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들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잠깐 누굴 좀 만나고 머리가 부시시 해보여서 미용실에나 가야겠다 했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여타의 다른 잡지들을 권하기에 쓸만해 보이는 게 별로 눈에 안 띄어 (난 도대체 패션잡지는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쩝) 이 책을 보기 시작했다. 머리 하는 내내 눈을 못 떼고 정신없이 읽었다. 간간히 남들 시선 의식해서 입을 가리며 웃어대니까 헤어디자이너(요즘 미용사라고 하면 혼난다..) 언니가 그런다. "그렇게 재밌으세요? 굉장히 열심히 읽으시네요. 뭐에요?" 그런다. 자신있게 대답해주었다. "네! 이 책 꼭 읽어보세요!"

요즘 읽은 책 중에 가장 유쾌한 책이다. 아지즈 네신이라는 작가. 촌철살인의 글솜씨가 사람을 매혹시키고 터키라는 나라나 우리나라나 어쩌면 수없이 많은 나라들에서의 고장난 시스템을 통렬하게 묘사한 내용이 또한 읽는 이로 하여금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주인공 야샤르는 '살아 있으나 죽었다고 하는' 사람이다. 주민등록이 잘못 되어 주민등록증을 발급 못 받아 학교도 못 가고 일자리도 못 찾고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는 인생이다. 그넘의 주민등록증 하나 받아서 사람 구실 해보겠다고 군대도 가고 국회의원 옮겨다 나르는 일도 하고 별의별 수모를 다 겪지만 결국은 감옥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그 갑갑하고 힘든 여정을 야샤르는 감옥 동료들에게 밤마다 너무나 재미있게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써 인기를 끌게 된다. 야샤르라는 주인공이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거다. 힘든 일 어려운 일 당했지만, 그걸 해학으로 풀어내는 재주가 있어서라고.

"정부기관? 공공기관이라고? 그래, 그럼 공공기관이 하는 일이 뭐요? 학교에 입학하려고 했더니 '넌 죽었어' 라고 하고, 군대에 끌고 갈 때는 '넌 살아있어' 라고 하더니, 또 유산을 상속받으려고 할 때는 '넌 죽었어' 라고 하고, 세금을 거두어 갈 때는 다시 또 '넌 살아있어' 라고 하는, 도대체 씨도 안 먹히는 이야기들을 해대는 공공기관이라는 곳은 뭘 하는 곳이냐고!"

야샤르의 이 말에서 대부분이 공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할아버지에게 없는 아이들이 버젓이 호적에 올라있어 이혼 지경까지 몰린다거나 일흔이 넘은 할머니에게 징집 기피자라는 누명을 씌워 이 기관 저 기관으로 옮겨 다니게 하는 일, 야샤르처럼 세금 낼 때는 절차가 간편하더니 유산 좀 받으려고 하니까 도대체가 너무 복잡해서 보통 사람은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인 것 등등 우리가 실제 이렇게 당하진 않아도 비슷한 억울함들이 안에서 솟구치는 게 느껴진다. 특히나 요즘처럼 부동산값이 하늘을 치닫고 있는 즈음엔 더더군다나 이런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저 그렇게 수다스러운 소설만으로 그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즐겁게 하고 그래서 유쾌한 기분을 주지만,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를 씁쓸함이나 울컥함이 남는 그런 소설이다. 난 읽으면서 내내 노신의 '아큐정전'을 떠올렸다. 물론, 동일한 내용도 아니고 분위기도 많이 틀리지만, 시스템이나 시대 상황에 희생되는 개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무조건 읽어볼 것을 권한다. 들기만 하면 반나절도 안 되어 단숨에 읽을만큼 재미있는 책이며, 너무나 적절한 표현과 유머에 즐거워질만한 책일 뿐 아니라, 덮고 나면 바로 공허함이 밀려오는 그런 류의 그저 웃기기만 한 책이 아니라 머릿 속이 꽉 채워질만큼 어떤 느낌까지 안겨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적극 추천이다. 아지즈 네신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렬하게 든다, 지금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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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1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놀자 2006-11-1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볼게요~~~

비연 2006-11-1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그렇죠? 그렇죠? ^^
놀자님) 꼬옥 읽어보세요...꼬옥! 근데...바뀌신 모습이...^^;;;

비로그인 2006-12-09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리뷰 역시 쾌활하니 좋네요. 책 자체가 워낙 웃음꽃 피울만한 필체를 자랑하니 ^^

비연 2006-12-09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콸츠님) 이 책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슬며시 나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