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즐거움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우리도서관 강연회에 초청하는 것이다. 최근에 이병률, 김영하 작가가 왔고, 이번엔 강신주 작가강연회를 열었다. 강신주 강연회는 내가 기획하지 않았기에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편안한 등산복 차림으로 온 작가는 인상부터 시크하며 포스가 남달랐다. 업무 담당자는 나름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무대옆에 커다란 나무 풍선을 장식했는데, 작가는 "강연하러 들어오다가 커다란 풍선이 있어서 허걱했습니다. 오늘 유치원생들이 왔나요? 공무원 발상이 참 구태의연 합니다.......". 끙! 내가 담당하지 않았음에 위안을 삼아야 하나? 풍선은 좀 별로이기는 했다. 벙커에서 이미 듣기는 했지만 말에 거침이 없고 즉문즉설이다. 솔직, 담백한 그는 "이혼해야 할까요, 굳이!" 하는 누군가의 메모 질문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혼하세요, 굳이!" 한다. 혈액형은 O형일까?
강의 주제는 <김수영을 위하여>였다.
시는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한 것이며, 가장 감정적인 글이다.
여행가는 이유는 감정을 깨우려고....
서정주, 윤동주, 김춘수, 도종환의 시는 시가 아니라는 거침없는 말도 한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 <거미> -
김수영 시인은 아내가 직장에 다니고 주로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하기싫은 걸레질을 어쩔수 없이 하다 천장을 올려 보았는데 거미줄에 홀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거미를 보면서 자신의 현재 모습과 오버랩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시가 눈으로 들어온다. 그저 낯설게만 느껴졌던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어볼 용기가 생긴다. 김수영의 시 '거미'가 탄생한 이후 거미에 대한 시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조차 없다는 이야기도 곁들인다. 매미, 나비라고 이름 붙여봐야 김수영의 시를 모방한 거라나?
마광수 교수와 비교하며 김선우시인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극찬을 한다.
마교수는 진정한 사랑 한번 못해본 사람이고, 김선우 시인은 제대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는 설명과 함께 19금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말들을 쏟아낸다. 듣고 보니 이 시가 참으로 야하네. 흐!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이혼을 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거침없는 말이 다소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의 자유로운 영혼, 해박한 지식은 부럽다. 얼마나 책을 읽어야 벙커에서 5시간씩 강연할 수 있는 입담을 갖게 될까?
오늘 강신주의 감정 수업을 구입하는데 그가 한층 친근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대화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사인하는 옆에서 지켜 보기만 했지만,
사인 받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그는 참으로 인.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