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병원 순례가 시작되었다.
10월에 좀 무리를 했었나보다. 허리가 아파서 계속 골골거렸는데 며칠 전부터는 걸어다니는 것도 불편해지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어제 병원에 가야 했다. 정형외과 가봐야 물리치료 하라고 할 게 뻔해서 침을 맞으러 갔는데... 한시간 여 뒤, 비싸기 그지 없는 한약까지 받아챙겨 나오고 있는 (바보같은) 비연을 발견하고 있었다. 암튼.. 한의원은 도둑에 가깝다.
어쨌거나 이렇게 했으면 좀 나아져야 하는데, 여전하다는 게 문제다. 이거 다른 문제인가.. 겁도 나고 한약 비싼 거 샀고 비싼 약침도 맞았건만 왜 안 낫는거야 라고 부아도 나고 그래서 영 속이 뒤틀리는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역시나 병원을 다닌다는 건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 그냥 병원에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괴롭다.
2. 그런 와중에 내일은 출장이라니.
아주 먼 곳은 아니니까 불평하긴 좀 그렇긴 하지만, 허리가 아프고 상태가 메롱이다 보니 어디 가서 낯선 사람 만나 얘기하고 서류 보고 어쩌고 할 게 싫어진다. 역시 건강하지 않으면 업무능력도 제로점에 가까와지는 게 맞는 거다. 그래도 어렸을 땐 사명감이랄까 의무감이랄까 해서 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에잇... 안 해...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 된다.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 할 순 없고 출장이라는 걸 가게 되면 역시나 출근을 일찍 해야 하므로 오늘은 일찍 가서 쉬어야 겠다. 가서 어떻게 할까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아프다. 허리 아프면 머리도 마비되나 보다. 며칠째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부터 그랬다는 얘길 하는 사람이 있다면 때려버릴테다...
3. 가을이니까 책을 읽어야할텐데.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의미는 말이다. 그저 독서를 하세요 라는 강권이다. 가을이니까 선선하니까 독서의 계절이 아닐까요.. 그러니 책 안 읽으면 아니되어요.. 라는 거지. 근데 나 같은 경우는 묘하게도 여름에 독서가 잘 된다. 더워서 에어컨 켜놓고 션하게 앉아서 책장 넘기는 게 좋다. 가을 되면 이상하게 업무가 폭주하고 더 힘들고 마음도 스산하고 그래서 책이 손에 잘 안 잡힌다.. (라고 핑계를 살짝~)
가슴 아픈 얘기도 싫고 새드 엔딩도 싫고 머리 복잡하게 꼬아대는 것도 싫고 괜히 사람 가라앉게 정적인 얘기도 싫고... 싫고 싫고 싫고...의 연속선상에서 가볍고 재밌고 때려부수고 하는 책이나 영화만 찾게 되는 요즘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점점... 가벼워진다고나 할까. 사실 그런 책이나 영화를 보면 나의 존재감이 조금 무게를 더하게된다.. 는 느낌보다 더 가벼워졌다.. 라는 서글픈 생각이 많이 든다. 읽으면 읽을수록 보면 볼수록 사람이 무거워지고 중량감 있어져야 하는데... 참 스스로가 소비적인 세월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4. 역시나 이럴 땐 해리 보슈라고.
그러니까 이런 때 가장 좋은 건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이다. 12권 째가 나왔길래 언능 잽싸게 사고서는 어제부터 아픈 허리를 이리 대고 저리 대고 하며 읽고 있다. 점점 이제 2006년으로까지 넘어온 해리 보슈를 보자니...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안경을 껴야 잘 보이고 어쩌고 할 때마다 서글퍼지는. 어쨌든 부쩍 열을 올리고 있는 cold case (미해결사건) 중 하나에 다시 부딪히는 얘기인데, 세상에 상상도 못할 악한이 나온다고 하니 한번 두고봐야 겠다.
해리 보슈 시리즈는 아니지만 마이클 코넬리가 창조한 유일한 여성주인공인 캐시디 블랙이 등장하는 소설도 번역되어 나와 있다. 조금 망설이고 있는데... 사서 보게 되긴 할 것 같다. 마이클 코넬리 작품은 전작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해리 보슈 시리즈 이외의 작품들도 대단히 빼어난 것들이 많았기에 기대도 되고 말이다.
5. 이제 송년회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12월에 다들 바쁘니 11월부터 조금씩 챙기고 있는데... 송년회를 생각하면, 내가 정말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과 의무로 만나는 사람과 이익을 위해 만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 등으로 나뉘게 되는 것 같다. 그게 명확하게 머리 속에 상으로 맺힌다. 나이가 들어 좋은 건, 모호한 게 점점 사라진다는 것. 특히나 나의 감정이나 판단에 가치판단을 떠나서 호불호가 명확해진다. 그래서 에너지를 쏟아야 할 곳에만 쏟게 되는 듯 하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내 머릿 속을 스치는데,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만나서 회포를 풀어야지 싶어서 초조해지고 나머지는 그냥 그냥... 만나면 좋고... 안 만나면 더 좋은 이들도 있고.
건강관리나 해가면서 송년회 일정을 잡아야겠다. 그냥 마구잡이로 잡았다가는 내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말이다.... 술은 줄이고 이야기를 늘이는 송년회들로 만들어야지. 내가 주관하는 모임에 한해서는... 아닌 모임은.. 대세를 따라야 할테고.. 특히나 회사. 철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