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시작되기 전, 탁탁 소리를 내며 피어 오르는 불꽃, 투명한 열기 너머로 나무가 비쳐 보였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뜨거움에 서로 거리를 둔 채 떨어져 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나무를 태운 연기에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숲으로 모이라고 한 것도, 불을 지피고 모이라고 한 것도 아버지였다.
무더운 여름,고고학자인 아버지는 2천 년 전 철기 시대의 생활을 직접 재연 하는 캠프를 열고 자원한 대학생 세 명과 열일곱 살 딸 실비 그리고 아내와 함께 들판을 가로 질러 습지에 터를 잡는다.
시베리아 대초원으로부터 북해를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이 비바람이 되어 우리를 세차게 때렸다. 나는 할머니가 직접 짠 니트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쓰지 않았을 법한 모자였지만 그걸 쓰고도 아버지를 따라 콘크리트 폐기물을 지날 때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세라 모스의 '유령의 벽'중에서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토끼를 사냥하고 불을 피워 끼니를 때운다.
사냥이나 채집을 하지 않고는 살아 가기 힘든 환경, 20세기 끝자락에 살고 있는 이들이 고대 철기 시대의 생활을 몇 일 동안이나 지속 할 수 있을까?
고고학자인 아버지는 도대체 왜? 2천 년 전 철기 시대의 생활을 체험 해보고 싶어 한 것일까?
고대에 이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습지는 늘 특별한 장소였다. 사람들은 도깨비불을 보았고, 아마도, 그것을 영혼이나 그에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했겠지.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우리처럼 습지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거야. 왜냐하면, 내가 잘 알아, 왜 모르겠어. 습지는 날 끌어당겨 집어 삼켜 버릴 수도 있으니까.
생존 하기 위해 들짐승을 잡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잔혹한 폭력성을 드러내게 되고 급기야 '유령의 벽'을 지어 놓고 습지 미라를 만들었던 고대 철기 시대 주술 의식까지 재연 하게 된다.
유령의 벽은 고대 지역 부족들이 로마 제국을 상대로 한 최후의 방어 수단으로 말뚝을 박아 울타리를 만들고 조상의 해골을 가져와서 울타리 꼭대기에 나란히 매달아 놓는다.
죽은 자의 얼굴이 아래를 향하고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이 된다고 고대인들은 믿었다.
습지에서 발견 된 소녀의 미이라는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습지에 매장 되었을 것이라고 고고학자인 아버지는 여러 가설을 세워두고 증거들을 수집 해 나갔다.
남자들은 해가 지는 쪽을 향해 유리 벽을 세우고 소 머리 뼈를 바람의 방향에 맞춰 놓는다. 고대인들이 했던 주술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여기 저기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뒤섞인다.
2천 년 대 고대인들의 주술 의식인 '유령의 벽'을 세워 놓고 주술을 외우며 생존 하기 위해 죽인 동물들, 우리가 고의로 죽여온 것들을 위해 이런 의식을 행하고 있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리지 않은 두 눈, 그 두 눈이 마지막 하늘, 마지막 불빛을 향해 커진다. 마지막 추위가 그녀의 손가락과 그녀의 얼굴을 깨물고 아직 마지막일 수 없는 돌들이 그녀의 벗은 발에 생채기를 낸다. 그녀가 휘청인다. 그들이 그녀를 단단히 붙잡는다.
아버지의 동료 교수인 슬레이드는 이제 열 일곱 살 실비를 시험 삼아 유령의 벽에 세워보고 싶어 한다.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낮은 음의 주술이 시작되자 실비의 두 손과 발을 묶고 목에 밧줄을 두른다.
슬레이드 교수는 실비 목에 둘러진 밧줄에 칼날과 바윗돌을 달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동안 아버지는 교수형 매듭을 만들기 시작한다. 유령의 벽 제물단에 자신의 딸을 세워 놓고 날카롭게 갈은 돌 칼을 쥐고 딸의 팔을 깊숙이 찌른다.
열 일곱 살 실비는 물과 육지가 맞닿은 자락, 삶과 죽음 사이의 시공간에서 균형을 잃고 물가 끝자락에서 쓰러진다.
아버지와 동료 교수는 쓰러진 실비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주술 의식을 시작하기 위해 돌 칼을 빼든다.
고통을 느끼며 어둠을 가로 질러 날아가는 새의 울음 소리를 마지막으로 듣는 실비
아버지는 자신의 사냥 칼을 손에 놓지 않은 채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모습을 회피 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는 무엇을 위해 2천 년 전 고대 철기시대 주술 행위인 유령의 벽을 세워 놓고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시도를 했을까?
습지에서 발견 된 미이라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습지에 매장 당했다.
여기 저기 베인 상처와 부러진 뼈, 이 정도 상태였다면 끝내 사망 했을 것이라 추측이 가능 하지만 실비의 아버지는 수치심과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일 뿐 살인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항변 한다.
이 천 년 동안 습지에 매장 당했던 소녀 미이라 처럼 자신의 딸에게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는 아버지
학교에서는 논문과 연구 실적 압박으로 숨 막혀 했던 아버지는 가정에서 항상 화가 난 모습이였다.
그는 자신의 딸을 유령의 벽 주술에 제물로 만들어 놓고 습지에서 발견된 소녀 미이라의 연구 성과에 반영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2018년 6월 16일. 전남 강진군에서 아르바이트하러 나간 여고생이 실종 되었다. 여고생은 실종 6~7일 전 아버지 친구 A씨에게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았는데 A씨는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주변에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여고생은 실종 전날 SNS로 친구에게 "아르바이트가 처음이다. 떨린다. 내일 큰일이 나면 신고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실종 9일 째 되던 날 야산에서 발견된 실종 여고생 시신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머리카락이 길이 1cm 남짓 '스포츠형'으로 잘려져 있었고 시신에서는 수면 유도제 졸피뎀 0.093㎎이 검출됐다.
경찰의 CCTV로 동선을 추적한 결과 실종 당일 여고생은 오후 2시 쯤 A씨와 한 공장에서 만나 20분 만에 A씨가 타고 온 차를 타고 공장을 빠져나가 같은 날 오후 4시 24분 휴대전화 전원이 꺼지면서 연락이 끊겼다.
여고생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하고 자신의 차에 태워 저수지로 향했던 A씨 실종 여고생 가족이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을 보고 황급히 달아났다가 이튿날 자택 근처 공사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여고생 살인 용의자 A씨는 보신탕 가게를 운영했고 그가 살고 있던 지역 일대에서 여성들의 미제 장기 실종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지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 버렸고 경찰은 더 이상 수사 하지 않고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마무리 해버렸다.
실종 신고 접수 후 경찰 측의 발 빠른 수사와 범인 추격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았다면 살인 용의자를 검거 했을 것이다.
인간의 목숨이 달려 있는 강력범죄 앞에서 경찰의 늦장 대응으로 안타까운 생명이 사라지고 범죄자가 도주 하거나 증거 인멸하는 사례는 한 두 건이 아니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나타난 실종 신고 현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날이 폭증 하고 있다.
아동, 치매 환자, 장애인을 비롯해 만 18세 이상 성인(가출인)까지 모두 합치면 연간 무려 12만 건 이상, 하루 평균 약 330여 명(약 4~5분에 1건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특히 성인 실종 신고만 매년 약 7만 건에 달한다는 통계를 인구 대비에 적용 해 본다면 현재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서 사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접수된 신고의 대다수가 단순 연락두절이나 가출로 임의적으로 수사 조사 결과를 발표 해서 실종된 이들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결과나 사후 안내 문자 없이 사건을 종결 시켜 버렸다.
국민들이 치안 당국을 향한 불신을 결정적으로 지피운 것은 최근 제주도에서 발생한 30대 여성 장기 실종 사건이다.
실종 신고 이후 경찰이 생사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사건을 임의로 종결하고 프로파일링 시스템 목록까지 삭제한 충격적인 정황이 수면 위로 드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 통계상 '해제' 처리된 수많은 실종 사건의 실체가 과연 안전하게 종결된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다.
사라진 이들이 향한 곳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명확하게 파헤치기는 커녕 허술한 실종 대응 체계와 구멍 뚫린 치안 속에서 우리 사회 속에 숨어 있는 범죄자들이 활보 하게 방치 하고 있다.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된 일반 성인 실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성인실종법' 제정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실종자 시신이 발견 된 곳에서 자살이 불가능한 주변 환경에서 반드시 자살이였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러 상황을 연출하는 쇼를 벌이고 있다.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 인접 도시에서 최근 두 달간 여성 7명이 끔찍한 상태로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고 있다.
경찰측은 연쇄 살인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 날 수 있다고 항변 하며 악화된 여론이 잠잠해 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대부터 시작된 여성에 대한 학대와 억압, 잔혹한 행위들은 현재 까지 이어져 내려와 지금, 어딘가에서도 유령의 벽 속에서 희생 당하고 있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의 생명은 사회, 국가가 지켜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