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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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에게 좋아하는 소설을 물어볼 때 제일 흔한 대답 중 하나가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소설이길래 이다지도 열광하나 싶어 읽어봤다가 '흥!' 소리만 연달아 냈었다.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기 때문인데, 이상하게도 그 여운이 오래 남아 몇 달 지난 후 다시 한 번 읽어봤었고 그제서야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릴 정도였으니 피츠제럴드에 대한 나의 애정은 정말 얕은 시냇물 수준. 단편을 꽤 썼단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과연 단편은 얼마나 큰 여운을 줄까 싶어 덥석 집어들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흥!'. 번역할 때는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원서로 읽으면 멋진 구절일 수도 있겠는데 번역해 놓으면 영 딴판인 문장들이 간혹 있었을까봐(?) 아쉽다. 번역문장에 비해 플롯은 참으로 훌륭한 듯하다. 장편으로 죽죽 늘려도 부족함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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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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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생김새를 보자면, 절대 지구가 그를 <깜박>할 리는 없을 테고, 우리도 그를 <깜박>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는 용케도 집에서 학교에서 지구에서 <깜박>한 두 중학생의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꺼낸다. 이런이런... 경험담이 아니라면 이렇게 조목조목 에피소드를 대기도 힘들텐데, 그는 어쩌면 학교 때 왕따? 아니면 그가 학교를 왕따? 모를 일이다.

일단, 박민규의 책이라 해서 주저없이 집어들긴 했지만,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두 가지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박민규에게 변화가 없다는 것. 잘 알려진 작가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제목을 가린 채로 한 페이지만 읽어도 바로 그임을 알아맞힐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문체가 개성적이기 때문. 그 나름의 문체에 빠져들어 하루키든 이외수든 성석제든 책만 냈다 하면 일단 믿고 사는 게 습관이다. 하지만 박민규의 경우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제목을 가린다 해도 박민규의 책임을 단박에 알아볼 순 있겠는데, 조금 식상하다는 느낌. 말장난스러운 문장은 이제 좀 줄여도 되지 않을까.

<핑퐁>이 아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다분히 개인적이긴 한데, 근래 들어 80년대 한국소설에 집착하고 있어서이다. 이외수의 <산목>,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등을 누런 속지 그대로 펼쳐보는데 그 맛이 꽤 쏠쏠하다. 진지한 그 시절의 느낌을 책곰팡이 냄새와 함께 느낀다는 건 요즘 나의 새로운 기쁨 중 하나. 그런데 박민규의 소설엔 '진지함'이 결여돼 있다. 물론 그래서 박민규를 참신하다, 새롭다, 젊다..고 표현하는 거겠지만 몇 권째 계속 진지하지 않다는 게 좀 아쉬울 뿐이다. 정말 다분히 개인적으로. 

그래도 박민규의 다음 소설이 기대되는 건, 또 그게 박민규이기 때문. 브라보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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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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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잭과 콩나무야. 이대로 콩나무를 타고 오르면, 어느새 하늘, 어느새 구름, 어느새 죽음.-26쪽

존 메이슨, <방사능 낙지>-63쪽

럭키!

그렇지, 바로 이 순간 자신의 득점에 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외쳐주는 거야. 탁구의 중요한 예절이지. 인류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하는 거야. 인류의 폼이 반격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순간 이런 행운이 따라줬기 때문이지. 그래서 실은, 인류는 다 함께 <럭키>라고 외쳐야만 해. 공이 왔던 곳을 향해, 자신들의 자세를 받아주는 곳을 향햇 ㅓ말이야.-142쪽

존 메이슨의 소설 <핑퐁맨>-172쪽

존의 유작인 <여기, 저기, 그리고 거기>-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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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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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낌으로는 서로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마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네는 주름잡힌 자기 콧잔등을 검지로 콕콕 찍어 보였죠.
여기로 알지. 나는 깊은 밤 어둠속에서도 병 속에 보드카가 들었는지 쉬납스인지 꼬냑인지 다 알아요. 술처럼 사랑에는 남다른 향기가 있는 거야.-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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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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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여자처럼 혀를 조금만 내밀고 꼬리 부분을 핥았다. 입안에서 차가운 액체로 녹아내리면서 무슨 그림같이 열린 창가에 나부끼는 작은 꽃이 프린트된 포플린 커튼이며, 창 너머로 불어들어오는 아카시아꽃의 향내며, 잉잉거리며 유리창을 오르내리는 꿀벌의 나른한 날갯짓 소리며, 하는 것들이 지나갔다. 거기 덧붙여서 옛날 전쟁 터지고 피란시절에 장사 나간 어머니가 머리맡에 두고 가던 미제 젤리의 맛이 지나갔다. 빨강, 노랑, 파랑, 보라, 초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검정색 젤리의 그 이국적이고 독특한 향내. 그건 무슨 풀로 향기를 냈을까. 나는 이것이 무엇인 줄 잘 알면서도, 세상의 모든 물건이 이제는 다 그쪽으로 간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20쪽

오래 전에 불경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정이 맺혔던 부분들이 제일 먼저 썩어 없어진대요.-39쪽

누렇게 퇴색한 옛날 사진의 인물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어른스럽고 무슨 현자처럼 은근한 권위가 있어 보이는 걸까.-83쪽

그러나 사람세상의 이 미완은 멋있지 않니? 미처 해내기 전에 같은 무렵에 살던 모두가 죽어버리니까. 불교에서 그걸 뭐라고 하더라. 백년 후에는 현재 세상에 살고 있던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댄다. 그맘때 사람들은 모두가 새사람들이지. 그렇게 거듭된단다.-147쪽

비가 오기 시작할 때 열에 달았던 땅이 식으면서 신선한 흙냄새가 올라오고 시원한 바람이 일면서 맛잇는 대기가 코 안에 가득 차지요.-228쪽

그 비가 밤새껏 오던 날, 내가 당신의 머리를 잘라주던 생각이 나셔요? 당신의 웃통을 벗기고 무릎 앞이랑 궁둥이 밑에다 신문지 깔아놓고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주고 갑갑할 테니까 손에 거울을 들려줬지요. 나 예전에 친구들하구 서로 커트를 해주던 솜씨가 있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쓰던 양면 면도날 하나만 엄지와 검지 사이에 쥐면 되었으니까. 한손을 빗처럼 벌려 당신의 머리카락을 물듯이 잡고선 면도날로 살살 그어내려가면 가지런하게 잘렸죠. 그런데 가위로 자르면 단면이 싹둑 잘리니까 그렇지 않은데 면도날로 잘라서 그런지 머리카락 끝이 불빛에 반사되는 거예요.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반짝거리는 거예요.
음, 솜씨가 괜찮은데.
하면서 거울을 들고 머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당신이 말했어요.
그런데 이건 뭐야. 반짝반짝하는 게......
면도날로 자르면 그래요. 보기 좋잖아. 머리에 별이 내려앉은 거 같애.-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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