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꼬 씨 독일 여행기, 서막.

그의 걸음걸이는 오랫동안 걸어온 사람의 것, 눈에 띄지 않았다. 사뿐사뿐과 성큼성큼의 중간 어디쯤에 적당한 말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걸어서 오래된 도시와 번화한 백화점과 크리스마스 마켓을 안내했고 라인강을 건넜다. 그렇게 걸어서 나에게 프랑스를 보여주었다. 단지 내가 그의 아내가 초대한 손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독일로 초대한 분의 남편인 그는 독일인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치고는 한국어를 못한다는 것이 아내의 불만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매우 노력하고 있었다. "너는 어제 마신 맥주 마실 수 있어요" (어제 마신 맥주 아직 있어요, 라는 뜻인 듯)라는 귀엽고 어색한 한국어를 쓰긴 했지만, 한국인인 아내와 손님을 위해 그는 최선을 다해 한국어로 말했다. 그리고 아내와 손님이 오랫동안 한국어로 대화를 해도 참을성 있게 경청하였다. 무슨 내용인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겠지만.
한 손엔 자신과 아내와 손님이 크리스마스에 먹을 빵을 들고, 한 손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에 교환하기로 한 선물을 사들고, 시내 바깥에 세워둔 차가 있는 곳으로 그는 걸어갔다. 앞지르지도 주저하지도 않는 걸음으로.

그의 차는 17년 된 폭스바겐. 말로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포르셰를 사달라고 농담했지만, 보기엔 그다지 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계기판도 핸들도 구식인 옛날 차였지만 관리를 잘해 정기검사에서 1등급을 받았다나.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차를 운전하는 것은 라디오를 조립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나는 무척 좋았다. 라디오를 타고 달려본 고양이가 또 있을까?

그와 하는 다이아몬드 게임에서 나는 번번이 졌다. 아내가 어릴 때부터 갖고 놀았던 장난감에 그는 진지하게 열중했다. 그는 그답게 게임을 했다. 상대의 길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 차근차근 나아가기. 3:1로 나의 패. 그나마 한 번 이긴 것은 그의 훈수 덕분.

『나니아 연대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너는 참 잘 교육 받았구나. 사물의 좋은 점을 볼 줄 안다니." 그를 지켜본 열흘 내내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교육 받은 것일까? 야단스럽지 않게 집안을 돌보고 조용히 말하고 가끔 장난을 치고 손님인 나를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봐준 그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소년처럼 정중하고 노인처럼 사려깊어요. 고마웠어요. 아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는 (따로 준비한 게 분명한) 한국어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서 마지막 인사할 때 그는 다시 말했다. 우리집엔 항상 당신을 위한 방이 하나 있어. 그말에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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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씨가 관광을 원하면 관광을, 휴식을 원하면 의자와 담요를 준비해줄게"라고 했던 "그분"의 남편 B씨께, 여행 자랑에 앞서 감사를 표하는 페이퍼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B씨, 한국어 공부에 박차를 가해 언젠간 이 페이퍼를 읽어주길 바라고 있어요. 중년을 상상할 수 없는, 소년과 노년만 그려지는 B씨가 그립습니다. "그분"께도 이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를.
자자, 전 이제 자랑 시작해버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