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하기 어렵당.. ^^* 2004/11/16 16:32

 

 

각시가 헌혈증이 필요하대서, 헌혈의 집에 다녀오는 길이다.

학생들도 있고,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 좀 기다려야 했다. 이런 기다림이라면 즐거운 기다림일 게다.

 

문진실로 들어가는데, 포스터 한장이 눈에 들어온다.

(문진실은 헌혈 전 이것 저것 묻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검사실이라고 하면 어떨까 ? 어려운 한자말보다는 낫지 싶다)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어라 ~ 

 

마침 주머니에 정액권이 있어서 지하철을 탔지만, 오늘 지갑을 집에 두고 나왔다.

 

사무실이 이 근처인데, 전화로 확인하면 안될까요 ?

안됩니다. 사진이 있는 신분증으로 본인인지를 확인해야만 됩니다.

 

어쩔 수 없었다.

난 사무실로 다시 들어와서, 신분증이 될 만한 것을 찾았다.

참, 자격증에 사진도 붙여 있지. 그걸 찾아 들고 다시 갔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헌혈을 2년 전에 하셨네요.

네, 작년에 수술이 있어서요. 전신마취를 했거든요.

(건강검진부터 해서 대략 1년 6개월 동안 헌혈을 할 수 없었다)

(무슨, 어쩌고 저쩌고, 좋은 일, 별일..그렇게 몇마디가 오갔다) 

 

헌혈대에 누우니, 알림판을 하나 준다.

(그 판에는 헌혈을 한 다음, 받고 싶은 게 적혀 있었다)

 

뭘 원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피를 뽑고 나서, 상품권을 받아 들고 나왔다.

가격이 2500원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가격의 상품권은 처음이다.

순간, 헌혈을 대여섯번 하면, 내가 보는 책을 한권은 사겠다 싶었다.

한번 해 볼까나 ~~~~~

 

녹차를 마시다가 유리문에 붙은 또 다른 포스터를 보았다.

탤런트 김명국씨가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아들이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고, 그는 조혈모세포기증운동에 열심히 참여한다).

 

그 포스터를 보니 문득 덜이님이 생각난다. 

덜이님이 잠시 칼럼을 접었지만,  내 경험담에 처음으로 답해준 분이다.

(덜이님은 각막부터 모든 장기를 사후에 기증하기로 해 주셨다)

물론, 덜이님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지, 어찌 나 경험당 때문이겠는가만은.

그러나, 나도 성과 있음을 자랑해야 하니 덜이님도 너그러이 봐 주시리라.

 

어느 곳에 가던 늘 있는 쵸코파이는 그냥 두고 왔다.

하나 먹고 올걸. 지금 배고 고프네. 에고~ 배고파라.

 

신분증은 꼭 가지고 다니자.

헌혈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 있으면 안되니까.

그리고, 헌혈 하자(헌혈의 집/헌혈차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그리고, 상품권 받아서 책도 많이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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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1-2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진표에 그런 게 있었나요? 흐미, 늘 무심히 작성했는데, 그랬던가요?

숨은아이 2004-11-2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헌혈한 지 오래돼서 그런가, 몰랐네요. *.*

로드무비 2004-11-2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남편분 멋지네요.

천생연분인 듯.^^

진/우맘 2004-11-23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그렇네. 그 대목을 인권침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쩝. 씁쓸해라.

그나저나 숨은아이님 옆지기는 너그럽기도 하네요.^^ 저는 2500원짜리 도서생활권을 보고 에게게~ 야박하다며 속으로 투덜댔는데.^^

숨은아이님이 뺏아서 알라딘 적립금으로 전환하세요. 그 편이 더 쉽게 쓸 수 있지 않을까요? ^^

숨은아이 2004-11-2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그런가요? 맨날 투닥거리는데... 자기가 말할 때 끼어들면 화내고... 흑흑.

진/우맘님 : 아, 전환도 가능한가요? 뺏어야겠군요. ㅎㅎ

chika 2004-11-2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헌혈얘기 나올때마다 뜨금해요... 어릴때부터 어지럼증이 있어서 헌혈에 대한 공포가 있거든요. 게다가 그 어릴때 친구 언니가 헌혈 한번 했다가 더 많은 피를 수혈받으며 병원입원했단 얘기땜에...ㅠ.ㅠ

그래서 며칠 전 헌혈증 구한단 소식 접하고 울 직원에게만 '헌혈해~'했었는데... ^^;;;

참, 글고 그 '빼앗다'란 표현은 제가 싫어해요~ 그냥 달라해서 받아 쓰시는거에 한표~

^^;;;;;

숨은아이 2004-11-2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치카님,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건강 땜에 못하는 일 가지고 가책 받으실 필요 없어요. 그럼 전 어찌 살란 말입니까~ 그리고 상품권은 제가 달라 해서 받겠습니다. ㅎㅎ 참 치카님, 헌혈의집 가면 손가락을 찔러 보는 검사를 해서, 헌혈해도 건강상 문제가 없는 사람만 채혈한답니다. 그러니 치카님도 한번 가서 검사해보세요. ;-)

숨은아이 2004-11-2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달라 해서 안 주면 뺏아버리죠 머. ^^
 

만화를 주기적으로, 혹은 일상적으로 읽는 편은 아니라서, 내가 아는(읽는) 만화의 폭은 좁은 편이다. 딴에는 그래도 어떤 만화가 나오는지 알기 위해서 만화잡지를 2~3년에 한 번씩(--;) 사서 보지만, 이런저런 숙제에 쫓겨 사는 터라, 2003년 7월 날짜를 달고 나온 [오후] 창간호는 아직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이 글을 쓰려고 [오후]를 보니 끄트머리에 “백귀야행” 한 편이 있다. 오잉? 그 앞에는 “사랑해야 하는 딸들”도 있다. 오, 오잉?)

작년인가, 지인에게서 “백귀야행”을 6권 정도까지 빌려 읽었다. 읽는 동안은 무서워서, 진짜 밤에 자다 일어나 화장실 가는 데도 겁이 났다. --; 말 그대로 백 가지 귀신(곧 온갖 귀신)이 밤(뿐 아니라 낮에도 -_-)에 쏘다니는 내용이니 말이다. 인형 같은 거 사기도 꺼려지고(무슨 영이 붙었을지 모른다구).

그러다 이번 10월에 역시 지인에게 11권까지 빌려 와서 읽었다. 전에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5권부터 가져왔는데, 보니 5, 6권 내용은 낯이 익었다.

그런데, 역시 좀 오싹한 기분은 들었지만, “백귀야행”은 무섭다기보다는 다정한 이야기였다. 빌려온 첫 주말에 몰아서 11권까지 다 보았지만, 재미에 휩쓸려 휙휙 넘겼을 뿐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에 한 편 두 편씩 나누어 천천히 다시 보았다. 이번에 책 임자에게 돌려주러 가서 내가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렇지? 그냥 봐 넘기기 아깝지? 한 편씩 여운을 음미해야 할 것 같지?” 한다. 그 말이 맞다.

“다정한 이야기”란 말이 강하게 떠오른 것은, 이 말이 나왔을 때다. “우리가 죽은 이를 그리워하듯 죽은 이들도 우리를 그리워하는구나...” 사람이 사람이기에 남긴 정, 미련, 여한, 그런 것이 백귀가 되고, 산 사람 마음의 빈틈을 파고든다. 귀신을 저세상으로 편안히 보내기 위해(성불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귀신의 이야기를 연민으로 들어주는 것, 그 다음에는 단호하게 끊는 것이다.

가끔 주인공인 리쓰의 할아버지, 이이지마 료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이 특히 좋다.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둘 떠나보내는 쓸쓸함과 아픔, 그리고 “이 집 식구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하는 애처로움이 저릿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리쓰의 할머니가 되는 야에코랑 만나는 부분! 사랑스러워라. 앞으로 작가가 료와 야에코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세세히 보여주면 좋겠다. ^ㅂ^(역시 난 로맨스를 좋아해.)

빌린 책을 돌려주고는, 앞부분이 다 기억나지 않아 궁금한 것이 있어 1~4권을 다시 빌려왔다. 앞부분은 분명 좀더 공포 괴기스럽긴 하다. 내친김에 작가 이마 이치코(Ichiko IMA)의 다른 작품도 같이 잔뜩 빌려 왔다. “어른의 문제”는 전에 보았고, 나머지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것 모두. ^^ 언제나 다 볼지.

(그런데 일본의 전통 예절일까? 이를테면 막무가내로 사돈을 맺자고 드는데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것-보통 그래서 요마에게 걸려든다-, 신랑감에게 한쪽 팔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어쩌지, 거절하면 그 때문인 줄 알 거야. 거절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한국의 부모들이라면 바로 그 점 때문에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할 텐데. 다 그렇진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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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1-2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귀야행... 한편한편 천천히 읽어나가야 제 맛을 느끼지요.. 다정한 만화라 하신 말씀이 정답이네요.. 만화광인 저로선 소장함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입니다..^^*

다연엉가 2004-11-2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백귀야행 너무 너무 좋아해요,

숨은아이 2004-11-22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정하는 동안 두 분의 댓글이... ^^;;; 날개님도 만화광이시군요! 글구 책울타리님 서재엔 좀 전에 다녀왔는데. ^__^
 

freerider 2004/11/17 14:30

 

 

freerider는 직역하면 무임승차자다.

 

자기 노력이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노력이나 비용으로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조합에 가입하여 조합비만 지출하고,

파업이나 기타 조합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조합이 얻어낸 성과는 그대로 누리니 뻔뻔한 사람이다.  

 

자유, 평등, 평화 등등.

누가 고민하고 누가 노력하고 누가 희생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언제부터 있었겠지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freerider일 테다.

 

 

나도, 당신도, 어쩌면 우리 모두 freerider는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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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 여성노조에는 가입해놓고 조합비만 내고 있다. -_-

릴케 현상 2004-11-1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웅, 난 몰라요. 자유평등평화...그런 것들이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이라면 내가 어떤 노력을 했건 하지 않았건 부담없이 그것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뻔뻔한 건 굉장한 능력이에요

조선인 2004-11-1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산책님의 말씀이 틀린 건 아니겠지요.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을 부담없이 누려야 하는 것은. 하지만 이번 공무원 노조 파업의 참담한 실패를 보자면, 몇년후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후 오늘의 파업을 손가락질했던 이들도 당연하게 혜택을 누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릴 거 같습니다. 전교조 파업에 돌팔매질 했던 선생들이 전교조 합법화 이후 너도 나도 조합에 가입해 이래라 저래라 어른 노릇하는 게 답답하게 여겨졌던 것처럼요.

릴케 현상 2004-11-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나쁜놈들의 시대인거죠 뭐-_-

숨은아이 2004-11-1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이 마땅히 부담 없이 저절로 누려지는 게 아니라서 문제지요. 누군가 피투성이가 되지 않으면 아무도 누릴 수 없었던 거라서... 그래서 문제지요.

진/우맘 2004-11-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조합비만 내고.....무임승차....뜨끔뜨끔 뜨뜨끔....ㅡ.ㅡ;

릴케 현상 2004-11-1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라요 나는 무임승차할 거예요.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처럼 열차에서 뛰어내리게 되더라도 할 수 없죠

숨은아이 2004-11-1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 누구나 활동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관심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게 좋겠는데... 저도 영... --;;

속삭이신 님 : 아, 그러시구나... 속상해하지만 마시고, 작은 일이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아 주는 정도 일이라도 하시면 어떨까요? ^^

자명한 산책님 : 열차에서 뛰어내리긴 왜 뛰어내리세요. 승무원한테 요금 내면 되죠.
 

그들이 던진 한마디.. 2004/11/17 17:34

 

 

 

노무현은, 민주노총을 향해 "그들만의 노동운동" 세력이라고 했다. 노무현이 그런 말을 한 것은 한 두번이 아니지만, 외국에 나가서 그렇게 말했다. 노동행정 책임자인 김대환은 노동운동이 과거 민주화운동에 편승해 성장했으며, 대기업 노동자들은 그렇게 편승으로 과도하게 그 성과를 챙겨 먹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장관이 아니라 한 사회과학자로 보아도 자기 말은 틀림이 없다 했다.  

 

그들의 말이 대기업노조를 비판하고 또 일부가 가진 의식에 대한 말이기에 그 범위 안에서는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말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할 말로 보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말이다.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힘을 갖지 못하고 권리 찾기를 못한 것이 민주노총만의 책임인가 하는 점이다. 언제 해고될지, 언제 파견계약이 해지되어 일자리를 잃게 될지 전전긍긍하며, 적은 임금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한 책임이 모두 민주노총에게 있는가 ?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자기 권리 찾기를 싫어할까 ? 그들은 힘도 없고 빽도 없어 그런 생각 아예 접고, 적은 임금에도 먹고 살기 위해 더러운 꼴 다 보더라도 참고 산다. 그리고, 노조만들고, 또 다른 방법으로라도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 즉 헌법, 민법, 노동관계법에서 그렇게 주구장창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대등한 계약과 자유로운 계약을 요구하면 어떻게 될지 그들이라고 모를까 ?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안다. 잘리고 길거리에 나앉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 안다. 누구한테 하소연해 봐야 들어줄 사람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또 참고 산다.

 

그런 면에서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는 낫다. 그렇지만, 민주노총을 들여다 보면, 노무현과 김대환이 함부로 지껄여도 될만한 그런 노조 많지 않다. 노동자 연대 관점을 포기한 몇몇 대기업노조나 집행간부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없는 노조는 당장 민주노총을 떠나라고 나도 말하고 싶다. 그러나, 민주노총에는 그렇지 않은 노조가 더 많다. 비정규직 노조도 많고, 소수 조합원이 있는 노조도 많다. 노무현과 김대환이 싸잡아 비난해서 죽여버려서는 안되는 노조가 더 많다.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노동법적 권리 행사를 자유로이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3권과 노동관계법상 권리를 보장받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그 권리 행사로 어떤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렵고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렇게 못하는지 대통령과 노동부장관은 그 이유를 정말 모르는가 ? 정말 이땅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기본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보는가 ? 천만의 말씀이다. 제발 대통령이나 노동부장관 정도면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판은 자유이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나 제대로 하고 나서 뭐라고 해라.

 

두 사람은 모두 노동법을 한번씩 읽어 보았을 테니 한두개만 적어 보자.

 

사용자는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거나 노조 활동을 하거나 단체행동을 한 것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과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규정을 잘 알 것이다(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두 사람은 위 규정이 노동현장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 그렇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특히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말이다.

 

당신들 같이 힘있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당신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죽일 수 있다. 그렇게 모든 노조가 다 씹혀서 다 힘을 잃어버릴 때가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향상이 뒤따라 오기나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된다는 가능성이 어디 있기나 한지 한번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라. 

 

그나마 민주노총을 기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전화하고 상담하고 찾아오는 노동자를 간혹 만날 때가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이 한 말을 생각하면 정말 열 받는다. 청와대가, 노동부가 그런 노동자를 다 만나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한다.

 

헌데, 언제부터 그들이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끔찍하게 생각해 주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그려.

 

자본을 위해서는 재경부, 산자부 등이 있으니, 노동자를 위해서는 노동부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전임 장관 권기홍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노동부는 노조부가 아니라는 말로, 대화마저 하지 않겠다는 김대환의 생각은 장관도, 민주노총 내의 대기업노조에 쓴소리를 한 것은 좋다만 그 안에 있는 작은 노조나 비정규직 노조, 그리고 그나마 기댈 곳을 찾아든 노동자에게까지도 폭탄을 날린 노무현도, 참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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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4-11-1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답답해지는군요...

숨은아이 2004-11-1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사람의 세계는 아주 작아질 수도 있고, 또 아주 커질 수도 있다는 걸 느낍니다.

balmas 2004-11-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갈게요. 감사 ...

숨은아이 2004-11-2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이 최근 글을 자주 가져가시니 뿌듯... (그런데 다 옆지기 글이니. --;)
 

1년 계약직 노동자의 질문으로부터 2004/11/16 18:52

 

 

오늘 내가 읽고 답해야 할 질문 중에도 이런 게 있다. 

 

보일러 기사다. 사실 보일러 기사면 늘 필요한 업무일 텐데, 1년 단위로 계약했단다. 2년차니까 작년에 계약서를 한번 더 썼고, 이번에 한번 더 쓰게될 것 같단다. 혹시 이번 계약을 사용자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 세번째 계약서를 쓰면 정규직이 되는지  ?  두가지를 물었다.

 

그 노동자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다. 그 노동자가 자기는 1년 계약보다는 정규직을 원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100%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계약직 노동자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는 처음부터 사용자와 대등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은 당사자간에 대등하고 자유로운 계약을 말하고 있지만, 그저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이 때, 온전히 자기 결정으로 계약직이 된 경우, 엄격히 말해 비정규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답변부터 해 보자.

 

사용자가 계약을 거부하면 법적으로 다툴 길이 없다. 법원은 노동자의 선택권이 완전히 제약된 상태에서 체결된 계약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대등한 개인 사이의 계약을 규율하는 민법적 사고만으로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를 메울 수 없다는 생각에서 노동법이 생겨났다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약에서는 당연히 노동법적 사고가 개입되어야 하지만, 한국 법원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물론, 계약이 형식적이다는 점을 밝혀 사실상 정규직이다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3번 계약서를 쓰면, 다시 말해 2년을 초과해 계속 근무하면 정규직이 되느냐고 물었다. 현행 파견법에 2년을 초과해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면 그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 아마 그 규정을 어디서 들었나 보다. 그런데, 그 규정은 파견노동자에 관한 것이고, 또한 파견노동자가 2년이 넘으면 정규직이 된다는 규정도 아니다. 다만, 그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볼 뿐, 계약직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부의 태도이다. 그렇게 되면 그 규정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다시 계약직이 되니 말이다. 그래도, 그 법은 "보호"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있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그게 무슨 보호인가 ? 없는 것 보다는 낫다 ? 아예 파견법을 안만들면 제대로 보호되는 것 아닌가 ? 그건 그렇고, 다시 질문에 답하면, 몇년을 사용해야 정규직이 된다는 법규정은 없다. 따라서, 답변의 결론은 "아니다"가 된다(물론, 장기간 반복이라면 계약이 위와 같은 예외적 적용을 말해 볼 수도 있지만, 역시 예외적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자. 어떤 노동자가 있다. 일은 그런대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임금을 좀 내리자고 했더니, 반대했다. 노조에 가입해서 사사건건 따진다. 뭐 좀 시켰더니 업무와 무관하다거나 강제노동이라며 협의해서 하자고 한다. 휴일에 좀 나오라고 했더니, 쉬겠단다. 이럴 때, 비록 그것들이 다 노동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사용자가 그를 계속 사용하려고 싶어 할까 ? 아니면 잘라 버리려고 싶을까 ? 그런데, 그를 잘라버려도 될 만한 잘못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자를 수가 없다. 이 때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 그렇다. 그는 1년 계약직이다. 파견나온 노동자다. 용역노동자다. 아하 ! 1년 후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파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용역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군. 다른 1년 계약직을, 다른 파견노동자를, 다른 용역노동자를 사용하면 그만이니까. 사용자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 마음에 드는 노동자는 계속 반복해서 쓰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된다고 할 때 말이다. 노조가 없다면 그런 유혹을 떨칠 수 있는 사용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

 

내가, 왜 파견법이나, 기간제노동자법을 반대하는지, 그리고 왜 위와 같은 법원의 해석을 반대하는지, 여럿 있으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사용자는 충분히 업무 능력을 문제삼아, 업무 질서 위반을 이유로, 노동자를 충분히 해고할 수 있고, 또 법원도 그것을 거의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해고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참, 가증스런 거짓말처럼 들린다. 

 

지금도 그런데 이제 아예 법원의 심사마저 필요없는, 아예 법적 다툼을 하게 할 수 없는 정도로 법을 만들자는 것이기에, 지금의 입법을 반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자 착취법이라고 할 파견법은 아예 없애야 한다.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 경우, 그 필요성을 명시하고 또한 기간도 명시하여 사용할 수 있다. 충분히 그것은 파견법이 아니어도, 기간제법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하다. 게다가, 기업 운영이 투명하면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다. 그런 신뢰 위에서라면 특히 기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 진정한 대화와 타협은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서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 내가 그렇지 않은 기업만을 상대해서 그런지 몰라도, 미리 공개하고 미리 대화하는 그런 곳은 보지 못했다. 그저 이것은 경영에 관한 사항이니 대들지 말라는 말만 주로 들었다. 그래놓고 노조나 조합원, 노동자들한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 노동자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파업하지 말라는 말과 동일시하지 말고, 같이 참여하고 같이 결정하는 말로 바꾸어 보라. 그래야 진짜 주인의식을 가지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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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17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감사^^

릴케 현상 2004-11-1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런 법 얘기조차도 낯선 것이 내가 봐온 사용자나 노동자들이 해고하거나 당하는데 그정도까지 골치아픈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거다. 법이야 어쨌든 사용자가 어느 날 당신 좀 무능하군 하면 내가 본 바로는 모두 알아서 사표 쓰던데... 혹은 자기가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낌새만 은근히 줘도 대부분 나가던데... 암만해도 법은 멀어요

숨은아이 2004-11-17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 퍼가주셔서 감사. ^^

자명한 산책님 :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직종과 그렇지 않은 직종 간의 차이는 있겠지요.

따우님 : 권력의 이름으로 하는 "보호"는 "감금"이기 쉬운가 봐요. 인디언보호구역도 그랬고... 이번엔 감금이 아니라 삭풍 부는 광야로 추방?

릴케 현상 2004-11-18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동이 자유롭다는 뜻이 돼버렸나^^

숨은아이 2004-11-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잘못 이해했나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