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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박민규의 생김새를 보자면, 절대 지구가 그를 <깜박>할 리는 없을 테고, 우리도 그를 <깜박>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는 용케도 집에서 학교에서 지구에서 <깜박>한 두 중학생의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꺼낸다. 이런이런... 경험담이 아니라면 이렇게 조목조목 에피소드를 대기도 힘들텐데, 그는 어쩌면 학교 때 왕따? 아니면 그가 학교를 왕따? 모를 일이다.
일단, 박민규의 책이라 해서 주저없이 집어들긴 했지만,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두 가지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박민규에게 변화가 없다는 것. 잘 알려진 작가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제목을 가린 채로 한 페이지만 읽어도 바로 그임을 알아맞힐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문체가 개성적이기 때문. 그 나름의 문체에 빠져들어 하루키든 이외수든 성석제든 책만 냈다 하면 일단 믿고 사는 게 습관이다. 하지만 박민규의 경우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제목을 가린다 해도 박민규의 책임을 단박에 알아볼 순 있겠는데, 조금 식상하다는 느낌. 말장난스러운 문장은 이제 좀 줄여도 되지 않을까.
<핑퐁>이 아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다분히 개인적이긴 한데, 근래 들어 80년대 한국소설에 집착하고 있어서이다. 이외수의 <산목>,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등을 누런 속지 그대로 펼쳐보는데 그 맛이 꽤 쏠쏠하다. 진지한 그 시절의 느낌을 책곰팡이 냄새와 함께 느낀다는 건 요즘 나의 새로운 기쁨 중 하나. 그런데 박민규의 소설엔 '진지함'이 결여돼 있다. 물론 그래서 박민규를 참신하다, 새롭다, 젊다..고 표현하는 거겠지만 몇 권째 계속 진지하지 않다는 게 좀 아쉬울 뿐이다. 정말 다분히 개인적으로.
그래도 박민규의 다음 소설이 기대되는 건, 또 그게 박민규이기 때문. 브라보 박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