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찾아간 도시라면 무슨 생각부터 드는지? 나는 ‘걷는다‘는 생각부터 든다.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 P191

20대 후반, 내게는 두 종류의 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하나는 1980년대 사회과학서였고, 다른 하나는 발행된 지 몇 년 지난 여행 가이드북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첫째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 둘째 헌책방에서 헐값에 팔린다는 것. 싸다는 이유로 한두 권 사서 읽어보니 대책 없는 향수가 밀려왔다.... (중략)... 본래의 쓸모는 완전히 상실했지만, 한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뜻밖의 쓸모가 나를 매혹시켰다.

<지구가 하나뿐이라 다행이야> - P223

이 세상이 거대한 회전목마라면, 그리고 그 가운데 가만히 앉아 쉼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게 궁금하다면, 베트남 하노이 호안끼엠 호숫가의 호젓한 레스토랑을 추천하고 싶다. 그렇게 호안끼엠 호숫가의 레스토랑을 찾은 지난봄의 어느 저녁, 세상은 생맥주와 피자가 놓인 테이블 아에 앉아 있는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이 세상을 빙글빙글 돌게 만든 것은 바로 오토바이었다. 남녀노소, 허름한 차림의 노동자부터 양복을 갖춰 입은 회사원까지, 각계각층의 사람이 탄 오토바이가 호수 주위 일방통행로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노이의 아침에> - P227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세계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훌륭한 여행자는 여행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 여행자로 남는 사람이다.

<세상이 변해도, 장소가 바뀌어도 여전한 것> - P231

열심히 사진을 찍고 돌아온 어느 여행의 경우, 사진으로 남은 기억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하지만 너무 날카로웠던 걸까.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나 어디선가 풍기던 이국적인 냄새 혹은 여행지의 전반적 느낌 같은 건 송두리째 기억에서 잘려나간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사진 속 풍경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나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이 됐다.

<사진으로 다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 P235

여행지는 낯선 땅이기 때문에 무방비의 순간에 목격한 한 장면이 마치 인생의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거기에 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일 텐데 말이다.

<여행지에서 이따금 볼 수 있는 빛>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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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나 생생할 때 느껴진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낙타 고기의 맛> - P163

교통수단과 글쓰기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그간 세계적 석학들이 한번도 연구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이동 중에 글이 잘 써진다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유를 내 멋대로 추론하자면 아마도 자이가르니크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과 블루마 자이가르니크가 제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식당 웨이터는 샐러드와 메인 디시와 디저트, 음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문을 동시에 받아도 그걸 다 외울 수 있는데, 그건 주방에 갈 때까지만 기억하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버스가 회사 앞에 도착하면 어쨌든 내려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아무것이나 써본다는 생각이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이코노미석은 지상, 아니, 천상 최고의 창작 공간> - P143

경상북도만 한 크기의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만난 코끼리는 어릴 적에 나를 매혹시킨 바로 그 코끼리, 내 눈앞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는 바로 그 코끼리였다. 사육사가 손을 들어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해서 난생 처음 코끼리를 만져봤다. 그건 스페인 말라가의 로마 유적을 만지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피부는 돌처럼 딱딱했고, 털은 철사처럼 꼿꼿했다. 눈을 바라보노라면 순진무구한 무언가가 감옥 같은 몸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코끼리에게는 왜 이런 몸이 필요했을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만이 나를 매혹시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시 돌아와 내 눈 앞에 선 코끼리> - P111

제일 좋은 건 이제 막 도착할 그 도시에 대해 쓴 책이다. 장담컨대 그런 책이라면 코앞까지 바투 밀어젖히는 앞 좌석 등받이, 언제부터인가 옆 좌석의 남자가 점령해버린 팔걸이, 캄캄한 기내에서 혼자만 밝힌 독서등 같은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이코노미석에 앉아 조종사의 눈으로> - P71

사방에 지극히 공평하게 내리고 있어 가까운 비와 먼 비의 소리를 구별할 수 없었다. 소리의 멀고 가까움을 구별하지 못하니 빗소리는 도처에 존재했다. 내 안에도, 또 내 밖에도. 3월 1일의 비는 겨울비도, 그렇다고 봄비도 아니어서 부를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데도 그 비는 모든 것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순천만에서 바다의 대답을 듣다> - P82

더 극적인 경우는 기업가이자 소셜 미디어 개척자인 피터 섕크먼의 이야기다. 강연자로 인기가 높아 비행기 탈 일도 많던 그는 다들 사육 체험 공간으로만 여기는 비행기 좌석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2주 만에 원고를 끝내야 하는 출판 계약을 맺은 뒤, 그가 한 일은 도쿄행 왕복 비행기 표를 끊는 일이었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내내 글을 썼고, 도착해서는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타 글을 썼다. 그렇게 해서 그는 미국을 떠난 지 30시간 만에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비록 티켓을 사는 데 4,000달러가 들긴 했지만, 그에게는 남는 장사였다고 한다.

<이코노미석은 지상, 아니, 천상 최고의 창작 공간> - P145

아무리 마셔도 맥주는 정말 맛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로컬 비어가 있다. 조선족이 사는 옌지에서는 ‘빙천‘이라는 맥주를, 독일의 작은 도시 밤베르크에서는 ‘라우흐비어‘라는 맥주를 마셨다. 빙천은 조금 약한 ‘소맥‘ 맛이고, 라우흐비어는 돼지갈비를 태우고 남은 불판의 그을음을 맥주에 푼 것 같은 맛이다. 맥주를 마시고 나면, 차차 도수를 높여나간다. 로컬 비어처럼, 도수가 높은 술 역시 지역마다 유명한 것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모스크바에서는 벨루가를, 시안에서는 시펑지우를 마시는 식이다.

<소설가가 여행지에서 제일 많이 하는 짓> - P175

일본어 표현 중에 ‘아메오토코‘, 즉 비를 부르는 남자라는 게 있다. 여행이나 야외 행사에 나서기만 하면 비가 내리는, 운 나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략)... "난 여자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이 말은 원래 ‘아메온나‘, 즉 ‘비를 부르는 여자‘에서 파생된 단어니까. 여자 쪽이 훨씬 더 강하게 비를 부르는 힘이 있다. 아메온나는 일본 요괴백과에도 실린, 아주 유명한 요괴다.

<모처럼의 여행인데 비가 내려 짜증난다면>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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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소중하다고 남들이 말하거나 말거나 기필코 낭비하고 마는 그 무모함만은 부러웠다.

<우린 모두 젊은 여행자>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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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는 비포장도로를 주행할 때의 덜컹거림을 ‘몽골리안 마사지‘라고 불러 차라리 귀엽던데, ...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지는 방법> - P21

여행자라는 약한 존재가 되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법을 익히게 됐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에게는 근처에 있는 숙소를 찾아가는 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 동네 주민에게는 산책만큼 쉽다. 그러므로 그 여행자에게필요한 행운은 단 한 사람, 그 숙소의 위치를 아는 현지인을 만나는일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대단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다. 서로가 약간의 용의를 내기만 하면 된다.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용의, 선뜻 도와주겠다는 용의. 여행의 행운이란 이런 두 사람이 만날 때 일어나는 불꽃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행운도 마찬가지겠다.인생 역시 말하자면, 여행 같은 것이니까.

<작가의 말 - 여행의 낙수, 반쯤 남은 생수> - P5

오르골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이 글을 쓰느라 방금 내가 만든 법칙인데,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오르골을 사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이 찾아오리라.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주려거나 뭐, 그런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막상 오르골을 사려고 나가보면 오르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요즘에야 인터넷이 있으니 어떻게든 구할 수 있겠지만, 당장 동네에서 살 수는 없다. 이게 바로 오르골의 법칙이다. 관심이 없을 때는 흔하던 것이 꼭 필요할 때가 되면 구할 수 없다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개똥의 법칙.

<오르골의 법칙, 도루묵의 법칙> - P25

...젊음은 소중하다고 남들이 말하거나 말거나 기필코 낭비하고 마는 그 무모함만은 부러웠다.

<우린 모두 젊은 여행자> - P38

그리하여 어느 날, 공원 벤치에앉아 슈퍼마켓에서 산 샐러드와 빵을 먹던 나는 스트레인저stranger라는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그건 어떤 사회적 연결 고리도 없는단독자를 뜻한다는 것을 단과 독, 때로 여행은 그 단어의 뜻을체험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단.독.여행>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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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부자는 해야 하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많은 사람
- 진짜 부자는 살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사지 않아도 되는 게 많은 사람
- 진짜 부자는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안 만나도 되는 사람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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