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 계속 바빴다... 다들 바쁜데 나만 바쁘다 바쁘다 하는 것 같아 좀 무안하네 다시금. 아뭏든, 바빠서 책 읽을 짬도 거의 못 내고 늦게 집에 오면 늘어져 일드 보다가 자기 일쑤였다.
오늘은 토요일.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간만에 중국어 하러 학원에도 갔다. 이넘의 중국어. 근 한 달만에 갔더니 (그동안 휴일근무가...쭈욱... 아. 원주여행도 어렵게 한번 갔구나) 뭐가 뭔지. 도대체가 말로 안나오니 말이다. 3시간 내내 머리 속의 공허함을 절렬히 느끼며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기 힘들었다 이거지.
오는 길, 습관처럼 교보문고에 들렀고 또 습관처럼 책 한권을 사들고 나왔다. 꼭 한권씩만 산다. 왜. 무거우니까. 나머진 인터넷 주문한다고 정리해서 나온다.
이 책을 샀다. 마츠모토 세이초는... 좋았다 나빴다 하는 작가이다. 사실 좋은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면 되곘지만. 그래도 가끔 읽으면서 너무 묘사가 리얼해서, 혹은 남녀간의 끈적끈적한 관계들이 많이 나와서 좀 버겁다 느껴질 때도 없지 않다. 그래도, 오래전 작가인데 지금과 갭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글을 쓰니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지지부진하고 졸렬한 추리를 늘어놓은 작가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추리라기보다는 사회를, 사람을, 본성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읽다보면, 아. 아. 탄성 연발할 때가 있다.
이 책은 살까 말까 또 망설였었다. (이런 결정장애 비연 같으니..ㅜ) 내용을 잠시 보아하니 어두워서 안 그래도 마음 심란한 요즘, 이걸 읽으면 내 상태가 더 나빠지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감 때문에 말이다. 그러다가 결국 오늘 오프라인에서 사고야 만 거다. 일단 상권만. 읽어보고 마음 어지러우면 하권은 스킵할 수도 있다.
비도 오고 토요일이고 간만에 여유한번 부리려고 스타벅스로 향했었다. 좀 조용하고 고즈넉한 카페를 찾고 싶은데, 찾기만 하면 단골 삼기도 전에 없어지니. 결국 별다방 콩다방 천지가 되고 말았다는 슬픔 극치의 현실. 어쨌든 스벅카드에 충전한 돈도 있고 해서 일단 갔고.. 시끄러웠고.. 그래도 오랜만의 여유라 좀 느긋하게 앉아서 관대한 마음으로 책 몇줄 읽을 정도는 되었다.
도야는 돈 없는 여자한테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경제력 없는 여자는 그에게 벌레처럼 여겨졌다. - p14
벌레라니. 벌레라 벌레라. 이런 남자들이 있겠지. 도처에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하긴 여자도 돈 없는 남자한테는 매력을 못 느끼는 부류가 있기도 하니까. 뭐라 할 건 못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도야는 여자가 생길 때마다 집에 데리고 가서 자랑스럽게 수집품을 보여주곤 했다. 그럴 때 펼치는 도야의 연출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차를 대접하고 나면 마치 박식한 박물관 직원처럼 진열대에 늘어서 있는 수집품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여자들은 누구나 도야의 고상한 취향과 깊은 지식에 현혹되었다. 진열된 도자기의 표찰에는 일부러 영문명까지 넣었다. - p40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쉽게 끌릴 때 특히 여자들이 남자를 대할 때 현혹되는 부분들을 정확히 짚어주는 단락 같다. 지적이고 고상하고... 게다가 영문! 피식. 웃음이 오고야 말았다.
다쓰코는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게 힘든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가짜 독약의 효과를 믿고 있었다. 도야는 지금 그녀가 말한 증상들로 봐서는 임종이 가까워졌다고 판단했지만, 아직 그녀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평생 죄책감을 떠안기기 위해서는 끝까지 '독약'의 효과를 믿게 해야 했다. 그래야만 그녀를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고, 평생 도야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 p77
나쁜 놈이 계속 나쁜 놈일 수 있는 것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도야라는 이놈. 사람을 자신의 발밑에 두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약점을 잡고 휘둘르는... 언제든지 빠질 구멍은 만들어 놓고 말이다. 뿌드득. 악인이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때 정말 지독한 나쁜놈이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
... 내용 전개상으로 도야가 한방 얻어맞을 것 같기는 한데. 꽤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흠? 이럴 거 같으면 하권도 사오는 건데.. 라는 약간의 후회가 엄습. 내일 나가서 마저 집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래도 토요일에, 유유자적 책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