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춥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회색 스웨터를 입고 나오려 했는데, 이 옷의 길이가 넘 길어서 코트 아래로 쑥 빠져 보이는 게 이상해 보여 허겁지겁 맨날 입던 까만색과 군청색의 사이쯤 되는 색깔의 가디건을 걸치고 나오느라 다른 때보다 좀 늦었다는 것 빼고는 양호한 하루의 출발이었다.

 

하늘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올해는 정말이지 유난히 눈과 비가 많다) 검정색 작은 우산을 펼쳐들고 걷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오니 대여섯명 앉아 있는 텅빈 사무실이 왠지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고. 

 

노트북을 열고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맥심커피 한잔 가져와서 자리에 앉는데, 이상하게 피곤이 엄습했다. 분명 스타트가 좋았는데, 왜 이런 거지. 어제 운동을 해서일까? (간만의 운동이었다.. 내가 그렇게 사지를 움직여본 게 몇 년만인가 한참 세었더랬다) 그런데 달력을 보니, 아 수요일이다. 흠. 피곤할 만 하군.

 

옆에 있는 직장 동료에게 물어본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날 아닌가요?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쳐준다. 맞아맞아. 좀 쉬었으면 좋겠어. 나랑 같은 느낌이구나, 반가운 마음에. 정말 수요일만 되면 괜히 더 피곤한 것 같아요... 그랬다. 동료는 다시 맞장구를 치며, 수요일 하루 쉬면 일주일이 참 즐거울텐데. 그런다. 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월 화 근무 수 휴일 목 금 근무 토 휴일. 이렇게 밸런스를 맞춰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게 샐러리맨의 고충인걸까. 내 맘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 없는 일종의 스트레스?

 

어제 읽은 책이 계속 찝찝해서 사실 더 피곤한 지도 모르겠다.

 

이 책 말이다. 읽던 김에 어제 다 읽어버리겠다고 펼쳐서 1시 반까지 읽어댔더니 수면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 나의 예상과 다르게 이 내용은 사회적인 게 아니었다. 그냥 찝찝한 내용일 뿐. 그러니까 이 작가는 사회추리 이런 걸 원한 게 아니라 그냥 치고 받는 하드보일드에 약간의 인간적인 면을 살린 탐정 하나를 끼워넣어 책을 완성한 거였다. 물론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유머러스한 책인데, 결말이 너무 구역질(이 표현이 딱 맞다) 나는 것인지라 덮고 나서 이거 바로 중고 서적에 내놓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암튼 가끔 이렇게 찝찝하다 못해 기억을 되돌리기도 싫은 (심지어 책 속에서 탐정도 토악질을 해댈 수 밖에 없는) 그런 내용의 책이 있어서 그 작품의 진정성이나 우수성이나 그런 건 따져볼 것도 없이 얼른 치워버리게 된다.

 

 

이렇게 두 권이 더 나와 있는데 - '바에 걸려온 전화'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지? - 이걸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관함에 넣어둔 걸 빼야 하나 그대로 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설마 다 이런 내용은 아니겠지... 이런 류의 책들을 머리 많이 쓰는 책이라도 읽고 나서는 가볍게 머리 식힐 때 좋아서 몇 권 사다놓곤 하는데, 으으. 고민이다.

 

 


 

사람들이 슬슬 다 오고 있다. 이제 나의 즐거운(?) 시간은 끝이 나고 있구나. 업무라는 걸 해야지. 요즘 너무 팔자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조금 불안할 지경이라 말이다. 물론 일하다 보면 fluctuation이 있어서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으니 그럴 것 까지야 없지만, 이런 상태가 내겐 고문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이럴 때 누리세요... 라고는 하지만 누리기가 쉽지 않단 말이지. 뒤에서 날 째리는 상사의 눈길도 있고 말이지... 암튼 이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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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23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요일이 휴일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간절히. ㅠㅠ

비연 2013-01-23 10:36   좋아요 0 | URL
간절히 간절히....ㅜ

숲노래 2013-01-2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하니,
즐겁게 꿈을 꾸어 보셔요

비연 2013-01-23 10:36   좋아요 0 | URL
^______________^

Mephistopheles 2013-01-2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요일 휴일로 만들면 뭐하겠노....일요일쯤 또 피곤하겠지...다시 일요일 휴일로 만들면 뭐하겠노...또 수요일이 피곤하겠지..그래서 다시 수요일 휴일로 만들면 뭐하겠노...그땐 또 일요일 피곤하겠지..수....일......수.....일.....수...일....

비연 2013-01-23 10:36   좋아요 0 | URL
앗...ㅎㅎㅎ;;;;; 수 일 수 일... 이걸 보니까 막 어지러워지는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