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 읽기 4월의 책은 '여성성의 신화' 이 책인데, 두껍긴 해도 (700페이지 육박) 내용이 이전 책들에 비해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읽을 줄 알고 게으름 피우다가... 벌써 28일이 되어 버렸고... 아직 다 못 읽었고.. 불안하고... 그래서 다른 책들은 아예 다 치우고 이 책만 들고 왔다갔다. 잘 때도 침대 위에 펼쳐 놓고 읽다가 책 위에 코를 박고 자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역시, 게으름의 말로는... 초조함과 불안감이다. 이번 달 안에 꼭 읽어야 할텐데. 왜냐하면 다음달 책은 더 어마어마하니까.
뭐 암튼, 열심히 읽어나가는 중에 마거릿 미드를 만났다. 사실 좀 놀랐고 그래서 페이퍼를 쓴다. 프로이트가 페미니즘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이야 어느 책이나 얘기하고 있어서 익히 알고 있던 바다. 이번에 보니 그 아저씨는 생활에서도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누구든 자기가 사는 세대의 분위기와 기본 사상을 뛰어넘긴 어려운 것이라 마냥 탓할 수는 없겠지만 프로이트의 학설이 두고두고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아쉬운 면이 많다.
저명한 정신분석가인 클라라 톰슨(Clara Thompson)이 지적한 대로, "프로이트는 여성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편견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생활과 생활관의 한계에서 여성의 존재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거세 콤플렉스와 남근 선망, 그의 모든 사고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이 두 개념은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가정한다. (p229)
프로이트는 그렇다 치고 마거릿 미드에 와서는 아 이 사람이 이렇게 얘기했었구나 라는 것 때문에 충격이었다. 저자도 책에서 밝혔지만, 마거릿 미드는 '여성의 권리를 획득한 뒤 미국 생활에서 두각을 보인 최초의 여성 중 한 사람' 이었고 '완전한 인간인 여성에 대해 개인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남자와 동등한 교육을 받았으며' 아울러 '어떤 남자와도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자긍심 넘치는 한 사람의 여성'이었다 (p278). 예전에 아주 오래 전에 마거릿 미드의 책들이 한꺼번에 번역되어 나온 시기가 있었다. 엄마가 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커서 책들을 사서 읽으셨고 옆에서 나도 계속 접했었고. 내가 읽은 마거릿 미드는 훌륭한 인류학자였고 원시사회를 옆에서 지켜보며 분석하여 인류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발견해낸 사람이었다. 특히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해서 진보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초반에만 그랬던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성의 신화가 마거릿 미드에게서 가져온 것은 여성의 거대하고 검증되지 않은 인간적 잠재력에 대한 그녀의 비전이 아니었다. 모든 문화에서 실제로 증명된 여성의 기능을 미화하는 것이었다. 발달된 모든 문명에서 이것은 주로 남성들이 보여주던 인간 창조력의 무한한 잠재력만큼 높이 평가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신화는 마거릿 미드로부터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 되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남성이 창조적인 성취를 했을 때 받은 것과 동일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가져온 것이다. 남성들이 생활을 창조하기 위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자궁과 젖가슴은 남성들이 결코 알지 못하는 영광을 여성에게 부여한다. 그런 세계에서 여성이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낳기 위한 창백한 대리인일 뿐이다. 여성성은 사회에서 규정하는 의미 이상의 것이 되었고, 사회가 사라져가는 물소를 보호하듯 문명사회의 파괴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가치가 되었다. (p272)
원시사회를 돌아보아도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생물학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없다. 프로이트의 사상을 정면으로 반격하는 듯한 이 논리가, 혁명적인 논리가, 나중에 가서는 그렇기는 해도 문화라는 것에 의해 만들어진 성생물학적인 한계를 유지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러니까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그대로 발현하며 사는 게 낫지 않겠나 라는 논리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문구들에서 확인하게 된다. 결국 최고의 인류학자이자 선진적인 사고를 가졌던 마거릿 미드도 이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가 싶어 씁쓸해진다.
오랜 편견에 대항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사람의 사회과학자로서, 여성으로서 그녀는 오랜 생활 속에서 보아온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했다. 여성은 무언가를 결여한 남자가 아닌, 특별한 인간이라고 주장한 그녀는 프로이트보다 한 단계 올라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구는 프로이트의 신체적 비유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가슴을 자라게 하고 매달 월경을 하게 하며 어린아이들에게 부풀어 오른 가슴에서 젖을 빨게 하여 자신이 여성임을 깨닫게 하는 신비로운 여성성의 기적을 찬미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쓰러뜨렸다. 그녀는 생물학적인 역할을 넘어선 성취를 추구하는 여성은 거세된 마녀가 될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함으로써 다시 불필요한 선택을 했다. 그녀는 젊은 여성들에게 여성성을 잃기보다는 그들이 어렵사리 얻은 인간성의 일부를 포기하라고 설득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삶 속에서 끊어냈던 악순환을 자신의 저작에서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이 경고했던 바로 그 일을 했다. (p277)
요즘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보면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와 이젠 마거릿 미드까지.. 사상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꾸어놓았던 사람들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미약했음을 알게 된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사람은 자신의 성별, 시대적 환경, 가정 환경과 성장 배경, 문화 등등등의 총 합체라서 뭐라고 단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존재이고, 그런 백그라운드를 분연히 떨치고 깨어 일어나기는, 한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을 비난만 할 순 없겠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좀더 깨어 있어야 하는구나. 왜냐하면 여성주의라는 관점 자체가 사실은 혁명이라서, 제반의 많은 제약조건들을 자꾸 물리쳐 내리지 않으면 나도 그 속에 갇혀 생각하게 되겠구나 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마거릿 미드의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어릴 때와는 다른 느낌, 더군다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더더욱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 물론 그전에 이 책을 다 읽어야 한다.. 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