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편
에프라임 키숀 지음, 변상출 옮김, 송은경 그림 / 좋은생각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7년쯤 전에 벽호 출판사에서 나온 [가족]을 읽고 에프라임 키숀이란 ‘풍자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1924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때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뒤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그리로 이주(1948년 건국, 1949년 키숀 이주)해서, 히브리어로 글을 쓰는 몇 안 되는 작가라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히브리어를 번역할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으므로 그의 작품은 모두 일단 독일어로 번역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 독일어판을 다시 자기네 나라 말로 옮긴답니다.

[가족]을 읽고는 포복절도했어요. 좌충우돌 어리석은 듯하면서 현명한 보통 사람들과 왁다글닥다글 복작대는 집안, 세계 공통인 ‘아줌마’의 슬기와 염치를 다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지만 죽이고 싶을 만큼 밉기도 한 아이들,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관료주의와 삐걱거리는 기계문명과 얼토당토않은 상술 들! 이 책이 무지하게 재미있어서,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이 사람이 쓴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도 사서 읽었지요.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난해한 현대미술을 비꼰 책입니다. 이 책도 유쾌했어요. (다양한 미술 작품 사진을 보여주며 내내 “피카소의 난해한 그림은,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이어붙이는 걸 업으로 삼는 평론가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것이었다. 피카소 한 명이 그렇게 했으면 됐지, 점점 난해해지는 현대미술은 뭐냐? 작가는 자기가 뭘 표현한 건지 정말 알기나 하냐?” 하고 씹은 책이지요. ^^;; 그러고 보니 미술에 대해서도 이 사람 꽤 보수적이군요.)

이 [가족]이란 책을 친구에게 빌려주었다가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번에 좋은생각 출판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편]을 낸 걸 보고, 혹시 같은 책이 아닌가 해서 보았습니다. 같은 책은 아니었어요. 이 작가는 워낙 짤막한 콩트 형식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고, 그 글들을 묶어 책을 내기에 같은 이야기가 이 책 저 책에 중복해서 실린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대체로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는 그의 작품에 줄곧 등장하는 그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아예 아내만을 주제로 책을 쓴 모양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가족]을 읽었을 때처럼 뒤로 넘어가도록 재미있지가 않았어요. ‘보수적이지만 나름대로 선량한 지식인 남성’의 시각이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얼마 전 [팔레스타인]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이 사람이 누리는 ‘중산층’의 삶,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비행기로 모셔 가는 유명 작가로서 누리는 특권, 눈에 보이고 손에 걸리는 모든 걸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아는 여유, 그런 것들이 어떤 이들의 삶을 밟고 올라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내내 걸려서일까요? 분명 그도 나치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견뎌야 했고, 그러한 경험 뒤에 자신들 민족이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나라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유대교로 개종하기만 하면 어느 나라, 어느 인종의 사람이라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로 그 ‘유대교의 유일신’을 내세우며 평화 공존이 아니라 억압과 배타를 선택했지요. 그 결과 이스라엘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희극 작가가 등장할 수 있었지만, 팔레스타인에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사람 책을 보고 웃을 수 있을까요.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그의 작품 중에는 새로이 상품으로 등장한 기계를 비꼬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게 70년대, 80년대 이야기이다 보니 지금으로선 공감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보수적인 시각도. 뭔가 보물을 잃은 듯한 느낌이에요. (그렇다고 영 재미없었던 건 아니에요.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어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편] 105쪽, 106쪽에 나오는 이스탄불의 ‘탑카피’는 톱카프 궁전이겠지요? 그리고 184쪽에선 너비를 ‘넓이’라고 해놨어요. 넓이는 면적이고 너비는 폭인데!

에프라임 키숀Ephraim Kishon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를 1981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편]은 1983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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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1-07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리뷰는 참 독특해요. 내용이나 감상 외에 다른 부수적인 출판의 이야기나 교정이나 편집의 오류까지 엿들을 수 있으니 후한 선물상자 같아요. ^^ 그런데 한 작가에게서 남매 같은 작품제목을 본다는 건 좀 맘에 안 들어요. 전 김훈의 현의 노래 제목을 보고는 솔직히 작가사 좀 실망스러웠거든요. 물론 나름대로의 계산이기도 하겠지만, 전작 칼의 노래 분위기에 좀 어긋난 제목짓기가 아니었나 싶어서. 재미있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숨은아이 2004-11-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은 제 리뷰에 늘 후하셔. ^^ 내용이나 감상을 멋들어지게 쓰지 못하니, 책에 얽한 기억을 나름대로 다 적어서, 정보 면에서라도 쓸모 있는 리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ㅠ.ㅠ 책 제목을 남매 같이 단 건 아무래도 독자의 호기심을 끌려는 상업적인 목적 때문이겠죠. ;-)

하얀마녀 2004-11-08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몰랐으면 그냥 재밌게 읽으실 수 있었을텐데요. 그래도 모르고 속는 것보단 가슴 한켠이 무거워도 아는 쪽이 좋죠? ^^

숨은아이 2004-11-0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마녀님, ^^; 그런데 꼭 그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예전에 너무 재밌게 읽어서일까, 그만큼 재미있지가 않았어요.
 
세상끝으로의 항해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우형강 옮김 / 시아출판사 / 1995년 11월
절판


마오리족 속담에 모든 바다생물은 결국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지, 그 때를 전후해서 계속 똑같은 꿈을 꾸는 것이었소. 저 남쪽 바다, 해협과 해협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나 자신을 본 것이었소. 그곳이 칠레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소. 더욱이 난 한번도 칠레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당신도 비글 해협을 여행할 수 있을 테니, 픽톤이나 레녹스, 누에바 섬에 사는 물개나 기러기, 펭귄들한테 물어보시오. 그놈들이 칠레 국적인지 아르헨티나 국적인지 말이오. 국경이니 영해니 모두, 총칼 든 군인들 군침이나 흘리게 하는 다 부질없는 것들이오.-154쪽

뻬드로, 우리만이 아니야! 바다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우리 말고 또 있단 말이야!-162쪽

누구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느낌 중의 하나인 것이다.-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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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을 읽는 노인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예하 / 1993년 4월
품절


문명화된 인간의 으뜸가는 업적인 그 사막을 건설하기 위해 숲을 파괴하는 (후략).-68쪽

수아르 족이 하는 말에 따르면 낮에는 인간과 숲이 별개로 존재한다. 그런데 밤에는 인간이 곧 숲이라는 것이다.-117쪽

"살쾡이의 발자취가 너무 확실해서 금방 잡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면 그건 그놈이 뒤에서 네 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수아르 족들은 말하는데 그 말은 사실이지.-140쪽

자네는 백인들의 사냥꾼이야. 총을 가졌으며, 죽음을 고통으로 가득 채움으로써 죽음을 더럽히고 있어.-142쪽

두려움이 자네를 찾아냈나? 자넨 이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두려움의 눈이 자네를 볼 수 있겠군. 새벽빛이 대나무 틈 사이로 새어드는 걸 자네가 볼 수 있듯이 말야.-143쪽

이 모든 비극의 책임자인 양키들과 읍장, 노다지꾼 등 그가 사랑하는 아마존 강의 처녀성을 유린한 모든 자들을 끊임없이 저주하며 틀니를 빼서 손수건에 싼 다음 큰 칼로 커다란 나뭇가지를 하나 잘라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그걸 짚고서 엘 이딜리오와 그의 오두막집, 때때로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줄 정도의 아름다운 말로 사랑을 얘기하는 그의 연애소설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157-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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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품절


당신 역시 부르주아를 죽도록 증오하는 또 하나의 부르주아일 뿐이니까.-174쪽

하지만 당신은 결정적인 카드 패를 집어들지 않았던 거요. 왜? 이른바 당신 같은 부르주아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오. 그들은 군불 속의 밤을 꺼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손을 이용한다, 그 말이오. 그것도 아주 철두철미하게.-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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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5월
구판절판


넌 갈매기란다. 그건 침팬지의 말이 옳아. 그러나 아포르뚜나다, 우리 고양이들은 모두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아주 예쁜 갈매기지. (중략) 네가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들은 그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지. 네가 우리처럼 되고 싶다는 말이 우리들을 신나게 했기 때문이야. 그러나 너는 우리와는 달라. 하지만 네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도 하지. 우리는 불행하게도 네 엄마를 도와줄 수가 없었어. 그렇지만 너는 도와줄 수 있단다. 우리들은 네가 알에서 부화되어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너를 보호해왔단다. 우리들은 네게 많은 애정을 쏟으며 돌봐왔지. 그렇지만 너를 고양이처럼 만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단다.-116쪽

우린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 우리와 같은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야. 하지만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런데 너는 그것을 깨닫게 했어. 너는 갈매기야. 그러니 갈매기들의 운명을 따라야지. 너는 하늘을 날아야 해. 아포르뚜나다, 네가 날 수 있을 때, 너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네가 우리에게 가지는 감정과 우리가 네게 가지는 애정이 더욱 깊어지고 아름다워질 거란다. 그것이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의 진정한 애정이지.-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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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0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 책도 다시 보니 이런 주옥 같은 문장이... ^^

chika 2004-11-0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두 책이 다 좋았다는... ^^;;

숨은아이 2004-11-0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도 세풀베다를 좋아하신다니, 오오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