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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시간 - 바다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순간들, 바다가 결정지을 우리의 미래
자크 아탈리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평점 :
"인류에게 필요불가결한 발견과 혁신이 일어난 곳 또한 바다였다. 역동적인 문명일수록 더욱 열렬히 바다를 대면했다. 주요 도시를 해안에 건설한 나라만이 강대국이 되었다." (206)
예나 지금이나 바다의 중요성이 컸나보다.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는 세계 역사의 변곡점에 '바다'를 누가 지배했느냐에 달려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대제국 로마가 그러했고 대영제국이 있기까지는 프랑스와의 해전에서의 승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영국이 패권을 잡기 전에는 잠깐 '네덜란드'가 유럽을 호령하던 때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패권에도 바다의 지배권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바다를 장악할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1000년 이상 유럽을 압도한 문명을 지녔던 중국도 명나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다를 자유자재로 이용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국이 침체되었을 때는 무엇보다 해군이 없었고, 몇 세기 동안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해군력이 강했던 시기 신라, 고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왕성한 무역이 이루어졌던 반면에 구한말 쇄국정책을 국가의 기조로 삼았을 때는 제국 열강의 횡포에 끌려 다녀야만 했다. <바다의 시간>을 통해 바다를 초점으로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바다가 없고, 배가 없고, 이베리아 모로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캅카스이베리아 크림반도 스페인 페르시아만의 항구들 사이에서 상품과 함께 메시지를 전달하던 상인들이 없었다면, 유대민족은 예루살렘의 제2성전이 파괴된 뒤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중해가 유대교가 계속 유지되는 데 크게 기여했음에 틀림없다"(78)
유대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전파에도 바다(지중해)가 큰 영향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쿠빌라이 칸의 죽음 이후 중국에서 완전히 쇠락해버린 몽골은 크림반도 내 제노바의 교역 거점인 카파를 공격했다가 패배했다. 하지만 이때 흑사병 바이러스가 몽골인들을 통해 제노바 선박들에 전해 졌고, 이 선박들이 본국으로 돌아오자 지중해 모든 항구에 전염병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90)
바다는 전염병을 실어나르는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프랑스는 이 재앙과도 같은 조약에 의해 핵심적인 것들을 잃었다. 특히 바다를 지배할 수 있었던 기회를 또다시 놓치고 말았다"(120)
수에즈 운하의 첫 삽을 뜬 나라는 프랑스였다. 유럽과 아시아를 관통하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경제적 이익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간섭에 이어 미국의 개입으로 수에즈 운하의 지배권을 확보할 수 없었다. 파나마 운하 또한 그렇다. 프랑스 사업가가 최초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미국의 정치적 개입으로 파나마라는 신생국을 탄생시켰고 미국의 지배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 미국이 처음으로 바다를 장악한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바다를 향한 지배력이 생각만큼 이루어지지 않은 예다. 반면 영국은 나폴레옹 제국의 전리품을 나누었을 때 유럽 대륙의 어떠한 영토도 요구하지 않았다. 영국은 계속해서 바다를 지배하기를 원했다.
우리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전쟁이었던 러일전쟁엥서 일본이 러시아 함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작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크 아탈리는 분석한다. 발트해에서 출발한 러시아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차단함으로써 일본열도 근해의 전장에 합류하는 것을 방해했다. 러시아 함대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전장에 합류하는데에는 무려 8개월이나 걸렸다. 전쟁이 끝난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기에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일본의 거침없는 조선에 대한 야욕은 러일전쟁 직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영국과의 백년전쟁은 사실 바다전쟁이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독립전쟁 또한 그 중간에 개입한 프랑스와 영국과의 바다전쟁이었다. 특히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남부연합으로 들어오던 1차 필수품의 해상 운송로가 모두 차단되었고 곧이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은행들이 파산되고 말에게 먹이는 데 꼭 필요한 소금마저 구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 육상 전투에서도 남부연합은 패하고 말았다. 프랑스는 최종적으로 승리한 전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놓쳐기에 기대 이하의 성과에 머무르고 말았다.
"잘 알려진 이야기와 반대로, 시간의 여명 이래 거의 모든 전쟁이 그러했듯이 프랑스 대혁명 역시 바다에서 펼쳐졌다" (128)
자크 아탈리는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는 <바다의 시간>을 통해 자국 프랑스가 얼마나 바다를 얻기 위해 노력했는지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는 바다의 활용 가치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 국가에 영향력 아래 놓일 것으로 예측한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전쟁의 중심에는 역시 바다를 점유하기 위한 셈법이 농후에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상의 전쟁은 바다를 통한 물자 공급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세계 각국은 바다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포위, 침공, 상륙 지연, 봉쇄, 무역, 해저 케이블, 해저 자원 전유 등 분쟁적 요소가 바다와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끝으로, 바다를 전 인류의 공공재산으로 오랫동안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동식물의 어종 감소, 기온 상승으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 부족한 식수를 대체하기 위한 바닷물을 활용한 담수 개발,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한 해양 광물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 제한 등 인류의 대량절멸을 막기 위한 국제 사회의 협력이 긴급히 필요함을 강조한다.
<바다의 시간>은 언제든지 인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바다의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소중하게 바다를 지켜내야 하는 일이 인간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