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끝나야 한 해의 반이 가는 건데, 5월이란 달 자체가 행사도 많고 뭐도 많고 해서 워낙 무거운(?) 달이라 끝나는 오늘 쯤 되면 한 해의 절반이 벌써 날아간 느낌이 든다. 이번 5월은 초반 2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해서인지 더 빨리 지나간 것 같고. 여행.. 해외 여행 참 좋은데 어제 헝가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 탄 유람선이 추돌하여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한켠에서 뭐가 무너져내리는 듯 했다. 세월호 이후 배가 침몰했다는 얘기만 들으면 더 놀라고 더 가슴아파하는 건 나만의 트라우마는 아니지 않을까. 유람선이 침몰했다고 해서 강에서 가라앉았으니 사람들은 무사하겠지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직 찾지도 못한 상태라 하니... 이게 뭔 일인가 싶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형제끼리 열심히 산 스스로들에게 힐링을 주고자 떠난 여행에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더욱 애통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5월이 무겁게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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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요즘 출퇴근 길에 이 책을 읽고 있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160페이지 남짓의 짧은 소설이라 들고다니기 편할 듯 하여 골랐는데 의외로 재미있어서 지하철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이다.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닌데 (영화도 봤으니 말이다) 한마디 한마디 한장면 한장면이 유머러스하고 진실하고... 네루다의 시들과 잘 어우러져 문학적이다. 요즘 부쩍 고전에 관심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민음사의 이 시리즈들이 가볍고 하니 들고 다니며 읽어야겠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또 책을 사고 싶... 휘릭. 

 

책을 읽다보니, 영화도 다시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 영화, 엄마랑 같이 극장 가서 봤었는데 말이다. 둘다 감동받아서 나오는 내내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마리오로 나온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는 암투병을 하면서 이 영화를 찍었고 영화를 다 찍은 후 얼마 안되어 사망했다고 한다. 네루다 역으로 나온 필립 느와레는 유명한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 역을 맡았던 배우이고 이 영화에서도 너무나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었다. 아. 다시 봐야겠다. 어디 가면 구할 수 있으려나... 순박한 섬청년 마리오가 네루다로 인해 '메타포'라는 말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그만의 언어로 표현하게 되는 과정은, 실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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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기생충>의 감독 봉준호와 배우 송강호가 인연을 맺은 스토리가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연극배우였던 젊은 날의 송강호를 오디션에 핑계삼아 불러 그의 연기를 보고자 했었던 역시 젊은 조감독 봉준호가, 감독의 선택은 받지 못해 오디션에 탈락한 송강호에게 삐삐음성메세지로 탈락의 소식을 정중하게 전하며 하지만 좋은 연기였다고 말하고 "다음 좋은 기회에 작품으로 만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인삿말을 남긴 것은, 송강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몇 년 후 너무나 유명해진 송강호에게 다가가지 못해 망설이다가 불쑥 시나리오를 보내고 기다리지 못한 채 전화를 건 봉준호 감독에게, 송강호가 그 몇 년 전의 인상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다가 출연을 바로 결정했다는 스토리는 정말 영화같다. 그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에 꼽히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것은 더욱 극적이고.

 

봉준호가 송강호를 만났듯, 송강호가 봉준호를 만났듯,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났듯, 혹은 네루다가 마리오를 만났듯..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만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그 당사자들에게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혹은 더 넓은 세상 사람들에게 변화의 여파를 줄 수 있다. 사람 하나 잘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고..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지도 못한 것 같아서...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 송구할 뿐이지만, 언젠간 내가 누군가에게 누가 나에게 그런 인연으로 다가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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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고, 5월 마지막날이고... 일은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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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9-05-31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봉준호와 송강호에게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알아주고 신뢰하는 사이...
멋져요^^
일 포스티노. 저도 감동적으로
봤어요~~

비연 2019-05-31 12:38   좋아요 1 | URL
멋지죠~ 자기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살 맛 나는 세상일 것 같아요.
오늘 집에 가서 <일 포스티노> 구해다가 와인 먹으며 볼까 싶어요. 오홍홍~

희선 2019-06-01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사람을 만나고 많은 게 바뀌는 일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런 사람 찾아보면 많을 듯합니다 실제로도 있고 소설에는 더 많겠습니다 자신한테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런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요 안타까운 소식은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희선

비연 2019-06-02 08:03   좋아요 1 | URL
그건 참 인생의 행운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