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체
안현미


우주 체험을 한 뒤에는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 없다
-슈와이카트(우주비행사)


하루종일 분홍눈이 내렸다
세로도 가로도 없는 그 공간을 '방'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우주'라는 말을 발견했다

그후 우리는 '하나는 많고 둘은 부족한' 별에 착륙했고
중력은 희박했고 궤도를 이탈한 계절은 랜덤으로 찾아왔다
어제는 겨울 오늘은 여름 낮에는 가을 밤에는 봄

우리는 당황했지만 즐거웠고 우리는 은밀했다
이상했지만 세계는 완벽했고 중력은 충분히 희박했다
검색창 밖으론 하루종일 푹푹 분홍눈이 내렸고

하루종일 우주선처럼 둥둥 떠다녔다
사랑과 합체한 사랑은, 그리고 또 우리는
그후 '하나는 많고 둘은 부족한' 별의 거북무덤엔 다음처럼 기록되었다

사랑을 체험한 뒤에는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 없다!

 

 

 

*

처음 펼친 시집의 첫 번째 시가 마음에 들 때는 막 두근두근하다.
이럴 땐 곧장 다음 시로 넘어가지 않고
잠시 책을 덮은 다음 방금 읽은 시의 좋았던 구절들을 생각한다.
분홍눈이라고 했지. 세상에, 깜깜한 우주에.
어제는 겨울 오늘은 여름 낮에는, 뭐였지? 아, 이렇게 부드럽게 흩어지는 시간들이라니.
조심조심 다시 책을 펼친다.
나 역시 시인처럼 당황스럽지만 즐겁게,
그리고 은밀하게 우주를 떠다닌다.
둥둥.
내 몸이 왜 이렇게 가벼운가 했더니
이곳은 중력이 충분히 희박한 우주.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의 계절을 알 수 없는 (뭐 상관도 없는)
이상하고 완벽한
우주. 

  

*  
 

안현미 『이별의 재구성』 (창비 2009) 


첫 시를 오래오래 읽고 또 읽은 다음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겨
두 번째 시를, 세 번째 시를 읽었다.
그런 다음 어딘가 떳떳한 마음으로 (응?) 친구들께 권유를.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09-11-1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제가 이 시집을 읽고 싶어라 했었는데 잊고 있었군요 ㅎ

다락방 2009-11-1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홍눈보다 더 제 흥미를 끄는건 '이별의 재구성'이라는 시집의 제목인데요.

사랑을 체험한 뒤에는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 없다. 네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로요. 결코 전과 똑같을 수 없죠, 암요. 와- 시를 읽는 나의 친구라니! 완전 멋져요. >.<

섬사이 2009-11-1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몸이 왜 이렇게 무거운가 했더니
이 곳은 중력이 충분히 강력한 우주,
세 아이를 둔....
40대 아줌마의 우주..
그래도 랜덤으로 찾아와 뒤죽박죽 흘러가는 시간은
공통점이에요. ㅋㅋㅋ
오랜만에 네꼬님 봐서 그냥 기분이 좋아요. ^^

레와 2009-11-1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사랑을 체험한 뒤에는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 없다! '

이렇게 격하게 공감가는 구절이라니.. 잠이 확 달아났어요, 네꼬님!^^

2009-11-11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는 사람 2009-11-19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꼬 씨 재능(매력으로 해석해도 상관 없음)은 아무리 가둬 두려해도(뭐... 그닥 가둬 두려 애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잘 가둬지지 않는...바늘 구멍만한 틈새만 있어도 기필코 비집고 나오는 빛 같구려.

아베끄 2009-11-21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는 그녀들은 넘 사랑스러워요.
분홍색은 제 페이버릿컬러예요. 남들이 뭐라 하건 찐분홍색 옷을 막 입구다녀요.
띠지를 벗겨낸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커버는 어찌나 맘에 쏙 들던지 책 받고나서 한참 황홀경에 빠졌었어요. 그래도 눈은 하얘야 될 것 같은...
토요일 회사 출근해서 딴짓하다 횡설수설하다 갑니다^^

네꼬 2009-11-2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모두 반가운 분들. 모두모두 함께 시를 읽읍시다. (응?) 자자, 아는 사람님도 일루 오세요. (저 알아요, 누구신지. 히히.)
 

며칠 전에 이 글을 쓰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울었어요.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꽤 울었는데도 다 운 것 같지가 않아요. 이러다 배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한 때는 당신에게 돼지저금통을 보내던 때가 생각나서 그랬고, 어느 때는 당신이 손녀의 얼음과자를 휴지로 싸던 모습이 생각나서 그랬고, 어느 때는 전직 대통령을 보러 '이만 오천 원씩 걷어서' 관광버스 빌려 온 분들이 얼굴이 새카맣고 몸이 조그마한 촌로들이었다는 게 떠올라서 그랬고, 나중에는 그냥 당신만 떠올려도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당신이 떠난 뒤로 쏟아져나온 익살맞고 친근하고 엉뚱한 수많은 사진 중에서 나는 이 사진을 제일 좋아해요. 저 아이 표정 말이에요. 나는 알고 있어요. 아이들은 이런 표정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는 걸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바로 저런 표정으로 답해줄 사람에게만 저렇게 거리낌없이 안길 수 있다는 것도요. '설정'으로는 나올 수 없는 이런 장면들을, 왜 이제야 보았을까요.  

그래서 말인데 너무 부끄럽지만 꼭 해야 될 말이 있어요. 설령 내가 뭘 잘 알고 그걸 근거로 당신을 비판했다고 치더라도, 당신이 고향 마을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그렇게 매정하게 굴 건 없었어요. 나라를 이 꼴을 해놓고 끝까지 저 혼자 멋있는 척한다면서 야박하게 당신을 밀어낼 것까진 없었어요. 그냥 그쯤 거리를 둬야 내가 이성적인 거라고 쿨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은 정치인이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요. 변치 않는 사람이라고 좋아해놓고, 대통령답게 변하지 않는다고 미워했어요.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요. 당신을 한때 사랑했다 미워했던 이들 중에는 여전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나는 비판도 비난도 정당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고백을 해야 돼요. 정말로 미안해요.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기 전날 밤, TV에서 당신 목소리를 들었더랬죠.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 어느 꿈은 현실이 되었지만 어느 꿈에는 땀을 더 쏟아야 된다고 당신은 말했어요. 그리고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말라고도 했지요. 당신이 떠난 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영상 중에 제일 아프게 저를 할퀴는 것은 그때의 목소리예요. 오늘 밤이 지나면.  

이제, 오늘 밤이 지나면 당신은 다른 세계로 간다지요. 49재. 오늘 밤이 지나면 당신을 보내야 돼요. 슬픈 것도 슬픈 거지만 무엇보다 나는 막막해요. 당신 같은 사람도 없는데 나는, 우리는 이제부터 어떡하지. 그런데 당신 역시 그토록 약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어요.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빈자리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거기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떠난 뒤에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더 큰 일을, 더 작은 일을, 더 복잡한 일을 하게 될 셈인 거죠.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다정해질 거예요. 당신이 이룬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을 공부할 거고, 당신의 한계를 지적할 거고, 당신을 더 좋아할 거예요. 우리는 당신이 잘못한 걸 찾아낼 거예요. 다음에 만날 이상주의자는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열정은 식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리움은 어지간해서 사라지지 않아요. 아니, 시간에 힘입어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편파적으로 좋은 기억만 키우게 마련이죠. 이 공정치 않은 그리움의 울타리 안에서 오랫동안 당신을 기억하고 오랫동안 사랑하고 오랫동안 갚아가면서 살겠어요.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라고 미워하지 않고 억지로 끌어오지 않을게요. (대신 혼내줄 놈들은 모조리 혼내주겠어요.) 나는 그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넓혀가겠어요. 그러니 당신, 어느 세계로 건너가든 아주 가버리지는 말고 이따금 이 공터에 찾아와 내가 전에 내주지 못했던 당신의 자리에서 언제까지고 쉬다 가시길. 고마웠어요. 미안해요. 잘 가요.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들어
아직은 만선된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다오

 

-함민복 「공터의 마음」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9-07-10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출력해도 될까요?
오늘 고등학교 독서회에서 이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든요.
토론도서는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인데요
유명인사들이 얘기하는 노무현 보다는 일반 시민이 말하는 노무현이 더 와닿잖아요.^^

네꼬 2009-07-12 13:1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모임 잘 하셨어요? 늘 에너지 가득한 모습; 뜻 깊은 토론 하셨기를요. (출력이라니 그런 부끄러운...)

다락방 2009-07-1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꼬 2009-07-12 13:14   좋아요 0 | URL
네.

* 다락님, 휴일 잘 보내세요. 이 비 오는 일요일 오후.

2009-07-10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2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0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2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쟈니 2009-07-10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은, 사람을 울리는 글을 쓰시는 능력을 가지셨군요... 저도 49재를 동영상으로 보다가 잠시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네꼬 2009-07-12 13:21   좋아요 0 | URL
저는 그날 출장을 떠나느라 뉴스조차도 볼 수가 없었어요. 다음날 신문으로 기사를 읽는데 그래도 눈물이 막 나오더군요. 우리의 이 슬픔은 옅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잘 지내려고요, 저는. 건강하고 다정하게.

마노아 2009-07-1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만나서 반가웠다는 얘기를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훔쳤어요. 다시 또 그런 사람을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쉬이 기대하지 못하겠는데, 그럼에도 또 다시 그런 이상주의자를 만난다면, 그래요. 그땐 우리가 꼭 지켜내도록 해요.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 사무치는 마음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어요...

네꼬 2009-07-12 13:23   좋아요 0 | URL
다음번 이상주의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데서 시작해보려고 해요. '조직된 시민의 힘'을 배우고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사는 걸, 해봐야겠어요. 같이 힘내기로 해요. 그리고 그날 여전히 환한 얼굴로 인사해주어서 고마웠어요!

프레이야 2009-07-10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저런 표정은 아무한테나 나오지 않지요.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해요.

네꼬 2009-07-12 13:29   좋아요 0 | URL
그와 아이가 눈을 마주치고 있어요. 저는 두 사람의 눈을 자꾸 들여다보게 돼요. 켕..

paviana 2009-07-1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 토닥 제가 안아드릴게요.
아마 그분도 네꼬님 마음을 알아주실거에요.

네꼬 2009-07-12 13:31   좋아요 0 | URL
저는 그분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어요.
이까짓 걸 깨닫는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이 필요했다니.
아, 그냥 같이 울기 좋은 파비아나님.

도넛공주 2009-07-1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 정말 글을 쓰셔야 하는데...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은 없지만 재능을 발휘 좀 해보셔요.
그리고 5년내 개념없이 무조건 편든다고 유치한 인간이란 욕을 그렇게 들어먹은 자신이,당신이 가신 지금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더군요..

네꼬 2009-07-13 13:35   좋아요 0 | URL
글은 지금 쓴 것도 글...;;

저는 도넛공주님 같은 분이 부러워요. 그런데 그런 걸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부러워하고 해야 한다니, 그런 건 정말 슬프고요.

2009-07-16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느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1941)



눈 쌓인 산속, 급히 제 집을 찾아 뛰어가던 토끼가 푹푹 눈구덩이에 빠지기도 하는 한겨울, '마을에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온다. 마을은 구수한 즐거움에 들떠 흥성흥성 하다. 뽀오얀 흰 김이 온마을에 가득하다.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봄과 여름과 가을을 지나 한 마을에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이것이 온다. 아버지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이것이 담겨 있다. 아마도 옛이야기의 옛이야기 속에서부터 온 듯, '곰의 잔등에 업혀서' 자란 큰 어머니와 재채기를 한번 하면 산너머 마을까지 들렸다는 호방한 큰 아버지가 여기에 함께 온다.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과 어울리는 이것. 산짐승과 전설과 대대로 함께 사는 이 억세고 동시에 순연한 마을 사람들과,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 마을을 온통 잔치 분위기로 만들어버리는 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 함박눈과 똑같은 색깔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

 

KBS에서 해주는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볼 기대에, 주말에 잔치국수를 해보았다. 재료를 듬뿍 넣은 덕에 국물은 썩 괜찮았는데 도무지 양념장이 맘에 들지 않았다. 엄마가 해준 국수는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일요일 오후에는 필요한 책이 있어서 도서관에 갔다가 (예상했던 대로) 찾으려던 책은 까맣게 잊고 엉뚱한 서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창 밖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당연한 순서로 이 시가 생각났다. 그제야 나는 내 국수가 실패한 것은 어쩌면 흥성흥성 들뜬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3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8-12-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훈훈한 풍경. 마치 임시 멈춤을 눌러놓고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고 싶어지는 풍경이에요. 책을 펼쳐보다가 문득 창 밖을 바라보는 네꼬님, 그리고 쏟아지는 함박눈. 빙그레 퍼지는 그 미소까지. 너무 근사한걸요!

네꼬 2008-12-08 23:07   좋아요 0 | URL
모든 게 다 국수 덕분이에요. 이 훈훈한 풍경. (그러고 보니 나는 또 먹는 얘길 썼구나.-_-) 그날 도서관에 있는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마노아님, 우리 다음에 만나면 국수 먹으러 가요. 후훗. 난 멸치다시마 국물이 너무 좋아.

:)

Mephistopheles 2008-12-08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국수....삼실 주변에 불고기집이 하나 있어요..그 집 냉면이 요즘 냉면값마냥 7천원이나 받아먹는데...얌체같이 주다 만것같은 면발이 아니라 아주 푸짐하게 줍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인가 아 갈등이....^^(사실 그집 만두국도 죽여준다는..)

네꼬 2008-12-10 12:02   좋아요 0 | URL
냉면요? 고기 먹고 냉면요? 제가 제일 좋아한다는, 그 고기 먹고 냉면요? ^^ 냉면도 좋지요. 어른들은 냉면을 겨울에도 먹는다던데 올겨울엔 좀 시도해볼까봐요. (앗 입에 침이..)

Mephistopheles 2008-12-10 12:28   좋아요 0 | URL
냉면은...겨울에 먹어야..제 맛~~~

네꼬 2008-12-10 13:17   좋아요 0 | URL
겨울 냉면, 먹어 본 다음에 보고하겠습니다!

순오기 2008-12-0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첫머리 읽으며 '백석이다!' 외쳤어요~
저도 이 시 분위기 너무 좋아요~~~ 흠흠^^
저는 예전에 누가 송정리 시장통에서 사골국물 같은 것에 만 국수를 사줘서 먹었거든요.
어제부터 사골 국물 먹으며 우리애들한테 그 얘기했더니 자기들도 먹고 싶대요.ㅋㅋ
아마도 수일내 달걀 황백지단 살살 얹은 곰탕국수(?) 처녀작이 나올 듯해요.^^

네꼬 2008-12-10 12:0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백석 좋아하시는군요. 첫머리를 보고 알아보실 만큼요.
저기 먼 데서 출발해 마을을 들뜨게 하고 부엌까지 성큼 차지하는 '국수' 이미지 참 좋지요. 그래서 그런가, 순오기님의 곰탕국수 처녀작도 벌써 모니터 밖으로 나와버렸어요. 하하.

웽스북스 2008-12-09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파배고파배고파요 네꼬님 미워요 ㅜㅜ

네꼬 2008-12-10 12:03   좋아요 0 | URL
나는 웬디양님 예쁜데 :)

무해한모리군 2008-12-0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음식보다 잔치국수는 엄마가 해주는 그 맛이 잘안나요.
배가 터지려고 할때까지 한솥은 먹을 수 있는데.
제가 한 건 뭔가 심심한 맛이 나요. ^^
네꼬님의 먹는 얘기 릴레이~

네꼬 2008-12-10 12: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잔치국수를 만드는 엄마들만의 비법이 있나봐요. 내가 보기엔 그냥 멸치랑 다시마만 넣는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닌가봐요.

먹는 얘기 릴레이를 하려고 그런 건 아닌데, 왜 저는 자꾸만 그렇게 될까요?

도넛공주 2008-12-0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맨 먹는 얘기구만요! 다이어트중이신가요?

네꼬 2008-12-10 12:05   좋아요 0 | URL
하하. 다이어트의 보상심리로 먹는 얘기를? 에이, 보셔서 아시잖아요. 저는 다이어트를 해내지 못하는 강단 없는 고양이라는 걸. ㅋㅋ

노이에자이트 2008-12-0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군요.정지용만큼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

네꼬 2008-12-10 13:09   좋아요 0 | URL
모르는 말이 많이 나와서 한번에 읽기는 어렵지만 자꾸 읽다보면 어쩐지 알 것도 같고(이것이 바로 독서백편의자현?) 좋아요. 알라딘에도 백석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10 13:37   좋아요 0 | URL
독서백편의자현이란 독서는 의자에 앉아서 백번 읽으라는 뜻이라던데요.

네꼬 2008-12-10 14:01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이 이런 농담을 하시다니... 확 인간적이세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1 14:30   좋아요 0 | URL
이런 농담 잘합니다.그래서 인기가 많지요.

네꼬 2008-12-23 00:21   좋아요 0 | URL
하하 노자님, 이 재미난 댓글에 답을 달 때를 놓쳤어요. 노자님의 저 머리 긁적 퍼스나콘과 함께 읽으니 더욱 실감(?)나는 댓글. ㅋㅋ 앞으로도 이런 유머 기대하겠어요!

치니 2008-12-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몇 줄 읽으면서, 아 백석이구나 싶었는데 정말 백석이라서, 왠지 기분이 좋아졌어요.
도서관 가면 저도 항상 그래요, 찾으려 했던 책을 잊고 다른 책들을 한없이 기웃거리고 있죠. 하지만 그게 싫지도 않고. 그래서 도서관에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 거 같아요.
또 그제처럼 눈이 펑펑 왔음 좋겠네요 ~

네꼬 2008-12-10 13:10   좋아요 0 | URL
딱 보고 백석 시인줄 알아버리다니 치니님 내공이.. @.@ 도서관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를 늘 헤매게 할까요. 맞아요, 치니님 말씀대로 그래서 도서관에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기쁜 마음으로 헤매기 위해서요. ^^

nada 2008-12-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아니었으면 근사한 다큐멘터리 놓칠 뻔했네요. 꼭 챙겨봐야지. 함박눈이 내리던 날. 저도 그 시간에 도서관에 있었는데 커다란 창문 밖으로 눈구경하면서 행복했어요. 네꼬님이 읽어주는 시, 참 맛있어요. 히.

네꼬 2008-12-10 13:12   좋아요 0 | URL
도서관 창문으로 보는 함박눈은 어딘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뭔가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 (이 무슨 소리?) '누들로드'는 8부작이래요. 지난 일요일에 본 게 첫회였는데, 인트로라 그런지 아직은 가닥이 잘 안 잡혔어요. (CG가 살짝 과하단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당분간 주말을 국수와 함께 여행다닐 생각을 하니 기분 좋아요. 다음엔 다른 맛 시를 읽어드리지. 싱긋.

무스탕 2008-12-0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누들로드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놓쳤어요.. ㅠ_ㅠ
울 엄니가 가끔 멸치국물내서 국수 삶아서 양념장만 끼얹어 먹는 초간단 국수를 해주시는데 참 입맛 깔끔하니 좋아요.

네꼬 2008-12-10 13:13   좋아요 0 | URL
울지 마시고 다시보기를... ㅋㅋ 위에도 썼지만 첫회는 그냥 머 그랬어요. 다음회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될 듯하니 울지 말고 그걸 보시어요. 무스탕님네 어머니도 역시 국수의 달인이셨던 것? 엄마들은 다 그런가? 킁.

mong 2008-12-0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들로드 음악을 윤상이 하고 있다지요
그래서 더 관심이 쏠랑-
(그래요그래요 저 국수 좋아해요~~)
겨울엔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서 책장이나 훌렁훌렁 넘기다가
시원한 국물 후룩 마시는게 최고인데 말이에요...
(집에 가고 싶다 ㅜ.ㅡ)

네꼬 2008-12-10 13: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음악감독이 윤상이더라고요. 프로그램 이름에 맞게 세계 각국의 전통음악을 들을 수 있더이다. (그게 전통음악인지 아닌지 사실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방 안에서 뒹굴면서 나쁜 자세로 책을 읽다가 기지개 쫘아아악 펴고 한 그릇 뚝딱 말아 마시는 국수. 츱. (나도 집에 가고 싶다)

2008-12-09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0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도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아가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

 

어제 오늘은 이상하게도 구름이 참 예뻤다.
언젠가 여행 중에 아주 예쁜 구름들을 사진 찍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디지털카메라가 없어서 필름에 담아두었다.

어쩐지 구름은 그렇게 간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은 예쁜 구름을 보고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이 시를 떠올려보았다.
「구름의 파수병」
『김수영 전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시는
사실은 그 의미를 내가 다 알지 못한다.
다만 어딘가에서 넋을 놓고 구름을 보며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가버리고 싶어 했을 시인이 생각나

애틋할 뿐.
오늘은 나도 그를 따라서 오랫동안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답이 
없다 






댓글(11)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구름
    from perfect stranger 2008-08-11 12:55 
    8월 7일 -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폭염으로 인해 원망스러웠던 적은 간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엄청난 기온상승은 에이콘 팡팡 돌아가는 사무실 문 밖으로만 나가도 숨이 턱턱 막힌다. 7년 전 플로리다의 날씨가 이랬었던 기억이 난다. 8월 8일   -아주 가끔 하늘에 그림이 그려진다. 램브란트, 모네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완벽한 명암과 빛의 대비, 단 두가지와 그에 파생되는 색채만으로도 지극히 아름답다. 오늘 - 비 온다는 기
 
 
2008-08-10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10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08-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쑥스러움. 알 것도 같아요.
우리 동네도 오늘 구름이 예뻤는데. 이런 시를 알고 봤으면 더 예뻤을 거 아니에요.
네꼬님은 좋은 시를 어쩜 그리 많이 아세요?

순오기 2008-08-11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도 이 시를 본 기억이 나서 열심히 뒤적여 봤어요. 내가 가진 '거대한 뿌리'를...그런데 33쪽에 나왔어요. 이 뿌듯함... ^^

mong 2008-08-1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름이 예뻐서 이런 이쁜 글을 쓸 줄 하는 네꼬님이
자랑스러워요

치니 2008-08-1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하늘, 혹은 구름을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죠.
그 마음이 이해는 가는데, 전 몇번 찍어보고 포기했어요.
내가 보는 거랑 사진에 찍힌 거랑 도저히 비교가 안되서요.
담아내지 못할 바에야 관두자 싶었죠.
네꼬님, 요새 살짝 우울해보여요, 더위도 물러가고 네꼬님 우울도(아닐지도 모르지만) 물러가길. ^-^

다락방 2008-08-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다 ㅠㅠ




도넛공주 2008-08-1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적으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자신의 주변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개인적으로는 없애버리고 싶습니다.진심으로.

2008-08-12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라니 2008-08-2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지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란 바로 시인 자신을 말하는 걸까요?
비록 시를 배반하는 반역의 삶이라 말 하지만 자신의 구름을 바라볼 수 있는
산정을 마음에 간직하고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또 아름다운 일인지..
부조리한 현실에서 이상향의 흔적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치열함이
느껴지는 시인 것 같아요. 좋은 시 마음에 담고 갑니다. ^_^



네꼬 2008-08-2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위에 구름이 둥둥.. 나를 따라다니면서 비를 뿌렸어요. 만화처럼, 내 머리 위로만 비가 오더라고요 며칠 동안....... 시원하고 좋지 뭐!
 

 

연록의 홑이불이 먼 들판에 깔린다

모든 고통이 다

병이 되는 건 아니다

창 아래 취해 쓰러진 그림자의

홀쭉한 속을 들여다본다

내장을 훑던 손들

돈과 섹스에 대한 망상까지 다

소화되고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

(불끈 껴안을 수) 없는 것,

그게 다 마음이다

나는 나을 것이고

이번 봄은,

아주 길(吉)하다

 

-이영광, <입춘대길>

 

 

 

 

 

-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아주아주 약해질 때마다,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무너졌을까. 나는 접착제 없이 만들어진 프라모델일까,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걸까. 또 그런 순간이 오는 걸까. 이유를 안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나는 냉장고 문 앞에, 신발장 앞에, 텔레비전 앞에 쪼그려 앉아 잠깐씩 울곤 했다. 아주 긴 새벽이 그때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유를 안다면 정말 좀 나았을까. 부디 이 독이 빠져나가기를, 이 고통이 상처가 아닌 것으로 내 몸에 남기를 기도하면서, 때로는 오래 울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나을 것이다, 참 길하다, 하고.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08-07-1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일일까.
무슨일인데 우리 네꼬님, 새벽 세시 반에 이런 글을 쓴걸까...




치니 2008-07-1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 살앙해요.

2008-07-1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7-1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 나을 거예요. 지금도 참 길해요. 난 잠든 네꼬님 옆에서 부채질을 해주고 싶어요...

2008-07-18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8-07-1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건강하신 네꼬님. 제 기운을 나눠드릴께요.
얼마전 따뜻한 볕을 많이 받고 와서 지금 펄펄 끓어요.
나눠드릴께요. 안아드릴께요..

도넛공주 2008-07-18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번 그러다 보면 저처럼 재미있는 인간이 됩니다.내 맘 알죠?

순오기 2008-07-1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니임~~~~~

L.SHIN 2008-07-1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 일일까. 왜 나는 제목을 '나는 강하다' 라고 읽었을까.

네꼬 2008-07-2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장밋빛이나 검은색만이 아닌 알록달록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있고, 좋은 사람들도 간혹 나쁜 짓을 하고 나쁜 사람들도 때로는 좋은 일을 한다. 우리는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고, 때로는 다시는 웃지 못할 것처럼 울거나,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마음껏 웃기도 한다. 우리는 행운을 얻기도 하고 불운을 얻기도 하며 불행한 가운데에 행운이 올 때도 있다. 이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하는사람은 그저 아느 체하는 사람일 뿐이다. 2곱하기 2는 5라고 우기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게 전부이다. 그 사람은 스스로를 독창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꾸밀 수도 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들은 독창적이지도 않고 독창적으로 들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진리는 진리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리로 남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는 다시는 웃지 못할 것처럼 울었다. 그래도 한 번도 운 적이 없는 것처럼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젠 괜찮다"고 했고 정말 괜찮았다. 거의 괜찮아졌다.

-에리히 캐스트너, 『내가 어렸을 때에』 중에서


그러니까 저, 괜찮아요. 으쓱.


순오기 2008-07-24 21:05   좋아요 0 | URL
네꼬님이 괜찮다니~~ 저도 괜찮아요. 불끈 힘을 내서 더위와 맞짱뜨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