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자유의 역사
존 B. 베리 지음, 박홍규 옮김 / 바오 / 2005년 9월
절판


우리는 모든 노력을 총동원하여 사상의 자유가 인류 진보의 원칙이라는 점을 젊은이들에게 각인시켜야만 하는데, 그러나 걱정스럽게도 이 일은 앞으로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의 초등교육 방식이 권위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종종 스스로 생각하도록 권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훌륭한 조언을 건네는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한 결과가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의견과 일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이들은 권위에 의해 이미 그들에게 주입되어 있는 원리들로부터 추론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아이들 스스로의 사고가 이러한 원리들―도덕적이거나 혹은 종교적인―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면, 매우 예외적인 인물들이 아닌 이상 그 부모와 교사는 극도로 불만스러워할 것이며, 분명 아이들을 낙담시킬 것이다. 물론 사상의 자유가 그 정도까지 진전되는 경우는 오직 뛰어나게 유망한 아이들에 한정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너의 부모를 믿지 말라"라는 말은 전도유망함의 제1계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들은 바를 권위에 의지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경우에 정당하고 어떤 경우에 정당하지 않은가를 아이들―이제 막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된―에게 설명해주는 것은 반드시 교육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275쪽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사춘 2005-11-16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단'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야그를 얼마전에 들었어요.
권위가 매우 지양하는 바겠죠?
저자는 모르지만 박홍규님이 옮기신 책은... 역시...

숨은아이 2005-11-1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판단"을 위한 교육을 받고 싶어요. 이 나이 되도록 뭐가 뭔지 모른 채 살고 있으니...
 



20쪽
평균적인 두뇌는 본래 게으르며, 가장 저항이 적은 노선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통 사람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믿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서 그대로 확고히 자리 잡은 것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친숙한 세계의 기성질서를 뒤집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적대적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어긋나는 새로운 생각이란 곧 그들의 정신을 재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의미하는데, 그 과정은 고통스러우리만큼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의 소모를 요구한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 보통 사람들에게 기존의 믿음과 제도에 의문을 던지는 새로운 생각과 의견은 사악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불쾌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신적 게으름에서 기인하는 반감은 공포라는 적극적인 감정에 의해 심화된다. 보수적인 본능은, 사회의 기초는 그 구조의 어떠한 변경에 의해서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보수적인 교의로 굳어진다. 국가의 복지가 견고한 안정 및 전통과 제도의 변함없는 보존에 의존한다는 믿음을 포기하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런 믿음이 지배하는 곳에서 낯선 의견은 성가실 뿐 아니라 위험한 것으로 느껴지며, 공인된 원칙에 대해 왜, 무엇 때문에라는 불편한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위험인물로 간주된다.

우리의 두뇌는 게으르다. 위험인물이란 바로 그러한 게으름을 깨뜨려주는 사람이다.



68쪽
“권위에 대한 굴종은 위선적인 신앙고백만을 초래할 뿐이다.” - 테미스티우스.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억압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하는 고백 따위, 내가 신이라면 받지 않겠다!



247쪽
영국 당국이 지난 2세기 동안 비정통적인 견해의 출판을 저지하고자 개입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목적이 언제나 자유사상의 대중적인 확산을 막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희생자들은 교육받지 못한 빈민들이거나 자유사상을 대중적인 형태로 보급한 사람들이었다. (중략) 겉으로 표명되지 않은 숨은 동기는 인민에 대한 공포였다. (중략) 빈민들이 계속해서 만족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미신 속에 묶어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 또는 빈민들은 그들보다 나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마련한 사회적인 계획뿐 아니라 신학적인 계획에 대해서도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 등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5-11-10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사실이라네...

숨은아이 2005-11-1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권력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거요?

물만두 2005-11-1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췌~

숨은아이 2005-11-1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존 B. 베리, [사상의 자유의 역사], 바오

1. 역자 머리말 중 12쪽에 저자가 트리니티 대학 고대사 교수를 지냈다고 했는데, 표지 날개에서는 저자가 트리니티 대학 현대사 교수였다고 했음. 어느 쪽이 맞는지?

2. 25쪽 세 번째 문단 넷째 줄, 프랑 책 → 프랑스어

3. 75쪽 세 번째 문단 둘째 셋째 줄,
그 어떤 수단 심지어 허위나 사기까지도 을 동원해서라도
→ 그 어떤 수단 심지어 허위나 사기 동원해서라도

4. 87쪽 첫 번째 문단 마지막 문장,
이러한 변화는 이탈리아 여러 소국 일부는 공화국이었고, 나머지는 전제군주에 의해 통치되었다 의 정치사회적 조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 이러한 변화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조건―이탈리아 여러 소국 일부는 공화국이었고, 나머지는 전제군주에 의해 통치되었다―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5. 100쪽 각주 15번 두 번째 문장,
(조르다노 브루노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혁교회가 모두 유럽의 복음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비정통 사상을 집요하게 고수하다가 화형대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 (조르다노 브루노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혁교회가 모두 유럽의 복음화를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서 비정통 사상을 집요하게 고수하다가 화형대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6. 108쪽 세 번째 문단 둘째 셋째 줄.
르네상스로 인해 조짐을 드러낸 결정적인 변화들 개인주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적 태도, 세속적 지식의 배양 은 변함없이 지속되었으며,
→ 르네상스로 인해 조짐을 드러낸 결정적인 변화들 개인주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적 태도, 세속적 지식의 배양 은 변함없이 지속되었으며,

7. 135쪽 둘째 줄, 로베스피에르가 정권을 잡은 때를 1795년 4월이라고 했는데, 앞면의 각주 25에서 로베스피에르가 1793년 공안위원회를 장악하고 1794년 사망했다고 나옴.

8. 135쪽 두 번째 문단 여섯째 줄,
세속적인 교육체계 → 세속적인 교육체계

9. 162쪽 각주 9번
영국 보통법의 역사에 관한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사람이다.
→ 영국 보통법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사람이다.

10. 210쪽 여덟째 줄, 기교 → 기

11. 230쪽 각주 37번에 “Privy Council을 흔히 추밀원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일본식 용어이다.”라고 했는데, 고려 때에 왕명을 전달하는 기관을 추밀원이나 중추원이라고 했다. 일본식 용어라고만 할 수 있을까?

12. 234쪽 밑에서 셋째 줄, 235쪽 위에서 열두째 줄에는 ‘바티칸 공회의’라고 나오고, 235쪽 넷째 줄에는 ‘바티칸 공의회’라고 나옴. 바티칸 공의회로 통일해서 표기하는 게 좋겠음.

13. 259쪽 두 번째 문단 둘째 줄, 사회권력 → 사회권력

14. 272쪽 세 번째 문단 여섯째 줄부터.
천문학과 지리학 (수학을 제외하고) 그리스인들이 가장 큰 진보를 이뤄낸 두 분야 에 관해 그리스인들이 알았던 것과 우리가 아는 것을 비교해보라.
→ 천문학과 지리학 (수학을 제외하고) 그리스인들이 가장 큰 진보를 이뤄낸 두 분야 에 관해 그리스인들이 알았던 것과 우리가 아는 것을 비교해보라.

15. 284쪽 넷째 줄. 이단의 굴레를 씌 → 이단의 굴레를 씌

16. 298쪽 밑에서 다섯째 줄. 포르투 → 포르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라주미힌 2005-11-1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역시 꼼꼼하세요..
저렇게 많다니... 심하다.

숨은아이 2005-11-1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박홍규 교수가 워낙 비문을 많이 써서요, 그분 원고는 편집자들이 문장을 많이 다듬어줘야 해요. 많이 고치다 보면 고치는 과정에서 또 오탈자가 생기지요.
 
사상의 자유의 역사
존 B. 베리 지음, 박홍규 옮김 / 바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가슴이 무거워지려나 약간 긴장하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었다. 엄청나게 학술적인 책이 아니고, ‘사회가 암암리에, 혹은 공공연히 강제하는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자유’에 초점을 두고 쓴, 간략한 서양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주제가 분명하다 보니 각 시대의 정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서양사를 좀더 잘 알고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싶다.

사상의 자유라 하면 양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와 함께, 당연히 보장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분명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옮긴이가 해설에서 썼듯이 우리나라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행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필요하다면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이 나라를 “자유 대한”이라고 했나!)

이 당연하지 않은 자유가 왜 보장되어야 하는가? 지은이의 주장을 내 식대로 다시 말하자면, 신은 항상 옳을지 몰라도 인간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옳게 가르쳤을지 몰라도 인간은 그걸 잘못 알아들을 수 있다. 기독교에서 믿는 신은 분명 하나인데 그 신의 가르침을 각각 달리 해석하는 기독교의 분파가 열 손가락으로 다 꼽지도 못할 만큼 많다는 게 바로 그 증거 아닌가? 어느 쪽이 틀렸는지 분명히 알려면 각자의 주장을 다 드러내어 시간을 두고 자유롭게 검증을 받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는 논리는 박해 따위 받지 않아도 저절로 소멸하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파시즘도 허용해야 하는가?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상까지 허용할 수 있나?

비교적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로마에서 기독교를 박해했던 까닭을 살펴보면 이 문제의 해답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지은이는 고대 로마를 “공식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교의와 종파를 완전히 관용하는” 국가로 본다. 그런데 기독교는 “자신의 교의를 제외한 모든 교의에 대해 철저히 적대적이며, 만약 권력을 잡게 되면 자신의 교의를 제외한 모든 교의를 억압하게 될 교회”였다. 그래서 로마 정부는 “자기방어를 위해” 기독교를 박해한다. 그런데 박해란 “두 가지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폭력이냐, 위험한 사상이냐. 폭력보다 위험한 사상이 더 나쁘다고 판단할 때 박해를 선택하게 될 텐데, “그러나 만약 박해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고안되고 수행되지 않으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악이 고스란히 남게 되며,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해를 해서 그 위험한 사상을 일소할 수 있으면 적어도 한 가지 악은 막는 셈이 되겠지만, 역사상 박해는 완전히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로마는 결국 기독교를 꺾지 못했다. 따라서 위험한 사상도 뿌리 뽑지 못하고, 폭력적인 박해에 무고한 희생자만 양산했다. 게다가 박해는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로써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권력을 잡은 기독교 역시 이 두 가지 악을 그대로 실천하고 만다. 앞서 기독교가 박해를 받지 않았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끄트머리에 옮긴이가 한국의 법적인 상황과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서구의 현황을 정리해주었다. 유용하다.

가끔 보이는 오탈자는 이 책을 읽는 데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_-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시장미 2005-11-1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많이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사상의 자유. 참 어려운 부분이네요. 특히 사상의 자유는 인식을 전환시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참 어렵고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우리나라.. 정말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지요. 그것이 옳은 일인지 옳지 않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제가 평가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제도상 어떤 변화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숨은아이 2005-11-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고민하는 사람이 하나라면 더 늘면 뭔가 달라지겠지요. 고맙습니다.
 




사무엘 : 신께서 너를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고 네게 전하라 명하셨다.

사울 : 신께서 후회하시다니! 오로지 과오를 범하는 자만이 후회하는 법. 그분의 영원한 지혜는 결코 현명하
지 않을 리 없다. 신께선 과오를 범하실 리 없다.

사무엘 : 그분은 과오를 범하는 자를 왕위에 올린 것을 후회하실 수 있다.

사울 : 그렇다면, 과오를 범하지 않는 자 누구인가? 말하라, 나의 잘못이 무엇인가?

사무엘 : 너는 왕을 용서했다.

아각 : 뭐라고! 최고의 미덕이 유대에서는 범죄란 말인가?

- 볼테르의 희곡 <사울>의 일부분, [사상의 자유의 역사] 177쪽에서 옮겨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