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4] 동양이 부정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아이가 가장 예쁠 때가 언제인지 부모님들께 물어보면 ‘잠 잘 때’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새근새근 천사같이 잘도 자지요.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압니다. 천사들이 눈을 뜨면 울고불고 싸우고 부모님 속을 썩입니다. 아이들만 속을 썩이면 다행이죠. 나이가 늘 때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나가면서 아이에게도 '사회'라는 것이 생기면 부모의 애간장은 더욱 탑니다. 민준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한 살 많은 형에게 맞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참 속상했습니다. 부모 마음이라 그런지 선생님에게 항의하고, 그 형의 집에 가서 부모와 결판을 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더군요. 내 마음을 일시정지시키고 잠시 생각해 봤더니 그것이 아이들의 사회이고, 소중한 경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준이와 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왜 민준이를 괴롭히게 되었는지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부모들은 자신이 겪는 부정적인 상황을 인내하고 잘 견디지만 자기 아이만큼은 그런 상황을 안 만나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기라도 하듯 부정적인 상황이 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없애거나, 불안한 상황만 되어도 빨리 반응하고 진압을 해버립니다. 하지만 아이가 만나는 부정적인 상황을 부모가 제거해 버리는 순간 아이는 소중한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 아시나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정적인 상황을 피하고 싶습니다. 일단 눈에 안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 빨리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죠. '청양고추' 같은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매운 음식을 먹으면 우리는 냉수나 얼음물을 마십니다. 하지만 얼음물은 혀의 감각을 잠시 마비시킬 뿐 다시 매운 기운에 시달립니다. 매운 기운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방법은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침이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따뜻한 물이나 침이 천천히 매운 기운을 사그러들게 하면 더 이상 맵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매운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서경>이라는 경서에는 '만약에 약이 눈을 캄캄하고 어지럽게 하지 아니하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투약하고 나서 치유되어 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일시적인 증세가 유발되었다가 결과적으로 완쾌되는 것을 '명현'(瞑眩)현상이라고 합니다. 공자는 부정적인 상황과 시련을 묵묵히 견뎌내고 나서 성장하는 모습을 시처럼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한 해의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새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 논어9-27

부정적인 상황은 마치 예방접종 주사와 같습니다. 미리 작은 균을 경험해 봄으로써 항체를 키우는 과정과 같습니다. 아이가 부정적인 상황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차분하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대응을 할 것입니다. 민준이를 괴롭혔던 한 살 많은 형은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사촌누나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사촌누나가 민준이만 예뻐 해서 질투가 난 거였습니다. 만약 부모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차분히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정을 모르고 지나갈 뻔했습니다. 손쉬운 선택은 종종 문제를 해결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심리학자들도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A.매슬로 역시 “모든 악덕에는 저마다 선한 면이 있는데, 두려움이나 분노 등의 원인을 밝혀 나가다 보면 그런 선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양에서는 부정적인 상황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합니다. 

진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지고 따르던 제자들이 병이 나서 모두 일어나지 못하였다. 자로가 화가 나서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군자도 궁해질 때가 있는 겁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라야 궁함을 견딜 수 있다. 소인은 궁해지면 곧 함부로 행동하지."
- 논어15-1

학창시절 열심히 만들었던 오답노트를 생각해 보세요. 틀렸던 문제를 복기하고 반복해서 틀리지 않기 위해서 틀린 이유를 살펴봅니다. 인생에도 오답노트를 만들 수 있는데, 부정적인 상황을 피하면 오답노트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잘 배울수록 군자에 가까워지고, 부정적인 방법을 피할수록 소인처럼 함부로 행동하다가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입장이나 나의 감정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릅니다. 해마다 태풍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보지만 태풍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태풍은 부정적인 건가요, 긍정적인 건가요? 철학자 스피노자도 편협한 차원에서 좋고 나쁨의 가치를 판단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선과 악 그 자체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적극적인 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단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우리가 사물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되는 개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고 악일 수 있으며 또한 양자와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음악은 우울한 사람엑는 좋고, 슬픈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 스피노자, <에티카>(서광사), 210쪽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점을 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해 예견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양식일 뿐 미래의 상황에 대응하는 지혜를 담은 책입니다. 주역 점을 치면 어떤 경우도 완전히 안 좋은 것이 없고 완전히 좋은 것도 없습니다. 삶의 운 바로 옆에는 죽음의 운이 붙어 있어요. 살자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자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죠. 서당 다닐 때 훈장님은 “주역은 어떤 극한 순간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그 방법을 논한 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역의 지혜에 따르면 그 상황을 피하지 말고 일단은 직시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마냥 피해야 할 상황이 아니고 마냥 부정적인 상황이 아니고 다시 보면 쓸만하다는 거죠. 여기서 더 나아가 <맹자>는 부정적인 상황이 성장을 위한 거름이라고까지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이 사람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수고로이 하고, 그 신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어 보고, 나아가 그가 하는 일마다 어그러뜨리고 어지럽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격동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고, 그가 할 수 없는 바(능력)을 북돋운다. 사람은 항상 잘못이 있은 뒤에 고칠 수 있고, 마음에 곤란을 받고, 생각이 막힌 뒤에 분발하여 일을 하고, 얼굴색에 나타나고, 말소리로 나타난 뒤에 이해를 한다. 
안으로는 법도와 전통이 있는 세습 신하나 진중한 선비가 없고, 밖으로는 적국이나 우환이 없는 임금의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 그런 뒤에야, 우환 속에서는 생존하고, 안락 속에서 비로소 사멸한다는 것을 안다."
- 맹자 12-15

동양철학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보여주는 태도를 종합하면 무척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부정적인 상황을 만나면 피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수동적인 반응입니다. 수동적으로 반응하다 보면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점점 문제는 복잡해져서 피할 수도 없고, 대처할 능력도 기르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아이들이 부정적인 상황을 만난 것은 엉겅퀴를 만지는 일과 같습니다. 살살 도망치려고 하면 상처를 내고, 손을 힘을 주고 꽉 쥐면 괜찮습니다. 대한민국은 약자들이 살아가기에는 정말 가혹한 곳입니다. 강한 자들은 대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잔인하게 괴롭히지만, 무서운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주시하고 맞서면 점점 꼬랑지를 내립니다. 어린이집에 가거나 학교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사귈 때부터 이미 이와 같은 논리가 작동합니다. 무엇에든 맞서고 싸우라는 말이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을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라는 게 동양철학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부정적인 상황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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