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시 같지 않은 시 3

김용락 


도법 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경북 안동 조탑리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댓평 오두막에 막 도착했다

들판에 벼 낟가리가 쌓이고

조선무의 흰 잔등이 무청을

늦가을 푸른 하늘로 밀어올리며

턱턱 갈라진 흙 사이로 힘있게 솟구치는

어느날이었다 


권선생님 왈


“사진 찍고 이칼라면 오지 마라 안 카디껴!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다니면 농사는 누가 짓니껴?


이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들을 마구 짓밟고 다니면

작은 생명들이 발에 밟혀 죽니더

인간들에게 생명평화인지 몰라도

미물에게는 뭐가 될리껴?

차라리 집 안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되레 생명평화 위하는 길 아이니껴?”


스님, 순례단원, 지역 시인, 카메라를 맨 기자는

묵묵부답 잠시 말을 잃었다.





-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어제 오후에 소식을 듣고도, 뉴스가 나올 때까진 설마 하고, 잠자코 있었다.

애국자가 없다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거라고 하셨던 선생님.

언제나 소박한 동화로 가장 깊은 곳을 울리셨던 선생님.

5월은 선생님이 떠나시기에 가장 좋은 달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 역시, 잠시 말을 잃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5-18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5월은 어린이들과 함께 선생님을 기억하는 달이 되겠지요. 저도 그래요.

홍수맘 2007-05-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까 아영엄마님의 서재에서 알았어요.
정말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답니다.

2007-05-18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1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 저도 안타까운 마음이에요. 좋은 곳에 계실 테니, 함께 기도해요.

속삭님 / 그러셨군요. 함께 찡한 마음입니다.

네꼬 2007-05-1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고맙습니다. (.. )

비로그인 2007-05-1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마늘빵 2007-05-18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알았습니다. 이 분의 존재를.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통해 그 분의 존재를 알게 되는군요.

2007-05-18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1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 네, 별 건 없고, 제 마음 뿐입니다.

아프님 / 저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되어요.

속삭님 / 맛 좋네요. : )
 

 

슬프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

 

--

 

처음 해보는, 취중 페이퍼.

시간 많이 걸렸다.

취한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5-13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13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그대의 닉네임을 좋아해요. : ) 여전히 취한 채로.

2007-05-13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1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님의 서재로 가요. : )

다락방 2007-05-1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일찍부터
-이정하


아침 일찍도 오시던군요.
그대인가 했더니, 아침 일찍도 오시는 비.
내 우울함의 시작.

그립다는 것은 그대가 내 곁에 없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런 그대가
내 곁에 있어 줬으면 하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내 가슴 한 쪽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립다는 것은 다시는 못할 짓이다.


네꼬 2007-05-1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 그래서... 아침에 울면 종일 울게 돼요. 다시는 못할 짓이죠. : )

2007-05-13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1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어제는 햇빛과 바람이 참 좋았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아시면 아까워서 땅을 치실 거예요.) 자자, 다음 주엔 약속이 없어도!!(ㅠㅠ) 방황을 적극권유! 냥냥!

마노아 2007-05-1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뼈아픈 후회하지 말아요ㅠ.ㅠ

네꼬 2007-05-1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 그래요, 우리 그러지 말아요. ㅠ_ㅠ

2007-05-18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1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님의 주말 계획은 어떻게...? 저는 제대로 나들이 나들이예요. (^^)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 연명하는

어두운 포유동물. 빗질할 줄 아는

존재라고

공평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

 

노동의 결과로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며,

상사이며, 부하인 존재.

세월의 도표는 상사의 명패에

빠짐없이 투시되지만.

까마득한 그 옛날부터

백성의 굶주린 방정식에 대해

상사의 눈은 반만 열려 있음을 고려해볼 때...

 

인간이 때로 생각에 잠겨

울고 싶어하며, 자신을 하나의 물건처럼

쉽사리 내팽개치고

훌륭한 목수도 되고, 땀 흘리고, 죽이고

그러고도 노래하고, 밥 먹고, 단추 채운다는 것을

어렵잖게 이해한다고 할 때...

 

인간이 진정

하나의 동물이기는 하나, 고개를 돌릴 때

그의 슬픔이 내 뇌리에 박힌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인간이 가진 물건, 변소,

절망, 자신의 잔인한 하루를 마감하면서,

그 하루를 지우는 존재임을 생각해볼 때...

 

내가 사랑함을 알고,

사랑하기에 미워하는데도,

인간은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할 때...

 

인간의 모든 서류를 살펴볼 때,

아주 조그맣게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안경을 써가며 볼 때...

 

손짓을 하자 내게

온다.

나는 감동에 겨워 그를 얼싸안는다.

어쩌겠는가? 그저 감동, 감동에 겨울 뿐...

 

 

세사르 바에흐,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좋다.

 

 

인간이 진정

하나의 동물이기는 하나, 고개를 돌릴 때

그의 슬픔이 내 뇌리에 박힌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래서 내가 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4-30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하나의 물건처럼 쉽사리 내팽개치고 ....그러고도 노래하고, 밥 먹고,
단추 채운다는 것을..'
'절망, 자신의 잔인한 하루를 마감하면서'

네꼬 2007-04-3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 님 /

'손짓을 하자 내게
온다.
나는 감동에 겨워 그를 얼싸안는다
어쩌겠는가? 그저 감동, 감동에 겨울 뿐....'
 

안개 속으로 부드러운

가지를 드러내는 버드나무들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흔들리는 걸

보며 나는 옥수수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마루를 닦기 시작한다

책들을 치우고 의자를 옮기고

쓰레기통을 비운 뒤 구석구석

물걸레질하다 보면 현관으로는

햇빛이 들어와 물살처럼 고이고

바람이 산 밑으로 쓸리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철새들이 말하며 가는 것을 본다

순간 나는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낀다

오늘 같은 날은, 나를 상자 속에 가두어

두고 그리운 것들이 모두 집 밖에 있다


최하림,  <독신의 아침>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내내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혹은 도망치고 그랬는데

그 잠이 깊었나 보다.

룸메이트가 출근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자다가

깨어 보니 9시 26분.

새 휴대폰의 알람 소리를 무척 좋아해서

밤마다 시간을 새로 맞추면서 한번씩 듣곤 하는데

아마 어제는 그걸 깜빡한 모양이다.

아, 생활은 시와 달라라.

독신의 아침은 까딱하면 지각으로 넘어가느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4-1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맞아요
그래도 독신의 아침이 부러운 요즘이기도 해요.
쉬는 날도 엄마아부지 등쌀에 일찍 일어나야 되거든요 -.-...

네꼬 2007-04-13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나. 난 지금 체셔님 서재에서 돌아오는 길인데!

향기로운 2007-04-13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도 오늘 까딱 지각할 뻔 했어요^^ (독신은 아니지만 어젯밤, 아니 새벽 5시에 잠들어서.. 겨우 일어났어요..ㅠㅠ;; 어머님은 며느리 잠도 못잤다고 안 깨우시고..T_T;; 비때문이라고 했지만 암튼 택시타고 겨우 출근했어요ㅡ.ㅡ,,)

네꼬 2007-04-13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까딱이 아니라 제대로 지각했습니다. -_-a 늦잠도 정도가 있지 9시 26분이라니 부끄러워요.;;;; (그나저나 다정한 시어머님~)

이리스 2007-04-1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신의 아침, 이라니 어쩐지 낭만이 있을줄 알았는데 현실에선 지각! ㅋㅋ
저도 오늘 제대로 지각~ (오늘은 지각의 날인감?)

네꼬 2007-04-13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지각 동지가 많군요. 핫핫핫. 날이 흐린 탓이 아닐까요? (엉뚱한 핑계인가!)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