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광고) 『한국 현대사 산책』(강준만) 2004/09/22 13:45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70년대 편)은 70년대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을 하나하나 제목으로 뽑아, 그 사건에 대해서 관련자들의 증언을 주로 인용하면서 설명해 나간다. 모두 세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을 통해 강준만은 묻는다.

 

박정희가 다카키마사오이었거나 남로당 당원이었어도, 김대중을 납치해서 죽이려고 했어도(의문의 교통사고 때문에 그가 지금도 다리를 절룩거리게 되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려져 버렸지고 남산에서 고문을 당했어도, 그가 주지육림에 빠져 TV나 은막의 여배우들을 농락했어도(그래서 늘 속상해 했던 육영수와 주먹다짐까지 했대나 뭐라나), 김일성을 죽이겠다고 기른 특공대를 무장공비라고 거짓말을 하려고 했어도,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묻어버리고 돈으로 때우려 했어도(그것도 비밀리에), 머나먼 정글 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버리는 것이 왜 애국인지 모르나 아무튼 경부고속도로가 그들의 피값이었어도, 먹고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어용노조(지금의 한국노총)를 주구(走狗)로 만들었어도(그래서 그들이 노동귀족이 되었다), 오로지 수치적 성장에 매달려 거대 기업군을 만들고 결국 지금과 같은 허약한 경제구조가 되도록 한 원인을 제공했어도(그러나, 경제파탄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돈과 권력을 그대로 쥐고 있다), 그런 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 썼어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력으로 짓밟았어도, 말 안듣는 언론과 개인, 단체를 모조리 탄압했어도, 부산마산사람들 다 쓸어버려도 상관없다고 큰소리치는 부하를 데리고 다녔어도, 김일성 영구집권 비난하던 그가 자기도 영구집권을 하려고 했어도, 전인민의 군사화를 비난하던 그가 고등학생들부터 총싸움 가르치고 여자들에게도 총을 들게 했어도, 기생관광을 국가가 적극 지원하고 애국이라고 칭송하는 정부의 우두머리였어도.......(더 많은데 기억나는대로 여기까지만)

 

그리고, 그가 죽은지 25년이 지난 2004년 오늘.

 

군수자본의 이익을 직접 드러내놓고 대변하는 부시가 아예 석유를 넘보고 군대를 동원해도 그것이 애국이 되고 국익이 되며, 그런 부시 뒤꽁무니를 따라 다녀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떠드는 사람, 오른쪽으로 기울어도 한참 기운 대통령을 좌파라고 우기는 사람, 장교들한테 통수권자에게 총을 겨누라고 말하는 사람, 앞뒤 다르고 앞뒤 자르고 그래도 정론지라고 말하는 신문, 밀어붙여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테고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시하는 사람, 국민의 인권과 생활에 관계되는 문제에는 사법소극주의를 취하다가도 노동조합의 경영권 참여 주장과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서는 적극주의를 취하여 자본가의 입장과 국가주의를 옹호하는 대법관, 친일청산에 개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사람(반대 논리도 가관이다)......그리고, 그들과 늘 함께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는데,

 

내 일이 아니라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박정희가 어떻게 하던 말던 누군가가 민주주의를 말하던 말던, 거의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은 모른 척해왔음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들일수록 박정희를 숭배하기도 한다. 이렇듯 지금도 우리가 일본군 장교 다카키마사오와 독재자 박정희와 함께 살고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살한 박정희정권의 공범(共犯)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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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9-2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한텐 다 읽지도 못하는 책을 왜 그리 사대느냐고 구박하면서, 내 책은 왜 읽고 광고까지 해주는데?

내가없는 이 안 2004-09-2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에 사는 사람이 보통 그러더라구요. ^^

숨은아이 2004-09-24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안님 댁도? ^^

내가없는 이 안 2004-09-2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도 시네21 살 때 잠깐 제재를 하더니만 저녁에 그거 읽으며 자더군요. 내참. ^^

숨은아이 2004-09-24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이 위에다 쓴 서해문집 역사문고도 네 권을 다 읽어버리데요!
 

모처럼 야구장에 가다. 2004/09/18 18:46

저 멀리 무등경기장(야구장)에서 응원소리가 들려올 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지리선생님 그 소리를 듣더니 말씀하시기를,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

"남 돈 버는데 뭐 좋다고 저렇게 박수치고 소리지르는지 몰라"

 

어, 생각해 보니 그렇기도 하네.

 

어렸을 때는 야구글러브가 우리 동네에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비료나 사료 속포장지를 접어 글러브로 사용했다.  

그 종이는 습기를 막기 위해 기름이 먹여졌으니 질겼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기름이 없는 속포장지도 괜찮았다.

그것마저 없을 때는 비닐포장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큰 자형 글러브를 우리집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포수 미트 하나와 야수용 미트 하나.

그 글러브는 곧 우리 동네 공용 글러브가 되었다.

그 글러브를 사용하는 사람은 포수와 1루수였다.

 

야구 방망이도 나무를 잘라 깍아 만들었고,

추수 후 논바닥이나 묘가 여기 저기 있는 뒷동산이 야구장이었다.

 

그렇긴 했어도 야구는 언제나 즐거운 놀이였다.

 

하지만, 난 돈을 내고 야구장에 가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야구장에서보다 집에서 티비로 보는 것이 더 좋았다.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렇다고 한번도 야구장에 가보지 않을 것은 아니다.

매년 요때 두 대학이 벌이는 야구 시합을 몇번 보러 간 적은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일상 속에서 정치의 場"을 만들어야한다는 명분으로,

졸업한 후로는 그냥 야구 보러 한두번 갔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운동장 주위에 그리고 그 안에 정치적인 구호를 담은

펼침막이 많이 걸려있었고, 다음 날 체육행사 뒤에 거리행진을 했었다.

어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희망하는 걸개그림 하나만이 있었다)

 

어제는 난 사무실에 나가지 않기로 마음 먹고,

학교 다닐 때 사귀었지만 한번도 야구장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각시와 함께 야구장으로 향했다.

 

빨간 벌레와 파란 벌레(울 각시의 표현이다)가 가득한 경기장에서

각시는 사진 찍다가 졸려, 배고파, 왜 저렇게 됐어 그 말만 반복하였고,

다음 스케줄인 영화 보기를 위해 경기가 끝나자 마자 경기장을 떠났다.

 

모처럼 직접 야구장에 가 보게 되어 즐겁기도 했지만, 

기껏 체육행사 들러리나 된 것인지 경기장 밖에 있는 풍물패와

외야석 저 멀리 달랑 하나 있는 걸개그림을 보면서,

저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열정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씁쓸한 생각을 동시에 갖게 한 하루...

 

내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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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9-2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금요일에 야구장 간 이야기. 내가 무지 지루했던 양 써놨는데, 그렇게 재미없지는 않았음. 응원하는 소리가 하도 극성이라 도무지 경기에 집중을 못 해(그렇잖아도 규칙을 잘 모르는데) 공이 돌아다니는 양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왜 저렇게 됐어" 하고 자꾸 물었던 것.

2004-09-22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09-2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야구장 안 가봤어요. 대신에 경마장에는 가봤는데 아마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경마장은 아마 사람들의 들고나는 시간이 짧아서 그렇지 그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떨 때 야구장에 막 가고 싶냐면, 혼자 퍼질러 앉아 있고 싶을 때 혼자 울고 싶을 때 오히려 방구석보다는 야구장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럴 때 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있으면 딱 좋을 텐데... 장소 봐감서 슬퍼하고 싶은 거 참 우습죠... ^^
그런데 빨간벌레 파란벌레는 정말 재밌네요. 숨은아이님 동화 쓰시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숨은아이 2004-09-2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야구장의 소음에 몸을 맡기고 싶으신 걸까요... 멀리서 보니 빨간벌레 파란벌레처럼 보이데요. ^^
 

존경하는 사람 이름을 적으시오. 2004/09/15 15:33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입사원서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입사원서는 어디나 대체로 비슷했다.

자기 소개서에다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성적은 어떤지,

내키가 몸무게가 얼마인지도 꼬치꼬치...

누구랑 사는지, 그 누구는 뭐하고 사는지,

자기 집이 있는지 없는지 등등도 다 적게 했다.  

 

어떤 데는 존경하는 사람 이름을 적는 곳이 있었다. 

 

누굴 적지 ?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엄마, 아빠...존경한다고까지 해야 하나 ?

교수, 학자...그럴 만한 사람은 없다.

이순신...헉, 싫다.

세종대왕...잘 모르겠다.

기타 등등...그들이 누군지 몰라.

 

그럼 누구 ?

 

내 삶에 영향을 미쳤고, 또 미칠 사람 중에 누구 없을까 ?

 

근데, 그런 것은 왜 적으라는 거지 ?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데 그것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서이겠지만,

그 존경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천차만별일 텐데.......

존경하는 사람 이름만 보고 어떤 사람을 평가할 수 있을까 ?

 

암튼, 난 이렇게 적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아노프

 

그런데, 그 이름을 적었어도 그에 대해 묻는 면접관은 없었다.

 

모두 10년전 일이다.

 

지금은 ? 아직도 그를 존경해 ?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의 영웅이기도 했던 그...

지금은 아무에게나 아무렇게나 패대기당하고 있기에,

나마저 그를 버릴 수 없어 계속 존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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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9-2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세종대왕이요.
한글로 쓰고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한자로 쓰고 읽어야 한다면? 꽥~

숨은아이 2004-09-21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숨은아이 2004-09-2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

글샘 2004-09-2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라디미르 일리치 율리아노프를 적다니요. 간도 크시지. 근데 면접관들이 그자에 대해서 모를만큼 무식한 시대였단 말이지요. 하긴, 그 당시 면접보러 다니던 사람들은 블라디미르를 알았지만, 면접관들이 몰랐을 수도 있지요. 만약에, 레닌을 사랑해? 하고 물었다면... 아직 백수일텐데...^^

숨은아이 2004-09-2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안녕하세요? 첨 뵙네요. 반갑습니다. 당시엔 그이를 존경하는 사람이 꽤 많았고, 또 보험회사 같은 곳에선 일부러 운동권 출신을 뽑았다는 설도 있지요. 인간관계 넓다고. --;
 

조혈모세포(골수) 기증수술 경험담 - 수술 전날 2004/09/20 17:50

 

드디어 2박 3일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병실로 들어가니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슬리퍼부터, 냉장고 가득 과일, 음료, 과자에, 식사까지.

 

샤워실도 따로 그리고 환자와 가족만 있을 수 있는.....

오...호...라 ~~~~~~

이게 1인실이구나.

 

각시가 그 전에 병원에 며칠 있게 되었을 때,

병실에 환자 숫자가 적을수록 좋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내가 정말 1인실에 들어왔단 말인가 ?

(간호사 말로는 DJ도 몸이 안좋을 때 이 병동 1인실에 있었단다)

 

빠르면 다음날 새벽에 바로 수술에 들어갈지도 모르니까,

첫날 저녁부터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는 것은 섭섭했다.

물론, 그런 섭섭함도 호강에 겨운 소리일 게다.

나 같은 사람이 언제 1인실에 감히 들어올 수나 있을까 생각하면 말이다.

 

다음날 수술을 위해 간호사와 의사가 몇번 드나들었다.

 

검사를 위해 드나든 의사와 수술에 참여하는 의사는 같은 질문을 했다.

 

아는 분이세요 ?

아니요.

좋은 일 하시는군요.

 

흠.....

그때 난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들은 헌혈도 안하신다면서요 ?

헌혈하면 온갖 부작용이 많은 걸 의사는 알기 때문이라던데요.

혹시 이번 수술도.....어쩌고....

 

그럴 리야 있겠는가만은, 나도 참 엉뚱하기는 해.

 

아무튼, 검사용으로 피도 뽑를 다시 한번 뽑았다.  

항생제를 맞아야 하니까 항생제 반응 검사를 위한 주사도 맞았다. 

근데, 다른 주사는 별론데 이건 좀 따끔하다. 눈물 찔끔...

찌를 때 아픈 게 아니라, 주사액이 들어가서 피부를 따끔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죽을 정도 ? 천만에. 따끔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다.

하지만, 주사 맞기 싫어하는 나는 코디에게 눈을 흘겼다

왜 아픈 주사가 있다고 미리 말해 주지 않았어요 ?

그러나, 그 따끔함은 십분 정도를 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관장을 했다. 왜 하는지는 몰르지만 아무튼 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모르겠네. 대체 왜 한 걸까 ?)

 

다음으로 영양제 주사를 손등에 꽂았다.

여기서 참 신기한 걸 발견했다. 

글쎄, 주사바늘이 쇠바늘이 아니라는 거다.

꽂을 때 보지를 못했지만,

나중에 물어 보니 연한 고무같은 것으로 되어 있어

몸이 움직일 때 혈관이 따라 움직이면 주사바늘도 같이 움직인단다.

햐 ~ 그렇구나.

 

영양제 주사바늘이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은 알 거다.

한 두시간 꽂혀 있을 때 그 이상한 느낌도 말이다.

그렇지만, 주사바늘이 다르니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그리고, 그 주사바늘을 통해 마취액도 들어가고, 

항생제도 들어가고, 영양제도 들어가니 더 이상 주사 맞을 일은 없었다.

나처럼 주사맞기 싫어 하는 사람한테는 참 좋았다.

 

(다른 데도 다 그러는지 모른다. 하여간, 내 경험일 뿐이니까)

 

편하게 지내야 좋을 걸 뽑을 수 있다고 코디는 말했고,  

어쨌든 좋은 일 한다는데 이 정도 배려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좋은 병실 비용도 모두 환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좋아라 할 수만도 없을 텐데.

 

(그러나, 왜 나를 그 좋은 1인실에 집어넣었는지는,

그 진짜 이유는 수술이 끝나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된다)

 

어쨌든 이렇게 내 《화려한》 1인실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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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9-2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요, 가을산님이나 마태우스님이 잘 설명해줄 수 있을텐데, 하여간 관장하는 이유는 마취로 인해 수술하는 동안 장운동이 정지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미리 그 안에 있는 걸 싸악~ 빼놓는 거죠.

숨은아이 2004-09-2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상상해버렸다. --;)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웅진 완역 세계명작 10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

지금까지 두 책을 비교하느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란 이야기 자체에 대한 말을 못 했네요. 이 책의 아름다움은 이미 많은 분이 써주셨으니 굳이 덧붙여 말하지 않겠습니다. 열두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는 두더지(모울)가 스산한 겨울날 들판을 헤매다 자신의 옛집 냄새를 맡고, 물쥐(워터 래트)의 격려를 받으며 함께 집을 찾아가는 부분, 그 부분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두더지는 친구와 모험과 햇빛 아래 세상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집 역시 사랑하지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넓히지요. 현명하고 너그러운 물쥐는 친구를 믿고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요.

그런데 문득문득 책의 내용이 참으로 교훈적이다, 의도적으로 교훈을 숨겨두었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눈이 멀어가는 아들을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두더지(두더지는 시력이 아주 나쁘죠! 원래 땅 속에 살고요)를 햇빛 아래로 끌어내고, 말썽쟁이 두꺼비의 버릇을 고치고... 원래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지은 이야기라니, 그럴 수밖에 없을까요.

또 주인공들의 생활이 너무 영국인 같아요. 두더지, 물쥐, 오소리, 두꺼비가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을 얻지 않고,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지만 햄이니 빵이니 포도주니 하는 걸 먹고살지요. 영국 작가라고는 톨킨, 애거서 크리스티, 롤링 정도밖에 모르는데(--;), 이에 케네스 그레이엄도 더해서, 이들 작가가 다 은근히 보수적이에요. 차별적인 신분 질서, 외국인에 대한 경원, 숲에 대한 공포... 이 책에선 ‘토끼’들을 우둔하고 이기적인 동물들로 묘사하는군요. 주변부에 살짝 등장하는데, 토끼 하면 약하고 수도 많은.... 우리 보통 사람들 같지 않은가요. [반지의 제왕]에서 “하급 인간들”을 노골적으로 멸시하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하녀는 (매편에 항상 등장하지만) 늘 주변인일 뿐이고,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동쪽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의심이 항상 드러나지요. 또 집요정에 대한 착취에 분노한 헤르미온느는 잠시 치기를 부렸을 뿐이고...

음... 이들 작품에 비하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훨씬 개방적이군요! 교훈도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녹아들었고. 번역이 좀더 좋았다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새로 검색해보니, 맑은창이란 출판사에서 또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냈더군요! 으... 심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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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09-2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을 웅진책으로 구입을 했습니다..
요즘 쏟아지는 명작동화들의 출판사별로 분류되어 있는것을 대할때면 사실 어느책을 사야할지 무척 고심중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개인적인 취향대로 책을 고르게 되는데요..(전 주로 웅진책을 잡게 됩니다..
소공녀를 웅진책으로 구입해서 읽다보니 자꾸 웅진쪽으로 눈이 가지더군요..ㅡ.ㅡ;;)
그래도 타출판사의 책은 또 어떨까? 궁금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사기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ㅠ.ㅠ
중에 제일 나은 것을 골라보자라는 욕심이 앞서지만....가만히 님의 긴 리뷰를 읽고 있다보니 모든 책들이 다 장,단점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책이 더 낫다고도 할수 없고..더 빠진다고 할수 없고..ㅡ.ㅡ;;
님처럼 여러 출판사 책을 두루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헌데...언제 그책들을 하나 하나 다 사서 읽게 될지?...ㅠ.ㅠ

리뷰 잘 읽고 좋은 정보 얻고 갑니다..^^

책읽는나무 2004-09-2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하려니 어느것에 해야될지 몰라서 전 마지막편에 추천을 누릅니다..^^

아영엄마 2004-09-2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렇게 꼼꼼히 비교해 보기도 힘들텐데...존경!! 저 역시 아무래도 애용(?)하는 출판사의 책쪽으로 끌리게 되네요. 그래서 저는 시공주니어쪽으로다가 구입을... 저도 추천~ 하고 갑니다..

호랑녀 2004-09-2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역판이 요즘 곳곳에서 나오더군요. 시공주니어, 웅진, 대교, 비룡소...
저는 개인적으로 시공주니어의 편집을 좋아했습니다. 앞에 사진도 있고, 삽화도 깔끔하고 해서요.
그런데 이제 꼼꼼하게 비교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유용한 페이퍼였습니다.
이주의 페이퍼상 이런 거 없나? ^^

숨은아이 2004-09-2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나무님 : 웅진에서 책이 늦게 나온 만큼, 좀더 잘 만들어낼 수도 있었는데... 아쉬움이 있어요. 추천 고맙습니다. ^^
아영엄마님 : 알라딘의 뉴스레터 때문이라구요. 비교해 볼 것을 충동질당해서는... T_T 추천 고맙습니다.
호랑녀님 : 칭찬 고맙습니다. 근데 이거 페이퍼 아니고 리뷰여요. ㅋㅋ

내가없는 이 안 2004-09-21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숨은아이님, 진짜로 꼼꼼하고 세밀하시군요. 단연 공들인 리븁니다. ^^

숨은아이 2004-09-2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은 모르겠고, 시간은 들였어요. ^^

chika 2004-09-2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달의 페이퍼상에 추천하고 싶다구요~ ^^

숨은아이 2004-09-2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치카님...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깍두기 2004-09-2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드셨겠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추천 꾸욱!!

숨은아이 2004-09-2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길어져서 그건 좀 힘들었어요. 추천 고맙습니다. 꾸벅.

숨은아이 2004-10-0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고맙습니다!

릴케 현상 2004-10-0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요

헤니 2004-12-2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어떤걸 사야하나 고민했었는데 ...님 덕문에 해결 되었네요. 추천합니다.

숨은아이 2004-12-2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 산책님도 추천해 주셨네. 고맙습니다. 헤니님 반갑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