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사회는 철저하게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열두 살이 되는 순간 남은 평생의 직업이 결정된다. 누군가는 엔지니어가 되고, 의사가 되고, 학자가 되고, 연예인이 되고, 산모가 된다. 그렇다. 아이를 낳는 전문 직업이 따로 있다. 일인당 딱 세 명씩. 이후에는 육체노동자로 살아가야 한다. 어째, 점점 으스스해진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람들은 불만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그 중에는 전지자도 있다. 단 한 명이다.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해주는. 다른 일과 달리 이 직업은 몇 십 년 동안 공석일 때도 있다. 후임자가 마땅치 않거나 도중 탈락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조너스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두려우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전임자로부터 기억을 전달받게 되는데.


이번 한 주 꽤 힘이 들었다. 우선 휴대전화기가 고장이 났다. 작년 이 맘때도 같은 일을 겪어 어찌어찌 새로 사서 써왔는데 그만. 혹시 하는 마음에 서비스센터에 가봤지만 예상대로 사망. 새 폰을 사야 하나 2G 보상을 기다릴까 하면서 이리저리 알아보느라 지쳤다. 더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윈도우 10이 지멋대로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면서 지금까지 써왔던 글이나 기능들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이전 버전으로 돌아가려고 매일 두세 시간씩 노트북에 매달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마디로 힘은 힘대로 빼고 성과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기버>를 읽게 되었다. 당초 원서를 먼저 보았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영어가 힘든 건 아닌데 파악하기가 알쏭달쏭했다. 번역 책을 보자 바로 이해가 되었다. 주인공은 아이였지만 내용은 철학적이었기 때문이다. 희한하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점점 심신이 안정되어 갔다. 딱히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몰입도가 높았던 것 같다. 곧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일체의 잡념이 떠오르지 않았다. 빼어난 책이란 바로 이런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미루어왔던 휴대전화도 알아보고 무려 6개월여 만에 이발도 하고 동네 놀이터 그늘 등 없는 벤치에 앉아 나머지 절반을 마저 보았다. 오랜만에 행복한 토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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