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의 심장 - 완전범죄 살인릴레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었다. 이 세상은 불공평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다양한 계층으로 나눠진다. 언젠가 반드시 최상층의 인간이 된다. 지배자가 된다...그것이 다쿠야의 최종 목표였다. (p23)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어릴 때 엄마는 돌아가시고 술에 절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경멸하며 소년 시절을 보낸 스에나가 다쿠야.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는 로봇개발자로서 MM정공에 입사하고 그 회사의 실질적 오너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기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내연 관계에 있던 야스코가 임신을 빌미로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고민하다가 (알고보니 야스코가 동시에 내연 관계를 맺고 있던) 같은 회사의 다른 두 남자와 공모하여 그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완전범죄를 위한 살인 릴레이. 그러나 결국 발견된 시체는 그녀가 아니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1989년도 작품이다. 1985년에 데뷔했다고 하니 비교적 초창기 작품이고 20년만에 우리나라말로 번역되어 나왔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연도를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게다가 추리소설적인 장치나 아이디어의 반짝임, 사회와 개인의 이면에 대한 정교한 묘사 등이 지금의 작품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짜임새 있고 재미있어서 다시한번 놀랐다.

스에나가 다쿠야의 주위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져 독으로 품어지고 그래서 사람에 대한 신뢰나 인생에 대한 일상적인 재미는 잃은 채 그저 '상승'에 대한 욕망만으로 가득찬 숱한 사람들이 있다.  결국 그런 자신을 세차게 내몰다가 나락에 빠지는 것은 그들이고 살아남는 것은 그들이 동경해마지않는 사람들뿐이라는 현실. 그들 중 아무도 행복해지지 못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충복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로봇을 올려다보며 다쿠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들은 무네가타의 말을 떠올렸다. 그런 일은 예외 중에서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로봇은 늘 인간에게 충실한 존재다. (p356)  
   


히가시노 게이고는 늘 어린 시절의 상처에 지배당하거나 펼쳐보지도 못한 꿈에 질식되어 있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집중해왔다. <백야행>, <환야>가 그랬고 <용의자 X의 헌신>이 그랬다. 또 한편으로는 팜므 파탈적인 이미지의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비극을 더욱 냉정하고 비극적으로 고조시키곤 한다. 이 책에서의 야스코가 그렇고 <백야행>, <환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그랬다. 또한 사회적인 문제들, 비단 일본만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 매우 세부적으로 묘사를 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바둥거리는 인간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지극히 제 3자적인 입장에서 동정심을 개입하지 않고 묘사해왔다. <호숫가살인사건>이 그런 류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 '브루투스의 심장'에는 이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줄곧 관심을 가져왔던 화두가 어디에서 시작했는가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만큼 짜임새있는 추리소설을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저 일상적인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재미는 줄 지 모르지만 읽고나면 뭔가 빠진 듯 허전한 추리소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많이 공부하고 많이 생각하여 얼개가 딱 들어맞게 쓰여진 덕분에 내용의 비정함에 씁쓸함은 느낄 지언정 책을 덮을 때 구성적인 시원함을 선사하는 책도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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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8-29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날렸다가 다시 썼더니 감흥이 안난다..ㅜㅜ 왜 날아간거야..쩝.

물만두 2007-08-2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수록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연 2007-08-29 20:04   좋아요 0 | URL
저도 첨엔 그냥 그랬는데 요즘 나오는 책들 계속 읽다보니
점점 괜챦아지는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7-08-29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깔끔하고 흥미롭게 만드는 글인데요.^^

비연 2007-08-29 20:05   좋아요 0 | URL
칭찬이신거죠? 감솨!^^ 일단 책 자체가 매우 흥미롭답니다~^^

프레이야 2007-08-3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렸다가 다시 쓰신거에요? 그럼 노고에 추천 두번 드릴 순 없나요? ^^
잘 읽었습니다, 비연님.^^

비연 2007-08-30 20:56   좋아요 0 | URL
우헤헤. 혜경님..말씀만으로도 감솨~
그냥 키 하나 잘못 눌렀는데, 싸악 사라져버리더라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