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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서중석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의 현대사는 오욕과 공작, 기득권의 역사이자 투쟁과 저항, 반성의 역사이다. 격동적인 역사성은 민족의 감성을 타고 크고 작은 너울을 이루며 사납게 흘러간다.
그러나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에 비해 이를 서술한 역사서는 이론에 치중하거나 너무 학문적이어서 생명을 불어넣지 못했다. 특히 역사는 권력의 쟁투사와 서민의 일상사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전까지의 역사서는 역사의 어느 한 면만을 부각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이이화 선생은 그래서 ‘어느 누가, 때로는 암울하고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열정에 넘치는 우리의 현대사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추천사)’고 술회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사를 가만히 놔두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의 전통이 현대사를 통해 어떻게 계승되었으며 왜곡된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생긴다. 그러나 나 자신부터도 현대사에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아전과 위인 계보에서 말석을 차지한 전두환 대통령에게 커다란 존경심을 가졌던 일은 철없는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치더라도, 지금도 나는 박정희와 6월 항쟁, 제주도 4.3 사건 같은 굵직한 역사에 대해서 단 한마디의 언급을 덧붙일 자신이 없다. 접해본 역사서도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본 편파적 역사 아니면, 자학적인 역사, 강자에 의해 좌우된 정치권력사가 전부이다. 관점을 전혀 달리하는 두 역사관 사이에 어떠한 연관관계도 비유도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것은 우리 젊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처지인 것 같다.
그러던 중 좋은 역사책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현대사의 한 맥락에 관해 자료를 찾으러 서점에 갔는데, 사진과 그림, 만평 등을 함께 수록한 재미있는 역사서를 발견한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서 네 시간 동안 다이어리에 베껴 쓰고 숙제를 해결하였는데, 이와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이참에 현대사의 대강이라도 훑어보는 게 좋을 듯하여 덜컥 책을 사버렸는데, 이 책은 빈약한 내 현대사적 감각에 균형을 잡아주었다.
먼저 문체부터 평이하고 차분하다. 글을 읽는 내내 조용한 찻집에서 대화를 나누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고, 앙금이 깊은 부분에서는 나름대로의 격정도 드러내고 있었다.
‘당시 여의도 KBS 건물 담벼락에는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가 수만 장 붙어 있어 애간장을 끓게 했다.’(본문 321쪽)
오랜 시간 숙고하여 냉정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었으며,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반감을 가지는 독재자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긍정적 측면을 짚고 있었다.
유신체제는 정치적으로만 질곡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유신체제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신은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었고, 사회, 문화, 예술에 참신한 자극이 되었다. (글쓴이 서문)
그리고 서술의 논리와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당시의 만평이나 사진 등 각종 시청각 자료를 첨부하거나, 사건일지나 당사자의 수기를 덧붙여 글이 갖는 일방성을 극복하고 다양한 그림을 보여줄 수 있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재고(再考)를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박정희의 상징인 새마을 운동은 대부분 장면 정권의 구상에 의지하고 있었으며, 국가보안법은 일제 시대 총독부에 의해 제정된 치안유지법이, 이승만 정권의 필요에 의해 사용된 법률이다. 그리고 4.3사건에 대한 글쓴이의 견해도 타당하면서 흥미롭다.
1948년 4월 3일 한라산에 봉화가 오르고 무장대가 경찰서와 서청 등을 습격하면서 본격적인 항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외부와 고립된 제주도 지형을 고려할 때 그것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본문 81쪽)
역사를 전체적인 틀 안에서 비교적 냉정하게 서술하면서도 이 책에는 하나의 관점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미화하거나 증오해서는 안 되고, 모든 사건은 현대를 이루는 소중한 재료가 된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 책의 저술에서도 각별히 유념했지만, 현대사를 가르칠 때 학생들이 현대사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도록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 해방이 얼마나 혁명적인 변화를 수반했는가,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상당히 빠른 수준으로 보통선거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점 그리고 교육의 확대로 한글세대가 대거 탄생하고 토지개혁이 이루어져 1950년대에 1960~1980년대 경제발전의 초석이 놓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가르친다. 특히 나는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역동적인 힘을 중시한다. 역동성의 기반인 평준화가 왜 그렇게 빨리 성취되었나를 설명하고, 1956년 정ㆍ부통령 선거 등 여러 선거에서 유권자의 한 표가 독재정권을 위협했던 것을 강조한다. (글쓴이 서문)
참고로 이 책을 쓴 서중석 교수(성균관대)는 역사교육연대 상임대표이고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 제작작업에 한국 대표로 활약했다. 그 동안 요즘의 역사 논란을 보고 있으면, 역사는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지키고 이어나가고,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는 실천의 대상에 가까운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모르고 넘어갔던 사실이나 잘못 이해했던 사실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현대사적 감각을 가다듬는 기회를 삼아도 즐거울 것 같다.