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8] 여중생과 고대 어머니의 지혜


엄마들과 논어 읽기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낳아 준 어머니에게 갚지 못할 은혜를 받았는데, 이렇게 커서도 어머니들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엄마들을 만나면서부터 내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거든요. 어머니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사랑입니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책 놀이를 주로 하다가 점점 대범하게 인문학 이야기와 동양철학까지 세상에 꺼내 놓을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어머니들의 지지가 컸습니다. 대강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머니들을 볼 때도, 작은 소강당에서 몇몇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나를 바라보고 응원하는 눈빛을 받으며 힘을 얻었습니다. 나는 바로 이게 어머니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나는 <논어>를 스승 공자와 제자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는데, '논어 읽는 엄마'는 공자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과 만나는 공간입니다. 작은 모임이지만 논어 읽기 모임에 참여한 어머니들은 무척 열정적이고 따뜻했습니다. 모임에 참여한 어머니들의 일성을 몇 개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번도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요. 아이에게 고전을 읽혀야 하는데 제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너무 생각없이 그냥 하루하루에 너무 매진해서만 사는 것 같고. 너무 무식한 것 같아서"

"제가 항상 제 시각으로만 남을 판단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논어에서 가르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 같이 공부하고 싶었어요."

"자식한테만 읽어라 읽어라 할 게 아니라 대화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왔어요."

엄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가르쳐주는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도서관에서 한참 글을 쓰다가 배가 고파서 편의점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여중생 두 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여중생들과 동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중생들이 대화가 참 재밌었어요.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는데, 우리 엄마는 뒤끝이 없어. 나랑 대판 싸우고 나서 십 분도 안 지났는데 완전 밝은 얼굴로 밥 먹으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인간관계가 엄청 멍청해. 나도 그걸 닮았는데, 그건 바꾸고 싶지 않아."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여중생이 맞장구를 칩니다. 

"나도 엄마 닮아서 인간관계가 엄청 멍청한데, 초등학교 때 그것 때문에 피본 케이스야. 하지만 나도 그걸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어."

상당히 거칠게 말했는데 '인간관계가 멍청하다'는 여중생의 표현에는 어머니의 속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뜻을 굳이 풀어본다면  "피해를 주건 이익을 주던 넓고 깊게 사람을 포용하는 태도", "계산적이지 않은 모습"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 어머니의 그 딸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자들은 남자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왔습니다. 로마의 건립 초기에는 여자들이 부족해서 '여자 훔쳐오기'가 국가정책이었습니다. 로물루스가 다스리던 로마는 이웃 부족인 사비니에서 많은 여성들을 강탈해갔습니다. 사비니 부족은 오랜 시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았고 양군은 베스타 신의 성전에서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로마에 잡혀 갔던 사비니의 여인들은 눈물 맺힌 호소로 양쪽 진영을 감동시켰고 휴전협정을 맺게 됩니다. 어떤 장군이나 유세가도 할 수 없었던 여성의 위대한 승리는 여중생이 말했던 '멍청한 인간관계'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나요? 왜 우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심한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 우리는 억울하게 폭력에 의해 붙잡혀 왔어요. 또한 형제나 부모, 친척들로부터도 그렇게 오랫동안 버림받아 왔지요. 그런데 한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그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얽매어 있는 지금, 우리는 또다시 그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고 죽는 것을 보며 울부짖어야 하나요? 우리가 처녀로 있을 때에는 구출하러 오시지도 않더니, 지금에 와서야 아내와 어머니가 된 우리를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떼어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이것은 그 옛날에 우리를 버리고 돌보시지 않은 것보다 더 심한 일이에요. 저들의 사랑과 당신들의 열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해야 할까요? 만일 다른 어떤 이유로 전쟁하는 것이라면, 우리를 보아서라도 사위와 손자가 된 사람들에게만은 손을 대지 마세요. 만약 우리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를 데려가세요. 하지만 우리와 함께 당신의 사위와 손자까지 도 데리고 가세요. 우리를 부모와 형제 품으로 돌려보내셔도 좋지만 우리 남편과 자식들을 빼앗아가진 마세요. 제발 애원하느니 이제 또다시 우리를 납치해 가지는 마세요."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로물루스' 편

휴전협정 역시 독특한데, 전쟁을 종식시킨 여성들의 명예가 담겨 있습니다. 휴전문의 내용은 남편과 같이 머물러 있고 싶은 여자는 그대로 살되, 단 실을 잣는 일 이외의 모든 집안일은 하지 말 것. 그리고 로마인과 사비니 인은 시내에 함께 살되, 시의 이름은 로물루스의 이름을 좇아 로마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남자들은 위와 같은 처지가 되면 복수의 칼날을 갈고, 목숨을 던지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죠. 사비니의 여성만큼은 아니지만 45만명의 목숨을 살리려고 했던 조괄의 어머니도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운명을 결정지은 조나라와 진나라의 장평(長平) 전투에서 조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장군은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조괄의 병서'라는 속담이 전해지는데, 실전 경험 없이 책에만 의존하는 못난 사람을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조괄의 어머니는 자식이 나라의 대장군이 되었지만 임금에게 대장군 임명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버리고 45만의 조나라 아들들을 염려한 조괄 어머니의 눈물어린 설득은 사마천이 생생하게 기록에 남겼습니다. 

"예전에 제가 조괄의 아버지를 모셨을 때, 그 당시 제 아들의 아버지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먹여살리는 자가 수십 명이고, 벗이 된 사람은 수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왕이나 종실(宗室)에서 상으로 내려준 물품은 모두 군대의 벼슬아치나 사대부에게 주었고, 출전 명령을 받으면 그 날부터 집안 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아들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어 동쪽을 향해 앉아서 부하들의 인사를 받게 되었지만, 군대의 벼슬아치 가운데 누구 하나 제 아들을 존경하여 우러러보는 자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내려주신 돈과 비단을 가지고 돌아와 자기 집에 감추어두고, 날마다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둘러보았다가 그것들을 사들입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 아버지와 같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쓰는 것부터 다릅니다. 부디 왕께서는 제 아들을 보내지 마십시오."
- 사마천, <사기열전>, '염파·인상여 열전'

조괄 어머니의 진심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조나라 효성왕은 대장군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조괄의 어머니는 체념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제안을 합니다. 

"왕께서 굳이 그 아이를 보낸다면, 그 아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저를 그 아이의 죄에 연루시켜 벌을 받지 않게 해주십시오."
- 위와 같은 책 

조괄이 대장군으로 임명되자 군령을 모두 밖고 군대의 벼슬아치들을 모두 교체시키자 조나라 군대는 술렁였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나라는 조나라 군대의 식량 운송로를 끊고 허리를 끊어버렸습니다. 결국 45만명이나 되는 조나라의 군사는 모두 전사하거나 굶어죽거나 생매장을 당하고 나이가 어린 병사 240명만 조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기세가 오른 진나라는 조나라 서울인 한단을 포위해 1년이나 조나라를 괴롭혔습니다. 조나라 왕은 조괄의 어머니에게 한 말이 있기 때문에 그녀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들은 보는 눈이 다릅니다. 이러한 점을 발전시키고 꽃피우게 할 수 있다면 가족에게도, 사회에게도 커다란 행복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나'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자아'를 찾을 수 있도록 어머니 스스로도 노력하고, 가족들도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 안에는 '나', '아내', '어머니', '친구', '직장인' 등 여러 가지 자아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아내'나 '어머니'라는 자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어머니들이 다양한 자아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어머니 스스로도 행복하고 가족도 행복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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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7] 아빠들은 어떻게 자라왔나?

남자들의 수난시대입니다. 결혼할 상대를 제때 구하는 남자를 구경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외국인 아내도 참 많아졌죠. 예전에 일본에서 유행하던, 물론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황혼이혼(黃昏離婚)이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었습니다. 남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육아를 하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딸과 아들을 둔 아버지들의 경우 딸에게 하는 행동과 아들에게 하는 행동이 같은가요? 똑같지는 않겠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엄마는 남편이 아들과 딸을 대하는 게 너무 달라서 마치 이중인격 같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남자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관념이 오래도록 내면화되다 보니 자신의 아들에게도 그렇게 대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어렸을 적에 큰 수술을 많이 받아서 병약했습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신나게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학교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을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다 보니 꽃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나비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바다도 보였습니다. 유심히 꽃과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감정이 일어나서 종이에 적게 되더라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문예반에 들어가서 동시를 썼습니다. 중학교 때는 문예반이 없어서 누리단 활동을 했지만 고등학교 때 다시 문예반을 했고, 대학교 때는 공과대학 다니면서 문학동아리 생활을 했습니다. 나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이 어땠을 거라고 짐작이 되시죠. 중학교 고등학교 남자 아이들은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말을 할 때 육두문자를 섞어 쓰지 않으면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였죠. 게다가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상업고등학교에 갔으니 겉멋이 든 아이들이 꽤나 많은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가족생활 역시 1남2녀로 자라서 두 누나와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섬세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데에 익숙해졌습니다. 정신적으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을 거라는 짐작이 들지 않나요? 정신적으로 더 힘든 시기는 역시 군대 생활이었습니다. 훈련을 받고 내무반 생활을 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몇 평방미터의 청소구역 문제 때문에 직할부대가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들의 세계란 게 좀 치사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들만 가득한 세계에서 섬세한 심결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첫째 민준이는 나의 이러한 심결을 타고났습니다. 어쩌면 아빠와 비슷한 고통을 겪을지도 모르는 민준이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 우연히 발견해 지금도 힘이 되고 있는 보들레르의 글입니다. 

기질과 정신적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에 의해 길러진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유모적 보살핌과 어머니의 귀여움, 그리고 누이의, 특히 '작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큰누이의 사탕발림은 남성적 기질을 반죽처럼 주무르면서 바꾸어 버린다. 출생 이후 여인의 부드러운 분위기, 그녀의 손과 가슴, 무릎과 머리, 그리고 넘실거리는 그녀의 유연한 인상이 풍기는 향취에 오랫동안 젖은 남자는 예민한 신경과 돋보이는 품성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그는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이 되는데, 이런 속성이 없으면 더없이 힘차고 엄격한 천재도 예술의 완벽성에 있어서 미진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보들레르의 이 말은 어머니들과 책 놀이를 할 때 다시 떠올랐습니다. 한 어머니께서 "다른 어머니들은 경청은 잘 하는데 화제를 바로 돌려버려서 아쉬웠는데 선생님은 들은 말을 깊이 생각해서 인문학적으로 연결시켜서 들려주셔서 참 고마웠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경청하는 능력이 있지만,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의 경청 능력은 차원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성장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은 '남자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초와 초식남 등 남자를 표현하는 말이 많이 있지만 남성성은 여성성만큼이나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거대한 질문보다는 왜곡돼 있는 부분을 짚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영웅 중에서 가장 유명한 유세가인 소진과 장의가 있습니다. 소진은 진(秦)나라를 제외한 여섯 나라(연, 조, 한, 위, 제, 초)의 공동 재상으로 임명되어 최고 전성기를 보냈고, 장의는 소진의 합종전략을 깨뜨려 더욱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맹자가 장의를 평가한 대목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경춘이 말했다. "공손연과 장의가 어찌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한번 노하여 제후가 두려워하였고, 편안히 지내니 천하는 전쟁이 종식(終熄)되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이것이 어찌 대장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예(禮)를 배우지 아니했습니까? 사내가 관을 쓰는 것은 아버지가 이를 가르쳐 주고, 여자가 시집가는 것은 어머니가 이를 가르쳐 줍니다. 문 앞에까지 보내고는 주의하기를 '네 시집가서는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조심하여, 남편을 거슬리지 마라'고 합니다. 순종(順從)을 정도로 삼는 것이 아낙네의 도리입니다.
- <맹자> 6-2

경춘은 장의가 이룬 업적을 대장부답다고 했지만, 맹자는 장의가 업적을 이룬 내용을 분석해서 사내답지 못한 부분을 가려냅니다. 맹자는 동양철학자 중에서도 남성성이 유독 강한, 요즘 말로 하면 '마초 성향'이 강한 사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 앞에서 '대장부'를 운운하니 발끈할 만도 하지요. 소진과 장의가 어떻게 출세를 하게 되었는지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소진은) <주서(周書)> 「음부(陰符 : 병가서의 일종)」를 찾아내어 머리를 파묻고 읽었다. 1년쯤 되어서야 [유세할]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내어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방법만 있으면 이 시대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마천, <사기열전>, '소진열전'

즉, 소진과 장의는 사나이의 기상을 가지고 전국을 유세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속마음을 꿰뚫는 심리학을 이용해서 출세를 한 것입니다. 소진과 장의가 활약하던 전국시대는 권모술수가 횡행했기에, 역설적으로 대장부다운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경춘의 물음에 답변한 후에 자신이 생각하는 '대장부'에 대해서 말합니다. 

"천하라는 넓은 거처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고 천하의 큰 도리를 행하고,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해나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리를 행하며, 부귀도 그의 마음을 더럽힐 할 수 없고, 빈천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며, 위세나 무력도 그 마음을 굴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대장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 <맹자> 6-2

공자가 말하는 대장부는 조금 다릅니다. 용맹하고 고결한 것이 맹자의 대장부라면, 여유롭고 인자한 것이 공자의 대장부입니다. 공자는 남쪽 지역의 군자를 대장부의 표상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의 문답을 통해서 뜻을 이뤘을 때 어떻게 할지 비전을 이야기하는 모습속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대장부의 모습과 공자가 꿈꾸는 대장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로ㆍ증석ㆍ염유ㆍ공서화가 선생님을 모시고 곁에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보다 얼마간 나이가 많기는 하나 나를 꺼리지 말아라. 너희들은 뒤에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하는데, 만약 내가 너희들을 이해해 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가 불쑥 나서면 대답하였다. "제후의 나라가 큰 나라들 사이에 끼여 있어 군대에 의한 침략을 당하고 있고, 다시 기근까지 겹쳐 있다 하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대략 삼 년이면 백성들을 용감하게 만들고 또 올바른 길을 알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께서는 빙긋이 웃으셨다. 
"구야, 너는 어떠하냐?" 염유가 대답하였다. "사방 육칠십 리 또는 오륙십 리 되는 곳을 제가 다스린다면, 대략 삼 년이면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악 같은 것은 다른 군자의 힘을 기다리겠습니다."
"적아, 너는 어떠하냐?" 공서화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렇게 되도록 배우고 싶습니다. 종묘의 제사나 회의를 할 때, 예복을 차려입고 작은 보좌관 노릇을 하고 싶습니다."
"점아, 너는 어떠하냐?" 증석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가 '쨍!' 하고 한 번 튕기고는 거문고를 놓고 일어서서 대답하였다. "저는 세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과는 다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상관이 있느냐? 각자가 자기의 뜻을 말하는 것인데." 증석이 말했다. "봄이 되면 겨울옷을 간편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농번기가 지나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대에서 바람을 쐬고 흥얼거리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감탄하면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도 점과 함께 하고 싶구나!"
- <논어> 11-25

나는 남쪽지역인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공자가 말한 '남쪽 지방의 군자'가 더 끌린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나이란 따뜻하고 가정적인 남자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던지는 것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고 정직하며, 잘못했을 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사나이다운 행동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배운 남성적 가치관 속에는 아직도 허위와 위선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왜곡된 남성성의 찌꺼기를 처리하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하고, 이 글에서는 다만 이런 점도 있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로 보아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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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3-12-1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입니다. 어릴 적부터 군대 생활까지 모습에 선하네요^^

[나쁜아빠]라는 책과 승주나무님 글을 통해 이것저것 아픈 점 가져갑니다. 고맙습니다.

승주나무 2013-12-20 06:47   좋아요 0 | URL
여울마당 님 안녕하세요. <나쁜 아빠>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띵! 했네요. 나쁜 아빠가 되고 싶은 아빠는 한명도 없지만, 나쁜 아빠가 되지 않는 아빠 역시 극히 드물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맞는 책인 것 같아요. 잘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6] 가족끼리 눈치보게 하는 일은 없어야지요


아이들이 밤에 자기 전에 하는 일은 우유 마시고, 양치질하고, 화장실 가는 일입니다. 저녁에 밖에서 우유를 마시고 와도 자기 전에 꼭 우유를 달라고 합니다. 우유 먹을 배가 없기 때문에 몇 모금 마시다가 남깁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자동기계'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은 '반자동 기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거든요.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라는 책을 쓰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마치 삼각형이나 사각형처럼 다루겠다고 선언합니다. 인문학을 볼 때 무서운 것은 가족을 사랑이 넘치고 따뜻한 선의가 있는 모습으로만 보지 않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처럼도 본다는 점입니다. 가족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누군가요? ‘엄마’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집단에서든 가장 힘이 센 자, 또는 왕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의 질서가 정해집니다. 아이들은 힘이 센 엄마에게 매달리고,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봅니다. 이 글은 가족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을 위해서 썼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권력자가 부러워 보이고,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권력자는 피곤합니다. 견제를 많이 받아 시달리는 일이 많고, 견제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두들 자기 눈과 입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은 참 피곤한 일입니다. 중국사에서 수많은 시해 사건들을 보면 절대권력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조선시대 역시 왕에게 지적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부서도 있을 정도로 왕들의 일상은 고단했습니다. 정말 권력을 잘 쓰는 사람들은 권력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 서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입법가 리쿠르고스는 공화국을 세운 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여 정치적 권력을 분산시켰습니다. 리쿠르고스에게 권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후세의 스파르타 사람들은 독재정치가 될 요인이 아직도 강력하고 우세하게 남아 있다고 보고 군주의 폭력과 분노를 제어하기 위해서 왕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작업을 계속 했습니다. 이 중에서 테오폼푸스 왕이 남긴 말이 유명합니다. 왕비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합법적인 권력’을 자식들에게는 더 적게 물려준다고 왕을 힐난하자 테오폼푸스 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더 적어진 것이 아니오. 왕의 권력은 더욱 커진 것이오. 왜냐하면 이 권력이 더욱 오래갈 것이기 때문이라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영웅전>, '리쿠르고스 편'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축소한 덕분에 스파르타의 왕들은 적들의 시기나 그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반면 스파르타의 이웃 국가인 아르고스나 메세나의 왕들은 자신들의 왕권을 너무나 철저하게 고수하며, 대중들의 요구에 조금도 굽히지 않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사람은 단 두 사람만 모여도 권력관계가 생깁니다. 가족에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울 리는 없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절대 권력자의 복종’을 강조합니다. 절대 권력자 역시 복종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복종하는 대상이 없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폐해를 살펴볼까요?

“법조문에 따르면 당연히 유죄입니다만, 폐하께서 현명하게 헤아려 살펴 주십시오.”
- 사마천, <사기열전>, ‘혹리열전’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형법을 담당하는 관리가 사형이나 최고형을 내리기 전에 황제에게 허락을 받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교수형을 처할 때 대통령 결재를 맡거나, 미국에서 사형을 처하기 전에 주지사의 사인을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마천이 살던 시대에는 가혹한 관리들이 많이 있었는데,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법조문을 고무줄처럼 바꾸는 폐해가 많았습니다. 법을 엄밀하게 집행하지 못한 관리의 태도도 잘못이지만, 애초에 이런 구조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절대권력자인 황제의 잘못입니다. 집안의 권력자, 예컨대 ‘엄마’가 권력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아이들을 혼낼 때 엄마가 일일이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엄마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이렇게, 저런 경우는 저렇게 판단하기 쉽습니다. 엄마의 판단이 일관되지 않으면 판단에 영향을 받는 가족이나 아이들은 예측을 하기가 참으로 어려워집니다. 이것은 정말 피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엄마 역시 복종하는 원칙이 있다면 엄마의 눈치를 보는 일은 사라집니다. 

제가 알고 있는 노부부는 수십 년 동안 자식을 기르면서 두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처 번째 원칙은 “아이가 잘못을 할 경우 아이의 해명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아이가 큰 잘못을 했을 때는 혼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큰 잘못을 하는 순간 아이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부의 자제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가지 원칙 이야기를 했더니 “어릴 적에 잘못을 할 때 항상 이야기를 하게 해서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라고 답하더군요.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진 것입니다. 원칙의 생명은 집행입니다. 의지를 가지고 지키려고 해야만 원칙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원칙이 깨지면 잘못을 인정하고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과정을 통해서 빛이 날 수 있습니다. 
원칙은 ‘명분’과 같습니다. 명분이란 어떤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마땅한 것을 말합니다. 정치 역시 ‘명분’과 같습니다. 권력-원칙-명분의 관계가 깨지면 어떤 혼란이 찾아오는지 <맹자>에는 분명히 소개돼 있습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자,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천 리를 멀다고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셨으니, 장차 어떤 방법으로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꼭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신다면, 대부들은 어떻게 내 고장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며,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내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여, 위아래에서 서로 이익추구를 하게 되면, 나라는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만 량의 병차(약 100만 대군)를 소유한 나라에서 그 나라의 국왕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의 제후며, 천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에서 그 왕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 량의 병차를 소유한 고장의 대부입니다.”
- 맹자1-1

동양철학은 원천(源泉)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뜻이 잘 드러나지 않고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통하는 말이 많습니다. 예컨대 뙤약볕이 작렬하고 더워서 못 견딜 즈음에 ‘하지(夏至)’가 찾아옵니다. 여름이 끝에 도달해서 겨울이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손과 발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맹추위 즈음에 ‘동지(冬至)’가 찾아옵니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 ‘권력관계’를 벌써부터 생각해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부모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두어 살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잘 지켜보십시오. 힘에 의한 위계질서가 보일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권력관계의 구조를 비켜갈 수 없습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원칙과 명분을 가르치고 부모가 몸소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면 가족을 지배하는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민주주의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 체제를 말합니다. 부모 역시 견제 받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차 크게 어떤 일을 하려는 임금은 반드시 소환하지 못하는 신하가 있습니다. 상의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찾아갑니다. 덕망을 존중하고 도의를 즐기기를 이와 같이 아니한다면, 그와 더불어 어떤 일을 하기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탕왕은 이윤에게 먼저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왕이 되었고, 제환공은 관중에게 배운 뒤에 신하로 삼았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천하의 각 토지는 비슷하고 덕행도 비등한데, 서로 뛰어날 수 없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가 가르친 사람을 신하로 삼기 좋아하고,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탕왕이 이윤에게, 환공이 관중에게도 감히 소환하지 못하였습니다. 
- 맹자4-2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가족을 지배하는 원칙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칙을 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부가 서로 협의하는 경우가 있고, 시간을 두고 원칙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원칙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리 가족은 아이들과 함께 세운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함부로 도와주지 않고, 아이가 반드시 도움을 청해야 도움을 준다는 원칙이 그것입니다. 막내 민서는 완력이 약하다 보니 차 문을 여는 게 서툽니다. 내가 차문을 열어주려고 했더니 민서가 화를 냅니다. 나는 힘 약한 아이도 스스로 하려고 한다는 걸 알고 그때부터는 함부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차 문 열기 힘들어?’ ‘도와줄까?’ 물어봅니다. 아이가 도와주라고 하면 그때 도움을 줍니다. 동의의 절차를 밟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자주 물어보고 의향을 물어보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아이가 과자 봉지를 뜯는데 힘들어 하면 힘든지 물어보고 도와줄까 물어봅니다. 어떤 날은 아이가 힘들어도 스스로 끝까지 과자를 까려고 노력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날도 있습니다. 부모는 지레짐작하지 않고 질문을 하면 그만입니다. 이 원칙을 한동안 실천했더니 아이들이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아이들 역시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예쁘게' 말해야 합니다. '아빠 우유 줘' 대신 '아빠, 우유 주세요.'하고 예쁘게 말하는 원칙을 정해 놓았더니 따라하려고 노력합니다. 밖에 나가면 다른 어른들에게 부탁할 일이 많은데, 예쁘게 말하면 어른들이 대견해 하고 잘 챙겨주니 편안하니다. 
원칙을 정하되 자주 물어보는 것 역시 하나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권력관계, 명분과 원칙은 어린 아이들의 생활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민주주의 감각을 키워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민주주의를 책을 통해서 배웠지만 이미 아이들은 민주주의 감각이 타고 났으니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 스스로 복종하는 원칙이 있다는 것은 가족생활의 든든한 보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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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5] 공자에게 배우는 사랑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부모 자신의 관념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부모님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나온 질문입니다. 쉽게 대답할 수는 없는 질문이죠. 한 어머니가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관념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남과 다를 바 없지만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때, 아이들의 소망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에 의해서 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 어머니가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떤 부모든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을 인정하기 쉽지 않거든요. 우리의 교육체계와 사회적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통제'와 '교육'의 대상이지 '대화'의 상대자는 아닙니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 일종의 신분과 차별이 존재합니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죠. 우리 아이들은 민법상 미성년자(未成年者)로 규정됩니다.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통제의 대상이 됩니다. 부모님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의 의향을 물어보고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이 익숙하신가요?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의향을 물어보지 않고 결정하기 때문에 원래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순응적인 아이가 되어 갑니다. 예전에 어린이를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강연에 참석한 가족이 저자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여기 오기 싫었는데요 엄마가 억지로 끌고 왔어요. 그러면 엄마는 독재를 하는 건가요?"(아이)
"본인이 원치 않겠지만, 본인을 위해서 좋은 거라면 '선의의 독재'는 용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엄마)
"역대의 모든 독재자들이 자신의 독재를 '선의의 독재'라고 불러 왔습니다."(강사)
"하하하!!"(청중)

아이가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은 평소에 보기 어려운 장면이어서 신선했고, 부모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마음이 말로 명확하게 표현되어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처럼 이 부모님도 마음속에 사랑이 맴도는 모습입니다. 사랑이란 마치 예술작품처럼 마음속에서 소중하게 빚어내고 몸 밖을 나가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다행히도 전달할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돼 보냈던 사람에게 돌아오면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사랑'입니다. 아이와 이렇게 사랑하고 계신가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연애시절로 되돌아가 봅시다. 연애결혼을 한 엄마와 아빠는 결혼하기 전에 서로 사랑했던 사이입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고, 엄마에게 아빠의 사랑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를 선택한 것 아닐까요? 그 결실이 바로 아이입니다. 그런데 연애할 때 했던 것처럼 아이한테 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아이와는 연애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아이도 사람이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나 연인에 대한 사랑은 한핏줄입니다. 

나는 공자에게 두 가지 사랑법을 배웠습니다. 공자는 스승으로서 제자를 사랑하는 방법, 아버지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물론 당시 시대적 상황과 고정관념 때문에 군신관계처럼 설정돼 있지만, 진심과 본질만 걷어내서 보면 배울 만한 가르침입니다. 먼저 '집중하는 사랑'을 소개합니다. 

자로가 물었다. "들은 것은 곧 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형이 계시는데 어떻게 들은 것을 바로 행하겠느냐!"
염유가 물었다. "들은 것은 곧 행하여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들었으면 바로 그것을 행하여야지!"
공서화가 물었다. "유가 '들은 것은 곧 행하여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는 선생님께서 '부형이 계시다.'고 말씀하시고, 구가 '들은 것은 곧 행하여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는 선생님께서 '들었으면 바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하여 감히 까닭을 묻고자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그를 나아가도록 해준 것이고, 유는 남보다 두 배나 적극적이기 때문에 그를 물러서도록 해준 것이다."
- <논어> 11-21

<논어>를 여러 번 읽으면서 공자와 제자의 문답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제자의 성향에 따라서 공자의 대답이 달라졌습니다. 즉, 공자의 대답 안에는 제자가 반영돼 있었습니다. 자로와 염유는 같은 질문을 했지만 공자는 정반대의 대답을 해줍니다. 스승인 공자는 제자들의 평소 언행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놓고 있다가 질문을 했을 때 맞춤형 답변을 해준 것입니다. 제자에 따라서 달라지는 공자의 답변 방식 때문에 공자를 '스승의 표상'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집중하는 사랑'은 아이를 둘 이상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아이에 맞게 사랑을 주는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손가락들은 저마다 자신이 사랑을 덜 받는다고 생각하죠. 부모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로 잰 듯 사랑을 나눌 수도 없고, 특히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자식 사랑의 셈법은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기계적으로 사랑을 나눠주려는 부모도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면 두 아이 모두 사랑을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공자가 제자를 사랑한 방식대로 한다면, 아이의 평소 성격이나 감정 상태에 맞게 아이를 사랑해주고 북돋아 주면 아이는 온전히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민준이는 감성적이고 자연 관찰을 좋아합니다. 민준이 손을 잡고 오솔길을 걸으면서 단풍나무나 솔방울을 만지기도 하고,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날씨가 좋고 따뜻한 날은 가만히 앉아서 개미 구경도 합니다. 민서는 활동적이고 장난을 좋아합니다. "불룩불룩 뿡!" 하고 외치면서 엉덩이로 들이미는 장난을 칠 때도 있고, 헝겊으로 된 축구 골대를 펼쳐 놓고 던지기 놀이도 합니다. 민서가 화가 났을 때 손가락을 집개 모양으로 하고 "이만큼 화났어?" 하고 물어보면, 민서는 제 손가락을 양쪽으로 크게 늘립니다. "아!"하고 아픈 시늉을 하면 울던 민서가 까르르 하고 웃습니다. 아이들이 같이 있을 때는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찾아서 하기도 하지만, 아이와 둘이 있을 때 충분히 집중해서 놀아주면 대개 만족하고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아이들의 성향을 알고 있으면 아이들이 행동할 때 적절한 반응을 해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격에 맞는 부모의 반응을 보면 아이들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공자의 제자들도 집중하는 사랑 때문에 스승을 마음 깊이 따랐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독특한 사랑법은 '수고롭게 하기'와 '존중하기'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논어> 14-8

아이를 수고롭게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려고 애쓰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이건 아이를 망치는 길입니다.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집안일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을 분주히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거나, 이불을 털거나,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면 호기심이 생깁니다. 여러 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접근합니다. 빨래를 널고 있으면 자기도 널겠다고 하면 빨래 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거운 빨래 대신 양말이나 속옷 등을 아래쪽에 널게 합니다. 아이들은 아빠 따라서 양말과 속옷을 탁탁 털어서 고사리 손으로 빨래걸이에 넙니다. 아이들에게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을 말해주기도 하고,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갈 때는 함께 갈까 하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민준이는 매주 화요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화요일은 신경 써서 일찍 일어나려고 하고 아빠와 같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립니다. 종이 쓰레기 같은 무거운 쓰레기는 내가 들고, 민준이는 비닐 쓰레기 같은 가벼운 쓰레기를 가지고 갑니다. 이렇게 몇 번 하다 보면 민서도 따라 나섭니다. 남자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은 특히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점점 가정의 권력이 엄마에게 넘어가고, 남녀의 성비율이 차이나면서 남자들은 점점 배우자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배우자를 구하더라도 사랑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들었는데, 강사가 "여성들이여, '훈남' 찾지말고 가사분담해줄 남편을 찾으세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여성들은 능력 있고 잘 생기고 매력 넘치는 사람보다는 현실적으로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선택할 것입니다. 남자 아이들이 '집안일'에 경쟁력이 있다면 선택받을 확률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가르쳐줄 때는 막무가내로 하지 않습니다. 공자의 방법을 응용했습니다. 자도 자식을 수고롭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켰는데, 아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공자께서 백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시경>의 <주남>과 <소남>을 연구한 적이 있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연구하지 않으면, 그는 마치 담벽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논어 17-10)

진항이 백어에게 물었다. "당신은 특이한 가르침을 들은 게 있겠지요?" 그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일찍이 홀로 서 계실 때에 제가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지나가는데, '시를 배웠느냐?'하고 물으시더군요. '배우지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말할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물러나 시를 배웠지요. 
다른 날 또 홀로 서 계실 적에 제가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지나가는 데, '예를 공부했느냐?' 하고 물으시더군요.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예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 앞에 설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물러나 예를 공부했지요. 들은 것은 이 두 가지입니다."(논어 16-13)

공자는 자식에게 시경과 예를 공부하게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밝힐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챙기지 않습니다. 공자의 자식이 생각해보고 옳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하는 식입니다. 어찌 보면 권위적인 가장인 것 같지만, 자식과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이 방법을 따라서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강제로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고, 호기심을 가지면 그때부터 방법을 알려줍니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갈 때도 함께 가자고 하기 전에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말해주고, 쓰레기 버리러 간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입니다. 아이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나면 먼저 함께 가자고 제안합니다. 민준이는 요새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보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를 좋아합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릴 때는 카드를 올려놓고 버튼을 누르는 방식인데, 이 방법이 재밌나봐요. 아이들은 부모가 집안일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직접 보고, 하는 방법을 듣고, 재미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결국 아이들이 '수고'를 자처하게 만드는 셈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수고롭게 하는 방법은 이와 좀 다를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이 학원 저 학원 보내면서 시시각각 챙겨줍니다. 심한 경우는 부모님이 마치 매니저처럼 챙기기도 합니다. 대치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부모가 대학의 입시요강과 전형을 꿰뚫고 아이가 해야 할 일들까지 도맡아서 아이는 그저 공부만 했습니다. 아이는 점점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동양의 방식을 응용하면 좋겠습니다. 아이에게 학원에 보내기 전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떤 과목이 부족하고 학원에 보내야 할 것이 있는지 이야기 나누고 아이가 자기 학원 시간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하기 마련입니다. 대학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은 비전이나 큰 줄기를 조언해줄 뿐, 입시 요강을 찾거나 자기소개서 등을 쓰는 일은 아이가 도맡도록 해야 합니다. 입시 요강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일부를 도와줄 수는 있지만 부모가 주도해서 하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수고로운 일을 부모가 모두 해버리면 세상 물정 몰라서 점점 남들에게 뒤쳐져서 결국에는 부모를 원망하는 지경이 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집중하는 사랑과 존중하는 사랑을 익힐 수 있다면 부모와 아이의 마음이 서로 편안해질 것입니다. '돌아오는 사랑'을 부모도 알고 아이도 안다면, 그 가족은 핏줄처럼 따뜻한 사랑이 항상 흐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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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4] 동양이 부정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아이가 가장 예쁠 때가 언제인지 부모님들께 물어보면 ‘잠 잘 때’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새근새근 천사같이 잘도 자지요.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압니다. 천사들이 눈을 뜨면 울고불고 싸우고 부모님 속을 썩입니다. 아이들만 속을 썩이면 다행이죠. 나이가 늘 때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나가면서 아이에게도 '사회'라는 것이 생기면 부모의 애간장은 더욱 탑니다. 민준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한 살 많은 형에게 맞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참 속상했습니다. 부모 마음이라 그런지 선생님에게 항의하고, 그 형의 집에 가서 부모와 결판을 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더군요. 내 마음을 일시정지시키고 잠시 생각해 봤더니 그것이 아이들의 사회이고, 소중한 경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준이와 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왜 민준이를 괴롭히게 되었는지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부모들은 자신이 겪는 부정적인 상황을 인내하고 잘 견디지만 자기 아이만큼은 그런 상황을 안 만나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기라도 하듯 부정적인 상황이 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없애거나, 불안한 상황만 되어도 빨리 반응하고 진압을 해버립니다. 하지만 아이가 만나는 부정적인 상황을 부모가 제거해 버리는 순간 아이는 소중한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 아시나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정적인 상황을 피하고 싶습니다. 일단 눈에 안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 빨리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죠. '청양고추' 같은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매운 음식을 먹으면 우리는 냉수나 얼음물을 마십니다. 하지만 얼음물은 혀의 감각을 잠시 마비시킬 뿐 다시 매운 기운에 시달립니다. 매운 기운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방법은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침이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따뜻한 물이나 침이 천천히 매운 기운을 사그러들게 하면 더 이상 맵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매운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서경>이라는 경서에는 '만약에 약이 눈을 캄캄하고 어지럽게 하지 아니하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투약하고 나서 치유되어 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일시적인 증세가 유발되었다가 결과적으로 완쾌되는 것을 '명현'(瞑眩)현상이라고 합니다. 공자는 부정적인 상황과 시련을 묵묵히 견뎌내고 나서 성장하는 모습을 시처럼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한 해의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새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 논어9-27

부정적인 상황은 마치 예방접종 주사와 같습니다. 미리 작은 균을 경험해 봄으로써 항체를 키우는 과정과 같습니다. 아이가 부정적인 상황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차분하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대응을 할 것입니다. 민준이를 괴롭혔던 한 살 많은 형은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사촌누나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사촌누나가 민준이만 예뻐 해서 질투가 난 거였습니다. 만약 부모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차분히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정을 모르고 지나갈 뻔했습니다. 손쉬운 선택은 종종 문제를 해결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심리학자들도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A.매슬로 역시 “모든 악덕에는 저마다 선한 면이 있는데, 두려움이나 분노 등의 원인을 밝혀 나가다 보면 그런 선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양에서는 부정적인 상황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합니다. 

진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지고 따르던 제자들이 병이 나서 모두 일어나지 못하였다. 자로가 화가 나서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군자도 궁해질 때가 있는 겁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라야 궁함을 견딜 수 있다. 소인은 궁해지면 곧 함부로 행동하지."
- 논어15-1

학창시절 열심히 만들었던 오답노트를 생각해 보세요. 틀렸던 문제를 복기하고 반복해서 틀리지 않기 위해서 틀린 이유를 살펴봅니다. 인생에도 오답노트를 만들 수 있는데, 부정적인 상황을 피하면 오답노트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잘 배울수록 군자에 가까워지고, 부정적인 방법을 피할수록 소인처럼 함부로 행동하다가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입장이나 나의 감정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릅니다. 해마다 태풍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보지만 태풍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태풍은 부정적인 건가요, 긍정적인 건가요? 철학자 스피노자도 편협한 차원에서 좋고 나쁨의 가치를 판단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선과 악 그 자체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적극적인 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단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우리가 사물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되는 개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고 악일 수 있으며 또한 양자와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음악은 우울한 사람엑는 좋고, 슬픈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 스피노자, <에티카>(서광사), 210쪽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점을 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해 예견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양식일 뿐 미래의 상황에 대응하는 지혜를 담은 책입니다. 주역 점을 치면 어떤 경우도 완전히 안 좋은 것이 없고 완전히 좋은 것도 없습니다. 삶의 운 바로 옆에는 죽음의 운이 붙어 있어요. 살자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자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죠. 서당 다닐 때 훈장님은 “주역은 어떤 극한 순간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그 방법을 논한 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역의 지혜에 따르면 그 상황을 피하지 말고 일단은 직시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마냥 피해야 할 상황이 아니고 마냥 부정적인 상황이 아니고 다시 보면 쓸만하다는 거죠. 여기서 더 나아가 <맹자>는 부정적인 상황이 성장을 위한 거름이라고까지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이 사람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수고로이 하고, 그 신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어 보고, 나아가 그가 하는 일마다 어그러뜨리고 어지럽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격동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고, 그가 할 수 없는 바(능력)을 북돋운다. 사람은 항상 잘못이 있은 뒤에 고칠 수 있고, 마음에 곤란을 받고, 생각이 막힌 뒤에 분발하여 일을 하고, 얼굴색에 나타나고, 말소리로 나타난 뒤에 이해를 한다. 
안으로는 법도와 전통이 있는 세습 신하나 진중한 선비가 없고, 밖으로는 적국이나 우환이 없는 임금의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 그런 뒤에야, 우환 속에서는 생존하고, 안락 속에서 비로소 사멸한다는 것을 안다."
- 맹자 12-15

동양철학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보여주는 태도를 종합하면 무척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부정적인 상황을 만나면 피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수동적인 반응입니다. 수동적으로 반응하다 보면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점점 문제는 복잡해져서 피할 수도 없고, 대처할 능력도 기르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아이들이 부정적인 상황을 만난 것은 엉겅퀴를 만지는 일과 같습니다. 살살 도망치려고 하면 상처를 내고, 손을 힘을 주고 꽉 쥐면 괜찮습니다. 대한민국은 약자들이 살아가기에는 정말 가혹한 곳입니다. 강한 자들은 대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잔인하게 괴롭히지만, 무서운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주시하고 맞서면 점점 꼬랑지를 내립니다. 어린이집에 가거나 학교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사귈 때부터 이미 이와 같은 논리가 작동합니다. 무엇에든 맞서고 싸우라는 말이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을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라는 게 동양철학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부정적인 상황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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