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나 생생할 때 느껴진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낙타 고기의 맛> - P163

교통수단과 글쓰기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그간 세계적 석학들이 한번도 연구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이동 중에 글이 잘 써진다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유를 내 멋대로 추론하자면 아마도 자이가르니크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과 블루마 자이가르니크가 제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식당 웨이터는 샐러드와 메인 디시와 디저트, 음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문을 동시에 받아도 그걸 다 외울 수 있는데, 그건 주방에 갈 때까지만 기억하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버스가 회사 앞에 도착하면 어쨌든 내려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아무것이나 써본다는 생각이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이코노미석은 지상, 아니, 천상 최고의 창작 공간> - P143

경상북도만 한 크기의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만난 코끼리는 어릴 적에 나를 매혹시킨 바로 그 코끼리, 내 눈앞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는 바로 그 코끼리였다. 사육사가 손을 들어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해서 난생 처음 코끼리를 만져봤다. 그건 스페인 말라가의 로마 유적을 만지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피부는 돌처럼 딱딱했고, 털은 철사처럼 꼿꼿했다. 눈을 바라보노라면 순진무구한 무언가가 감옥 같은 몸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코끼리에게는 왜 이런 몸이 필요했을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만이 나를 매혹시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시 돌아와 내 눈 앞에 선 코끼리> - P111

제일 좋은 건 이제 막 도착할 그 도시에 대해 쓴 책이다. 장담컨대 그런 책이라면 코앞까지 바투 밀어젖히는 앞 좌석 등받이, 언제부터인가 옆 좌석의 남자가 점령해버린 팔걸이, 캄캄한 기내에서 혼자만 밝힌 독서등 같은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이코노미석에 앉아 조종사의 눈으로> - P71

사방에 지극히 공평하게 내리고 있어 가까운 비와 먼 비의 소리를 구별할 수 없었다. 소리의 멀고 가까움을 구별하지 못하니 빗소리는 도처에 존재했다. 내 안에도, 또 내 밖에도. 3월 1일의 비는 겨울비도, 그렇다고 봄비도 아니어서 부를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데도 그 비는 모든 것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순천만에서 바다의 대답을 듣다> - P82

더 극적인 경우는 기업가이자 소셜 미디어 개척자인 피터 섕크먼의 이야기다. 강연자로 인기가 높아 비행기 탈 일도 많던 그는 다들 사육 체험 공간으로만 여기는 비행기 좌석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2주 만에 원고를 끝내야 하는 출판 계약을 맺은 뒤, 그가 한 일은 도쿄행 왕복 비행기 표를 끊는 일이었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내내 글을 썼고, 도착해서는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타 글을 썼다. 그렇게 해서 그는 미국을 떠난 지 30시간 만에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비록 티켓을 사는 데 4,000달러가 들긴 했지만, 그에게는 남는 장사였다고 한다.

<이코노미석은 지상, 아니, 천상 최고의 창작 공간> - P145

아무리 마셔도 맥주는 정말 맛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로컬 비어가 있다. 조선족이 사는 옌지에서는 ‘빙천‘이라는 맥주를, 독일의 작은 도시 밤베르크에서는 ‘라우흐비어‘라는 맥주를 마셨다. 빙천은 조금 약한 ‘소맥‘ 맛이고, 라우흐비어는 돼지갈비를 태우고 남은 불판의 그을음을 맥주에 푼 것 같은 맛이다. 맥주를 마시고 나면, 차차 도수를 높여나간다. 로컬 비어처럼, 도수가 높은 술 역시 지역마다 유명한 것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모스크바에서는 벨루가를, 시안에서는 시펑지우를 마시는 식이다.

<소설가가 여행지에서 제일 많이 하는 짓> - P175

일본어 표현 중에 ‘아메오토코‘, 즉 비를 부르는 남자라는 게 있다. 여행이나 야외 행사에 나서기만 하면 비가 내리는, 운 나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략)... "난 여자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이 말은 원래 ‘아메온나‘, 즉 ‘비를 부르는 여자‘에서 파생된 단어니까. 여자 쪽이 훨씬 더 강하게 비를 부르는 힘이 있다. 아메온나는 일본 요괴백과에도 실린, 아주 유명한 요괴다.

<모처럼의 여행인데 비가 내려 짜증난다면>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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