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는 대체로 책을 읽는다. 책이란 본래 고요한 물성을 가진 사물인지, 읽다 말고 잠깐 눈을 감기만 해도 침묵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어떤 책들은 무척 생생한 생명을 지니고 있는데, 그 생생한 생명을 수혈받다 말고 문득 눈을 감고 침묵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사랑한다. 그렇게 생생한 경험을 선물해준 책들이다.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 세자르 바예호
날아라 버스야 / 정현종

이 시인에 대해 쓴 정현종 시인의 산문을 읽은 일이 있다. ‘숨막히는 진정성의 시들’이라고 제목을 붙이셨다. 고혜선 선생님의 번역도 유려하지만, 그 산문이 실린 책 <날아라 버스야>(정현종, 시와시학사)에 수록되어 있는 정현종 선생님의 번역에는 사무치는 데가 있다. 두 번역을 번갈아 읽어도 좋은 것은 물론 세자르 바예호의 시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작품을 대체로 좋아하지만, 이 책에는 각별한 쓸쓸함, 서늘하고 바싹 마른 적막이 배어 있다는 사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작은 것들의 신 / 아룬다티 로이

생명으로 가득 찬, 정교한 보석처럼 반짝이는 묘사들을 읽고 있자면, 작가가 5년 동안 아주 조금씩 이 소설(그녀의 첫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을 써나갔다는 사실이 실감된다.




검은 책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과 <눈>과 <새로운 인생>을 읽은 뒤, 아마 그 작품들만큼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펼쳤던 책이다. 열거한 위의 세 책들보다 먼저 씌어진, 그래서인지 어딘가 더 깨끗한 데가 있는, 이제는 파묵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이다.


아프리카인 / 르 클레지오

매우 짧은, 응축된 애잔함과 아름다움과 진실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뒷표지에 실린 출판사의 광고문구 중에 ‘애가(哀歌)’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표현에 공감한다. 도판으로 실린, 옛날의 아프리카를 담은 흑백사진들도 좋다.




추천인 : 한강 (소설가)

1970년 이른 겨울 광주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이 되던 겨울, 서울 수유리로 옮겨와 성장기를 보냈다.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0) 『채식주의자』(2007) 『바람이 분다, 가라』(2010) 『희랍어 시간』(2011), 창작집 『여수의 사랑』(1995) 『내 여자의 열매』(2000)를 출간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 받았고,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재직중이다.  



한강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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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0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랍어 시간 너무 아름다워요 @@

명사추천도서 2011-12-19 18:3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지요 :)

이지은 2013-12-27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우 한강님과 나의 좋아함이 비슷하다니!!! 저도 보르헤스의 셰익스피어의 기억이, 오르한 파묵의 검은책이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