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다이어리 - 어느 애주가의 맨정신 체험기
클레어 풀리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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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나는 처음 만나고 4년 후에야 키스를 했다. 그러자 발밑의 땅이 모래에서 바위로 변했고, 나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의아했다. - P32

에이브러햄 링컨은 1842년 금주 연설에서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명석하고 정열적인 사람일수록 이 악습에 빠지기 쉬운 것처럼 보입니다. 과음이라는 악령은 천재적이고 마음이 후한 사람의 피를 빨아먹으며 즐겨왔습니다." 명석하고, 정열적이고, 마음이 후한 천재. 수염이 좀 수상해 보이는 사람의 말이지만 이건 받아들이지. - P38

나는 ‘개의 털‘, 즉 해장술을 열렬히 옹호했다. 이 표현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리면 그 개(잡을 수 있다면)의 털을 물린 상처에 발라야만 나을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에세 기원한 것이다.
광견병 치료법과 달리 숙취 치료법 ‘개의 털‘은 과학에 굳건한 기반을 두고 있다. 알코올음료에는 메탄올이 함유되어 있는데, 끔찍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독성물질이다. 의사는 메탄올중독을 치료할 때 에탄올-더 널리 알려진 명칭으로는 알코올-을 이용한다.
알코올이 숙취를 치료하는 또다른 이유는 숙취의 증상 대부분-짜증, 두통, 떨림-이 체내에서 알코올이 빠져나가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육체가 술을 더 달라고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코올을 주면 증상이 멈춘다. 간단하다. - P45

오늘은 금주 70일째인데, 아침에 거울을 흘깃 보닥다(마흔 살이 넘은 뒤에는 거울 앞에서 오래 서성여봐야 좋을 게 없다) 뭔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다.
머리카락이다.
술을 끊으면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수많은 장점-체중 감소, 숙면, 넘치는 에너지 등등-이 있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매끈하고 탄력 있는 머리카락은 생각지도 못했다. 풍성해진 내 머리카락은 뻔뻔스러울 만큼 자신감이 넘친다. 미국인 같다.이 정도면 주소를 따로 줘야 할 것 같다.
나는 구글에서 ‘금주와 머리카락‘을 검색해본다. 상상은 아닌 것 같다. 술을 마시면 피부처럼 머리카락 역시 탈수증세 때문에 건조하고 쉽게 끊어지고 끝이 갈라진다. 게다가 알코올은 철분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진다. 나보다 나이 많은 친구가 폐경이 되면 머리카락도 엉망이 된다고 했으니 내 머리카락의 마지막 전성기인 셈이다. 즐기렴,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낭들아. 너희들이 빛날 기회란다. - P98

AA의 공동 창립자 빌 윌슨은 자신이 알코올중독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나는 그럴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적도 많다) 딱 한 잔만 마시고 더 안 마실 수 있는지 보라고 했다. 그는 (AA의 경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술을 마시고 바로 멈춰보라. 한 번 이상 그렇게 해보라. 금방 결론이 나올 것이다. - P162

금주는 새로운 보톡스다. 더 싸고, 눈썹도 치켜올릴 수 있다. 그러니 나쁠 게 뭐 있는가? - P168

사실 나는 10년 넘게 아이들 물건 말고는 쇼핑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싫고 뚱뚱하다는 느낌이 들면 쇼핑이 재미없다. 나는 온라인 쇼핑만 했고, 주로 눈에 띄지 않는 것만 샀다. 검은색이면 더욱 좋았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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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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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빈곤층에게는 비슷한 문제행동이 동반되는 사례가 많고, 이런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규칙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보기에 통제력과 집중력이 요구되고 규범과 질서를 강조하는 학교환경은, 자신에게 익숙한 풍경이나 습속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중에 탈학교하거나 학력 경쟁에서 실패하는 아이들은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쓰는 ‘못 배우고 가난한 놈들‘,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들‘, ‘악다구니하며 싸우는 집구석‘ 같은 표현들은 모두 이런 문제행동을 비난하며 낙인감을 주는 말들이다. - P35

정상가족은 사회문화적으로도 강력한 밈이 되어 있다. ‘또 하나의 가족‘과 같은 상품 브랜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운영되는 회사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마치 ‘가족‘ 같은 관계가 되면 모든 갈등이 녹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은유한다. 일종의 가족지상주의라는 환상을 퍼뜨리는 것인데, 이는 그 관계 안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조직사회에서 가장 약자에게 행하는 착취를 은폐한다. - P63

반면, ‘정상가족‘의 틀이 공고하면 공고할수록 그 밖에 존재하는 ‘비정상가족‘ 혹은 ‘가족이 없는 개인 단위‘에 대한 배타성은 더욱 커진다. ‘1인가족‘,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정‘, ‘장애가족‘, ‘재결합가족‘, ‘다문화가족‘, ‘동성가족‘ 등등 현대사회는 매우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이들은 정상가족에 비해 각종 결핍이나 질병, 문제행동 등 많은 어려움을 중첩해서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는 밀려나 있다. 예를 들어 출산 지원 정책을 보면,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미혼모에 대한 지원 정책은 매년 줄어들고 잇다. 출생률이 낮다고 많은 예산을 들여 출생을 장려한다지만, 실제로는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인 셈이다. - P63

가난한 가족일수록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비정상가족‘일 가능성이 높고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상당수가 바로 여기에 속한 약자들이다. 정상가족의 배타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소외감과 열패감을 경험한다. - P65

그런데 이런 외적인 조건 외에도 지현에게는 분명 다르 힘이 더 있었다. 나는 이를 ‘성찰하는 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다. - P97

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현의 ‘도움 요청‘과 ‘성찰하는 힘‘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를 생존에만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가치를 보듬고, 어떻게 자아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하나의 훌륭한 전략을 보여준다. 이는 빈곤 정책을 고미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 P99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일수록 진로 선택의 중요한 장면에서 부모나 교사로부터 특별한 조언이나 지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P111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들이 주변에 안정적으로 돌봐줄 지지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이 과업 달성의 과정은 아픔과 혼란이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본 아이는 이후에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줄 안다. 그 시간이 자아존중감을 길러주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 P121

청소년기에 획득해야 할 과업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자아정체감‘이다. 에릭슨과 마샤에 의해 도입되고 발달해온 개념인 자아정체감은 나 자신에 대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이 어디에 위치해 잇는가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자아실현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 혹은 사고이다. 어른이라고 자아정체감이 모두 확립되어 잇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기에 이 과업을 잘 달성하지 못하면 그는 미성숙한 채로 남아 어른이 되고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데에 학습 능력이나 지능, 지위 고하, 재산 유무, 신체적 능력 등이 영향을 주긴 하지만 이것들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하면서 겪은 경험의 질, 직면하고 대처해본 어려움, 접해본 사람들의 다양성,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주는 자극 등이 더 깊게 연관된다.청소년지가 자신을 만들어가고, 정체성을 인식하고, 자아실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기의 과업으로 자아정체감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P123

청소년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이 방향도 없고 할 일도 없이 배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겉으로는 그저 싸돌아다니는 모습이어도 속으로는 골똘히 자신의 내면과 치열하게 만나는 시간이다. 젊은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이런 아무런 목적이 없는 시간 또한 ‘사색하는 시간‘이다. - P126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은 가난한 청년이 되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취직하자마자 바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수정은 가난을 벗어날 디딤돌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 P133

전에는 그렇게 내가 막 열심히 해야겟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교 오니까, 당장 대학교를 안 다니면 수급이 다 끊기고 생활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힘들어서 학교를 쉬고 싶어도 맘대로 못 해요. 학점이 안 나오면 장학금을 못 받으니까 또 무조건 못 다니고요. 알바도 하기 싫고 쉬고 싶은데 용돈이 없으니 헤야 되고. (...) 언니도 휴학을 하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아봤는데, 휴학은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휴학하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끊긴대요. 그러면 엄마 약값하고 생활비가 감당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학교를 다니는 수밖에 없었어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 P135

천현우 작가가 자신이 용접공으로 일했던 경험을 담은 책 <쇳밥일지>를 보면, 충분한 휴식과 마땅한 임금이 보장된 좋은 일자리가 가난한 고졸 노동자계급에게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수 있다. 툭하면 산업재해를 당하고,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입금에 반영되지 않으며, 미래를 위한 공부나 여가가 보장되지 않는 삶은 21세기 동시대에 일어나고 잇는 일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참혹하다. 청년 세대의 가난은 과도기적이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현재의 가난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직업훈련 지원, 주거 안정 자금, 일-학교병행이나 일-가정 병행(결혼한 경우) 제도 등이 더 절실해 보인다. 이런 제도들은 가난한 청년들에게 평생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안전망이 될 것이다. - P159

우리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너무 받은 것이 없고 자기 통제를 훈련받지도 못한 청소년들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다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기에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난한 가정을 대신해서 돌봐주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 P189

우빈 같은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겨우 그것밖에 꿈이 안 되냐", "대학은 가야 한다", "더 크고 긴 안목으로 생각해야지", "현재에 안주할 거냐"고 얘기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이들이 장기적인 안목에, 바람직한 좋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지 않았고, 실제로 이들이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현실적인 미래를 그리는 우빈들을 오히려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닐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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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의 눈물 - 눈꽃처럼 살다 간 소녀, 아야의 일기, 개정판
키토 아야 지음, 정원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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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사람. - P74

프랑스어로 물망초는 ‘20일 된 쥐의 귀‘라는 뜻인데, 그건 태어난 지 20일 된 쥐의 귀가 물망초 잎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삿짱이 알려주었다. - P79

"나는, 초능력을 믿거든(여기서, 나는 맞장구를 쳤다). 아메바의 처지에서 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초능력자이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겐 눈이 보이는 사람 역시 초능력자나 마찬가지잖아." - P80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건강합니다. 슬프게도 이 차이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히가시 고등학교를 떠나겠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지고 가려 합니다.
이렇게 결정하기까지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하겠지요.
참아줘내 눈물아!
억울하니 술래야.
분하면 잘해.
지면 안 되잖아. - P85

S와 Y가 "아야를 돕는 게 부담될 때가 있다."라고 했다는 말을 선생님께 전해 들었다. 내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벅차서 모두를 지치게 하다니, 모두 내 잘못이다. - P98

<밤과 안개>라는 책에 나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람들과 장애인인 나 자신을 금세 연결지어 생각해 버린다.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도 닮았잖아. - P107

비가 갠 후에 보니 창문 밖으로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서둘러 휠체어에 타고 밖으로 나갔다.
한 친구가 "휠체어 타는 사람은 좋겠다."란다.
말도 안 돼! 볏짚 인형으로 저주를 걸어 주겠어!
"넌, 걸을 수 있잖아!"라고 되받아치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무지개 앞이라 그만두었다. - P113

"저기 말이야, 네 잎 클로버는 세 잎 클로버의 기형이잖아? 행복하다는 건, 기형인 걸까?"
에미는 조금 생각해 보고, "희귀해서 그런 것 아닐까"하고 답했다.
그래, 행복이란 건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래서 간신히 찾았을 때, 찾아보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행복을 느끼는 걸 거야. - P116

초밥을 만들려고 밥을 식히다가 허벅지 안쪽을 2센티미터 정도 데고 말았다(밥그릇을 다리 사이에 끼고 있어서였다). 하얀 피부에 희미하게 붉은 기운이 도는 게 예뻐 보였다. - P131

이제 알 것 같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마음 씀씀이는 독서를 통해 길러지는 것이구나. - P142

꿈속에서도 난 다리가 불편하다.
꿈에도 휠체어에 탄 내가 나온다. 전에는 걸어 다니는 나였지만 말이다. - P164

드디어 듣고야 말았다.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너도 저렇게 돼 버린다."
진찰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화장실에서 넘어질 뻔한 걸, 엄마가 붙잡아 주었을 때였다. 필사적으로 엄마를 붙잡고 서려는 내 곁에서 빨간 체크무늬 옷을 입은 삼십 대 정도의 아주머니가 어린아이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슬프고 비참했다.
엄마가 위로해 주었다.
"아이를 저렇게 교육하면 나중에 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거야. 저건 늙어서 몸이 불편해지는 건, 좋은 엄마가 아니어서 그리 되었다는 말이잖아. 잘못 가르친 건 나중에 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거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종종 있을 거다.
어린아이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신기해서 말똥말똥 쳐다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는 재료가 된 건 처음이라 충격이었다. - P206

하루에 한 마디나 두 마비밖에 하지 않는 사람도 인간사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난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 P212

갓난아기는 8개월이면 앉고, 10개월이면 기어 다니다 한 살이 지나면 걷는다. 걸어 다니던 나는 기어 다니게 되었고, 지금은 거의 앉아서 산다. 퇴화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누워만 있게 되겠지.2 - P218

눈물을 참고, ‘엄마, 다시는 걸을 수 없어요. 붙잡고 서려 해도 설 수가 없어요.‘ 라고 종이에 써서 문을 열고 내밀었다. 내 얼굴을 보여 주는 것도,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괴로워서 얼른 문을 닫았다.
화장실까지 3미터를 기어서 간다. 복도가 싸늘하다. 내 발바닥은 부드러워서 손바닥 같다. 반대로 손바닥과 무릎은 발바닥처럼 딱딱하다. 보기 흉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유일한 이동수단이니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기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기어오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바닥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단번에 터져 나와 목 놓아 엉엉 울었다.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고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게 내버려 두었다. 엄마의 무릎이 내 눈물로 흠뻑 젖고, 엄마의 눈물이 내 머리카락을 적셨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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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본점 앞에서 만나 - 어느 직장인의 로또 명당 탐방기
원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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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고약한 습성이 있는 걸까?  - P85

인생의 리듬이 안단테에 맞춰 간다. 안단테는 ‘걸음걸이 빠르기로‘라는 뜻인데 보통 ‘느리게‘로 해석된다.  - P90

유명한 지역 맛집 근처엔 으레 로또 명당이 보쌈에 곁들이는 무말랭이처럼 붙어 다닌다. 로또 명당의 원리는 실로 간단하다. 당첨자가 많이 배출되려면 그만큼 많이 팔려야 한다. 맛집 탐방에 진심인 대한민국 사람들은 맛만 좋다고 하면 첩첩산중에서도 간판도 없이 운영하는 식당도 어떻게둔 찾아가지 않나? 맛집으로 인정만 받으면 손님의 유입이 끊기지 않을 거고, 근처에 있는 로또 판매점의 고객 또한 당연히 확보되는 데다가, 많이 팔린 만큼 당첨자가 배출될 확률 또한 높아진다. 자연의 순리다. Circle of Life가 아니라 Circle of Lotto다. 다양한 음식도 경험하고 명당에서 로또를 구입해 당첨 확률도 높이고. 이것이 바로 일석이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월급 받고 명절 보너스 받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문 앞에 있던 택배도 가져오고. 뭐 그런 거지. - P102

서울에서 함부로 웃으면 사기꾼이 달라붙고, 쉽게 울면 사이비가 붙는다고 엄마는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147 - P147

서울의 명당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로또 판매점애서 숱하게 산 로또들은 모조리 낙첨. 차라리 5천 원으로 스무디나 사 먹을걸. 확실한 행복에 투자할 돈은 없고 불완전한 상상을 위해 꼬라박을 돈은 있는 내 삶. - P149

로또에 당첨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지금 당장 한 달에 만 원이라도 후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바꾸었다고 해야 할까. - P151

서울에서 흘린 눈물은 이 도시에 바치는 구독료라 생각하니 그럭저럭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 P155

"당첨아 되겠나. 돈만 날리는 거지."
"그런 마음으론 뭘 해도 안 될 끼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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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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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내용이 소거된 상대의 얼굴 표정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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