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5] 공자에게 배우는 사랑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부모 자신의 관념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부모님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나온 질문입니다. 쉽게 대답할 수는 없는 질문이죠. 한 어머니가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관념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남과 다를 바 없지만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때, 아이들의 소망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에 의해서 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 어머니가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떤 부모든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을 인정하기 쉽지 않거든요. 우리의 교육체계와 사회적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통제'와 '교육'의 대상이지 '대화'의 상대자는 아닙니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 일종의 신분과 차별이 존재합니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죠. 우리 아이들은 민법상 미성년자(未成年者)로 규정됩니다.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통제의 대상이 됩니다. 부모님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의 의향을 물어보고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이 익숙하신가요?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의향을 물어보지 않고 결정하기 때문에 원래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순응적인 아이가 되어 갑니다. 예전에 어린이를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강연에 참석한 가족이 저자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여기 오기 싫었는데요 엄마가 억지로 끌고 왔어요. 그러면 엄마는 독재를 하는 건가요?"(아이)
"본인이 원치 않겠지만, 본인을 위해서 좋은 거라면 '선의의 독재'는 용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엄마)
"역대의 모든 독재자들이 자신의 독재를 '선의의 독재'라고 불러 왔습니다."(강사)
"하하하!!"(청중)

아이가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은 평소에 보기 어려운 장면이어서 신선했고, 부모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마음이 말로 명확하게 표현되어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처럼 이 부모님도 마음속에 사랑이 맴도는 모습입니다. 사랑이란 마치 예술작품처럼 마음속에서 소중하게 빚어내고 몸 밖을 나가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다행히도 전달할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돼 보냈던 사람에게 돌아오면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사랑'입니다. 아이와 이렇게 사랑하고 계신가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연애시절로 되돌아가 봅시다. 연애결혼을 한 엄마와 아빠는 결혼하기 전에 서로 사랑했던 사이입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고, 엄마에게 아빠의 사랑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를 선택한 것 아닐까요? 그 결실이 바로 아이입니다. 그런데 연애할 때 했던 것처럼 아이한테 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아이와는 연애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아이도 사람이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나 연인에 대한 사랑은 한핏줄입니다. 

나는 공자에게 두 가지 사랑법을 배웠습니다. 공자는 스승으로서 제자를 사랑하는 방법, 아버지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물론 당시 시대적 상황과 고정관념 때문에 군신관계처럼 설정돼 있지만, 진심과 본질만 걷어내서 보면 배울 만한 가르침입니다. 먼저 '집중하는 사랑'을 소개합니다. 

자로가 물었다. "들은 것은 곧 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형이 계시는데 어떻게 들은 것을 바로 행하겠느냐!"
염유가 물었다. "들은 것은 곧 행하여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들었으면 바로 그것을 행하여야지!"
공서화가 물었다. "유가 '들은 것은 곧 행하여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는 선생님께서 '부형이 계시다.'고 말씀하시고, 구가 '들은 것은 곧 행하여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는 선생님께서 '들었으면 바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하여 감히 까닭을 묻고자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그를 나아가도록 해준 것이고, 유는 남보다 두 배나 적극적이기 때문에 그를 물러서도록 해준 것이다."
- <논어> 11-21

<논어>를 여러 번 읽으면서 공자와 제자의 문답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제자의 성향에 따라서 공자의 대답이 달라졌습니다. 즉, 공자의 대답 안에는 제자가 반영돼 있었습니다. 자로와 염유는 같은 질문을 했지만 공자는 정반대의 대답을 해줍니다. 스승인 공자는 제자들의 평소 언행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놓고 있다가 질문을 했을 때 맞춤형 답변을 해준 것입니다. 제자에 따라서 달라지는 공자의 답변 방식 때문에 공자를 '스승의 표상'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집중하는 사랑'은 아이를 둘 이상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아이에 맞게 사랑을 주는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손가락들은 저마다 자신이 사랑을 덜 받는다고 생각하죠. 부모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로 잰 듯 사랑을 나눌 수도 없고, 특히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자식 사랑의 셈법은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기계적으로 사랑을 나눠주려는 부모도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면 두 아이 모두 사랑을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공자가 제자를 사랑한 방식대로 한다면, 아이의 평소 성격이나 감정 상태에 맞게 아이를 사랑해주고 북돋아 주면 아이는 온전히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민준이는 감성적이고 자연 관찰을 좋아합니다. 민준이 손을 잡고 오솔길을 걸으면서 단풍나무나 솔방울을 만지기도 하고,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날씨가 좋고 따뜻한 날은 가만히 앉아서 개미 구경도 합니다. 민서는 활동적이고 장난을 좋아합니다. "불룩불룩 뿡!" 하고 외치면서 엉덩이로 들이미는 장난을 칠 때도 있고, 헝겊으로 된 축구 골대를 펼쳐 놓고 던지기 놀이도 합니다. 민서가 화가 났을 때 손가락을 집개 모양으로 하고 "이만큼 화났어?" 하고 물어보면, 민서는 제 손가락을 양쪽으로 크게 늘립니다. "아!"하고 아픈 시늉을 하면 울던 민서가 까르르 하고 웃습니다. 아이들이 같이 있을 때는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찾아서 하기도 하지만, 아이와 둘이 있을 때 충분히 집중해서 놀아주면 대개 만족하고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아이들의 성향을 알고 있으면 아이들이 행동할 때 적절한 반응을 해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격에 맞는 부모의 반응을 보면 아이들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공자의 제자들도 집중하는 사랑 때문에 스승을 마음 깊이 따랐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독특한 사랑법은 '수고롭게 하기'와 '존중하기'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논어> 14-8

아이를 수고롭게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려고 애쓰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이건 아이를 망치는 길입니다.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집안일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을 분주히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거나, 이불을 털거나,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면 호기심이 생깁니다. 여러 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접근합니다. 빨래를 널고 있으면 자기도 널겠다고 하면 빨래 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거운 빨래 대신 양말이나 속옷 등을 아래쪽에 널게 합니다. 아이들은 아빠 따라서 양말과 속옷을 탁탁 털어서 고사리 손으로 빨래걸이에 넙니다. 아이들에게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을 말해주기도 하고,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갈 때는 함께 갈까 하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민준이는 매주 화요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화요일은 신경 써서 일찍 일어나려고 하고 아빠와 같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립니다. 종이 쓰레기 같은 무거운 쓰레기는 내가 들고, 민준이는 비닐 쓰레기 같은 가벼운 쓰레기를 가지고 갑니다. 이렇게 몇 번 하다 보면 민서도 따라 나섭니다. 남자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은 특히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점점 가정의 권력이 엄마에게 넘어가고, 남녀의 성비율이 차이나면서 남자들은 점점 배우자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배우자를 구하더라도 사랑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들었는데, 강사가 "여성들이여, '훈남' 찾지말고 가사분담해줄 남편을 찾으세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여성들은 능력 있고 잘 생기고 매력 넘치는 사람보다는 현실적으로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선택할 것입니다. 남자 아이들이 '집안일'에 경쟁력이 있다면 선택받을 확률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가르쳐줄 때는 막무가내로 하지 않습니다. 공자의 방법을 응용했습니다. 자도 자식을 수고롭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켰는데, 아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공자께서 백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시경>의 <주남>과 <소남>을 연구한 적이 있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연구하지 않으면, 그는 마치 담벽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논어 17-10)

진항이 백어에게 물었다. "당신은 특이한 가르침을 들은 게 있겠지요?" 그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일찍이 홀로 서 계실 때에 제가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지나가는데, '시를 배웠느냐?'하고 물으시더군요. '배우지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말할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물러나 시를 배웠지요. 
다른 날 또 홀로 서 계실 적에 제가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지나가는 데, '예를 공부했느냐?' 하고 물으시더군요.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예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 앞에 설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물러나 예를 공부했지요. 들은 것은 이 두 가지입니다."(논어 16-13)

공자는 자식에게 시경과 예를 공부하게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밝힐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챙기지 않습니다. 공자의 자식이 생각해보고 옳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하는 식입니다. 어찌 보면 권위적인 가장인 것 같지만, 자식과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이 방법을 따라서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강제로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고, 호기심을 가지면 그때부터 방법을 알려줍니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갈 때도 함께 가자고 하기 전에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말해주고, 쓰레기 버리러 간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입니다. 아이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나면 먼저 함께 가자고 제안합니다. 민준이는 요새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보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를 좋아합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릴 때는 카드를 올려놓고 버튼을 누르는 방식인데, 이 방법이 재밌나봐요. 아이들은 부모가 집안일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직접 보고, 하는 방법을 듣고, 재미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결국 아이들이 '수고'를 자처하게 만드는 셈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수고롭게 하는 방법은 이와 좀 다를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이 학원 저 학원 보내면서 시시각각 챙겨줍니다. 심한 경우는 부모님이 마치 매니저처럼 챙기기도 합니다. 대치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부모가 대학의 입시요강과 전형을 꿰뚫고 아이가 해야 할 일들까지 도맡아서 아이는 그저 공부만 했습니다. 아이는 점점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동양의 방식을 응용하면 좋겠습니다. 아이에게 학원에 보내기 전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떤 과목이 부족하고 학원에 보내야 할 것이 있는지 이야기 나누고 아이가 자기 학원 시간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하기 마련입니다. 대학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은 비전이나 큰 줄기를 조언해줄 뿐, 입시 요강을 찾거나 자기소개서 등을 쓰는 일은 아이가 도맡도록 해야 합니다. 입시 요강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일부를 도와줄 수는 있지만 부모가 주도해서 하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수고로운 일을 부모가 모두 해버리면 세상 물정 몰라서 점점 남들에게 뒤쳐져서 결국에는 부모를 원망하는 지경이 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집중하는 사랑과 존중하는 사랑을 익힐 수 있다면 부모와 아이의 마음이 서로 편안해질 것입니다. '돌아오는 사랑'을 부모도 알고 아이도 안다면, 그 가족은 핏줄처럼 따뜻한 사랑이 항상 흐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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