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은 재미있는 책들.


사소한 것들의 과학 (마트 미오도닉, MID)


글쓰기는 내용 뿐 아니라 형식도 새로운 게 좋다는 걸 새삼 알게 해준 책. 과학책이지만 개인의 경험을 소설처럼 구성해 들려주고, 사적 공적 사진과 그림을 동원하며 필요하다면 영화 각본 형식도 불사한다. 물론 이런 '형식 파괴'를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 조사와 공부, 충분한 사색이 필요했겠지. 과학 '문외한'인 나로서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게 즐겁고, 과학책이 대세구나!(응?)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독서였다. 원제는 "STUFF MATTERS" 인데 (흥미를 끌려고 했겠지만) 한국어판 제목이 좀 아쉽다. (부제는 더 아쉽다...)



작가의 공간 (에릭 메이젤, 심프라이프)


작가의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을 연결한 서술이 재미있다. 이를테면 작업실 풍경이 어떠해야 하는지 +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같은 것. 글쓰는 일을 존중하라는 말도 좋다. 나는 집중력이 부족한데 -_-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알고 보니 (사 놓고 읽지 않은) "일상 예술화 전략"의 작가던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어른 노릇 아이 노릇 (고미 타로, 미래인)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의 에세이.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어른들이 그렇듯이 획일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지 마라, 감동을 강요하지 마라 등 (좋은 뜻에서) 고미 타로가 할 법한 말들 모아 놓았다. 그런데 '제도 교육'조차 잘 되지 않는 나라의 독자로서 읽기엔 일본이니까 그런 말을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교육을 불신하는 태도는 그렇다 치고 본인이 아기 그림책을 그렇게 재미있게 많이 그려 놓고(!!)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 건 또 뭔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왠지 생각이 좀 복잡해지는 책이다.



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이봄)


마스다 미리 만화책은 좋은 것도 별로인 것도 있었는데, 의외로 산문이 더 좋았다. (그림으로 말하는 작가니까 글은 그림보다 덜 좋겠지 하는 편견에 젖어 있던 나를 반성 =_= 그래 나나 잘 해야지..) 담담하고 솔직한 글이 이 책의 주제와도 잘 맞고, 반가운 책도 여러 권 다시 만났다. 어쩌면 홋카이도 바다를 옆에 두고 기차 안에서 읽었기 때문에 더 좋았는지도.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엘런 L. 워커, 푸른숲)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270쪽) 이 문장에 저자의 생각이 쏙 담겨 있다. 심리학자로서 자신이 아이를 갖이 않기로 결정하면서 갖게 된 생각과 여러 이유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나 역시 아이 없이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왜 안 갖냐"거나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날 때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을 이 책에서 거침없이 해서 좀 좋았다. 예를 들어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아이를 왜 낳으셨어요?"라거나 "아이를 안 낳으셨어야 해요."라고 대꾸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 어딘가 분했는데, 그런 사람이 나뿐이 아니었다. (물론 이 책 속 사람들도 실제로 그렇게 대꾸하지는 않는다.) 아이 없이 사는 성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이들 얘기도 공감이 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이 없이 사는 것이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결과라는 설명이 나를 안심시켰다.


덧붙여 적어 보자면. 아이 없이 사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 아이 낳은 이들을 비난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린이를 자주 만나는 나로서는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부러울 때도 많고, 내 인생이 다른 식으로 흘러갔다면 아이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 허탈할 때도 있다. (이런 말 하면 꼭 "지금이라도 가지세요" "마음 편히 가지면 생길 거예요." 이런 분들 있는데 저기 제발......)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아이를 키우는 분들 중에도 아이 없이 살았으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떠올려보는 분들,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러운 건 서로 부러워하고, 좋은 건 좋아하면서 각자 잘 살면 좋겠다.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니까.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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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6-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책도 좋을 것 같지만, 네꼬님의 글도 참 좋으네요.

네꼬 2016-06-22 11:32   좋아요 0 | URL
다양한 사연들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근데 뭐랄까 좀 미국식 상담 기록(응?). 페이퍼에는 못 썼지만, 번역이 아쉬워요. 여자는 ˝~해요˝ 남자는 ˝~합니다˝ 투로 옮겼는데, 영어는 그런 거 없잖아요. 이상함. 나는 왜 이걸 다락님한테 하소연하고 있나! (그리고 고맙습니다..)

치니 2016-06-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없이 살았으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떠올려보는 분들, 있지 않을까? -> 수도 없이 떠올려 볼 걸요. 제 경우에는 근데 떠올린다고 그게 또 아이 낳은 걸 후회해서는 아니고, 그냥 자연스레 떠올려 볼 때가 있어요. 만약...? 하면서 이런저런 공상을 하는 거죠.

저도 요새 과학 팟캐스트가 제일 재밌어요. 학교 다닐 때 이런 거 있었음 과학을 좋아하는 이과생이 되었을지도! 라고 할 정도로요. 저 책도 보관함에 담아뒀는데, 어서 읽어야겠네요. 흐.

네꼬 2016-06-22 16: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1 : 후회해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생각해볼 수 있죠! 저도 그래서 부럽고 허탈하고 그런 건데, 이런 얘기 하면 꼭 대화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ㅠㅠ 이렇게 알아주는 치니님이 좋아요. ^^

맞아요 2 : 저는 팟캐스트까지 듣진 않지만, 요즘은 과학이 설명해주는 명쾌한 부분들이 좋더라고요. 이런 걸 일찍 알았으면 (제가 이과생이 될 린 없고!) 세상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paviana 2016-06-2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선택을 지지해요. 너무 오래간만이지요? ㅎㅎ
아이 없는 삶도 아이 있는 삶도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거잖아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우리 살아요.

네꼬 2016-06-22 16:29   좋아요 0 | URL
꺅! 꺅! 꺅! (<-좀 방정맞은 원숭이 스타일)
너무 오래간만이에요 ㅠㅠ 나도 그렇지만 파비아나님도 너무해 ㅠㅠ
순간 순간 소중해요. 정말. 요즘 그런 생각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소중한 파비아나님. 꺅! 꺅!

코코죠 2016-06-2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안부를 전하고 묻고 싶은데 인터넷이 잘 안되는 곳에 있어요ㅠ 저는 구)오즈마에요. 기억해주시려는지. 여튼 또 끊기기 전에. 저는 딸이 하나 있는데 다들 하나 더 낳으래요. 하! 웃기지 않아요? 내 애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아이가 없든 하나든 일곱이든 누구나의 인생에나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고, 그 말을 적고 싶었어요. 그나저나 우리 네꼬님은(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쓰다듬쓰다듬) 왜 자꾸만 이뻐지고 멋져지고 막막 깊어지고 근사해지고 그르나옹? 질투나게시리. . .

네꼬 2016-06-23 12:03   좋아요 0 | URL
악 오즈마님! 왜 코코죠가 되었죠. 그리고 왜 인터넷 안 되는 데 계시죠. 어디 가셨죠. (질문 - 따지기 공세...) 아기 크는 거 이래저래 훔쳐보고 있어요. 예쁘고 동그랗고 활기찬 아기던데! 각자의 이유로 그렇게 사는 거니까 각자 잘 살면 좋겠어요. 그래야 같이도 잘 살지. 그쵸?

그리고 나는 못나졌고 늙었고 얄팍해졌습니다. (정색)

moonnight 2016-06-23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히 책들을 보관함에 넣고;;

아이 네꼬님 글 너무 좋잖아요ㅠㅠ;; 저는 일단 결혼도 안 해서 왜 안 하느냐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느냐 심지어는 너같은 이기적인 인간 어쩌구 하는 말도 듣는데, 정말 각자 선택한 길에서 각자 잘 살면 좋겠구만요. ㅠㅠ;

네꼬 2016-06-27 11:20   좋아요 0 | URL
각자 잘 살면 ˝좋겠구만요˝ 정말요 그렇겠구만요.

왜 왜 자꾸만 남의 삶에 그렇게 간섭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시간에 각자의 인생을 잘 닦으면 좋을 텐데. 간섭자들의 마음은 어디가 그리 허약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