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여직원(아 이 말은 정말 싫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근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 뜯어도 이 단어 밖엔 안 들어오는 건..나의 한계일까)들끼리 모여서 점심을 먹었다. 베트남쌀국수.
그리고는 어쩌다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미혼자들과 30대 후반의 기혼자와 네 명이서 커피를 따로 마시게 되었다. 미혼자들은 미혼자대로 기혼자들은 기혼자대로 다들 고민이 많은 듯. 나야 결혼이라는 사안이 비껴가 있는 상태라 (이게 비극인지 희극인지) 별 아픔없이 들을 수 있긴 했지만.
20대 후반녀 (A)
7개월을 사귄 남친이 있었다. 그는 자상했고, 배려심이 깊었고, 그래서 7개월 남짓 동안 한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A는 그에게 전혀 불만이 없었고 생각해보면 장점만이 떠오르는 그런 남자였다. A는 여행과 스포츠를 좋아했고 그래서 사귀는 동안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주말에 스포츠도 즐겼었다. 그렇다고 그를 소홀하게 대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난주, 둘은 처음으로 사소한 문제를 두고 싸웠다. A는 연애 과정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다툼이겠거니 하고 다음에 만나면 다시 잘 해결해야지 했는데 그 다음날 남친에게서 연락이 왔다. "헤어지자" 그것도 카톡으로.
A는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만회해보고자 계속 전화를 걸었으나 남친은 받지 않았다. 결국 며칠의 시도 끝에 둘은 어느 카페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남친은, 요지부동이었고 계속 받아들일 수 없나는 A에게 그동안의 불만들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자상하고 배려심많던 남친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안 순간, A에게는 멘붕이 왔다.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매달렸다. 그러나 남친은 절대 안된다고, 우리는 안 맞는다고 그렇게만 반복할 뿐 고집을 꺾지 않았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는 A. 그녀는 남친을 많이 좋아하고 있고 헤어질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 당한 이 현실에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이 사람보다 더 좋은 남자를 앞으로 못 만날 것 같고 그래서 결혼을 못 할 것 같은 초조함이 엄습 중이다.
30대 초반녀 (B)
두 달 정도 사귄 남친이 있다. B는 착한 인상의 누가 봐도 갸냘픈 미인형이다. B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보다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길 원한다. 처음에 이 남친을 만났을 때 너무나 적극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아 내가 맞춰주기만 하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이 남자, 너무 안 맞는 것 같다.
약속시간에 매번 늦는다. 10분 20분... 다 핑계는 있다. 핸드폰 충전이 덜 되어서라든가 자기 운동하고 나오느라 그랬다든가. 게다가 자기관리에 너무나 철저한 나머지, 회사 끝나고 자기가 할 일은 다 한다. 운동하고 배우고... 그리고는 남는(?) 시간에 B와 약속을 잡는다.
B는 자정 전에 자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남친은 새벽까지 뭘 해야 직성이 풀린다. 각자의 집에서 자정부터 같은 영화를 보자고 하고 그 영화를 본 소감을 나누자 한다. 처음에는 맞춰주려고 따라 했지만, 다음 날 회사 일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피곤할 뿐이다. B는 남친과 만나는 게 너무 힘들기는 한데, 나이도 있고 그래서 이보다 더 좋은 남자를 못 만날 것 같기도 하고 이후에는 정말 아닌 남자들만 나타나서 결국 결혼을 못 할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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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들의 고민은 결혼이 너무 초조하다는 거고, 이 사안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다. A는 만나면서 자기에게 불만을 말하지 않는 남친을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고 B는 만나면서 계속 안 맞는데도 불안감에 놓지를 못 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초조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걸까. 30대 중반이 되면 영원히 결혼이란 걸 못 하게 되는 지경이 될까봐 그런 것일까. 앞으로 기회는 많다고 얘기해도 '결혼이 비껴간' 나의 말은 잘 안 먹히는 기분이다. 그러고보면 난 이 나이까지 결혼을 못 할까봐 종종거렸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못 갔는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도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고... 이런 심정이라는 거. 이게 문제일지도.
암튼 오랜만에 결혼이라는 화두로 얘길 하니 꽤 신선했다. 이제 내 주위의 사람들을 만나면 부모님이 편챦으시다는 이야기, 아이들의 교육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정도 하는 게 일상적인데, 갑자기 뭔가 기회라든가 불투명한 미래라든가 이런 것들을 얘기하니 낯설다는 기분도 들었고. 결혼이라는 주제는 정말 인류 역사에서 그 빛이 바래지 않는 이야기 소재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