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주기적으로, 혹은 일상적으로 읽는 편은 아니라서, 내가 아는(읽는) 만화의 폭은 좁은 편이다. 딴에는 그래도 어떤 만화가 나오는지 알기 위해서 만화잡지를 2~3년에 한 번씩(--;) 사서 보지만, 이런저런 숙제에 쫓겨 사는 터라, 2003년 7월 날짜를 달고 나온 [오후] 창간호는 아직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이 글을 쓰려고 [오후]를 보니 끄트머리에 “백귀야행” 한 편이 있다. 오잉? 그 앞에는 “사랑해야 하는 딸들”도 있다. 오, 오잉?)
작년인가, 지인에게서 “백귀야행”을 6권 정도까지 빌려 읽었다. 읽는 동안은 무서워서, 진짜 밤에 자다 일어나 화장실 가는 데도 겁이 났다. --; 말 그대로 백 가지 귀신(곧 온갖 귀신)이 밤(뿐 아니라 낮에도 -_-)에 쏘다니는 내용이니 말이다. 인형 같은 거 사기도 꺼려지고(무슨 영이 붙었을지 모른다구).
그러다 이번 10월에 역시 지인에게 11권까지 빌려 와서 읽었다. 전에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5권부터 가져왔는데, 보니 5, 6권 내용은 낯이 익었다.
그런데, 역시 좀 오싹한 기분은 들었지만, “백귀야행”은 무섭다기보다는 다정한 이야기였다. 빌려온 첫 주말에 몰아서 11권까지 다 보았지만, 재미에 휩쓸려 휙휙 넘겼을 뿐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에 한 편 두 편씩 나누어 천천히 다시 보았다. 이번에 책 임자에게 돌려주러 가서 내가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렇지? 그냥 봐 넘기기 아깝지? 한 편씩 여운을 음미해야 할 것 같지?” 한다. 그 말이 맞다.
“다정한 이야기”란 말이 강하게 떠오른 것은, 이 말이 나왔을 때다. “우리가 죽은 이를 그리워하듯 죽은 이들도 우리를 그리워하는구나...” 사람이 사람이기에 남긴 정, 미련, 여한, 그런 것이 백귀가 되고, 산 사람 마음의 빈틈을 파고든다. 귀신을 저세상으로 편안히 보내기 위해(성불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귀신의 이야기를 연민으로 들어주는 것, 그 다음에는 단호하게 끊는 것이다.
가끔 주인공인 리쓰의 할아버지, 이이지마 료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이 특히 좋다.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둘 떠나보내는 쓸쓸함과 아픔, 그리고 “이 집 식구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하는 애처로움이 저릿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리쓰의 할머니가 되는 야에코랑 만나는 부분! 사랑스러워라. 앞으로 작가가 료와 야에코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세세히 보여주면 좋겠다. ^ㅂ^(역시 난 로맨스를 좋아해.)
빌린 책을 돌려주고는, 앞부분이 다 기억나지 않아 궁금한 것이 있어 1~4권을 다시 빌려왔다. 앞부분은 분명 좀더 공포 괴기스럽긴 하다. 내친김에 작가 이마 이치코(Ichiko IMA)의 다른 작품도 같이 잔뜩 빌려 왔다. “어른의 문제”는 전에 보았고, 나머지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것 모두. ^^ 언제나 다 볼지.
(그런데 일본의 전통 예절일까? 이를테면 막무가내로 사돈을 맺자고 드는데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것-보통 그래서 요마에게 걸려든다-, 신랑감에게 한쪽 팔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어쩌지, 거절하면 그 때문인 줄 알 거야. 거절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한국의 부모들이라면 바로 그 점 때문에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할 텐데. 다 그렇진 않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