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6] 가족끼리 눈치보게 하는 일은 없어야지요


아이들이 밤에 자기 전에 하는 일은 우유 마시고, 양치질하고, 화장실 가는 일입니다. 저녁에 밖에서 우유를 마시고 와도 자기 전에 꼭 우유를 달라고 합니다. 우유 먹을 배가 없기 때문에 몇 모금 마시다가 남깁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자동기계'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은 '반자동 기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거든요.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라는 책을 쓰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마치 삼각형이나 사각형처럼 다루겠다고 선언합니다. 인문학을 볼 때 무서운 것은 가족을 사랑이 넘치고 따뜻한 선의가 있는 모습으로만 보지 않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처럼도 본다는 점입니다. 가족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누군가요? ‘엄마’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집단에서든 가장 힘이 센 자, 또는 왕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의 질서가 정해집니다. 아이들은 힘이 센 엄마에게 매달리고,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봅니다. 이 글은 가족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을 위해서 썼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권력자가 부러워 보이고,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권력자는 피곤합니다. 견제를 많이 받아 시달리는 일이 많고, 견제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두들 자기 눈과 입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은 참 피곤한 일입니다. 중국사에서 수많은 시해 사건들을 보면 절대권력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조선시대 역시 왕에게 지적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부서도 있을 정도로 왕들의 일상은 고단했습니다. 정말 권력을 잘 쓰는 사람들은 권력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 서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입법가 리쿠르고스는 공화국을 세운 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여 정치적 권력을 분산시켰습니다. 리쿠르고스에게 권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후세의 스파르타 사람들은 독재정치가 될 요인이 아직도 강력하고 우세하게 남아 있다고 보고 군주의 폭력과 분노를 제어하기 위해서 왕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작업을 계속 했습니다. 이 중에서 테오폼푸스 왕이 남긴 말이 유명합니다. 왕비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합법적인 권력’을 자식들에게는 더 적게 물려준다고 왕을 힐난하자 테오폼푸스 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더 적어진 것이 아니오. 왕의 권력은 더욱 커진 것이오. 왜냐하면 이 권력이 더욱 오래갈 것이기 때문이라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영웅전>, '리쿠르고스 편'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축소한 덕분에 스파르타의 왕들은 적들의 시기나 그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반면 스파르타의 이웃 국가인 아르고스나 메세나의 왕들은 자신들의 왕권을 너무나 철저하게 고수하며, 대중들의 요구에 조금도 굽히지 않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사람은 단 두 사람만 모여도 권력관계가 생깁니다. 가족에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울 리는 없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절대 권력자의 복종’을 강조합니다. 절대 권력자 역시 복종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복종하는 대상이 없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폐해를 살펴볼까요?

“법조문에 따르면 당연히 유죄입니다만, 폐하께서 현명하게 헤아려 살펴 주십시오.”
- 사마천, <사기열전>, ‘혹리열전’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형법을 담당하는 관리가 사형이나 최고형을 내리기 전에 황제에게 허락을 받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교수형을 처할 때 대통령 결재를 맡거나, 미국에서 사형을 처하기 전에 주지사의 사인을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마천이 살던 시대에는 가혹한 관리들이 많이 있었는데,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법조문을 고무줄처럼 바꾸는 폐해가 많았습니다. 법을 엄밀하게 집행하지 못한 관리의 태도도 잘못이지만, 애초에 이런 구조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절대권력자인 황제의 잘못입니다. 집안의 권력자, 예컨대 ‘엄마’가 권력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아이들을 혼낼 때 엄마가 일일이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엄마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이렇게, 저런 경우는 저렇게 판단하기 쉽습니다. 엄마의 판단이 일관되지 않으면 판단에 영향을 받는 가족이나 아이들은 예측을 하기가 참으로 어려워집니다. 이것은 정말 피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엄마 역시 복종하는 원칙이 있다면 엄마의 눈치를 보는 일은 사라집니다. 

제가 알고 있는 노부부는 수십 년 동안 자식을 기르면서 두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처 번째 원칙은 “아이가 잘못을 할 경우 아이의 해명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아이가 큰 잘못을 했을 때는 혼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큰 잘못을 하는 순간 아이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부의 자제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가지 원칙 이야기를 했더니 “어릴 적에 잘못을 할 때 항상 이야기를 하게 해서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라고 답하더군요.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진 것입니다. 원칙의 생명은 집행입니다. 의지를 가지고 지키려고 해야만 원칙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원칙이 깨지면 잘못을 인정하고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과정을 통해서 빛이 날 수 있습니다. 
원칙은 ‘명분’과 같습니다. 명분이란 어떤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마땅한 것을 말합니다. 정치 역시 ‘명분’과 같습니다. 권력-원칙-명분의 관계가 깨지면 어떤 혼란이 찾아오는지 <맹자>에는 분명히 소개돼 있습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자,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천 리를 멀다고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셨으니, 장차 어떤 방법으로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꼭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신다면, 대부들은 어떻게 내 고장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며,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내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여, 위아래에서 서로 이익추구를 하게 되면, 나라는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만 량의 병차(약 100만 대군)를 소유한 나라에서 그 나라의 국왕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의 제후며, 천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에서 그 왕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 량의 병차를 소유한 고장의 대부입니다.”
- 맹자1-1

동양철학은 원천(源泉)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뜻이 잘 드러나지 않고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통하는 말이 많습니다. 예컨대 뙤약볕이 작렬하고 더워서 못 견딜 즈음에 ‘하지(夏至)’가 찾아옵니다. 여름이 끝에 도달해서 겨울이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손과 발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맹추위 즈음에 ‘동지(冬至)’가 찾아옵니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 ‘권력관계’를 벌써부터 생각해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부모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두어 살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잘 지켜보십시오. 힘에 의한 위계질서가 보일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권력관계의 구조를 비켜갈 수 없습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원칙과 명분을 가르치고 부모가 몸소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면 가족을 지배하는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민주주의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 체제를 말합니다. 부모 역시 견제 받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차 크게 어떤 일을 하려는 임금은 반드시 소환하지 못하는 신하가 있습니다. 상의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찾아갑니다. 덕망을 존중하고 도의를 즐기기를 이와 같이 아니한다면, 그와 더불어 어떤 일을 하기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탕왕은 이윤에게 먼저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왕이 되었고, 제환공은 관중에게 배운 뒤에 신하로 삼았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천하의 각 토지는 비슷하고 덕행도 비등한데, 서로 뛰어날 수 없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가 가르친 사람을 신하로 삼기 좋아하고,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탕왕이 이윤에게, 환공이 관중에게도 감히 소환하지 못하였습니다. 
- 맹자4-2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가족을 지배하는 원칙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칙을 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부가 서로 협의하는 경우가 있고, 시간을 두고 원칙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원칙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리 가족은 아이들과 함께 세운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함부로 도와주지 않고, 아이가 반드시 도움을 청해야 도움을 준다는 원칙이 그것입니다. 막내 민서는 완력이 약하다 보니 차 문을 여는 게 서툽니다. 내가 차문을 열어주려고 했더니 민서가 화를 냅니다. 나는 힘 약한 아이도 스스로 하려고 한다는 걸 알고 그때부터는 함부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차 문 열기 힘들어?’ ‘도와줄까?’ 물어봅니다. 아이가 도와주라고 하면 그때 도움을 줍니다. 동의의 절차를 밟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자주 물어보고 의향을 물어보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아이가 과자 봉지를 뜯는데 힘들어 하면 힘든지 물어보고 도와줄까 물어봅니다. 어떤 날은 아이가 힘들어도 스스로 끝까지 과자를 까려고 노력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날도 있습니다. 부모는 지레짐작하지 않고 질문을 하면 그만입니다. 이 원칙을 한동안 실천했더니 아이들이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아이들 역시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예쁘게' 말해야 합니다. '아빠 우유 줘' 대신 '아빠, 우유 주세요.'하고 예쁘게 말하는 원칙을 정해 놓았더니 따라하려고 노력합니다. 밖에 나가면 다른 어른들에게 부탁할 일이 많은데, 예쁘게 말하면 어른들이 대견해 하고 잘 챙겨주니 편안하니다. 
원칙을 정하되 자주 물어보는 것 역시 하나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권력관계, 명분과 원칙은 어린 아이들의 생활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민주주의 감각을 키워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민주주의를 책을 통해서 배웠지만 이미 아이들은 민주주의 감각이 타고 났으니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 스스로 복종하는 원칙이 있다는 것은 가족생활의 든든한 보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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