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 마을 식당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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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은 죄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천지다. 여전히 구형폰을 쓰는 나는 멀뚱멀뚱 앞만 바라보기 일쑤다. 엠피쓰리로 라디오를 들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원시시대 사람이군. 읽을거리를 찾아 눈이 바빠지지만 신문을 펼치기에는 객차 안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럴 때는 문고판 정도의 책이 딱인데. 

 

오쿠다 히데오의 에세이는 나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딱이다. 에피소드 위주의 짧고 경쾌한 글이 듬뿍 담긴. <항구 마을 식당>도 그랬다. 동네 운동장을 열바퀴 정도 뛴 다음 숨도 고를 겸 벤치에 앉아 부산편부터 읽었다. 읽는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15분. 으슬으슬 추워질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언제 짜투리 여유가 생기면 그 때 또 읽어야지, 라고 다짐을 하면서.   

 

 <항구 마을 식당>은 부산을 포함하여 항구에 인접한 도시를 여행하여 먹고 마시고 떠드는 이야기다. 매우 유쾌하면서도 실랄한데 이를 테면 한국의 아이들이 떠드는 정도는 일본을 넘어선다는 식이다. 이런 말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잣대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냉소적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어쩌면 막 쓰는 것 같은 그의 글이 사실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소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교묘하게 엮어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차마 입밖으로 내기 힘든 말을 누가 대신하여 팟하고 내뱉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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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보급판) - 법치주의와 정의를 돌아보다
김영란 지음 / 풀빛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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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상식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런 저런 법조문을 활용하여 피해나가는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탄핵 위기에 몰린 대통령 변호인단이 주장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법은 저렇게도 악용될 수 있구나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법이 지금과 같은 보편 타당성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이다. 법은 오랫동안 지배 계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아랫사람을 부리곤 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법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음을 우리는 실감하고 있다.

 

김영란은 법은 스스로 지키는 자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누구도 아닌 모두가 법을 알고 잘못 작용될 경우 바로 단죄할 수 있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조문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법이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권이란 말이 당연시된 지도 얼마 안된 것을 보면 말이다.

 

조만간(?) 새 대통령을 맞이할 것이다. 과거는 강물에 떠내려보내라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따로 챙겨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헌법과 법률을 유린한 지도자는 언제나 국민의 탄핵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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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니스트 아워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 벤 포스터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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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감정은 에니메이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도 매력적이다. 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구분이 가능하다. 하나는 뮤지컬과 같은 재미만점, 또 다른 하나는 감동실화. <파이니스트 아워>는 후자에 해당한다.

 

실화를 영화 소재로 활용하는건 양날의 칼이다.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부함을 주게 될 우려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논픽션이니 재미가 없을 거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파이니스트 아워>는 이 두 지점을 절묘하게 빗껴가고 있다.

 

장쾌한 바다 장면을 듬뿍 담아 실제 사건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짜릿한 쾌감을 준다. 단지 이뿐이었다면 다큐에 가까웠을텐데 여기에 드라마적인 요소를 극적으로 드러내며 영화의 수준을 높여준다. 죽음을 무릎쓰고 출동해야 하는 해안경비대 사람들간의 갈등,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를 험한 바다로 내보내고 가만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제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긴장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게 한다. 마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자연과 싸워 이긴 사람들 이야기를 영화로 보는 기분이 든다.

 

덧붙이는 말

 

<셜리>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역시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사명을 다했겠지만 결과는 너무도 허망했다. 먼저 뛰어내린 세명과 구조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사망한 한 명을 제외하고 서른 두명을 모두 구조하고 돌아온 해안경비대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에서만 가능한 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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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4 : 낯선 조류
롭 마샬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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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댑은 우울하고 침울한 느낌의 배우였다. <가위손>이 대표적이었다. 그런 그가 유쾌하고 장난기 가득한 해적 선장으로 그것도 짙은 눈화장을 하고 등장할 줄 누가 알았으랴? 게다가 한 물 가다 한참 물거너간 해적 이야기라니, 방학 때 특집으로 방영해도 이젠 애들조차 그자디 좋아하지 않는데.

 

<캐리비언의 해적>은 이 모든 우려를 한방에 날려버린 쾌작이었다. 정보와 권력, 돈으로 촘촘하게 줄세워진 현대사회에서 낭만을 되찾아주었다. 여기에는 극적인 영화음악, 장쾌한 스케일, 다영한 볼거리가 큰 역할을 했지만 그 정점에는 조니 댑이 있었다. 조니 댑이 아니었다면 잭 스패로우 선장 역은 상상 불가였다. 

 

그러나 1탄에 이어 2, 3탄까지 초고속 히트를 기록했던  이 영화는 새로운 조류를 만나 암초에 부딪쳐 좌초되고 말았다. 조니 댑을 제외한 익숙한 파트너들이 교체되면서 영화는 조니 댑의 원맨쇼로 끝나고 말았다. 초반의 활기는 곧장 지루함으로 이어지더니 인어공주에 목사에 황당한 등장인물로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그 결과 아무리 잭 스패로우가 특유의 익술을 부려도 관객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딱 그 전에 멈추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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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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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한국어는 모국어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 모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어나 독일어같은 외국어도 배운 적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어를 잘 알고 쓰는 것일까?

 

교육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언어다. 수학 또한 수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말과 글이 필요하다. 나는 한국어가 이 모든 교육을 위한 적합한 언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 나라의 언어가 힘이 세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어의 힘은 강한 편이 아니다. 우선 세계에서 한국어를 쓰는 나라가 많지 않다. 영어나 중국어의 기준에서 보자면 소수 언어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자국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일본만 해도 오리지널 자신들의 언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자의 영향을 여전히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 하나만 보더라도 한글은 대댄한 언어다.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독창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이 사실이 외국인에게는 매우 낯설게 느껴졌나 보다. 어떻게 한국같은 작은 나라에서 고유한 문자를 그것도 조선시대에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 노마 히데키도 그 증의 한명이었다. 호기심을 실천으로 옮긴 그의 결론은 한글은 말소리라는 것이다. 곧 사람이 하는 말에 최대한 가깝게 문자로 표시한 글이다. 실제로 한글로 표기가 불가능한 말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의성어나 의태어는 물론이고 최근 잇따라 등장하는 신조어까지 표기가 가능하다. 뷁!

 

역설적으로 소리문자라는 특징은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문자가 소리를 옮기다보니 의미를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나무라고 하면 우리는 직관적으로 나무를 연상하지만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나무가 왜 나무인지 알지 못한다. 한자나 그리스어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딜레머이다. 한글전용을 주장하지만 뜻을 담지 못하고 혼용을 하자니 우리 글의 독창성을 침해할 우려가 커서다. 한글 외에 다른 어떤 문자를 혼용해야 하는지도 헷갈린다. 한자는 단지 우리에게 익숙해서있을 뿐 한글과는 조응하기 어려운 문자이다. 차라리 영어 알파벳이 한글과는 함께 쓰기에 낫다. 기본적으로 소리나는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이 닥친 도전은 위기이자 기회다. 앞으로 한국어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 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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