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번호를 붙여 뭔가를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냥 하나의 주제로 길게 쓸 말은 없고 몇 가지 단상들이 머릿 속에서 휙휙 날아다니곤 할 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2. 요즘 회식이 잦다. 이번 주만도 수, 목, 금이 회식이었고 몇 명은 겹치기까지 했다. 건강상의 문제로 가급적 약속을 줄여나가고 있긴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회식을 과감히 계속해서 빠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의 보스는 회식 빠지는 걸 상당히 싫어해서 가겠다고 하면 표정부터 바뀌어버린다. 보스에 대한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오늘만 해도 이 분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게 정말 힘들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평소에 말할 때도 누군가가 번역 혹은 해석을 해줘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어투신데 술에 취하시면 무슨 말인지 당췌 알아들을 수가 없다. 구체적인 명사가 나오지 않고 '거기' '여기' '그거' ... 의 지시대명사로 말씀을 하시는데다가 주어만 있고 서술어가 없거나 서술어로만 말씀하시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게 있쟎아요. 그게 그거쟎어... 그러니까... (손동작으로 막 휘저으시다가) 다 알지?" ... 뭘 알아야 하는 걸까. 왜 이러시는 걸까요 ㅜㅜ 오늘은 내가 바로 앞에 앉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다 딴 짓 하는데 나만 바라보며 말씀하시는 통에 다른 데 시선도 못 돌리고 몇 시간을 알아듣지도 못한 채 웃음과 가끔의 추임새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느라 안면근육 마비증세가 올 지경이었다. 집에서 애들한테도 이렇게 말씀하실까...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3. 그렇게 듣고 있노라니, 참 사회생활이라는 게 무섭구나 싶었다. 상사이고 회사니까 듣기 싫고 못 알아듣겠고 달아나고 싶지만 눈 마주치며 웃어주고 끝까지 들어주고 가끔씩 기분좋을만한 멘트도 날리는 것이지, 만약 우리 엄마나 아빠가 그러셨다면 난 5분도 못 견뎠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모님께 괜히 죄송한 마음이 슬며시 들었더랬다. 딸이랍시고, 소리나 꽥꽥 질러대고 있으니. 한번 말해서 못 알아들으시면 두번은 절대 말하기 싫어하는 딸이라니. 급반성 급반성...

 

4. 회식을 더 견디기 힘들어진 건 내가 상당히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꼭 특정 사람이 참석해야만 재미가 있는 모임이 있다. 반면에 어떤 사람만 참석하면 재미가 덜해지는 경우도 있고. 나의 퇴직 동료는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나랑 호흡도 잘 맞았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다른 곳에 옮겨가게 되었고 덕분에 나의 회사생활 재미는 반 정도로 줄어버린 것 같다. 오늘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에잇.

 

5. 회사생활에 매몰되다 보니 다시금 나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 뭔가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정신없이 업무 보다가 점심 먹고 또 정신없이 업무 보다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정리하고 자는 생활의 반복. 머리는 비어만 가고 기억력은 쇠퇴하고 있으며 몸은 둔해지고 심장의 두근거림은 사라진 지 오래다. 뭔가를 하면서 나만의 행복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었다, 근간에. 좀 신경을 써야하겠다.

 

6. 그나마 나의 위안이 되는 것은 '웹툰'이다. 좀 우습지만 말이다. 최근까지 윤태호의 <미생>을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끝나버렸고 지금은 강풀의 <마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윤태호의 <미생>은 만화책으로 소장하고 싶은 만화이기도 해서 지금 중고책 판 돈이 입금된 것을 보고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다. 이걸 사면 집에서 쫓겨날 것 같기도 해서... (참고로 엄마가 만화책 사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으시고 게다가 만화책은 여러권이니까...;;;) 강풀의 <마녀>는 정말 별 내용 아닌데 괜히 사람을 잡아당기는 매력이 있다. 가끔 휴재를 해서 욕을 진탕 먹고 있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기다려가며 보고 있다. 어떻게 전개될까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고. 다들 웹툰을 보면 뭘 보시는지 궁금해지네...ㅎㅎㅎㅎ

 

 

 

 

 

 


 

 

 

 

 

 

 

 

(7권이 나와있네... 아 사고 싶어라..)

 

 

 

7. 야밤에 말이 길었다. 점심 저녁을 등심으로 배를 채웠더니 잠이 안 온다(고 자랑해본다). 책이든 영화든 일드든 보다가 자야겠다. 아님 <꽃보다 할배>를 보든가. 나는 예능은 제대로 본 게 하나도 없는데, 이 <꽃보다 할배>는 기발하면서도 일상적이어서 보게 된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일단 호기심이 일고, 그냥 밥먹고 자고 걷고 이런 일들을 할아버지들이 하는 매일을 이렇게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가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이 분들, 오래오래 사셔서 계속 이렇게 나와 주셨으면 좋겠다. 개성있는 네 할배와 이서진의 조합으로 말이다. 물론 특별 게스트들도 가끔 넣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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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8-03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생 끝나고 ㅡㅜ 마녀도 재미있게 보고 있구요, 그 외 챙겨보는 웹툰은 선천적 얼간이랑 신의탑인데, 둘 다 10대 남성 1위 취향이라 ^^; 추천할수가 없네요

비연 2013-08-03 20:14   좋아요 0 | URL
앗. 둘다 보시는군요^^ 미생 2탄이 '내년' 가을이라니 에휴. 마녀가 유일한 낙요~

하이드 2013-08-03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할배 정말 재미있지요?! 진짜 짜파게티 끓이는걸루 그렇게 재미있게 분량 뽑아내는건 전무후무할꺼에요. ㅎㅎㅎ

비연 2013-08-03 20:1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예능을 챙겨 보고 싶다 생각하게 한 최초의 작품에요^^
내년에 3탄도 만든다니 기대 넘 되어요~~

숲노래 2013-08-03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서 하는 대로 집에서 하시다가는
그 사장님
아마 집에서는 쫓겨나지 않으랴 싶어요...

참말 그렇겠지요.
그러니 회사에서 그렇게 회식을 밀어붙이시겠지요.
그분이 회식 한 번 줄이고
식구들과 외식 한 번이라도 하시면 좋을 텐데요.

그 사장님께서
부디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사랑스러운 길로 가실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

비연 2013-08-03 20:15   좋아요 0 | URL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