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고, 읽고 좋았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면 좀 과장 보태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외면하고 있었다. 다작도 다작도. 도대체 이 작가는 주 1회 쓰는 거임? 이제까지 읽은 거 대부분 중고서점에 내놓으며 든 생각이었다. 많이 쓰는 게 흠은 아니지만, 그렇다보니 범작도 많고 서점에 쭈욱 늘어져 있는 그 수많은 책들을 보면 어째 품위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그냥 나의 개인적인 성향일 뿐이다. 양이 질을 담보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런.
그렇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유명한 데는 그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다.. 라고 생각한다. 그 중엔 분명 괜찮은 작품, 보관해두어도 괜찮은 이야기가 있다. 내 책장에도 밖에 내보내지 않은 그의 책이 몇 권은 꽂혀있다. 어디 보자...
이 정도? ... 그래도 몇 권 되네. 그밖에 가가형사 시리즈도 나쁘지 않았고 갈릴레오 시리즈도 괜찮았지만, 일단 대부분 바이바이. 소장까지는 안하겠어 라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소장하게 될 것 같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교류 이런 내용이 많기는 하다. 내가 열광하며 보고 있는 <시그널>도 그렇고. 그건 어쩌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듯 하다. 드라마와 영화는 항상 한발 앞서 가니까. 그래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다 어느 공간에서인가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어쪔 그 사이의 연결끈을 찾으면 소통이라는 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가슴 떨리기도 하지만 솔직히 두려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이 책은, 그런 이야기이다. 이름이 나야미(悩み, 고민)과 비슷하다 하여 아이들이 장난삼아 고민상담이라는 걸 하게 되었고 거기에 재치있는 답을 해주던 나미야 유지 할아버지는, 어느새 진지한 고민에도 진지한 답변을 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해주게 되었다. 그렇게 나미야 유지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현재와 그 먼먼 미래가 날실과 씨실처럼 얼기설기 엮여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편지로 상담을 하고 답을 받던 사람들의 生이 어딘가에서 접점을 가져 영향을 주고, 결국 상담을 주고받음으로써 많은 인생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방법을 찾아나가더라는 이야기가, 참 훈훈하게 펼쳐져 있다. 잘되었다 못되었다를 떠나서...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더라.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p158-159)
이 글을 읽는데 마음이 뭉클해져 왔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그래서 평범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정성어린 답장이 또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뭔가를 남기는 모습들이 좋았다.
제일 마지막 편지 내용도 좋았다. 하지만 그건 읽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마지막에 가서야 봐야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일테니 여기서는 옮기지 않겠다. 책을 덮으면서,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나의 고민을 던지고 답장을 받을 수 있는 곳. 내게 답이 이미 내려져 확신을 얻고자 하는 행위이든, 정말 답을 몰랐어서 물어보는 행위이든 (사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대부분은... 자기가 자기의 답을 안다...) 그렇게 내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면 맹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사람들이 즐비한 이 정글같은 세상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