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의 유럽여행이었는 지 모른다. 벼르고 벼르긴 했는데, 막상 떠날 때는 긴급 구매한 여행책자 두 권과, 곡 가고 싶었던 곳의 현지투어 예약확인증 한 장..이 전부였고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들어가 파리로 나오는 일정. 바르셀로나는 처음이고 파리는 세번째인가. 바르셀로나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가우디가 유명하다는 거. 파리는 그동안 갔을 때 못 가본 데를 가봐야지 하는 마음이었고. 그렇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더랬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치고는 꽤 만족스럽게 잘 다녔던 것 같다. 바르셀로나의 곳곳을 누비며, 저녁에는 다음날의 일정을 짜고 그 일정에 따라 또 발이 닳도록 열심히 걸어다니고,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니 아 나 이제 가이드해도 되겠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도시가 친숙해지기 시작했더랬다. 알고 보니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만 있는 게 아니었고 피카소도 있고 호안 미로도 있고 FC 바르셀로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우디도 가우디의 건축물 예뻐 이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어려웠던 인생사와 고뇌가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은 친절했고 사실 어딜 가나 한국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스페인 음식을 좋아해서 갈 때 컵라면 하나 가져가지 않았으나 막상 가서 매일 빠에야에 타파스를 먹자니 느끼하고 힘들어서 나중에는 기운이 빠져 꾸역꾸역 한식당을 찾아가 김치찌개를 먹었었다. 눈물이 쑥 빠질 정도로 고마왔던 맛. 그 칼칼한 고춧가루의 맛. 나이를 먹어서인지, 한국 음식 없이 여행하는 게 힘들어진 것 같다. 엄마 말씀 듣고 조금은 싸올걸 꽤 후회했었다.

 

파리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갔고 퐁피두센터를 갔고 몽생미셸을 갔고 몇몇 광장과 파사드를 헤매었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곳이었어서 안에서 한참을 머물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그 옛날 문인들이 숙식을 하며 꿈을 키웠던 장소가 아직도 보전되어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고. 결국 책을 한 권 사서 나오는데 한국인 여자 두명이 지나가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거기갸?" "애개 이게 뭐야?" "사진이나 찍자." .. 그러고 나더니 둘이 셀카를 찍고 서로 몸을 비틀며 기념사진을 서점 앞에서 찍더니 가버렸다. 왜 왔니, 그러려면. 여긴 그런 장소가 아니란다. 속으로 푸념. 사실 파리에서는 이 곳 한 곳을 본 것만으로도 난 여행 다 했다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아랑곳없이 난 저녁 무렵까지 그곳 주변과 안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냈지만.

 

조금 무리해서 간 것이었는데,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만 남았다. 이번에 이렇게 안 했으면 또 몇 년 지나갔을 거고. 유럽이란 동네는 많이 걸어야 해서 한살이라도 어릴 때 가야 하는 거다.. 라는 걸 이번에도 느꼈으니. 파리를 들른다고 마음 먹었을 때 사실 가장 먼저 찾은 건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이 열리냐 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여행 일정에는 눈에 안 띄길래 이번에 안 되겠구나 하고 갔는데, 가서 보니 20주년이라고 크리스마스부터 내년 초까지 공연을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헐. 그 때 다시 와야 하는 거야? 그러기엔 멀기도 멀고 돈도 많이 드는데... 하지만 지금 고민 중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야할 곳들은 많다. 남미도 가고 싶고, 아프리카도 가고 싶다. 남미나 아프리카야 말로 더 나이먹으면 힘들어질 것 같아서 감행하려고 여러번 마음 먹었더랬지만 여건도 허락치 않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어 왔다. 내년에는 한번 눈 질끈 감고 감행해볼까. 라는 생각을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했다.

 

그렇게... 다녀오니 서울이다. 회사는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하고.. 그렇게 생활로 돌아오니 내가 지난 주에 유럽에 있었다는 게 꿈만 같다. 내가 과연 그 곳에 있긴 있었던 건지 아득한 것이... 그래, 지금은 서울이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어서 여행인 것이고 그래야 참맛이 있는 거라는 걸 잘 알지만, 또 돌아오면 여행지가 그립고... 그렇게 나가면 돌아올 곳을 생각하게 되고 돌아오면 나갔던 그 곳을 그리워하게 되고. 인생이.. 그렇게 꼬리를 물고 돌고 도는 것인지. 아, 어쨌든 서울이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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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1-21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유럽 여행 잘 다녀오셨는지요.서울이시라고 하니 아무래도 시차때문에 힘드실것 같네요.그래도 해외여행을 하신다니 넘 부럽습니당^^

비연 2018-11-21 18:18   좋아요 0 | URL
지난 일요일에 와서 며칠 지나니 시차는 그럭저럭 적응된거 같아요~ 해외여행은 좋은데 요즘은 금방 일상생활로 돌아와서 여행을 다녀왔나 싶은...;;;;

폭설 2018-11-22 0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스페인 여행 부러워요! 세익스피어앤 컴퍼니는 비포선셋의 그 서점인가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세느강과 그 주변 명승지들의 가까운곳에 있나요? 위치가 궁금해요. 우좌간 감축드립니다.앞으로 6개월은 현실을 버틸수 있겠군요~~ㅎㅎ

비연 2018-11-22 08:35   좋아요 0 | URL
비포선셋의 그 서점 맞습니다!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 있어요. 아 정말 멋진 곳이었어요~ 그러나... 6개월은 못 버틸 것 같구요..흑흑. 한 달 정도? ㅎㅎ 그래도 마음에 위안이 참 많이 되는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