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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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여름 오전 무렵에 걸려온 의뢰인의 전화 한 통을 받은 사립 탐정 사와자키는 오후 2시로 약속 했던 장소로 차를 몰고 나간다.

탐정 사와자키가 평소와 달리 붐비지 않는 도로를 질주 하며 찾아 간 곳은 마카베 오사무라는 사람의 집으로 고급 주택가에서 크게 돋보이지 않지만 무척 호화스러운 모습의 저택이였다.

동화 속에서 나 나올 법한 저택 출입문을 지나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의뢰인 마카베 오사무, 수 년 동안 바깥 세상을 나와 본 적이 없는 사람 처럼 흰머리가 가득한 기다란 장발에 흙빛 얼굴 빛을 띄었다.

그는 행방이 묘연 한 딸을 찾고 있었는데 탐정 사와자키를 보자 마자 다짜고짜 돈 가방을 던지며 딸이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애원한다.

의뢰인 마카베 오사무가 건넨 돈은 현금 6000만엔, 탐정 사와자키는 최대한 신속하게 돈 가방을 들고 나가 버릴지 갈등 하던 사이에 덩치 큰 다섯 명의 남자가 그를 에워싼다.

이들은 형사들로 탐정 사와자키를 유괴 공범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수갑을 채워버린다.

느닷없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버린 탐정 사와자키, 자신의 알리바이를 적극 설명했지만 서장은 그가 유괴 공범이라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꺼낸다.


[가지키는 바로 카세트덱 스위치를 눌렀다. 재생이 시작되었다. 느닷없이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선명한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사가 수학 계산을 하는 듯한, 파가니니 스타일의 까다로운 프레이즈가 여러 차례 반복 되었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는 마카베의 유괴된 딸 사야카의 연주 소리로 연주가 뚝 끊어지는 순간 돈을 요구 하는 이로 추정되는 사람과 실강이를 벌이는 마카베 목소리가 나온다.


일주일에 두 번 받는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외삼촌의 집으로 간 줄 알았던 딸 사야카는 11살이지만, 이미 음악계에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미국에서 교향악단과 함께 공연을 할 정도로 일본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던 천재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사야카, 누가 납치한 것일까?

경찰은 신고를 받은 시점부터 바쁘게 움직이지만 연이어 걸려오는 유괴범의 협박 전화에서 범인의 위치는 물론 단서 조차 찾지 못한다.

유괴범은 거액의 현금 6천만엔을 요구 하면서 이 돈을 전달 할 인물로 탐정 사와자키를 지목한다.

6천만 엔이 든 돈 가방을 받은 탐정 사와자키는 유괴범이 지목한 장소로 향하고 유괴범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지목한 레스토랑 이름과 제한 시간만 알려 준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두 명의 사나이가 휘두른 흉기에 맞고 쓰러진 사와자키, 형사들이 범인을 추격하고 유괴범 전화 목소리의 용의자들인지 우왕좌앙 하는 동안 의식을 되찾은 사와자키는 납치 된 천재 소녀 사야카 주변 인물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레슨을 마치고 집에 도착 할 시간에 납치 된 사야카, 작가이자 출판사 편집 일을 했던 부모는 유괴범이 요구한 거액의 6천만 엔을 마련 하기 위해 처남 가이 마사요시에게 3천만엔을 빌렸다.

처남 가이 마사요시는 혹시 라도 유괴범에게 6천만엔이 넘어가서 자신의 돈을 찾지 못할 까봐 전전 긍긍하고 있는 동안 탐정 사와자키는 그의 주변 인물을 찾아 다니다가 양 쪽 집안이 돈에 얽혀 있는 사연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는 음악 같은 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양반이었다는 데,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자식들에게 음악 기초 교육을 반 강제적으로 시켰다더군요. 하지만 아버지나 고모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학비는 한 푼도 주려고 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아버지는 오히려 그게 자기 인생에 크게 플러스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단순히 구두쇠에 지나지 않았던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고 있죠. 그리고 우리 세 아들에게도 똑같은 교육을 실천할 셈이 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할아버지 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아 대학을 마칠 때까지는 돌봐주겠지만 그다음에는 자립하라고 했죠. 그래서 저와 둘째인 요시로는 대학을 졸업한 날 이후로 아버지에게서 경제적인 도움은 전혀 받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상당한 재산을 모았을 텐데 우리는 거기 기댈 수 없는 거에요. 그 재산은 일본의 음악 문화 발전을 위해 전부 기부할 작정이라고 선언했으니까요.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음악 문화란 물론 클래식이지 록 따위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록과 재즈 공연 연주를 하며 공연 이벤트를 벌이다가 빚더미에 앉은 처남 가이 마사요시의 큰아들, 망해가는 레스토랑을 붙들고 있는 둘째 아들, 대학을 중퇴하고 복싱에 빠져 버린 셋째 아들

마카베 부부는 자식이 생기지 않았던 시기에 오빠 부부의 막내 아들을 입양하고 난 후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딸 사야카가 태어난다.

그리고 이 십 여 년 동안 거의 왕래가 없는 가족들, 거액의 돈을 요구 하는 유괴범은 납치된 사야카의 친 아버지에게 큰 원한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기억하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돌렸다. 이런 시각에 전화를 거는 구실을,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도 경찰의 방문을 받아야 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첫 번째 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깨달았다. 전화 받을 상대방이 없는 날이라는 사실을 오늘 나는 평소 같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잘 안다. 내가 죽인 것이 될지도 모를 소녀 때문이다.]


하수구에서 사체로 발견된 마카베 사야카, 국화로 뒤덮인 커다란 제단 한가운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어른스러운 드레스 차림으로 바이올린 연주에 몰두 했던 소녀의 장례식장을 찾은 친척, 동네 사람들, 친구, 음악 관계자, 출판 관계자 그리고 침울한 표정을 한 방송국 남자 리포터가 마이크를 쥐고 생중계를 하고 있다.

장례식장에 잠복한 경찰들은 유괴범의 목소리, 낮은 음성의 여성의 목소리를 추적하지만 쉽사리 용의자를 파악하지 못한다.

탐정 사와자키는 살해된 소녀 집안의 주변 인물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마침내 유력한 용의자 집을 경찰과 함께 급습한다.


[나는 돈이 탐나서 유괴 같은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 건 아니에요. 사야카처럼 많은 것을 타고난 아이가 미웠습니다. 혼자서 이 세상 모든 행복을 누리는 듯한, 그 자신만만한 표정이 미웠어요. 하지만 이미 그 아이는 더는 그럴 수 없을 테니까 지금 어디 있는지 가르쳐드려도...]


탐정 사와자키가 6천 만 엔이 든 돈 가방을 들고 유괴범과 약속한 장소에서 익명의 일당들의 습격을 물리치고 공중 전화기에서 울렸던 전화를 받았다면 열 한 살 짜리 소녀는 죽지 않았을까?


승용차에 부착할 작은 위치 추적기도 없고, 휴대폰도 없었던 1989년 시대의 탐정 사와자키는 사냥 개 처럼 코를 벌름 거리며 아무도 신뢰하지 못하는 피해자 가족, 묘한 부탁을 해오는 야쿠자 그리고 양쪽 집안과 얽혀 있는 긴자 클럽의 마담 까지 주요 용의자와 공범들 중에 소녀를 죽인 진범을 찾아 낼 수 있을까?

미키 마우스를 사야카의 손에 쥐여 준 사람, 봄 방학 때 사야카와 단 둘이 말보로 음악제에 초대 받은 사람...

[니시신주쿠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와 우편함을 들여다보니 오늘 아침 신문과 함께 날개를 접는 방식이 특이한 종이 비행기가 들어 있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종이 성냥의 불로 전단지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나는 급히 생각을 바꾸고 성냥불을 껐다. 그리고 전단지를 원래의 비행기 모양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창문으로 가서 날개를 접어 올린 부분을 살피고, 풍향을 확인하고 바람의 세기를 재고 착지 지점을 점검했다. 이러다 보면 우리는 불쑥 삼십 년 전의 전문가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비행기를 초여름 오후 바람에 살짝 실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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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5-06 18: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 하라 료 소설 꼭 좀 읽어봐야지 하구선 여태 안 읽었네요. 첫 작품부터 읽는게 좋은가요?

scott 2022-05-06 20:58   좋아요 4 | URL
아닙니다 하라 료 작품(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순서 없이 읽어도 됩니다 ㅎㅎ

쿨켓님도 하라 료 팬!^^

햇살과함께 2022-05-06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처음 듣는 작가인데^^ 흥미진진하네요^^

scott 2022-05-09 15:33   좋아요 1 | URL
햇살님에 강추 합니다
하드보일드 문체왕!
하라 료 ^^

바람돌이 2022-05-07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동안은 일본 추리소설을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는 또 처음 듣네요. 스콧님이 팬이라니까 저도 살짝 보관함에 넣어뒀다가 추리소설 땡기는 날에 또 읽어보겠습니다

scott 2022-05-09 15:34   좋아요 0 | URL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라노벨 스러운 추리 미스터리물과 다릅니다


추리소설 땡기는 날!
바람돌이님께 하라료 작품들 추천합니다!^^

희선 2022-05-07 0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라 료 소설 개정판 나왔군요 이 책 봤는데,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제가 일본 미스터리 알고 얼마 안 됐을 때 봐서... 시간이 흐르고 여러 책을 보고 써도 잘 못 쓰기는 마찬가지네요 하라 료는 소설 어쩌다 한번 쓰더군요 마지막에 본 소설에서 사와자키는 사무실을 옮겼는데...


희선

scott 2022-05-09 15:35   좋아요 1 | URL
하라 료 작가가 작품을 워낙 늦게 써서 시리즈 물인데도
굉장히 긴 시간에 걸쳐 나옵니다
그럼에도 팬들은 기다려줄 정도로 정통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추구 해서
개인적으로 좋아 하는 작가 입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2-05-07 01: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이 책이 13년만에 개정판 나왔다는 소식 들었어요.
이 책의 작가도 개정판을 낸 건지, 아니면 우리 나라에서 번역 개정판이 나온 건지는 잘 모르지만,
그 소식 들어서인지 한 번 관심있게 보게 되더라구요.
비채가 김영사 임프린트 같은데, 맞는 지 모르겠습니다.
scott님, 주말 잘 보내세요.^^

scott 2022-05-09 15:36   좋아요 1 | URL
이 작품을 번역 하신 권일영 번역가님이 작가 하라 료에게 직접 연락 해서
다른 추리물 잡지에 기고 했던 단편(사와자키 탐정이 나오는 부분)을 실었습니다


비채는 김영사에서 장르물 전문 출판 인것 같습니다
서니데이님 화창한 월요일 오후
즐겁고 행복 하게 ^^

서니데이 2022-05-09 15:4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이전에 없었던 단편이 있다고 들었는데 scott님 댓글 읽으니 맞는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

scott 2022-05-09 16:08   좋아요 1 | URL
단편까지 포함 되어서
책 부피가 두툼 합니다 ^^

mini74 2022-05-07 0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헉. 눈인줄 알았는데 배수구군요. ㅠㅠ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어울리는 소설같아요 스콧님 ㅎㅎ

새파랑 2022-05-07 08:21   좋아요 2 | URL
저 어제 이 리뷰 표지보고 무서워서 잠을 못잤다는 ㅎㅎ

scott 2022-05-09 15:38   좋아요 2 | URL
저는 요 표지 장바구니 담겨 있을때
귀요운 토끼 한 쪽 눈👀 인줄 알았습니돠 ㅎㅎㅎ


파키스탄 인도는 40도라고 합니다(아직 오월초인데 ㅠ.ㅠ)

올 여름 우리 모두 녹아 내릴지도 ㅠ.ㅠ

scott 2022-05-09 15:38   좋아요 2 | URL
설!마 새파랑님
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