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올해의 송년회 1탄을 열었다. 내가 금주를 두 달정도 했는데 - 이건 평생 없던 일이었다 - 어제는 반가운 마음에 이제 봉인을 풀자 라는 마음으로 필스너 맥주 2잔을 벌컥 해버렸다. 역시나 술이란 안 먹다가 먹으면 몸이 반응을 해서.. 속이 좀 불편하다. 그래도 자리가 좋았던 지라 맥주는 먹었어야 했다. 다들 많이 웃고 많이 놀라고 많이 얘기하고...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심정이었다. 모임이란 이래야 하는 거지. 그런 거다.

 

심지어 어제는 눈도 왔고... 나는 올해 처음 본 눈이니까 이게 나의 첫눈이고. 다른 곳에는 마구 쌓였다고 하던데, 서울에는 나풀나풀 날리다가 그쳐서.. 첫눈이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첫눈에 대한 몇 안되는 기억들을 떠올리며 귀가. 생각해보니 첫눈. 하면 생각나는 추억들이 나는 크게 많지 않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몇 개.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기억 몇 개.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정말 싫었었는데, 그 해 12월 12일인가 눈이 왔다. 창문 밖을 내다보며 첫눈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고. 이게 누군가의 이야기로 덮어씌운 기억인지는 잘 모르겠고.. 어쩄든 첫눈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선생님의 첫눈이다. 는 썩 유쾌한 추억은 아님을 밝혀 둔다. 왜 싫었느냐. 잘 때렸고 (남녀 구분없이, 빰따귀 날리기) 런닝셔츠 바람으로 수업을 했고, 공부 못하는 아이는 사람 취급을 안 했고 (1년 내내 이름을 못 외웠다) 나는 잘났는데 너네는 왜 이모양이냐 늘 이 기조였고... 기분에 따라 그날그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느냐 화해분위기를 조성하느냐가 결정되어서 아침 조회 시간에 눈치를 보게 만들었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내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절대 되지 말아야 할 타입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렇고.

 

좋았던 기억은.. 흠. 묘하게 그냥 동작이 생각난다. 첫눈 오던 날 종로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극장 앞에 서 있던 그가 초록색 코트 위에 떨어지는 눈발을 장갑낀 손으로 살짝 털던 모습.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다가가는 내 심장소리가 귀에까지 전해졌었다. 쿵쾅쿵쾅. 그리고는 머리 위에 떨어진 눈발도 살짝 털고... 그날 그가 입었던 초록색 코트는, 늘 잊혀지지 않는다. 덩치가 큰 사람이었는데 (180이 넘는 키에 90키로 이상의 몸무게?) 그 코트를 입은 모습이 너무 귀여웠었다. 원래 사랑이란 걸 하면 상대가 고릴라에 더 가까운 모양새라도 귀여움이 느껴지는 법.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다고 그 사람이 고릴라같았다는 건 아니다. 내눈에는 이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멋진 사람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 때 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걸 깨기 싫어서 절대 다시 만나긴 싫고. 허허.

 

시간이 너무나 빨라서 벌써 11월하고도 24일이고. 오늘 나는 업무 일찍 파하고 1박 2일 워크샵을 다녀올 계획이다. 사실 회의를 빙자한 워크샵인데 예쁘다는 화담숲에 가는 거라 조금 기대된다. 카메라를 가져왔어야 하나 살짝 후회도 되는 시점이고. 근데 왜 1박 2일인데도 짐이 이리 많은 건지. 아침에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더 들고 나올 손이 없었다. 나 이상? ㅜ 이제 송년회가 시작되어 - 오늘 워크샵도 일종의 송년회려나 - 매주 2~3번씩은 늦을텐데, 매년 이런 의식과 같은 행동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바빠서 소원했다고 해도, 연말만큼은 자 이제까지 건강하게 잘 버텨오신 것, 장하십니다, 내년에도 잘 버텨봅시다 우리.. 라는 심정으로 자리를 함께 하는 건, 괜챦은 일이 아닐까 싶다. (송년회의 변명 ㅎ)

 

요즘 정말 책을 읽지않고 있어서 마음에 부담이 있는데... 지금 현재 쥐고 있는 책은 두 권이다.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정신이라는 것들 중의 많은 것들이 예전에 이미 나왔던 아이디어에 조각 하나 얹어져 다시금 나온 경우가 많다 라는 주제. 처음 알았지만, 전기 자동차가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 이미 나왔었고 곧 유행할 거라고 했다가 전기 배터리의 성능이 좋지 않아 기름 쓰는 자동차로 대체되었다는 것은 놀라움의 극치다. 이제 현대에 와서 테슬라가 전기 자동차를 성공하게 된 건 전기 배터리의 성능이 월등해져서 운행이 가능해진 덕분이라는 것도 놀랍고 재미있고. 다른 이야기들도 꽤 재미있어서 술술 넘어간다. 하드커버라는 게 에러인데..ㅜ 저녁에 이거 읽다가 얼굴 망가질 것 같아 들고 다니는데 무게가... 무게가... 내 어꺠.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으로  (그러니까 우리나라 작가 한강이 받아 유명해진 그 상)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아직도 남아 있는 가상의 도시 디킨스시에서 주인공 Me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내용인데 말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소리여 하다가 조금 읽어나가니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물론 여전히 두서가 없어보이고 속어와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난무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읽어보세요. 하고 권해줄 수 있을 정도의 재미라고나 할까.

 

 

 

 

 

 

 

 

 

 

 

근데, 근데, 두 책다 재미있는데, 왜 진도는 안 나가는 걸까. 요즘 독서에 좀 흥미가 떨어진 걸까. 11월까지 이 두 권은 다 읽고 싶은데 말이다. 현재 스코어로는 작년보다 책을 더 '안' 읽은 상태라, 위기감 엄습이다. 사기는 더 많이 사는데 (아 ... 책장이 또 휘어지려고 한다) 읽기는 더 적게 읽다니. 이 왠 불균형인가 말이다. 오늘 화담숲 가서 전경 보며 책이나... 읽어야지. 할일이 많아 노트북을 싸들고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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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1-24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부터 책을 한 번만 더 살까 계속 갈등하고 있어요. 식판 하늘색 꽃으로 받았으니 분홍색 식판도 받아야 셋트가 되지 않을까 싶고...

워크샵 잘 다녀오세요, 비연님. 예쁜 풍경도 많이 보시고요!

비연 2017-11-24 12:24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그쵸? 식판이 넘 탐나서 아무래도 내년에 한번 주문할 걸 당겨 쓰더라도 올해 사야겠죠? ㅜㅜ
화담숲 예쁜 풍경... 사진으로 올릴게요. 그나저나 오늘 우리 조직개편. 뒤숭숭..ㅜ

AgalmA 2017-11-29 20:52   좋아요 1 | URL
어딜 가나 굿즈 고민 상담 중이신ㅋ

다락방 2017-11-29 21:26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7-11-29 23: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