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자유의 역사
존 B. 베리 지음, 박홍규 옮김 / 바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가슴이 무거워지려나 약간 긴장하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었다. 엄청나게 학술적인 책이 아니고, ‘사회가 암암리에, 혹은 공공연히 강제하는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자유’에 초점을 두고 쓴, 간략한 서양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주제가 분명하다 보니 각 시대의 정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서양사를 좀더 잘 알고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싶다.

사상의 자유라 하면 양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와 함께, 당연히 보장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분명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옮긴이가 해설에서 썼듯이 우리나라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행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필요하다면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이 나라를 “자유 대한”이라고 했나!)

이 당연하지 않은 자유가 왜 보장되어야 하는가? 지은이의 주장을 내 식대로 다시 말하자면, 신은 항상 옳을지 몰라도 인간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옳게 가르쳤을지 몰라도 인간은 그걸 잘못 알아들을 수 있다. 기독교에서 믿는 신은 분명 하나인데 그 신의 가르침을 각각 달리 해석하는 기독교의 분파가 열 손가락으로 다 꼽지도 못할 만큼 많다는 게 바로 그 증거 아닌가? 어느 쪽이 틀렸는지 분명히 알려면 각자의 주장을 다 드러내어 시간을 두고 자유롭게 검증을 받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는 논리는 박해 따위 받지 않아도 저절로 소멸하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파시즘도 허용해야 하는가?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상까지 허용할 수 있나?

비교적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로마에서 기독교를 박해했던 까닭을 살펴보면 이 문제의 해답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지은이는 고대 로마를 “공식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교의와 종파를 완전히 관용하는” 국가로 본다. 그런데 기독교는 “자신의 교의를 제외한 모든 교의에 대해 철저히 적대적이며, 만약 권력을 잡게 되면 자신의 교의를 제외한 모든 교의를 억압하게 될 교회”였다. 그래서 로마 정부는 “자기방어를 위해” 기독교를 박해한다. 그런데 박해란 “두 가지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폭력이냐, 위험한 사상이냐. 폭력보다 위험한 사상이 더 나쁘다고 판단할 때 박해를 선택하게 될 텐데, “그러나 만약 박해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고안되고 수행되지 않으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악이 고스란히 남게 되며,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해를 해서 그 위험한 사상을 일소할 수 있으면 적어도 한 가지 악은 막는 셈이 되겠지만, 역사상 박해는 완전히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로마는 결국 기독교를 꺾지 못했다. 따라서 위험한 사상도 뿌리 뽑지 못하고, 폭력적인 박해에 무고한 희생자만 양산했다. 게다가 박해는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로써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권력을 잡은 기독교 역시 이 두 가지 악을 그대로 실천하고 만다. 앞서 기독교가 박해를 받지 않았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끄트머리에 옮긴이가 한국의 법적인 상황과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서구의 현황을 정리해주었다. 유용하다.

가끔 보이는 오탈자는 이 책을 읽는 데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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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1-1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많이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사상의 자유. 참 어려운 부분이네요. 특히 사상의 자유는 인식을 전환시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참 어렵고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우리나라.. 정말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지요. 그것이 옳은 일인지 옳지 않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제가 평가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제도상 어떤 변화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숨은아이 2005-11-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고민하는 사람이 하나라면 더 늘면 뭔가 달라지겠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