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국제 스포츠 경기 운영을 보여주고 있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국가 대표팀의 값진 메달 사냥으로 어수선한 시국의 추석 연휴 동안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 웃음을 안겨 주고 있다.

심판의 편파 판정과 피 말리는 1점 차 한일전에서 얻어낸 극적인 금메달은 물론이고 비인기 종목 스포츠에서 메달을 목에 건 한국 국가 대표팀은 일본 측 경기 운영 미숙과 악조건인 환경 속에서 이뤄낸 값진 결과다.

중국과 일본의 인구 수 대비 올림픽 종목 스포츠를 훈련하는 인재풀이 가장 얕고 적은 한국엔 타고난 재능과 노력 그리고 성실함과 영민함, 불굴의 의지를 가진 천재적 선수들이 있다.

 젊은 스포츠 인재들의 피, 땀, 눈물을 왕창 뽑아 먹는 협회 어르신들이 대를 이어서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대한민국의 인재다.

추석 당일, 서울은 비가 내려서 보름달을 찾아 볼 수가 없었지만 다음 날 구름이 걷힌 늦은 저녁 휘황찬란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음력 8월 15일 추석에 당연히 보름달이 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지 못한 해도 적지 않게 많다.

영상 출처: 미국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는 것처럼 태양 - 지구 - 달 순서로 자리를 잡으면 보름달이 되고 

달은 태양이 어느 쪽에서 비치는지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는 모양이 달라진다.

9월의 황금  연휴가 끝나간다.

두 발로 페달을 밟고 양 손을 쉼 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입에 풀칠 하기 힘든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휴일 동안 스마트 폰을 내려 놓고 달님에게 로또 당첨 소원을 빌어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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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2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10월 황금연휴가 오니 기대해 봐야지요^^
 

한 때 매장마다 오픈런을 해도 순식간에 동나 ‘없어서 못 먹는’ 디저트 였던 두바이 쫀뜩 쿠키 열풍이 지나고 나니  오랫 동안 ‘어른들이 먹는 간식’ '명절과 생일날에 먹는 간식' 정도로 여겨졌던 떡이  sns를 뒤덮고 있다.

그동안 백화점 지하 1층에 자리한 떡집은 구석진 곳에 있었지만 화려한 디저트로 빼곡하게 진열대를 채운 유명 빵집과 케이크 전문점을 밀어 내고 그 자리에 앙버터절편, 과일찹쌀떡, 요거트찹쌀떡에 이어 피자설기 같은 새로운 비주얼과 맛을 유혹하는 떡들이 차지 하고 있다.

전통적인 찹쌀떡 안에 딸기·키위·귤 복숭아·블루베리·샤인머스캣이  요거트 크림으로 채워진 떡 속에 큼직하게 박혀 있어서 크고 선명한 생과일 단면, 얇고 말랑한 찹쌀피, 크림을 층층이 보이게 만든 비주얼로 케이크나 고급 디저트 따위에 시선을 뺏기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유행한 디저트들은  뚱뚱했다. 프랑스에서 유래한 마카롱은 코크(껍질) 안에 필링(크림)이 은은하게 들어간 디저트인데 한국에 와선 필링이 몇 배는 커진 ‘뚱카롱’으로 재탄생했고. 와플도 크림·과일 등 속재료를 가득 채운 ‘뚱와플’로 변종되었다.

전문 베이커리 샵 뿐 만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도 판매 되었던 두바이 쫀득 쿠키는  초콜릿 안에 카다이프를 얇게 펴 발라 넣는  ‘두바이 초콜릿’과 달리 한국에서는  달달한 피스타치오 크림에 버무린 바삭한 카다이프(중동식 국수면)를  꽉꽉 채워 넣고 쫀득한 마시멜로로 감싼 뒤 코코아 가루를 묻힌 두바이 쫀득 쿠키로 재 탄생 했다.

출시 즉시 완판과 줄서기 대란을 일으키며 대전을 빵의 도시로 이름을 날리게 만든 성심당의 과일 시루 케이크 시리즈는 한국의 전통 잔치상에서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리는 것을 ‘고임상(또는 고배상)의 비주얼과 흡사하다.


왕실이나 회갑(환갑), 희수 등의 장수 축하 잔치에서는 권위와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약 30~50cm(1자 3치~1자 9치) 높이로 음식을 높게 고였던 한국의 음식 전통 식문화는 재료와 맛의 균형·조화 대신 시각적 압도감이 중요해서 지난 시절 우리 조상 어머님들은 정성 들여 잘 만든 3첩 반상보다 맛없어도 상다리 휘어지는 10첩 반상을 차려야 했다.

그동안 한국은 국민의 쌀 소비량이 매년 1~2%씩 감소할 뿐만 아니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때 쌀 관세화를 20년간 유예하는 조건으로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해서 쌀이 남아도는 나라였다. 

그동안 해외에서 인기 몰이를 하는 디저트를 밀어내고 ‘쫀득’, ‘쫄깃’, ‘부드러운 떡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져서 명절 때나 잔치 때 돌리는 떡이 아닌 새로운 디저트로 거듭 변신하고 있다.

​ 맛이 강하지 않은 쌀과 변화무쌍한 덧재료가 합쳐지면 무슨 떡이든 ‘꿀떡’ 먹게 되는  한국 떡의 인기가 전 세계로 무한 확장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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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윤복의 '월야밀회', 19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28.2cm×35.6cm, 국보135호,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

휘영청한 둥근 달빛 아래   담장 너머로 여인을 끌어안고 있는 남자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한 여인이 있다.

옷차림새를 자세히 살펴 보면   남색 전대를 맨 자주색 전복을 입은 남자는  검은 바탕에 붉은 테를 두른 전립을 쓰고, 왼손에  철편(鐵鞭)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신분은 경계 근무를 서는 포교나 군관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남자에게 밀착된 여인은 자주색 깃을 단 회장저고리에  접어 올린 푸른색 치마를 흰색 띠로 묶고 녹색의 장옷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얹은 머리에 꽂혀 있는  머리 장식은 조선 시대에 왕비를 비롯한 상류 계층 여자들이 특별한 날에  꽂았던 떨잠이다.

사람의 키보다 조금 높은 담장 너머의 보름달의 위치만으로 볼 때는 보름달이 낮게 뜬 저녁이나 새벽 쯤으로 추정된다.

 야간 통행 시간이 있었던  조선 시대는  도둑ㆍ화재 따위를 경계하기 위하여 2경(更)에서 5경(새벽 두시에서 5시 사이) 사이에 궁중과 장안 안팎을 순시 했다.

궁 밖은 지휘가 높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에서 파견한 군관들이 순시 했고 궁성 주변은  오위장과 부장이 군사 다섯 명씩 거느리고 순시했다.

고위 관직에 있는 양반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사는 사대문 안 구역은 좌·우포도청에 소속된 하급 직위의 군관들이 관리 했는데 이들은 사냥에 능한 비천한 계급 출신인 포졸을  뽑아서  일반 구역의  치안을 맡겼다.

신윤복이 살던 시절인 18세기 조선 후기의 기생들의 단골 손님들 중에서 포교 출신들이 가장 많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기생들이 낳은 아이들의 양아버지 노릇을 해주거나 호위무사 같은 기부(妓夫)가 되어 주었다.

 남자는 순시를 도는 새벽녘 인적이 드문 담 벼락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여인을 만나고 있고 그림의 오른 쪽에는  두 남녀의 은밀한 행동을 엿보고 있는  여인이 옆 담장에 바짝 붙어 서있다.

쓰개치마를 어깨에 비스듬하게 걸친 두 남녀의 만남을 질투 하고 있는 건지 재회를 주선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림의 제목이 <월야밀회(月夜密會)>인 것으로 보아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 밀회를 즐기는 남녀와 제 3의 여인을   화공 신윤복이 건너편 담벼락 아래 낮은 자세로 몰래 숨어서 이 스케치 했을 것이라 짐작 된다.

신윤복이 살았던 18세기 후반은  사물을 사실 그대로 그리는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시대여서 그가  그린 그림 속 달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들을 후대인들이 천문학적으로 분석해서 그린 날짜와 시각까지 유추 할 수 있다.

풍속화 30점을 묶은 화첩인 《혜원전신첩》에 포함된 <월야밀회(月夜密會)>는 달이 뜬 높이와 크기 형태와 색을 분석한 천문학적 현상을 토대로 추정 해 본다면 19세기 초 음력 8월 15일에서 17일 전후에 완성한 그림이다.

2026년 9월 추석 연휴 첫 시작 날 부터  구름에 가려져서 보름달을 볼 수 없었다.

매번 같은 자리에 떠 있을 것 같은 둥근 달은  추석 당일이 아니여도  태양 - 지구 - 달 순서로 자리를 잡는 날을 포착하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달은 태양이 어느 쪽에서 비치는지에 따라 매번 모양이 달라지고 있고  눈으로 감지 할 수 없을 정도로 해마다 평균 3.8㎝씩 달은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달은 태양의 주기에 따라 회전을 할 때 마다  약 38만㎞ 떨어져 있는 지구에서 가까울 때는 약 36만㎞, 멀어질 때는 40만㎞ 이상 떨어진다. 

이 거리 변화로 인간의 눈에 달은 

 크게 보이는 ‘슈퍼문’이 되기도 하고, 작게 보이는 ‘미니문’이 되기도 한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남긴 레이저 반사경과 아폴로 14·15호가 추가한 반사경을 통해 50년 넘게 관측한 결과 달은 매년 평균 3.8㎝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지구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물 분포가 달라지고, 이에 따른 조석 마찰로  지구의 회전 에너지는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잃은 에너지는 달 궤도로 전달돼 달의 후퇴를 앞당기고 있다.

이러한 천문학적인 달과 지구의 관계를 알지 못하더라도  태양 - 지구 - 달 순서로 자리를 잡으면 보름달이 되고 1년 중 음력 8월에 뜨는 추석 보름달은 오랜 세월 풍요와 화합의 상징이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떠오르는  둥근달은 늘 변치 않는 존재 같지만 달은  시대마다 궤도 변화 속도가 달라져 왔다.

달이 탄생한 시각이 약 43억5000만 년 전이니  달이 이끄는 조석력에 따라   자전 하고 있는 지구는  수십억년의 시간 동안  해양과 대륙의 이동이  일어났고 수 많은 생명들이 태어났다가 멸종했다.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 하지 않는 지구 상에서 인간 종(種)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은 억겁의  시간 속에서 태어나, 찰나의  시간 속에 살다, 영원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간다.

따라서  지구 상에서 시 공간을 초월해서 영생하는 생명체가 없다.

 해마다 평균 3.8㎝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는 달은  과거에서 출발해 현재를 지나 알 수 없는 미래로 끝없이 나아가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의 화살’과 같다.

오늘 25일을 기준으로 2026년의 한 해의 시간이 정확히 97일 남겨 두고 있다.

달이 지금 속도로 계속 멀어져서  언젠가 지구로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해도 아직까지 지구는 돌고 있고 오늘 밤 1년 중 가장 둥근 보름달이 뜬다.

오늘 떠오르는 보름달에게 남은  2026년 무탈하게 보내기를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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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9-26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달구경을 못해 너무 아쉽네요. 정말.ㅠㅠ
 

기원전 482년 춘추 시대 말기 어느 봄 날,노나라 수도 곡부에 위치한 공자 학당에 제자들이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대표 토론자는 유약(유자27세), 증삼(증자24세), 단목사 (자공39세), 복상(자하26세) 들로 이들 다섯 명 모두 공자의 핵심 제자 였다.

토론에 앞서 공자가 강론의 시작을 알린다.

'여러분이 군자로 혹은 리더로 당당히 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 생각 하느냐? 

리더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준비 하고 어떤 수양을 쌓아야 좋을까? 라는 두 가지 질문을 다섯 명의 제자들에게 던진 공자는 만일 리더를 꿈꾸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학습을 통해 스스로가 서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학습을 통해 사회에서 한 명의 인간이자 시민으로 당당하게 자립 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립 하기 이전에 가까운 지인들과 먼 이웃들과도 잘 지내야 한다.

21세기는 공자가 살았던 시절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교통과 통신 시설 발달은 물론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들과 인터넷을 통해 소통 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정보를 주고 받으며 친분을 쌓아 나갈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 세기 전 스승 공자에게 두 가지 질문을 받은 다섯 명의 제자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까?

공자 바로 곁에 안자 있던 제자 유약(유자)는 스승의 핵심 사상인 인(仁)을 꺼내 들고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스승님의 인(仁)은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닌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들과 우애 하며 지내는 것을 의미 하듯 윗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이들이 국가나 조직을 어지럽게 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만일 리더를 꿈꾸고 있다면 우리 모두 인(仁)에 충실해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근본이 설 수 있습니다.'

제자 유자의 말을 듣고 있던 공자는 '인(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이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고 가식적인 얼굴로 비위를 맞추는 이들 중에 인(仁)을 실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나 비위를 맞추려고 아부 하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본성을 판단 하면 안된다.사람을 대할 때도 기본에 충실 해야 한다.'

공자와 유자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제자 증삼은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얘기 한다.

'유약 선배와 스승님의 말씀에 절대 공감 합니다. 저는 기본 인성에 충실하기 위해 매일 저녁 하루를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성찰 하고 있습니다.

첫째,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둘째, 맡은 바 소임에 충심을 다해 열심히 일했는지?

셋째, 친구와 교류함에 신의를 지키지 못함은 없었는지?

이렇게 세가지 기준에 근거해서 제 스스로 오늘 하루 동안 만났던 이들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반성을 해봅니다.

스승님에게 배운 것을 익히고 실천함에 있어서 나태 해지거나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었는지 곰곰이 성찰 한 후 잠자리에 듭니다.'


제자 증자의 발언을 들은 공자는 뒤이어 이런 말을 꺼낸다.

'증삼의 이야기 또한 한치 그릇 됨이 없다. 개인의 입장에서 그렇게 한다고 했지만 이는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를 통치 하는 이치와도 매우 유사 한 것이다. 제국을 다스리는 위정자는 어떤 일을 하던지 신중하게 생각 하고 검토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 재정은 개인의 자산처럼 절약해서 운용 해야 하고 자신을 사랑하듯 백성을 부릴 때도 농번기를 피하고 개개인의 사생활을 존중 해 주어야 한다.'


제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공자는 드디어 '학이 편'의 핵심 주제인 [학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 그렇다면 학문이란 무엇이며 학문은 언제 시작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주제를 토론해보자. 여러분은 학문을 한다는 것이 무엇으로 생각하느냐?

내가 생각하는 학문은 사람 됨됨이가 바르고 행위 또한 바른 것을 배우고 묻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행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인간 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 다운 사람이 된 다는 것은 부모님께 효도를 다 하고 집 밖의 사람들에게 항상 공손하게 벗에게는 다정해야 한다.

개개인의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말며 한 번 내뱉은 말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가장 근본적인 인간 다운 사람으로 거듭 성장 하려면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며 학문과 도덕을 갖춘 어진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행한 후에 학문에 매진 해도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어려운 역사를 줄줄 외우고 외국어에 능통하고 계산과 이치에 빨라도 인간 답지 못한 품성을 갖추었다면 그는 리더의 자격과 거리가 멀다, 사람과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자중감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중요한 존재 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겸손하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인간에게 자존감이 없으면 배워도 배움이 견고 하게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이나 의견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세상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변의 친구들이나 사람들로 부터 배우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도권을 빼앗아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 하든지 크게 개의치 말며 사소한 의견 충돌에도 발끈하고 매사 공격적이 태도로 대응 하지 말아야 한다.

리더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거나 반대파들로 부터 공격을 받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도 안된다. 상대가 나를 알아 주고 몰라주는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를 잘 모르고 어떤 일이든지 추진하는데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두번 째 강론 시간에 공자는 '정치'에 대한 토론을 시작 한다.

공자는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큰 화두를 던진다.

'세상에는 정치를 덕으로 하는 군주와 정치를 법으로 하는 군주가 있다. 

군주가 정치를 함에 백성들을 단지 정치적 법령으로만 이끌고, 백성의 잘못을 형벌 만으로 다스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며 백성을 위한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나는 어려서 매우 미천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 얼굴은 기억 조차 하지 못하고 어머니 마저 내나이 열일곱에 세상을 떠나 셨다. 나는 이미 열 다섯 살 때부터 학문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나를 제대로 보살펴 줄 아버지가 없고 돈도 권력도 없는 내가 내 스스로의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문'을 파고 드는 것이었다.

지난 오 백년 동안 유지 해왔던 주나라의 종법 봉건제도 사회 질서가 완전히 붕괴되어 덕의 정치와 에의 정치는 종적을 감춰 버리고 법과 형벌로 엄히 다스리는 세상이 되었다. 제후들은 자신들을 세상 제일로 여기고 선량한 백성의 재산을 수탈 하고 압수 하고 있다. 가신들이 점령해 버린 황궁은 각자의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해서 국가의 모든 기관의 재정 상태가 텅텅 비어 가고 있다.

예의 정치로 백성을 보살펴서 덕의 정치를 펼쳐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하나씩 바로 잡아 나아가야 한다.

내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혼돈의 나라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갔다. 하늘의 뜻으로 오십대 중반에 대사구가 되어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육십 줄에 들어선 나는 주변 열국을 떠돌아 다니며 7개국의 제후들의 관료가 되기 위해 노력 했지만 그들은 나를 등용하지 않았다.

자, 이제 나는 70줄에 접어 들었다.

내 마지막 소임은 제자들을 양성해서 '인성'을 제대로 갖춘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진정한 '학문'을 배우고 실천하고 설파 해나가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학문을 하는 이유는 사람 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자신을 바로 세우고 가정을 편안하게 꾸린 사람은 진정 백성을 위한 사회인으로 거듭 성장 할 수 있다.

자, 이렇게 '학문'을 연마 하면 기존의 굳혀진 생각을 유연한 사고로 바꿔서 더 새롭고 유용한 분야로 지식을 확장 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학문'이라는 실천 도구를 통해 세상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식견과 안목을 키워 나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란, 바르게 펼쳐 나가는 것이다.

나라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건 형벌과 법으로 가능하지만 도덕과 규범으로도 충분히 이끌고 갈 수 있다.

지난 모든 세월 동안 나는 내 인생 전체를 받쳐서 주나라 초기 상태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나라의 일부분이 사라져 버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는 지옥 같은 상태 속에서 나의 바램은 너희들이 사회 주요 자리에 올라가서 '인(仁)'과 '의(義)'를 실천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자가 73세 일기로 생을 마감 하던 시기는 춘추 시대 말기로 당시 공자는 3000여명의 제자를 거닐고 있었다.

제후의 관료로 채용 된 제자들은 총 72명으로 이들 중 열 명은 핵심 관료 자리 까지 올라가서 실질적인 정치에 큰 기여를 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격랑의 춘추 시대는 막을 내리고 260여년 동안 7개 패권국이 진나라에 의해 모두 통합 되었다.

스승 공자가 떠난 후 제자들은 8개의 학파로 나뉘어 져서 노나라, 제나라, 위나라 등으로 흩어져서 활동했다. 하지만 서로 간의 교류는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전국 시대를 종식 시킨 것은 진나라의 진시황으로 그는 10대 초반에 왕의 자리에 올라 가서 20대 부터 10년 동안 치밀하게 통일 준비를 한 후 30대에 조나라 -위나라-초나라-연나라-제나라를 차례 차례 무너트려 천하를 통일한다.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 한 후 진나라의 재상 이사의 주도하에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사상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 시켜버린다.

자신의 정치에 대한 비판을 묵살해 버리고 일체의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배격 하는 통치를 펼쳤다. 

진시황은 법가 사상을 중심으로 천하를 통일 했지만 10년의 통치 후 50대 초반에 급작스러운 죽을 맞이 한다..

한고조 유방에 의해 통치 된 한나라는 나라의 안정을 되찾은 후 유교로 국정의 안정적 통치를 펼치기 시작한다. 7대 황제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화 시켜서 충과 효로 나라를 다스리자 드디어 공자의 사상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논어'는 전체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학이편 1장은 2장으로 연결되고 2장은 3장으로 연결되어 16장까지 의미가 연결되어 있다. 이런 구성은 위정편의 기반이 되어 위정편 1장과 2장은 연결되고 2장은 3장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24장까지 연결된 '논어'의 핵심 사상은 [내적 수양을 거쳐 리더가 된 사람이 자신과 가정과 국가를 위해 어떻게 기여하는 것이 좋은지] 에 대해 학습-자기 주체성-언행일치-효도와 우애-자존감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 한다.

2500여 년 공자가 내세운 사상은 시대에 따라 농부에게는 농부에게 맞는 사상으로 직장인에게는 직장인에게 맞는 사상으로 조직의 리더에게는 그에 맞는 사상으로 정치인에게 정치인에게 맞는 사상으로 거듭 발전 해 나갔다.

현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지만 과연 이 사회에 어떤 리더가 말 보다 실천을 앞세우며  국가와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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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9-24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공자가 제나라에 의해 자신의 조국 노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제자 자공(단목사)를 보내 당시 국제 정세를 단박에 뒤집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를 패자에 오르게 하며 결국 자신의 노나라를 존속시킨 일화를 가장 좋아 합니다. 자공이 한번 움직여 전국시대 나라의 힘의 균형을 좌지우지했을 정도 였으니까요. 그런 제자를 키워낸 공자 역시 등용만 안 됐을 뿐이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인으로 추앙되는 이유가 분명있을 겁니다. 아마도 논어 속에 담겨진 어록들에는 곰곰이 곱씹어 볼 내용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Scott 님 좋은 글 감사드리고 한가위 명절 잘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2026-09-26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26-09-24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scott 2026-09-26 00:04   좋아요 0 | URL
서울은 비가 내려서 추석 보름달이 보이지 않았네요
카스피님 즐거운 추석 연휴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어둠이 시작되기 전, 탁탁 소리를 내며 피어 오르는 불꽃, 투명한 열기 너머로 나무가 비쳐 보였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뜨거움에 서로 거리를 둔 채 떨어져 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나무를 태운 연기에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숲으로 모이라고 한 것도, 불을 지피고 모이라고 한 것도 아버지였다.

무더운 여름,고고학자인 아버지는 2천 년 전 철기 시대의 생활을 직접 재연 하는 캠프를 열고 자원한 대학생 세 명과 열일곱 살 딸 실비 그리고 아내와 함께 들판을 가로 질러 습지에 터를 잡는다.

시베리아 대초원으로부터 북해를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이 비바람이 되어 우리를 세차게 때렸다. 나는 할머니가 직접 짠 니트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쓰지 않았을 법한 모자였지만 그걸 쓰고도 아버지를 따라 콘크리트 폐기물을 지날 때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세라 모스의 '유령의 벽'중에서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토끼를 사냥하고 불을 피워 끼니를 때운다.

사냥이나 채집을 하지 않고는 살아 가기 힘든 환경, 20세기 끝자락에 살고 있는 이들이 고대 철기 시대의 생활을 몇 일 동안이나 지속 할 수 있을까?

고고학자인 아버지는 도대체 왜? 2천 년 전 철기 시대의 생활을 체험 해보고 싶어 한 것일까?

고대에 이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습지는 늘 특별한 장소였다. 사람들은 도깨비불을 보았고, 아마도, 그것을 영혼이나 그에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했겠지.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우리처럼 습지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거야. 왜냐하면, 내가 잘 알아, 왜 모르겠어. 습지는 날 끌어당겨 집어 삼켜 버릴 수도 있으니까.

생존 하기 위해 들짐승을 잡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잔혹한 폭력성을 드러내게 되고 급기야 '유령의 벽'을 지어 놓고 습지 미라를 만들었던 고대 철기 시대 주술 의식까지 재연 하게 된다.

유령의 벽은 고대 지역 부족들이 로마 제국을 상대로 한 최후의 방어 수단으로 말뚝을 박아 울타리를 만들고 조상의 해골을 가져와서 울타리 꼭대기에 나란히 매달아 놓는다.

죽은 자의 얼굴이 아래를 향하고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이 된다고 고대인들은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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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발견 된 소녀의 미이라는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습지에 매장 되었을 것이라고 고고학자인 아버지는 여러 가설을 세워두고 증거들을 수집 해 나갔다.

남자들은 해가 지는 쪽을 향해 유리 벽을 세우고 소 머리 뼈를 바람의 방향에 맞춰 놓는다. 고대인들이 했던 주술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여기 저기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뒤섞인다.

2천 년 대 고대인들의 주술 의식인 '유령의 벽'을 세워 놓고 주술을 외우며 생존 하기 위해 죽인 동물들, 우리가 고의로 죽여온 것들을 위해 이런 의식을 행하고 있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리지 않은 두 눈, 그 두 눈이 마지막 하늘, 마지막 불빛을 향해 커진다. 마지막 추위가 그녀의 손가락과 그녀의 얼굴을 깨물고 아직 마지막일 수 없는 돌들이 그녀의 벗은 발에 생채기를 낸다. 그녀가 휘청인다. 그들이 그녀를 단단히 붙잡는다.

아버지의 동료 교수인 슬레이드는 이제 열 일곱 살 실비를 시험 삼아 유령의 벽에 세워보고 싶어 한다.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낮은 음의 주술이 시작되자 실비의 두 손과 발을 묶고 목에 밧줄을 두른다.

슬레이드 교수는 실비 목에 둘러진 밧줄에 칼날과 바윗돌을 달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동안 아버지는 교수형 매듭을 만들기 시작한다. 유령의 벽 제물단에 자신의 딸을 세워 놓고 날카롭게 갈은 돌 칼을 쥐고 딸의 팔을 깊숙이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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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 살 실비는 물과 육지가 맞닿은 자락, 삶과 죽음 사이의 시공간에서 균형을 잃고 물가 끝자락에서 쓰러진다.

아버지와 동료 교수는 쓰러진 실비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주술 의식을 시작하기 위해 돌 칼을 빼든다.

고통을 느끼며 어둠을 가로 질러 날아가는 새의 울음 소리를 마지막으로 듣는 실비

아버지는 자신의 사냥 칼을 손에 놓지 않은 채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모습을 회피 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는 무엇을 위해 2천 년 전 고대 철기시대 주술 행위인 유령의 벽을 세워 놓고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시도를 했을까?

습지에서 발견 된  미이라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습지에 매장 당했다.

 여기 저기 베인 상처와 부러진 뼈, 이 정도 상태였다면 끝내 사망 했을 것이라 추측이 가능 하지만 실비의 아버지는 수치심과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일 뿐 살인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항변 한다.

이 천 년 동안 습지에 매장 당했던 소녀 미이라 처럼 자신의 딸에게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는 아버지

학교에서는 논문과 연구 실적 압박으로 숨 막혀 했던 아버지는 가정에서 항상 화가 난 모습이였다. 

그는 자신의 딸을 유령의 벽 주술에 제물로 만들어 놓고 습지에서 발견된 소녀 미이라의 연구 성과에 반영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2018년 6월 16일. 전남 강진군에서 아르바이트하러 나간 여고생이 실종 되었다. 여고생은 실종 6~7일 전 아버지 친구 A씨에게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았는데 A씨는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주변에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여고생은  실종 전날 SNS로 친구에게 "아르바이트가 처음이다. 떨린다. 내일 큰일이 나면 신고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실종 9일 째 되던 날 야산에서 발견된 실종 여고생 시신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머리카락이 길이 1cm 남짓 '스포츠형'으로 잘려져 있었고 시신에서는 수면 유도제 졸피뎀 0.093㎎이 검출됐다.

경찰의 CCTV로 동선을 추적한 결과  실종 당일 여고생은 오후 2시 쯤 A씨와 한 공장에서 만나  20분 만에 A씨가 타고 온 차를 타고 공장을 빠져나가 같은 날 오후 4시 24분 휴대전화 전원이 꺼지면서 연락이 끊겼다.

여고생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하고 자신의 차에 태워 저수지로 향했던 A씨 실종 여고생 가족이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을 보고 황급히 달아났다가 이튿날 자택 근처 공사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여고생 살인 용의자 A씨는 보신탕 가게를 운영했고 그가 살고 있던 지역 일대에서 여성들의 미제 장기 실종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지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 버렸고 경찰은 더 이상 수사 하지 않고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마무리 해버렸다.

실종 신고 접수 후 경찰 측의 발 빠른 수사와 범인 추격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았다면 살인 용의자를 검거 했을 것이다.

인간의 목숨이 달려 있는 강력범죄 앞에서 경찰의 늦장 대응으로 안타까운 생명이 사라지고 범죄자가 도주 하거나 증거 인멸하는 사례는 한 두 건이 아니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나타난 실종 신고 현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날이 폭증 하고 있다.

아동, 치매 환자, 장애인을 비롯해 만 18세 이상 성인(가출인)까지 모두 합치면 연간 무려 12만 건 이상, 하루 평균 약 330여 명(약 4~5분에 1건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특히 성인 실종 신고만 매년 약 7만 건에 달한다는 통계를 인구 대비에 적용 해 본다면 현재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서 사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접수된 신고의 대다수가 단순 연락두절이나 가출로 임의적으로 수사 조사 결과를 발표 해서 실종된  이들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결과나 사후 안내 문자 없이 사건을 종결 시켜 버렸다.

국민들이 치안 당국을 향한 불신을 결정적으로 지피운 것은 최근 제주도에서 발생한 30대 여성 장기 실종 사건이다. 

실종 신고 이후 경찰이 생사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사건을 임의로 종결하고 프로파일링 시스템 목록까지 삭제한 충격적인 정황이 수면 위로 드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 통계상 '해제' 처리된 수많은 실종 사건의 실체가 과연 안전하게 종결된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다. 

사라진 이들이 향한 곳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명확하게 파헤치기는 커녕 허술한 실종 대응 체계와 구멍 뚫린 치안 속에서 우리 사회 속에 숨어 있는 범죄자들이 활보 하게 방치 하고 있다.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된 일반 성인 실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성인실종법' 제정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실종자 시신이 발견 된 곳에서 자살이 불가능한  주변 환경에서 반드시 자살이였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러 상황을 연출하는 쇼를 벌이고 있다.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 인접 도시에서 최근 두 달간 여성 7명이 끔찍한 상태로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고 있다.

 경찰측은  연쇄 살인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 날 수 있다고 항변 하며  악화된 여론이 잠잠해 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대부터  시작된  여성에 대한  학대와 억압, 잔혹한 행위들은 현재 까지 이어져 내려와 지금, 어딘가에서도  유령의 벽 속에서 희생 당하고 있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의 생명은 사회, 국가가 지켜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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