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2년 춘추 시대 말기 어느 봄 날,노나라 수도 곡부에 위치한 공자 학당에 제자들이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대표 토론자는 유약(유자27세), 증삼(증자24세), 단목사 (자공39세), 복상(자하26세) 들로 이들 다섯 명 모두 공자의 핵심 제자 였다.

토론에 앞서 공자가 강론의 시작을 알린다.

'여러분이 군자로 혹은 리더로 당당히 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 생각 하느냐? 

리더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준비 하고 어떤 수양을 쌓아야 좋을까? 라는 두 가지 질문을 다섯 명의 제자들에게 던진 공자는 만일 리더를 꿈꾸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학습을 통해 스스로가 서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학습을 통해 사회에서 한 명의 인간이자 시민으로 당당하게 자립 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립 하기 이전에 가까운 지인들과 먼 이웃들과도 잘 지내야 한다.

21세기는 공자가 살았던 시절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교통과 통신 시설 발달은 물론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들과 인터넷을 통해 소통 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정보를 주고 받으며 친분을 쌓아 나갈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 세기 전 스승 공자에게 두 가지 질문을 받은 다섯 명의 제자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까?

공자 바로 곁에 안자 있던 제자 유약(유자)는 스승의 핵심 사상인 인(仁)을 꺼내 들고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스승님의 인(仁)은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닌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들과 우애 하며 지내는 것을 의미 하듯 윗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이들이 국가나 조직을 어지럽게 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만일 리더를 꿈꾸고 있다면 우리 모두 인(仁)에 충실해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근본이 설 수 있습니다.'

제자 유자의 말을 듣고 있던 공자는 '인(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이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고 가식적인 얼굴로 비위를 맞추는 이들 중에 인(仁)을 실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나 비위를 맞추려고 아부 하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본성을 판단 하면 안된다.사람을 대할 때도 기본에 충실 해야 한다.'

공자와 유자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제자 증삼은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얘기 한다.

'유약 선배와 스승님의 말씀에 절대 공감 합니다. 저는 기본 인성에 충실하기 위해 매일 저녁 하루를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성찰 하고 있습니다.

첫째,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둘째, 맡은 바 소임에 충심을 다해 열심히 일했는지?

셋째, 친구와 교류함에 신의를 지키지 못함은 없었는지?

이렇게 세가지 기준에 근거해서 제 스스로 오늘 하루 동안 만났던 이들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반성을 해봅니다.

스승님에게 배운 것을 익히고 실천함에 있어서 나태 해지거나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었는지 곰곰이 성찰 한 후 잠자리에 듭니다.'


제자 증자의 발언을 들은 공자는 뒤이어 이런 말을 꺼낸다.

'증삼의 이야기 또한 한치 그릇 됨이 없다. 개인의 입장에서 그렇게 한다고 했지만 이는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를 통치 하는 이치와도 매우 유사 한 것이다. 제국을 다스리는 위정자는 어떤 일을 하던지 신중하게 생각 하고 검토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 재정은 개인의 자산처럼 절약해서 운용 해야 하고 자신을 사랑하듯 백성을 부릴 때도 농번기를 피하고 개개인의 사생활을 존중 해 주어야 한다.'


제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공자는 드디어 '학이 편'의 핵심 주제인 [학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 그렇다면 학문이란 무엇이며 학문은 언제 시작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주제를 토론해보자. 여러분은 학문을 한다는 것이 무엇으로 생각하느냐?

내가 생각하는 학문은 사람 됨됨이가 바르고 행위 또한 바른 것을 배우고 묻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행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인간 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 다운 사람이 된 다는 것은 부모님께 효도를 다 하고 집 밖의 사람들에게 항상 공손하게 벗에게는 다정해야 한다.

개개인의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말며 한 번 내뱉은 말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가장 근본적인 인간 다운 사람으로 거듭 성장 하려면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며 학문과 도덕을 갖춘 어진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행한 후에 학문에 매진 해도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어려운 역사를 줄줄 외우고 외국어에 능통하고 계산과 이치에 빨라도 인간 답지 못한 품성을 갖추었다면 그는 리더의 자격과 거리가 멀다, 사람과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자중감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중요한 존재 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겸손하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인간에게 자존감이 없으면 배워도 배움이 견고 하게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이나 의견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세상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변의 친구들이나 사람들로 부터 배우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도권을 빼앗아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 하든지 크게 개의치 말며 사소한 의견 충돌에도 발끈하고 매사 공격적이 태도로 대응 하지 말아야 한다.

리더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거나 반대파들로 부터 공격을 받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도 안된다. 상대가 나를 알아 주고 몰라주는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를 잘 모르고 어떤 일이든지 추진하는데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두번 째 강론 시간에 공자는 '정치'에 대한 토론을 시작 한다.

공자는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큰 화두를 던진다.

'세상에는 정치를 덕으로 하는 군주와 정치를 법으로 하는 군주가 있다. 

군주가 정치를 함에 백성들을 단지 정치적 법령으로만 이끌고, 백성의 잘못을 형벌 만으로 다스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며 백성을 위한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나는 어려서 매우 미천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 얼굴은 기억 조차 하지 못하고 어머니 마저 내나이 열일곱에 세상을 떠나 셨다. 나는 이미 열 다섯 살 때부터 학문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나를 제대로 보살펴 줄 아버지가 없고 돈도 권력도 없는 내가 내 스스로의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문'을 파고 드는 것이었다.

지난 오 백년 동안 유지 해왔던 주나라의 종법 봉건제도 사회 질서가 완전히 붕괴되어 덕의 정치와 에의 정치는 종적을 감춰 버리고 법과 형벌로 엄히 다스리는 세상이 되었다. 제후들은 자신들을 세상 제일로 여기고 선량한 백성의 재산을 수탈 하고 압수 하고 있다. 가신들이 점령해 버린 황궁은 각자의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해서 국가의 모든 기관의 재정 상태가 텅텅 비어 가고 있다.

예의 정치로 백성을 보살펴서 덕의 정치를 펼쳐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하나씩 바로 잡아 나아가야 한다.

내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혼돈의 나라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갔다. 하늘의 뜻으로 오십대 중반에 대사구가 되어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육십 줄에 들어선 나는 주변 열국을 떠돌아 다니며 7개국의 제후들의 관료가 되기 위해 노력 했지만 그들은 나를 등용하지 않았다.

자, 이제 나는 70줄에 접어 들었다.

내 마지막 소임은 제자들을 양성해서 '인성'을 제대로 갖춘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진정한 '학문'을 배우고 실천하고 설파 해나가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학문을 하는 이유는 사람 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자신을 바로 세우고 가정을 편안하게 꾸린 사람은 진정 백성을 위한 사회인으로 거듭 성장 할 수 있다.

자, 이렇게 '학문'을 연마 하면 기존의 굳혀진 생각을 유연한 사고로 바꿔서 더 새롭고 유용한 분야로 지식을 확장 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학문'이라는 실천 도구를 통해 세상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식견과 안목을 키워 나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란, 바르게 펼쳐 나가는 것이다.

나라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건 형벌과 법으로 가능하지만 도덕과 규범으로도 충분히 이끌고 갈 수 있다.

지난 모든 세월 동안 나는 내 인생 전체를 받쳐서 주나라 초기 상태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나라의 일부분이 사라져 버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는 지옥 같은 상태 속에서 나의 바램은 너희들이 사회 주요 자리에 올라가서 '인(仁)'과 '의(義)'를 실천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자가 73세 일기로 생을 마감 하던 시기는 춘추 시대 말기로 당시 공자는 3000여명의 제자를 거닐고 있었다.

제후의 관료로 채용 된 제자들은 총 72명으로 이들 중 열 명은 핵심 관료 자리 까지 올라가서 실질적인 정치에 큰 기여를 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격랑의 춘추 시대는 막을 내리고 260여년 동안 7개 패권국이 진나라에 의해 모두 통합 되었다.

스승 공자가 떠난 후 제자들은 8개의 학파로 나뉘어 져서 노나라, 제나라, 위나라 등으로 흩어져서 활동했다. 하지만 서로 간의 교류는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전국 시대를 종식 시킨 것은 진나라의 진시황으로 그는 10대 초반에 왕의 자리에 올라 가서 20대 부터 10년 동안 치밀하게 통일 준비를 한 후 30대에 조나라 -위나라-초나라-연나라-제나라를 차례 차례 무너트려 천하를 통일한다.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 한 후 진나라의 재상 이사의 주도하에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사상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 시켜버린다.

자신의 정치에 대한 비판을 묵살해 버리고 일체의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배격 하는 통치를 펼쳤다. 

진시황은 법가 사상을 중심으로 천하를 통일 했지만 10년의 통치 후 50대 초반에 급작스러운 죽을 맞이 한다..

한고조 유방에 의해 통치 된 한나라는 나라의 안정을 되찾은 후 유교로 국정의 안정적 통치를 펼치기 시작한다. 7대 황제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화 시켜서 충과 효로 나라를 다스리자 드디어 공자의 사상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논어'는 전체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학이편 1장은 2장으로 연결되고 2장은 3장으로 연결되어 16장까지 의미가 연결되어 있다. 이런 구성은 위정편의 기반이 되어 위정편 1장과 2장은 연결되고 2장은 3장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24장까지 연결된 '논어'의 핵심 사상은 [내적 수양을 거쳐 리더가 된 사람이 자신과 가정과 국가를 위해 어떻게 기여하는 것이 좋은지] 에 대해 학습-자기 주체성-언행일치-효도와 우애-자존감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 한다.

2500여 년 공자가 내세운 사상은 시대에 따라 농부에게는 농부에게 맞는 사상으로 직장인에게는 직장인에게 맞는 사상으로 조직의 리더에게는 그에 맞는 사상으로 정치인에게 정치인에게 맞는 사상으로 거듭 발전 해 나갔다.

현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지만 과연 이 사회에 어떤 리더가 말 보다 실천을 앞세우며  국가와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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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9-24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공자가 제나라에 의해 자신의 조국 노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제자 자공(단목사)를 보내 당시 국제 정세를 단박에 뒤집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를 패자에 오르게 하며 결국 자신의 노나라를 존속시킨 일화를 가장 좋아 합니다. 자공이 한번 움직여 전국시대 나라의 힘의 균형을 좌지우지했을 정도 였으니까요. 그런 제자를 키워낸 공자 역시 등용만 안 됐을 뿐이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인으로 추앙되는 이유가 분명있을 겁니다. 아마도 논어 속에 담겨진 어록들에는 곰곰이 곱씹어 볼 내용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Scott 님 좋은 글 감사드리고 한가위 명절 잘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카스피 2026-09-24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cott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