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8] 여중생과 고대 어머니의 지혜


엄마들과 논어 읽기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낳아 준 어머니에게 갚지 못할 은혜를 받았는데, 이렇게 커서도 어머니들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엄마들을 만나면서부터 내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거든요. 어머니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사랑입니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책 놀이를 주로 하다가 점점 대범하게 인문학 이야기와 동양철학까지 세상에 꺼내 놓을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어머니들의 지지가 컸습니다. 대강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머니들을 볼 때도, 작은 소강당에서 몇몇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나를 바라보고 응원하는 눈빛을 받으며 힘을 얻었습니다. 나는 바로 이게 어머니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나는 <논어>를 스승 공자와 제자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는데, '논어 읽는 엄마'는 공자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과 만나는 공간입니다. 작은 모임이지만 논어 읽기 모임에 참여한 어머니들은 무척 열정적이고 따뜻했습니다. 모임에 참여한 어머니들의 일성을 몇 개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번도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요. 아이에게 고전을 읽혀야 하는데 제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너무 생각없이 그냥 하루하루에 너무 매진해서만 사는 것 같고. 너무 무식한 것 같아서"

"제가 항상 제 시각으로만 남을 판단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논어에서 가르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 같이 공부하고 싶었어요."

"자식한테만 읽어라 읽어라 할 게 아니라 대화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왔어요."

엄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가르쳐주는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도서관에서 한참 글을 쓰다가 배가 고파서 편의점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여중생 두 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여중생들과 동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중생들이 대화가 참 재밌었어요.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는데, 우리 엄마는 뒤끝이 없어. 나랑 대판 싸우고 나서 십 분도 안 지났는데 완전 밝은 얼굴로 밥 먹으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인간관계가 엄청 멍청해. 나도 그걸 닮았는데, 그건 바꾸고 싶지 않아."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여중생이 맞장구를 칩니다. 

"나도 엄마 닮아서 인간관계가 엄청 멍청한데, 초등학교 때 그것 때문에 피본 케이스야. 하지만 나도 그걸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어."

상당히 거칠게 말했는데 '인간관계가 멍청하다'는 여중생의 표현에는 어머니의 속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뜻을 굳이 풀어본다면  "피해를 주건 이익을 주던 넓고 깊게 사람을 포용하는 태도", "계산적이지 않은 모습"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 어머니의 그 딸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자들은 남자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왔습니다. 로마의 건립 초기에는 여자들이 부족해서 '여자 훔쳐오기'가 국가정책이었습니다. 로물루스가 다스리던 로마는 이웃 부족인 사비니에서 많은 여성들을 강탈해갔습니다. 사비니 부족은 오랜 시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았고 양군은 베스타 신의 성전에서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로마에 잡혀 갔던 사비니의 여인들은 눈물 맺힌 호소로 양쪽 진영을 감동시켰고 휴전협정을 맺게 됩니다. 어떤 장군이나 유세가도 할 수 없었던 여성의 위대한 승리는 여중생이 말했던 '멍청한 인간관계'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나요? 왜 우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심한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 우리는 억울하게 폭력에 의해 붙잡혀 왔어요. 또한 형제나 부모, 친척들로부터도 그렇게 오랫동안 버림받아 왔지요. 그런데 한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그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얽매어 있는 지금, 우리는 또다시 그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고 죽는 것을 보며 울부짖어야 하나요? 우리가 처녀로 있을 때에는 구출하러 오시지도 않더니, 지금에 와서야 아내와 어머니가 된 우리를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떼어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이것은 그 옛날에 우리를 버리고 돌보시지 않은 것보다 더 심한 일이에요. 저들의 사랑과 당신들의 열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해야 할까요? 만일 다른 어떤 이유로 전쟁하는 것이라면, 우리를 보아서라도 사위와 손자가 된 사람들에게만은 손을 대지 마세요. 만약 우리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를 데려가세요. 하지만 우리와 함께 당신의 사위와 손자까지 도 데리고 가세요. 우리를 부모와 형제 품으로 돌려보내셔도 좋지만 우리 남편과 자식들을 빼앗아가진 마세요. 제발 애원하느니 이제 또다시 우리를 납치해 가지는 마세요."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로물루스' 편

휴전협정 역시 독특한데, 전쟁을 종식시킨 여성들의 명예가 담겨 있습니다. 휴전문의 내용은 남편과 같이 머물러 있고 싶은 여자는 그대로 살되, 단 실을 잣는 일 이외의 모든 집안일은 하지 말 것. 그리고 로마인과 사비니 인은 시내에 함께 살되, 시의 이름은 로물루스의 이름을 좇아 로마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남자들은 위와 같은 처지가 되면 복수의 칼날을 갈고, 목숨을 던지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죠. 사비니의 여성만큼은 아니지만 45만명의 목숨을 살리려고 했던 조괄의 어머니도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운명을 결정지은 조나라와 진나라의 장평(長平) 전투에서 조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장군은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조괄의 병서'라는 속담이 전해지는데, 실전 경험 없이 책에만 의존하는 못난 사람을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조괄의 어머니는 자식이 나라의 대장군이 되었지만 임금에게 대장군 임명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버리고 45만의 조나라 아들들을 염려한 조괄 어머니의 눈물어린 설득은 사마천이 생생하게 기록에 남겼습니다. 

"예전에 제가 조괄의 아버지를 모셨을 때, 그 당시 제 아들의 아버지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먹여살리는 자가 수십 명이고, 벗이 된 사람은 수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왕이나 종실(宗室)에서 상으로 내려준 물품은 모두 군대의 벼슬아치나 사대부에게 주었고, 출전 명령을 받으면 그 날부터 집안 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아들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어 동쪽을 향해 앉아서 부하들의 인사를 받게 되었지만, 군대의 벼슬아치 가운데 누구 하나 제 아들을 존경하여 우러러보는 자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내려주신 돈과 비단을 가지고 돌아와 자기 집에 감추어두고, 날마다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둘러보았다가 그것들을 사들입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 아버지와 같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쓰는 것부터 다릅니다. 부디 왕께서는 제 아들을 보내지 마십시오."
- 사마천, <사기열전>, '염파·인상여 열전'

조괄 어머니의 진심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조나라 효성왕은 대장군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조괄의 어머니는 체념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제안을 합니다. 

"왕께서 굳이 그 아이를 보낸다면, 그 아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저를 그 아이의 죄에 연루시켜 벌을 받지 않게 해주십시오."
- 위와 같은 책 

조괄이 대장군으로 임명되자 군령을 모두 밖고 군대의 벼슬아치들을 모두 교체시키자 조나라 군대는 술렁였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나라는 조나라 군대의 식량 운송로를 끊고 허리를 끊어버렸습니다. 결국 45만명이나 되는 조나라의 군사는 모두 전사하거나 굶어죽거나 생매장을 당하고 나이가 어린 병사 240명만 조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기세가 오른 진나라는 조나라 서울인 한단을 포위해 1년이나 조나라를 괴롭혔습니다. 조나라 왕은 조괄의 어머니에게 한 말이 있기 때문에 그녀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들은 보는 눈이 다릅니다. 이러한 점을 발전시키고 꽃피우게 할 수 있다면 가족에게도, 사회에게도 커다란 행복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나'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자아'를 찾을 수 있도록 어머니 스스로도 노력하고, 가족들도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 안에는 '나', '아내', '어머니', '친구', '직장인' 등 여러 가지 자아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아내'나 '어머니'라는 자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어머니들이 다양한 자아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어머니 스스로도 행복하고 가족도 행복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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