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사에서 세미나를 주관해야 했다. 팀원들이 하는 과제 중에서 급히 BM 할 필요가 있는 건이 생겼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 섭외를 한 것이었고. 어제까지 잘 통화가 되었고 차량도 안 가져오고 노트북도 들고온다 하고 뭐 그닥 신경쓸 게 없어서 방문신청만 해둔 상태였다.

 

오전 10시반이 시작. 팀 사람들 회의실에 잔뜩 모이기 시작한 게 10시 15분 정도부터. 강사로부터 연락이 없다. 전화.. 안 받는다. 또 전화.. 안 받는다... 연속 4회 전화.. 안 받는다. 아 불안. 이거 왠지 조짐이 좋지 않아. 왜 연락이 안되지? 5번째 전화를 했을 때 통화가 간신히 되었다. 그런데 어쩐지 좀 얼이 나간 음성. 차를 가져와서 좀 늦는단다. 엥? 차를 가져오면 미리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게 뭔 말? 노트북도 없단다. 으윽. 그럼 언제 오냐 언제 오냐... 그 이후 30분간 계속 전화... 점점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고 머릿 속에선 온갖 욕들이 떠올려지기 시작했다.

 

10시반에 시작인데... 11시 도착. 1층에서 무려 30분을 기다리면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결국 도착. 난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고 이것저것 따져 물은 후에 모시고(?) 올라갔다. 가서 또... 파일 받고 시스템 설치하고... 에휴. 겨우 시작. 시작하니까 조금 안심이 되어 목소리며 표정이 좀 풀어졌던 것 같다. 그 전엔 정말... 마음 같아선 다 때려치고 싶었다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시간이 그래도 스무스하게 풀려나갔다. 강의를 많이 해본 듯해서 차분하게 할 말만 하되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하는 스킬이 있었다. 물론 내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조금씩 안심이 되고..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 좀 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내용까지 엉망이었으면 얼마나 욕을 먹었겠는가..ㅜㅜ

 

끝나고... 등록 안된 일들을 부랴부랴 처리한 후 점심을 함께 하러 갔다. 늦을 때는 점심도 안 사주고 싶었지만... 2시간 가까이 열심히 강의한 모습을 보니 그럴 수도 없고 해서 간단히 먹으러 간 것. 그러면서 얘길 하는데, 자기 둘째 아이가 수술이었단다. 헉. 아니 수술인데 왜 강의를 잡으셨어요? 하도 바빠서 수술일을 깜빡하고는 오늘 강의하려고 어제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새벽에 부인이 깨우더랜다. 왜? 그랬더니... 오늘 수술이쟎아... 헐... 그래서 차를 가져오게 되었고 노트북을 챙기지 못 했고 시간에 늦었던 거다. 갑자기 마음이 화악... 풀리는 느낌...

 

그래. 사정이 있었던 거구나. 나는 왜 이리 사람이 강팍할까. 뭔가 사정이 있을거라고 헤아려 줬어야 했는데 그저 펄쩍펄쩍 뛰고 욕하고 난리치고 성질 부리고 그랬구나. 문득 부끄러워졌더랬다. 이넘의 조급함, 속좁음, 앞뒤 안가림.. 이런 거 참 안 고쳐지는 듯. 예전에도 그럤는데 지금도 그렇다니.

 

사람의 사정을 살피는 아량과 덕이 내겐 필요하다는 걸 느낀 이벤트였다. 초조했고 화났고 분했고 짜증났고 그래서 수명이 주는 기분이었지만... 그럴 것까진 없었다 라는 생각도 들고.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은 지식이나 냉철함이 아니라 지혜와 배려다.. 그리고 德이고. 올해는 성질을 좀 다스려서 이렇게 될 수 있도록 한번 노력해보자. 노력해서 안 될 일이 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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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4-01-1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태그보고 한참 웃습니다. ㅎㅎ 기분 좋은 점심시간임다.

비연 2014-01-17 13:0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숲노래 2014-01-1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서로 사정이 있으니
핑계도 생길 테지만,
이야기도 생기고
웃음과 눈물도 생기며
도란도란 주고받을 사랑도 생기리라 느껴요.

그나저나, BM은 무언가요?
머리를 굴려도 잘 모르겠군요 @.@

비연 2014-01-18 17:24   좋아요 0 | URL
^^ BM..은 benchmarking의 약자에요. 회사에서 그냥 쓰는 말이라 무심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