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읽고 답해야 할 질문 중에도 이런 게 있다.
보일러 기사다. 사실 보일러 기사면 늘 필요한 업무일 텐데, 1년 단위로 계약했단다. 2년차니까 작년에 계약서를 한번 더 썼고, 이번에 한번 더 쓰게될 것 같단다. 혹시 이번 계약을 사용자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 세번째 계약서를 쓰면 정규직이 되는지 ? 두가지를 물었다.
그 노동자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다. 그 노동자가 자기는 1년 계약보다는 정규직을 원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100%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계약직 노동자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는 처음부터 사용자와 대등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은 당사자간에 대등하고 자유로운 계약을 말하고 있지만, 그저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이 때, 온전히 자기 결정으로 계약직이 된 경우, 엄격히 말해 비정규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답변부터 해 보자.
사용자가 계약을 거부하면 법적으로 다툴 길이 없다. 법원은 노동자의 선택권이 완전히 제약된 상태에서 체결된 계약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대등한 개인 사이의 계약을 규율하는 민법적 사고만으로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를 메울 수 없다는 생각에서 노동법이 생겨났다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약에서는 당연히 노동법적 사고가 개입되어야 하지만, 한국 법원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물론, 계약이 형식적이다는 점을 밝혀 사실상 정규직이다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3번 계약서를 쓰면, 다시 말해 2년을 초과해 계속 근무하면 정규직이 되느냐고 물었다. 현행 파견법에 2년을 초과해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면 그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 아마 그 규정을 어디서 들었나 보다. 그런데, 그 규정은 파견노동자에 관한 것이고, 또한 파견노동자가 2년이 넘으면 정규직이 된다는 규정도 아니다. 다만, 그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볼 뿐, 계약직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부의 태도이다. 그렇게 되면 그 규정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다시 계약직이 되니 말이다. 그래도, 그 법은 "보호"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있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그게 무슨 보호인가 ? 없는 것 보다는 낫다 ? 아예 파견법을 안만들면 제대로 보호되는 것 아닌가 ? 그건 그렇고, 다시 질문에 답하면, 몇년을 사용해야 정규직이 된다는 법규정은 없다. 따라서, 답변의 결론은 "아니다"가 된다(물론, 장기간 반복이라면 계약이 위와 같은 예외적 적용을 말해 볼 수도 있지만, 역시 예외적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자. 어떤 노동자가 있다. 일은 그런대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임금을 좀 내리자고 했더니, 반대했다. 노조에 가입해서 사사건건 따진다. 뭐 좀 시켰더니 업무와 무관하다거나 강제노동이라며 협의해서 하자고 한다. 휴일에 좀 나오라고 했더니, 쉬겠단다. 이럴 때, 비록 그것들이 다 노동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사용자가 그를 계속 사용하려고 싶어 할까 ? 아니면 잘라 버리려고 싶을까 ? 그런데, 그를 잘라버려도 될 만한 잘못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자를 수가 없다. 이 때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 그렇다. 그는 1년 계약직이다. 파견나온 노동자다. 용역노동자다. 아하 ! 1년 후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파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용역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군. 다른 1년 계약직을, 다른 파견노동자를, 다른 용역노동자를 사용하면 그만이니까. 사용자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 마음에 드는 노동자는 계속 반복해서 쓰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된다고 할 때 말이다. 노조가 없다면 그런 유혹을 떨칠 수 있는 사용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
내가, 왜 파견법이나, 기간제노동자법을 반대하는지, 그리고 왜 위와 같은 법원의 해석을 반대하는지, 여럿 있으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사용자는 충분히 업무 능력을 문제삼아, 업무 질서 위반을 이유로, 노동자를 충분히 해고할 수 있고, 또 법원도 그것을 거의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해고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참, 가증스런 거짓말처럼 들린다.
지금도 그런데 이제 아예 법원의 심사마저 필요없는, 아예 법적 다툼을 하게 할 수 없는 정도로 법을 만들자는 것이기에, 지금의 입법을 반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자 착취법이라고 할 파견법은 아예 없애야 한다.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 경우, 그 필요성을 명시하고 또한 기간도 명시하여 사용할 수 있다. 충분히 그것은 파견법이 아니어도, 기간제법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하다. 게다가, 기업 운영이 투명하면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다. 그런 신뢰 위에서라면 특히 기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 진정한 대화와 타협은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서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 내가 그렇지 않은 기업만을 상대해서 그런지 몰라도, 미리 공개하고 미리 대화하는 그런 곳은 보지 못했다. 그저 이것은 경영에 관한 사항이니 대들지 말라는 말만 주로 들었다. 그래놓고 노조나 조합원, 노동자들한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 노동자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파업하지 말라는 말과 동일시하지 말고, 같이 참여하고 같이 결정하는 말로 바꾸어 보라. 그래야 진짜 주인의식을 가지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