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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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젊은 시절 황석영과 구로공단에서 자취했다는 얘기를 알고 있는지.... 그들은 운동권이었다. 그리고 난 그들이 어려웠다.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나는, 그 시대 자체를 항상 어려워했기 때문인데... 황석영에게는 익숙하고 그리운 오래된 정원일테지만 나에겐 언제나 낯선 정원인 그 시대. 그래서 그런지 환타지로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황석영의 소설에서 만나는 그 시대는 꽤나 진득한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황석영의 책을 읽고 나서야 환타지가 아닌, 실제로 느껴졌다. 처음엔 중단편들로 황석영을 접하기 시작했는데, 오래된 정원을 읽으니 나 자신의 인식변화가 더욱 실감난다. 고마운 일이다.

또 하나 고백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소설을 먼저 접한 후 매력을 느껴야 영화를 보게 마련인데, 이번엔 약간 달랐다. <예의없는 것들> 심야상영을 보러갔을 때였던가. 예고편은 <오래된 정원>이었다. 그런데... 예고를 보면서 그렇게 숨죽였던 적이 없었다. 비오는 날, 한윤희가 오현우를 보내면서 읊조리던 말, "밥해주고 재워주고 몸까지 줬는데 가버리냐." (정확한 대사는 아닐 테고). 아, 가는 남자를 보내면서 하는 말 중 제일 현실적이지 않나. 예고가 끝나자마자, 나란히 앉아있던 동행자와 "우리 저 영화 꼭 보자"라고 다짐을 했더랬다. 그리고 각각 이 책을 사들였지. 그런데 내 가슴에 찡하게 박혔던 저 대사는 책 속에 없드라. 원작에 충실하지 않았단 얘긴데...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나는 원작에 충실하지 않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 한 마디가 없었더라면 나는 원작을 읽어볼 생각도 못했을 테니. 그 신랄한 한 마디는 나에게 황석영을 다시금 알게 해 준 고마운 인연이다. 아직 보진 않았지만 훌륭한 영화임에 틀림없을 테고, 그건 황석영의 원작을 기초로 했기 때문일 거다. 

 

아. 오류 하나 발견.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소일거리 삼아 생쥐며 곤충이며 비둘기 따위를 기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한 수감자가 자신이 생포해 기르는 생쥐의 이름을 뽀삐라고 지었단다. 이유인즉슨 휴지광고에 나오는 토끼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데...

근데 그거 토끼가 아니라 강아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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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북 - 서은영과 장윤주의 스타일리시한 이야기
서은영.장윤주 지음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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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스타일리스트 서은영, 후반부는 모델 장윤주의 얘기.

전반부에선 그럭저럭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를 따라가려고 용쓰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고 애쓰는 한 스타일리스트의 이것저것 패션 조언이 많은데, 의외로 군데군데 유용한 팁이 많다. 화이트셔츠 연출법이라든지, 구두에 대한 소견이라든지. 게다가 우드판에 핀을 꽂아놓고 귀걸이를 주렁주렁 걸어놓아 아침에 찾기 쉽게 하는 방법은, 몇 달 전에 내가 직접 만들기도 한 터라 괜히 동질감도 느껴졌다. 몇 페이지에 한 번씩, 그녀가 쓱쓱 그린 듯한 그림도 정답다. 특히 흑색 색연필로 거칠게 칠한 샤넬 트위드 수트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나는 언제쯤 옷장 가득 샤넬의 수트를 걸어놓고 아침마다 무얼 입을지 고민할 수 있을까.. 부럽기만 한 남의 떡이다, 참. 밑줄 그어놓고 나중에 써먹을 만한 문장도 몇 개 있었다.

반면!!!! 정말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한 뒷부분!!! 우선, 문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문장력 뿐 아니라 단락 간 연결도 안 되고, 별 주관도 없는 것 같고, 그냥 누군가가 '윤주야. 그래도 네가 모델 중엔 고참이니까 책 한 번 써봐라, 은영이랑.' 이라고 권하길래 '아, 그럼 모처럼 시간도 나는데 몇 줄 끄적거리고 푼돈 좀 받을까' 하는 기분으로 썼다는 느낌. 패션잡지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장윤주의 사진 몇 컷이랑, '나 잘났소이다' 풍 일화 몇 가지 뿐이다. 정보도 없고 감회도 없다. 결국은 마지막 몇 페이지를 채 참지 못하고 팔랑팔랑 넘기곤 책을 탁! 덮어버렸다.

 

퇴근도 일찍 한데다 후배랑 저녁 약속도 있어서, '오늘은 사보텐 가서 돈까스 먹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 택배 상자를 열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스타일 북을 읽기 시작했는데, 서은영(전반부) 부분에서는 약속시간이 좀 더 늦춰지길 바랬다. 후배가 좀 더 일이 늦게 끝나서 10분이라도 전화를 늦게 주기를. 굉장히 배가 고프고 사보텐 돈까스의 특별하게 파삭파삭한 빵가루가 눈물나게 생각났지만, 그래도 그 부분은 다 읽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장윤주(후반부) 부분으로 진도가 나가면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문제!!!! 장윤주보다는 돈까스가 한 1000배쯤 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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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20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윤주씨가 쓴 부분이 상당히 못마땅 했어요 성의가 없다고 해야 할까, 원래 문장력이 많이 딸린다고 해야 할까?

고도 2006-11-0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모델 장윤주는 정말 최고죠. 사람은 각기 나름의 분야가 있나 봐요.
 
스타일 북 - 서은영과 장윤주의 스타일리시한 이야기
서은영.장윤주 지음 / 시공사 / 2006년 8월
일시품절


분더캄머라는 말이 있다. 독어로 'Wunderkammer'인 이 말은 '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패션잡지에서 우연히 이 단어를 보는 순간 "맞아! 바로 이거야"라고 혼자 감탄을 했었다. 세상의 기이한 모든 것들을 다 담을 수 있는 카메라가 탄생하기 전에 사람들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자신의 방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수집했는데, 이러한 방을 바로 '분더캄머'라고 부른다는 것이다.-42쪽

사랑을 하고 싶다면, 구두를 신으세요.-64쪽

"신발은 남자와 같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소선의 이론에 따르면, 여자들은 자신의 성격에 맞는 매혹적인 신발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와 미란다의 대화처럼. "결국 마놀로 블라닉 같은 남자가 있는가 하면, 버켄스탁 같은 남자가 있는 것 같아.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렸지."-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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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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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공사현장을 지나다보면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 위에 발자국이 찍혀있거나 구석에 소심하게 싸인이 돼있는 걸 본다. 철이 든 후엔 그러지 않지만, 어릴 적엔 나도 그런 소행을 만만찮게 저지르곤 했는데, 그건 아마도 시멘트가 굳어버리면 그  장소를 갈아엎지 않는 이상 발자국이나 싸인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게다. 나의 소심한 존재를 오랫동안 간직하고픈 욕구.

춘희가 만든 벽돌엔 그녀가 싸인 대신 그려넣은 개망초꽃과 시 한 수가 있다. 벙어리(후엔 병아리)인 그녀를 '붉은 벽돌의 여왕'이 되게 해 준 증거. 그리고 죽을 만큼 사랑에 목말랐던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미약하게나마 알리고 싶었던 욕구의 발현.

 

천명관은 알려진 대로 천상 '이야기꾼'이었다. 어째 밑줄 그을 틈도 주지 않고 술술 읽혀내려가게 하는 재주가 용하다 못해 기이하다. 대단하다. 간만에 대단한 작가를 발견해서 기쁘다. 그리고 그가 이미 죽은 작가가 아니라 한창 젊은 나이의 작가인지라, 앞으로도 이런 훌륭한 작품을 남겨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자뭇 흥분까지 된다.

내일 오전까지 마감해야 할 일이 있는데다가 이번 주에 할 일이 태산 같이 쌓여 있어 일 분 일 초도 아까웠는데, 이 책을 집어든 순간, 완독하는 것만이 최대 목표였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기다렸다가 읽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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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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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188쪽

난 세상이 둥근지 미처 몰랐어.
바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가 둥글어.
벽돌은 네모잖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걸로 둥근 집을 지으면 결국은 둥근 거지.
네모난 집을 지을 수도 있잖아.
그래. 하지만 네모난 집이 모이면 둥근 마을이 되잖아.-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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