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가 있다. 어릴 때 엄마는 돌아가시고 술에 절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경멸하며 소년 시절을 보낸 스에나가 다쿠야.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는 로봇개발자로서 MM정공에 입사하고 그 회사의 실질적 오너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기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내연 관계에 있던 야스코가 임신을 빌미로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고민하다가 (알고보니 야스코가 동시에 내연 관계를 맺고 있던) 같은 회사의 다른 두 남자와 공모하여 그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완전범죄를 위한 살인 릴레이. 그러나 결국 발견된 시체는 그녀가 아니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1989년도 작품이다. 1985년에 데뷔했다고 하니 비교적 초창기 작품이고 20년만에 우리나라말로 번역되어 나왔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연도를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게다가 추리소설적인 장치나 아이디어의 반짝임, 사회와 개인의 이면에 대한 정교한 묘사 등이 지금의 작품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짜임새 있고 재미있어서 다시한번 놀랐다. 스에나가 다쿠야의 주위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져 독으로 품어지고 그래서 사람에 대한 신뢰나 인생에 대한 일상적인 재미는 잃은 채 그저 '상승'에 대한 욕망만으로 가득찬 숱한 사람들이 있다. 결국 그런 자신을 세차게 내몰다가 나락에 빠지는 것은 그들이고 살아남는 것은 그들이 동경해마지않는 사람들뿐이라는 현실. 그들 중 아무도 행복해지지 못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늘 어린 시절의 상처에 지배당하거나 펼쳐보지도 못한 꿈에 질식되어 있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집중해왔다. <백야행>, <환야>가 그랬고 <용의자 X의 헌신>이 그랬다. 또 한편으로는 팜므 파탈적인 이미지의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비극을 더욱 냉정하고 비극적으로 고조시키곤 한다. 이 책에서의 야스코가 그렇고 <백야행>, <환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그랬다. 또한 사회적인 문제들, 비단 일본만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 매우 세부적으로 묘사를 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바둥거리는 인간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지극히 제 3자적인 입장에서 동정심을 개입하지 않고 묘사해왔다. <호숫가살인사건>이 그런 류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 '브루투스의 심장'에는 이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줄곧 관심을 가져왔던 화두가 어디에서 시작했는가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만큼 짜임새있는 추리소설을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저 일상적인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재미는 줄 지 모르지만 읽고나면 뭔가 빠진 듯 허전한 추리소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많이 공부하고 많이 생각하여 얼개가 딱 들어맞게 쓰여진 덕분에 내용의 비정함에 씁쓸함은 느낄 지언정 책을 덮을 때 구성적인 시원함을 선사하는 책도 있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