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 -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백암 / 1993년 10월
평점 :
절판


대체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루키 개인에 대한 충성도도 높은 편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처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댔던가. 나는 하루키가 좋아서, 야쿠르트 팀도 좋고 안자이 미즈마루 씨도 맘에 든다. 하루키 말대로 두부는 정사 후에 먹는 게 제일 맛있을 것 같고, 모르는 도시에 가서 영화 한 편 봐야 할 것 같고, 아침부터 기차에서 비프 커틀릿이랑 맥주를 마셔줘야 할 것 같다. 소심하고 쫀쫀한 일상 속의 하루키를 만날 수 있으니 간혹 이런 수필집 읽는 맛도 괜찮다.

별 하나를 뺀 건, 맞춤법이나 띄워쓰기 오류가 심각하게 많기 때문.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틀린 맞춤법 교정보는 것도 이 책 읽는 쏠쏠한 재미 중 하나다. 하루키의 다른 책들과 겹치는 내용이 많아서 그닥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도 단점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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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 -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백암 / 1993년 10월
절판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다 주는 따스함의 문제, 라고 리차트 브로티간의 작품 어딘가에 씌어 있다. 커피를 다룬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제일 흡족스럽다.
- 커피를 마시는 어떤 방법에 대하여 --19쪽

나는 류 아처를 주인공으로 하는 로스 맥도날드의 일련의 작품들을 몽땅, 꼬리 끄뎅기까지 좋아한다. 로스 맥도날드의 소설이 지니는 미덕은 그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소심함과 성실함 속에 있다. 물론 결점도 그 안에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을 다 뭉뚱그려서, 나는 로스 맥도날드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다.
- 마이 네임 이즈 아처 --24쪽

"이 부근에 있는 개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얘기예요. 이 드넓은 숲 어딘가에 수정으로 된 작고 동그란 연못이 있어서 말이죠, 그 수면이 마치 거울처럼 매끈매끈하거든요. 그리고 거기에는 늘 저녁 노을이 비추어져 있다는 얘기예요.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늘 저녁 노을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글쎄요." 라고 말하고 개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정이란 아마도 기묘하게 시간을 빨아들이는 모양이죠. 정체 모를 심해어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아주 위험하겠지?"
"예,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모두 거기에 빠져들고 싶어진대요. 아무튼 정말 너무 너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라서. 그리고 한 번 거기에 빠져든 사람은 영원히 그 저녁 노을의 세계 속을 헤매 돌아다니게 되죠."
"별로 나쁘지는 않잖아."
- 거울 속의 저녁 노을 --28쪽

SNEAK은 '살금살금 걷다'란 뜻이다. 과연 스니커를 신으면 살금살금 걸을 수 있다. 스니커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틀림없이 친구들이나 가족들로부터 신나게 불평을 들었을 것이다. '누, 누구야! 너야.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오니까 깜짝 놀랬잖아'라든가, '당신, 이제 그 새 신발 그만 신었으면 좋겠는데요. 나, 섬뜩해서 접시를 벌써 세 개나 깨고 말았다구요; 라든가 하고.
- 마이 스니커 스토리 --40쪽

낮 시간에 아오야마 거리를 거닐고 있으면, 그렇고 그런 인간들과 곧잘 마주치곤 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안자이 미즈마루 씨와는 유난히도 자주 맞닥뜨렸다.
"안자이 씨, 뭐 하고 계세요?"
"아, 아, 뭐, 딱히, 잠깐 좀 말이지."
하는 식이다. 안자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한가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은 바쁘기 짝이 없는데도 그것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 그 경계를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 메밀국수집의 맥주 - -75쪽

삼십 년에 한 번밖에 우승을 하지 않는 팀을 응원하고 있노라면, 딱 한 번의 우승으로라도 오징어를 질겅거리듯 십 년 정도는 즐길 수 있다.
- 삼십 년에 한 번 - -77쪽

설령 메뉴에 비프 커틀릿이 들어 있지 않다 해도, 열차의 식당칸은 꽤 멋지다. 뭐랄까, 옛날 식당 같은 고아한 분위기가 좋다. 먹기 시작하기 전과 다 먹은 후에 서로 다른 장소에 있다는 것도 느낌이 신선하다. 그리고 덜커덩덜커덩하는 그 흔들림도 기분이 좋다.
- 식당칸과 맥주 --146쪽

모르는 거리의 모르는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가 묘하게 전신으로 파고 들어온다. 이것은 아마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본질적으로는 서글픔을 동반하기 때문이라서가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 여행지에서 영화를 보는 일에 대하여 --148쪽

신주쿠에 있는 술집 중에 아주 맛있는 두부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누군가 나를 그곳에 데려갔을 때, 나는 너무 너무 맛있는 나머지 네 모를 연달아 먹어 치웠다. 간장이나 양념, 그런 것을 전혀 뿌리지 않고, 그냥 새하얗고 매끌한 것을 날름 먹어 치우는 것이다. 정말 맛있는 두부라면 불필요한 양념을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영어로 하면 simple as it must be가 될까. 그 두부는 나카노에 있는 손두부집에서 요리집용으로 만드는 두부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맛있는 두부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자동차 수출도 좋지만, 맛있는 두부의 생산을 격감시키는 국가 구조는 본질적으로 왜곡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두부에 관하여 (1) --161쪽

'두부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얼까?' 하고 한가한 때에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대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 정사를 나눈 후에 먹는 것이다.
- 두부에 관하여 (4) - -166쪽

우리 집에 책이 너무 많아져서 며칠 전 책장을 새로 사들였다.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책이란 점점 늘어나기 마련인 그런 것이다. 짜증이 나서 1/3 정도는 팔아 치우자고 아침부터 선별 작업에 착수했는데, 막상 처분을 하려고 하니 '이건 이미 절판된 책이고' '또 언제 읽을지도 모르니까' '팔아 봤자 싸구려인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전혀 숫자가 줄지 않는다.
- 책 이야기 (1) <일간 아르바이트 뉴스>의 탁월성에 대하여 --192쪽

특히 그리스에 있을 때가 그랬는데, 아침에 일어난다 → 밥을 먹는다 → 수영을 한다 → 밥을 먹는다 → 낮잠을 잔다 → 산책을 한다 → 술을 마신다 → 밥을 먹ˆf나 → 잔다, 이런 패턴을 매일 매일 반복하느라, 신문이 파고 들어올 여유가 도무지 없었다. 그리스란 나라는 정말 굉장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 신문을 읽지 않음에 대하여 --208쪽

때때로 혼자서 토론을 하며 즐기곤 한다. 예를 들면 '인간에게는 꼬리가 있는 편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테마를 가지고 꼬리 지지파 A와 꼬리 배척파 B를 차례차례 연기하면서. 그런 걸 해 보면 인간의 의견 혹은 사상 같은 것이 그 얼마나 불분명하고 임기응변적인가 하는 걸 알 수 있다.
- 설날은 즐거워 (2) --246쪽

하루키 : 그래요. 빚이란 아주 바람직한 것이죠.
미즈마루 : 열심히 일하게 되니까.
하루키 : 연대감 비슷한 게 생기니 말입니다.
- 남자한테 '이른 결혼'은 손해인가 이득인가 / 안자이 미즈마루에게 듣는다 - -259쪽

아무래도 카레라이스는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중독되는 음식인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여자한테 샤부샤부로 곤죽이 되도록 공세를 하는 야쿠자처럼, 고기를 먹지 않는 나는 어머니 덕분에 카레라이스 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 카레라이스 이야기 / 글 :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무라카미 하루키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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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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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애인의 결혼식 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제 나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뿌듯해했다. -42쪽

연인 사이의 대화는 세 가지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의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이야기하려 들고, 종국에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140쪽

"하루 종일 입 한 번 떼지 않았는데도, 노가다라도 뛰고 온 양 기운이 쫙 빠지고 전신이 무기력해지는 증상. 넌 모르지?"
모른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다 들어왔기에 기운이 쫙 빠지고 전신이 무기력해지는 증상 말고는. 어쩌면 어디서 어떻게 살더라도 서른두 살쯤 되면 기운이 쫙 빠지고 전신이 무기력해지도록 세팅된 것이 인간의 몸인지도 모른다.-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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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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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관촌수필을 포함해, 그 정도 시절 책을 읽다보면  지리멸렬하지만 어딘가 낭만적인 가난과 사색이 부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경제가 웬만큼 발전해서인지, 식모니 양반이니 상것이니 하는 것들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거니와, 또 웬만한 도시에서 살아서인지 '완연한 가을에 모과와 땡감을 함께 씹으면 물대추 맛이 난다던지',  '어린아이가 안질에 걸리면 허투루 박았던 못을 빼내야 한다던지' 하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이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낭만이란 것은 고작해야 삐삐를 쳐서 "거기 6767번 호출하신 분이요"라고 외치고 가까스로 통화를 해 밀어(? ㅋㅋㅋ)를 나누는 고딩시절의 풋사랑일 뿐이니 할 말 다했다. 물론 지금 중고등학생들은 삐삐를 본 적도 없을 테니 그들에겐 이게 옛날식 낭만일 수도....(???)

이문구의 어린시절을 함께한 아름다운 관촌 이야기. 이문구 스스로 "관촌수필만은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여 좀더 낫게 써보려고 나름으로는 무던히 애쓴 편"이라는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그를 엄격하게 훈육한 조부, 한마당에서 자라다시피 한 옹점이, 대복이, 복산이 등... 그들 모두 그 시절 아니면 다시 없을 인물일 테지만, 그들이 아니었던들 이문구가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싶은, 대단한 소설의 소재들이기도 하다. 그런 훌륭한 관촌의 사람들과 유년 시절을 함께 한 이문구가 새삼 존경스럽고 부럽다.

나처럼, 관촌수필이라는 제목만 수없이 들어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읽어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름다운 토속어들과 그 시절의 민간요법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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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품절


가을이 완연해졌다. 범바위 찔레덤불 틈에 옻나무 잎새가 불긋거렸고, 너럭바위에 올라앉아 모과와 땡감을 함께 씹으면 물대추 맛으로 감쳤다. 김장밭에 들어가 왜무를 뽑아 먹으면 배 맛이 나고, 논배미마다 메뚜기 잡던 아이들의 두렁콩 서리하는 연기가 뒷목 끝낸 모닥불 마당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160쪽

읽다가 접어놨던 기사는, 김모라는 16세 된 소년이, 서울과 성남시 사이에 있는 어느 길목에서 과도로 택시 운전사를 살해하고 피 묻은 돈 1천 8백 원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붙잡혔다는 내용이었다. 형제 친척 고향 등을 모르며 일곱 살에 외톨이가 되어 10여 년을 서울의 처마 밑에서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는 그 소년은, 서울 인심이 너무 박정하여 살아갈 수가 없어 시골로 가려고 했으며, 시골로 가기 전에 먹고 싶던 것이나 한번 먹어보고 가려고, 그 돈 마련을 위해 그런 짓을 했다는 거였다. 소년은 이어서 그토록 먹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쌀밥과 콜라와 포도였다고 대답한 모양이었다.-184쪽

돌은 천년을 값없이 내버려져 있다가도 문득 필요한 자에게 쓸모가 보이면서 비로소 석재라는 허울을 얻으며 가치가 주어진다.-193쪽

내 안질이 사랑에 알려지면 할아버지는 곧 옹점이를 불러세우고 누가 언제 어디에다 무슨 못을 어떻게 박았는지 알아오도록 했다. 일진을 보아 살 없는 방향을 가리지 않고 때없이 함부로 벽이나 기둥에 못을 박으면 반드시 약한 아이의 눈에 삼이 선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주장이어서, 안에서는 사실 여부는 둘째치고 우선 옹점이 시켜 아무도 못박은 사실이 없다고 발명부터 했다. -286쪽

"역시 자네가 예서 사니까 든든허구먼."
"꾸부러진 나무가 선산 지킨다더니 내가 바루 그 짝이지."-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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